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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애 자연주의 식탁

이영애가 신비로움을 벗었다. 가족, 집, 라이프스타일까지 배우에서 엄마로 무장해제했다. 아름답다. 그 용기와 변치 않는 미모 역시.

On June 11, 2014

지난 2005년 영화 <친절한 금자씨>를 마지막으로 대중에게서 모습을 감춘 배우 이영애. 수많은 러브콜을 뒤로하고 경기도 양평 문호리에 둥지를 튼 그녀가 최근 SBS 다큐 프로그램 <이영애의 만찬>을 통해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을 공개했다. 상상만 해왔던 이영애의 주방은 어떤 모습일까? 요리법과 육아법 그리고 가족까지 오롯이 베일을 벗었다.

들여다보니, 이영애다웠다. 평범한 주부였고 가정에 충실한 늦깎이 엄마였다. 물론 여전히 미모는 빛났지만 화려함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앞치마를 두르고 마당의 장독대를 오가는 그녀는 집 앞 5일장에서 호떡을 사 먹기도 했다. 이웃 주민들을 집으로 초대해 잡채 요리를 선보이기도 했으며, 부모님과 마장동 먹자골목에서 고기를 구워 먹기도 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호화 주택 논란에 휩싸였던 문호리의 집. 공개한 집은 가구라고는 책상과 식탁뿐인 허허벌판, 정원은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기 편하게 나무 하나 없이 잔디만 펼쳐져 있다. 호화 주택 논란이 있었던 당시 이영애는 성당에서 기도하는 중 눈물을 흘렸을 만큼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가 왜곡되어 언론에 비쳐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남들보다 조금 늦게 엄마가 됐어요. 아이들이 커가는 하루하루가 아쉬워 일을 고사했는데, 어느새 9년이 흘렀네요. 익숙한 서울을 떠나 경기도 양평에 터를 잡은 것도 아이들이 자라서 추억할 수 있는 고향을 선물해주고 싶었거든요. 엄마가 된 이후 작품을 고르는 시선도 달라졌어요. 한번 배역을 맡으면 집에서도 그 역할에 몰입하게 되는데, 행여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까 봐 연기에 대한 욕심도 잠시 미뤄놓은 상태입니다.”

최근 다큐멘터리로 복귀를 결정한 이유도 아이들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는 유명 배우보다 따뜻한 엄마로 남고 싶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1년 반 동안 모유 수유를 했어요. 매일 모유를 얼마나 먹였는지, 이유식은 뭘 먹였는지 수첩에 기록해두었죠. 그렇게 한 2년 넘게 쌍둥이가 먹는 것을 챙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음식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어요.”

긴 공백 중에도 음식 다큐를 흔쾌히 받아들인 것은, 음식에 대한 관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평생 간직할 수 있는 우리 문화의 기록을 남겨보려는 의미였다. 실제로 이영애는 가족의 건강을 위해 베이커리 강습을 받기도 하고, 출근하는 남편에게 직접 과일도시락을 싸주는 등 여느 주부 못지않게 먹고 바르는 것에 관심이 많다.

그녀의 일상은 담백했다. 잠들기 전 두 아이에게 양치질을 시키고 아이들의 쾌변을 위해 변기 앞에서 파이팅을 외친다. 햇살 좋은 날에는 온 가족이 산책을 한다. 부부만의 산책길이 따로 있다. 쌍둥이의 노랫소리가 상쾌하게 들린다. “아빠 곰은 뚱뚱해, 엄마 곰은 날씬해….” 평범해서 더욱 값진 행복이다.

“쌍둥이여서 두 배로 힘든 게 아니라 6배로 힘들어요. 모든 엄마들의 심정을 너무 잘 이해할 것 같아요. 그래서 길 가다가 만난 쌍둥이 엄마들과도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어요. 저 역시 엄마가 되니 변하더라고요. 담 넘어 이웃집에 채소를 얻으러 가는 담력도 생겼지요. 예전의 저라면 꿈도 못 꿀 일이죠. 쌍둥이는 방울토마토며 가지며 못 먹는 게 없어요. 영락없는 시골 아이들이죠? 입맛도 사는 곳을 닮아가나 봅니다.”

저녁 시간. 이영애는 앞치마를 두르고 된장찌개를 끓인다. 아이들 입맛에 맞출 겸 모든 반찬이 저염식이다. 이웃집에서 얻어온 호박잎부터 가지까지 그야말로 자연주의 식탁이다. 아들 승권이는 특히 호박잎을 좋아한다. 그렇게 오늘도 해가 저문다. 아이들이 잠들 시간. 아빠는 아들, 엄마는 딸을 맡아 재운다. 엄마는 딸에게 동화책을 읽히고, 아빠는 아들에게 스마트폰을 살짝 넘긴다. 나름대로의 방식이다.

“쌍둥이다 보니 재우는 것도 품이 두 배 들어요. 한 시간을 어르고 달래야 잠이 들어요. 그렇게 밤 10시가 된 이후에야 저만의 시간이 옵니다.”

#5일장에 나타난 톱스타
오늘은 양수리 5일장에 갈 예정이다. 경기도 양평에 둥지를 틀고 전원생활을 하게 된 이후부터 자연스레 찾게 되는 곳이다. 파란 하늘 아래 형형색색의 천막 사이로 펼쳐진 장터 풍경 속에 톱스타 이영애가 나타난 것이다. 장터 상인이 들려주는 나물 삶는 노하우와 할머니가 직접 까주신 도라지는 이곳 양수장에서만 얻을 수 있다며 5일장의 매력에 푹 빠져 자유롭게 시골 장터를 누빈다. 단골 가게도 여럿 있다. 인사를 주고받는 모습이 영락없는 주부 9단이다. 물론 수수한 옷차림에도 눈부신 외모는 어쩔 수 없다. 시선은 집중되고, 한 아저씨는 “진짜 미인이시네요”라며 놀라는 눈치다. 이영애는 아랑곳하지 않고 호떡을 먹으며 여유를 부린다.

“이런 맛에 장을 찾는 거죠.(웃음) 사실 한창 바쁘게 활동할 때는 집 앞 마트에 갈 일도 없었는데, 요새는 장보는 맛에 요리해요. 부지런히 장을 드나들다 보니 단골집도 생겼어요. 음식 재료를 살 때마다 아주머니들이 요리 방법까지 친절히 알려주는 게 재래시장의 매력이죠. 오늘도 인심 좋은 아저씨와 할머니 덕분에 사는 것만큼이나 덤으로 얻어가네요.”
집에 가자마자 싱싱한 재료로 저녁 준비를 시작한다.

#이영애 패밀리, 고구마 캐다
오늘은 이웃집 할머니가 고구마를 캔다기에 소일 삼아 아이들과 함께 나왔다. 아직 손에 익지 않아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은 신이 나 있다. 씽둥이는 캐는 족족 엄마의 바구니로 쏙쏙 넣는다. 두둑하다. 음식을 나눠주는 이웃의 정이 새삼 귀하게 느껴진다. 밥을 나누는 것이 사람 사는 정이요 평화라는 신부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오늘의 간식은 고구마다. 고구마 한입, 배추김치 한입. 음식은 행복이다.

“승권아, 이것 봐라~.” 집 앞마당에 눈이 소복이 쌓였다. 모자와 부츠까지 중무장한 아이들이 대굴대굴 눈 위를 구른다. 아이들과 한 시간 뒹굴고 나니 배가 고프다. 오늘 저녁 메뉴는 불고기.

“어머니들이 보시면 소꿉장난하듯 요리를 한다고 하시겠어요. 저는 책이나 인터넷 자료, 블로그를 참고해 저에게 맞춤형 레서피를 만들어 요리를 해요. 시대가 흐르면서 음식이 변하기도 하지만 먹는 사람의 입맛과 취향에 따라 변하기도 하잖아요. 아이들에게 채소를 어떻게 먹일까 고민하다 보니 불고기에 야채가 이렇게 많이 들어갔답니다.” 우리네 식탁에 오른 불고기와 다를 바 없다. 평범하지만 맛있는 일상이다.

#집들이 하던 날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난생처음으로 이웃을 집으로 초대해 집들이를 할 예정이다. 덕분에 아침부터 분주하다. 미용실만 가면 질색하는 통에 쌍둥이의 전담 미용사도 자처했다. 학용품 가위로 아이들 머리를 쓱쓱 자른다. “보시다시피 솜씨가 이래요.(웃음) 처음 하는 집들이라 아이들 외모에도 신경을 써야겠더라고요.”
점심 식사에 초대한 손님은 9명. 이렇게 많은 사람을 초대해 식사 대접을 한 적은 처음이다. 아랫동네에 사는 영어 선생님, 입담 좋은 빵집 아저씨, 쌍둥이가 아플 때마다 도움을 줬던 소아과 선생님, 자주 가는 떡집 아주머니까지. 인생 2막에 나타난 소중한 친구들이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좋은 사람과 나누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생각해보니 이웃들과 밥 한 끼 나눠본 적이 없었어요. 늦었지만 이번 기회에 자리를 마련해보려고요. 주변에서 저를 얘기할 때 신비주의라는 말이 빠지지 않지만, 사실 당시엔 일에만 열중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만들어진 이미지예요. 이제는 편하게 다가가려고요. 사람과 사람, 이웃과 이웃으로 대하고 싶어요.”

잡채에 고기에 그렇게 밥 한 끼 먹었을 뿐인데 서로의 벽이 허물어진다. 음식이라는 게 진수성찬이라도 좋은 사람들과 나눌 때 진가가 발휘된다. 만든 사람과 먹는 사람, 서로의 진심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매일 우리는 밥상을 대해요. 엄마에게서 딸로, 그 딸이 엄마가 되어 딸과 아들에게로. 음식 속에 희로애락이 담겨 있기에 저는 요리하는 게 좋아요. 모두에게 제 마음이 전해졌으면 좋겠어요. 참, 얼마 전 집 마당에 김장독을 묻었어요. 문호리로 들어오면서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에요. 물론 제 솜씨는 아니고요, 친정엄마의 손맛을 빌렸죠. 그 진심이 제 아이들에게도 언젠가 전해지겠죠?”
그렇게 또 하루가 간다. 엄마로 아내로, 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

쌍둥이는 아빠와 엄마를 골고루 닮았다. ‘시골 출신’이어서인지 야채도 과자만큼 잘 먹는다. 이영애는 두 아이를 위해 요리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된장찌개 마니아라는 쌍둥이 덕에 저염식으로 모든 반찬을 조리한다. “심심한 이영애표 된장찌개요? 아이들이 얼마나 잘 먹는데요.” 여느 엄마들처럼 앞치마를 두른 채 식사를 한다. 쌍둥이를 챙기느라 식탁 앞에서도 분주하다. 이렇듯 이영애의 라이프스타일에 화려함은 없었다. 대신 평범해서 아름다운, 반가운 그녀였다.

  • 최근 이영애는 화장품 모델료 선지급금 반환소송에 휘말렸다. <우먼센스> 취재에 따르면 이영애 측은 “M사가 당초 약속했던 대로 화학물질 첨가나 법을 위반하면 안 된다는 조항을 이행하지 않았다”며 허위 사실 유포 및 명예 훼손으로 고소할 예정이다. 이번 소송은 단순히 계약이나 금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두 아이의 엄마로서 유아용 화장품에 유해 성분이 들어간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는 소신의 의미이기도 하다.
CREDIT INFO
취재
하은정
사진
SBS <이영애의 만찬> 화면 캡처
2014년 03월호
2014년 03월호
취재
하은정
사진
SBS <이영애의 만찬> 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