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응답시킨 비결
처음엔 반신반의하다. 전작 <응답하라 1997>(이하 <응칠>)이 성공했던 이유는 재치 있는 대본과 연출에 더해진 90년대 향수가 컸기에 또다시 90년대를 소환한 속편이 성공할 수 있을까 의심이 갔다. 하지만 이번에도 대성공이다. 90년대 회고담은 가족극의 서사로 드라마가 강화되며 더 넓은 시청층에게 사랑받았다.
<응칠> 이야기의 중심이 부산 머스마와 가스나 윤제(서인국)와 시원(정은지)의 첫사랑이라면,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의 이야기는 전국 각지 청춘들의 드라마로 확장된다.
이를 받쳐주는 개성 강한 캐릭터들은 인기의 일등 공신. 마산에서 올라온 성동일·이일화 부부의 딸 나정(고아라)과 첫사랑 쓰레기(정우), 다정다감한 서울 청년 칠봉(유연석), 역대급 노안과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 삼천포(김성균), 순천의 멋쟁이 해태(손호준), 전라도 ‘꼴통 가스나’ 윤진(민도희), 내성적이고 귀여운 충청도 소년 빙그레(바로) 등 다양한 청춘들은 모두 매력적이며, 이들이 따스한 정으로 얽히는 신촌하숙은 유토피아적인 공동체 같다.
걸쭉한 사투리를 기막히게 소화하는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무엇보다 <응칠>과 공유하는 ‘남편 찾기’ 코드가 강력해진 것도 신의 한 수. 물론 그중에서도 남편 후보는 쓰레기와 칠봉이로 압축된다. 그들은 각각 거칠지만 속 깊은 상남자, 섬세하고 부드러운 훈남을 연기하며 양 러브 라인 지지자들의 팽팽한 대결을 이끌고 있다. 과연 남편은 누구일까? 확실한 것은 참으로 오랜만에 세대와 성별을 초월해 뜨거운 사랑을 받는 드라마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 시절 잇 아이템
대중가요의 황금기
대중가요의 황금기였다. 지금은 비주류로 취급받는 록 음악도 가요 프로그램 1위를 심심찮게 차지할 정도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사랑받았다. 사랑받는 뮤지션들은 대부분 직접 곡을 쓰고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들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비롯해 듀스, 이승환, 신승훈, 윤상, 이적, 신해철, 유희열, 공일오비, 박진영, 김동률 등 이때 데뷔했거나 전성기를 구가한 대표적인 싱어송라이터들이 폭넓은 장르에서 수많은 명곡을 탄생시켰다.
2백80만 장으로 단일 앨범 판매량 최고 기록을 남긴 김건모 3집 <잘못된 만남>을 비롯해 많은 밀리언셀러 음반도 이 시기에 등장했다. 또한 1995년, 대표 음악 채널 엠넷과 그 라이벌 방송 채널 KMTV(Korea Music Television)의 개국은 뮤직비디오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며 주류 음악계에서 비주얼의 가치가 점점 강화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 밖에 90년대만의 음악 풍경에서는 대학가 중심의 음악도 빼놓을 수 없다. 대학가요제는 김경호, 전람회, 이한철 등을 배출한 권위 있는 가요제였으며, 연대 록 밴드 소나기와 서강대 노래패 에밀레 등 대학 밴드가 유명 가수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응사>에서 빙그레가 의대를 휴학하고 가입한 동아리가 바로 소나기. ‘꽃다지’ ‘노찾사’ 등 민중가요 노래패들도 대학가를 넘어 주류에서까지 사랑받던 시절이기도 했다.
추억의 드라마, 영화
90년대는 드라마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응사>에 자주 등장하듯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드라마를 보고 그 주제곡이 가요 프로에서 1위를 하던 시절이었다.
특히 1992년 최진실과 최수종의 <질투>로 시작된 트렌디물의 등장은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기존 드라마에서 신파를 제거하고 신세대의 로맨스와 도시 남녀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감각적 영상으로 그리며, 패션, 음악 등 수많은 유행으로 이어지는 파급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차인표·신애라의 <사랑을 그대 품안에>, 손지창·김민종·이정재·우희진·이본·류시원 등 청춘스타의 총집합 <느낌>, 청춘 스포츠물 <마지막 승부>, 심은하의 공포물
이 시절은 한국 영화의 부흥기로도 기억된다. 1993년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가 역대 최초로 서울 관객 1백만 명을 넘긴 것이 부흥의 본격적 서막이다. 같은 해 강우석 감독의 전설적 흥행작 <투캅스>, 90년대 스타의 상징 최진실과 박중훈의 <마누라 죽이기>, 정우성을 배출한 <구미호>, 문성근과 심혜진의 <세상 밖으로>, 최재성과 최명길의 <장미빛 인생>, 박중훈의 <게임의 법칙> 등이 대표작.
<응사>에서는 쓰레기와 빙그레가 그해 마지막 날 옛 정동극장에서 <구미호>와 <마누라 죽이기>를 심야 상영으로 밤새 보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야구의 전성시대
1994년에 농구의 인기가 뜨거웠다고는 하지만, 사실 그해 스포츠의 진정한 주역은 뭐니 뭐니 해도 LG트윈스의 ‘신바람 야구’였다. <응사>에서는 바로 이 LG구단을 가리키는 서울 쌍둥이 팀 코치이자 나정의 부친 성동일의 입을 통해 당시의 열풍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열풍의 중심에는 그해 신인왕을 차지한 꾀돌이 유지현, 캐넌 히터 김재현, 원조 ‘미스터 LG’ 서용빈 등 LG의 신인 삼총사가 있었다. LG는 이 신세대 삼인방의 활약을 통해 젊은 층과 여성층을 야구장으로 대거 끌어들였고, 그해 한국시리즈 우승컵까지 거머쥔다. <응사>에서 성동일은 앞으로도 10년간은 LG 세상이 될 거라는 대사를 통해 그해 이후 한 번도 우승의 꿈을 이루지 못한 LG 팬들의 눈에 눈물을 흐르게 하기도.
해태 타이거즈 역시 추억의 대상이다. <응사> 등장인물인 해태의 별명이 바로 이 야구단에서 비롯되었다. 과자 이름보다 최강의 야구팀으로 더 많이 인식되던 ‘해태’라는 이름은 2001년 기아그룹이 야구단을 인수하면서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응사>의 또 다른 등장인물 빙그레도 비록 웃는다는 뜻이긴 하지만 또 다른 추억의 야구팀 빙그레 이글스를 연상시키고 있다. 빙그레 이글스는 1994년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팀이었다. 그해 한화가 구단을 인수했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외에 대학 야구도 당시에는 인기였다.
우리들의 오빠
<응칠>에 10대들의 우상 ‘에쵸티’가 있었다면 <응사>에는 문화대통령 서태지가 있다. <응사>는 아예 오프닝 타이틀부터 ‘하여가’로 시작하며, ‘교실이데아’를 거꾸로 돌리면 “피가 모자라”라는 가사가 나온다는 ‘서태지 악마설’이 뉴스로까지 보도되는 에피소드를 통해 그 시절 서태지의 막강했던 영향력을 증언한다.
서태지는 극 중 가요 프로그램 대기실을 찾아온 열혈 팬 윤진에게 꼬깔콘을 집어주는 뒷모습과 목소리로 출연하기도 했다. 물론 대역으로. 목소리의 주인공은 성대모사의 달인 정성호였으나 서태지보다 양현석 목소리에 더 가까웠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제작진은 리얼보다 재미를 노렸던 듯싶다.
연대 농구부, 일명 ‘신촌 독수리 5형제’도 만만치 않은 오빠부대를 몰고 다닌 이 시기 대표 오빠들이다. 드라마 <마지막 승부>, 만화 <슬램덩크>와 함께 농구 붐을 일으킨 주역들로 이상민, 문경은, 우지원, 김훈, 서장훈 등 베스트 멤버는 뛰어난 실력, 젊은 패기, 풋풋한 외모로 지금의 아이돌 부럽지 않은 팬덤을 형성했다. <응사>에서 나정이 연대로 진학한 이유도 이상민을 보기 위해서다.
배우로는 <마지막 승부>의 장동건, <느낌>의 꽃미남 삼인방 손지창, 김민종, 이정재 등이 청춘 스타들로 급부상했고, 홍콩배우 장국영, 주윤발, 유덕화, 알란 탐의 인기도 뜨거웠다. 장국영과 유덕화의 투유 초콜릿 CF는 아직도 회자될 정도로 유명했으며, “쏴랑해요 밀키스”라는 명카피를 남긴 주윤발이 ‘남자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X세대 신인류 패션
90년대의 주역 X세대는 다방면에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다. ‘신세대 패션의 아이콘’ 서태지는 힙합 바지, 멜빵 데님, 백팩, 벙거지 모자, 상표를 떼지 않은 옷 등을 유행시켰다. 이주노의 마스크 패션도 대단했다.
이에 자극받은 소년소녀들은 통 넓은 힙합 바지로 전국의 먼지를 쓸고 다녔다. 지금은 ‘공포의 청청’으로 불리지만 위아래를 데님으로 통일하는 패션도 당시에는 인기였다. ‘청카바’로 불리던 청재킷은 국민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고, 아무나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소녀들은 대신 마리떼 프랑소와즈 저버, 겟유즈드, 게스, 스톰, 보이런던, 미치코런던 등 ‘고급 브랜드’에 집착했다.
남학생들의 경우에는 브랜드 운동화가 집착의 대상이었다. <응사>에서 빙그레가 새 신발 신고식이라며 사뿐히 즈려밟았다가 쓰레기에게 헤드 락을 당하고 만 리복의 샤킬 오닐 농구화를 비롯해 에어 조던의 나이키가 투톱을 형성했다.
일명 대학생 패션도 등장했다. 전공 책 몇 권을 팔에 끼고 어깨 위에 니트를 걸치거나 바지허리에 셔츠를 매고 이스트팩 혹은 잔스포츠를 메면 완성. 겨울이라면 그 위에 떡볶이 코트를 겹쳐 입고, 멋쟁이 여학생들의 경우 베레모를 써주면 오케이.
개성을 강조하는 색조 화장도 선풍적 인기였다. 수많은 여자들의 입술을 보랏빛으로 물들인 산소 같은 여자 이영애의 미스티 블루, 핏기 없는 얼굴을 더 두드러지게 만드는 밍크 브라운, 쥐 잡아먹은 입술 표현에 안성맞춤인 스칼렛 오렌지 등 립스틱이 특히 유행했다. 남성 화장품으로는 신세대들의 상징이던 ‘트윈엑스’가 대표적. 이병헌과 김원준의 CF는 지금도 유명할 정도다.
핫 플레이스 신촌
지금은 홍대 주변을 꼽지만, 90년대 젊음의 거리는 단연 신촌이 중심이었다. 연대 학생들을 주인공으로 한 <응사>는 그 시절의 신촌 문화를 잘 재현하며 향수를 자아낸다. 대표적인 것이 록카페 문화다.
삼천포와 해태가 즐겨 찾던 ‘스페이스’와 같은 유명 록카페는 강남의 나이트클럽 문화와는 다른 대학 클럽 문화의 중심이었다. 삼천포와 해태가 번번이 입장을 거부당했던 것처럼 실제로도 깐깐한 ‘물 관리’로 악명 높아 무리 중에 킹카나 퀸카를 동반해야 입장이 수월했다.
그런가 하면 나정이 이상민을 보기 위해 찾아갔던 신촌역사에서는 당시 대학의 MT 문화를 엿볼 수 있다. 과 깃발 아래 단체로 맞춘 과 티셔츠를 입고 삼삼오오 모여든 대학생들의 모습은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다.
그 시절 대표적인 만남의 장소였던 연대 앞 독수리다방(일명 ‘독다방’), 단합 식사 장소로 유명한 형제갈비 등 신촌의 명물 역시 이 대사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1994년 신촌 하숙비 VS 2013년 신촌 원룸 시세
<응사>의 주인공들이 모여 사는 신촌 하숙은 지금 봐도 꽤 큰 규모다. 2층 복층 구조, 넓은 거실과 주방과 정원, 3명의 성나정 가족 외에도 총 5명과 1명의 식객을 넉넉하게 거느리고 있다. 대략 1백 평 규모이며 현재 시세로 환산하면 10억~12억에 가까운 고급 주택. 현실에서는 드문 초호화(?) 하숙집으로, 식탁 위 반찬만 봐도 호텔급이다.
게다가 주인집 식구, 옆방 하숙생까지 모두 끈끈한 가족애를 자랑한다. 당시 신촌 대학가 하숙비는 대략 30~40만원 정도였다. 아침, 저녁 식사와 전기세를 비롯한 세금까지 모두 포함한 금액이다.
현재 신촌 등 대학가의 평균적인 원룸 시세는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60만원, 관리비, 전기세까지 포함하면 70만원가량. 요즘 대학생들은 하숙보다 원룸을 선호한다. 매일 아침 부스스한 모습으로 낯선 이와 밥을 먹는 것도, 옆방 하숙생과 같은 세탁기로 속옷을 돌리는 것도 2013년 대학가 트랜드와는 거리가 멀다. 난 소중하니까.
그 시절 사건사고
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
역대 최악의 건축물 사고이자 참사로 기억되는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불과 2년 사이에 한꺼번에 일어났다는 것은 지금도 놀랍다. 성수대교 붕괴는 1994년 10월 21일 오전 8시에 일어난 참사였다. 출근과 등교가 겹치는 오전 8시라 더욱 피해가 컸으며, 실제로 32명의 사망자 가운데 9명의 사망자가 무학여중과 여고에 몰려 있어 더없이 안타까웠다.
건설 당시부터 이음새가 망가지기 쉬운 공법, 점검 부실, 과적 차량 등 인재의 성격이 강했고, 이 책임을 물어 사고 당일 이원종 서울시장이 경질되고 김영삼 대통령이 대국민 특별담화문을 발표하는 등 충격의 여파가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다음 해 6월, 다시 한 번 대참사가 겹쳤다. 당시 매출액 기준 대한민국 업계 1위를 달리던 초호화 백화점인 삼풍이 무너진 것이다. 설계 변경, 부실시공, 유지 관리 등의 잘못에서 기인된, 성수대교 사고와 마찬가지로 예정된 인재였다. 사망 501명, 실종 6명, 부상 937명이라는 인명 피해는 광복 이후 가장 큰 인적 재해로 기록되었다.
북한 김일성 사망
1994년 7월 8일, 영원할 것 같던 김일성이 사망했다. 사인은 심근경색. 살아 있는 우상으로 불리던 막강 신화의 해체를 알리는 뉴스였다. 이 독재자의 사망은 1989년 베를린 장벽 해체, 1991년 소비에트연방 해체와 함께 냉전 시대의 종언을 상징하는 사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더 나빠졌다.
1993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북한 방문 당시 합의된 남북정상회담은 김일성 사망으로 인해 무기한 연기됐고, 세습 과정에서의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소문으로 한반도 전체에 위기감이 감돌았다.
<응사>에서도 이러한 당시의 분위기를 집 안에 가득 사재기해놓은 라면, 쌀, 부탄가스 등으로 묘사하고 있다. 김일성의 뒤를 이어받은 김정일 역시 순식간에 북한의 권력을 장악하고 제2의 독재자로 군림하다가 2011년 사망했다.
지존파 살인사건
1994년을 유독 흉흉했던 사건사고의 해로 기억하게 한 것으로는 지존파 사건도 빠지지 않는다. 빈부 격차에 불만을 품은 6명이 지존파라는 범죄 집단을 결성, 부유층에 대한 증오를 연쇄 살인으로 실행한 희대의 잔혹 범죄다.
1993년 7월 충남에서 부녀자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것을 시작으로 1994년 9월까지 총 5명을 납치 살해, 암매장 등 연쇄 살인 행각을 벌이다가 9월 16일 전원 체포되었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전 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뉴스였다.
사건의 진상이 드러날수록 사체를 토막 내고 인육을 먹는 등 엽기적인 범행이 밝혀지며 더욱 큰 충격을 안겼다. 지존파는 6명 전원이 대법원 최종 판결에서 사형이 확정되어 교수형을 받았다.
미친 연기, 그들은 누구인가?
경상도 상남자 판타지의 결정판 ‘쓰레기’ 역 정우
“그 사투리 잘하는 애?” <응사> 방영 전까지만 해도 정우 하면 이런 반응이 대세였다. 대종상 신인상을 수상한 영화 <바람>으로 부산 사투리를 기막히게 잘 쓰고 연기도 잘하는 배우라는 인식을 안겨주고, 올해 <최고다 이순신>에서 손태영을 사랑하는 터프한 연하남 역으로 인지도를 높이긴 했지만, 13년 차 경력의 배우치고는 입지가 확고한 편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응사>의 남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고 했을 때도 기대를 하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 81년생이라는 나이에 대학생 역할이라는 점도 그렇고, 90년생인 상대역 고아라와의 멜로 연기에도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 우리는 모두 ‘정우앓이’ 중이다. 극단 밑바닥 생활에서 다진 연기 내공이 이제야 빛을 보게 된 것.
걱정했던 고아라와의 케미는 물론이고 11살 연하 아이돌 바로와의 남남 케미도 환상이었다. 영화 <바람>을 보고 팬이 되어 정우를 1순위로 캐스팅했다는 <응사> 신원호 PD의 기대에 멋지게 응답한 셈이다. 신 PD의 캐스팅감 역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게 만든다.
캐릭터 ★★★★★ 여자들에겐 ‘레기 오빠’, 남자들에겐 ‘쓰성님’으로 불린다. 남녀 모두에게 로망이란 얘기. 그도 그럴 것이 천재 의대생에 각종 대중문화 지식을 섭렵하고 남자다운 외모에 태평양 어깨를 지닌 데다 축구까지 잘한다. 이 정도면 제작진이 온갖 능력을 ‘몰빵’해준 캐릭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흔한 재벌 2세가 아닌 현실 훈남 이미지라 더 설렌다. 물론 현실엔 이런 선배도, 오빠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 완벽한 판타지 캐릭터.
연기 ★★★★☆ 능청스러울 정도로 자연스러운 생활 연기다. 이 분야 최고수 성동일과 극 중에서 자연스레 주고받는 연기를 보면 감탄이 나온다. 감정 연기 폭도 넓다. 1회 때 개망나니 오빠의 코믹 연기와 진지한 멜로 눈빛을 연일 쏘아대는 현재의 연기 모두 완벽하다.
전작 ★★ 긴 경력에 비해 눈에 띄는 작품도, 존재감도 없었다. 그나마 올해 <최고다 이순신>의 연하남이 가장 대중적인 캐릭터. 하지만 그에게 대종상 신인상을 안겨준 영화 <바람>은 이 모든 아쉬움을 한 방에 날린다. 덕분에 <응사>의 캐릭터도 거머쥐었다.
스타성 ★★★☆ 부드러운 대중적 이미지를 선호하는 드라마 쪽과 달리 개성 강한 연기의 영화 쪽에 더 걸맞은 배우로 보인다. 선 굵은 외모와 남자다운 카리스마에서 제2의 하정우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뜨자마자 연이어 터진 열애설 역시 변수. 이럴 때일수록 사생활 관리가 중요한 법.
- ‘2013 대세’에서 삼각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스캔들이 터졌다. 그것도 삼각 스캔들. ‘8년 무명’ 정우로서는 ‘운명의 장난’이다. 먼저 함께 영화에 출연한 김유미와의 열애설이 터졌다. 시작하는 단계라고 인정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여심은 정우를 배신하지 않았다.
그런데 몇 시간 뒤, 가수 디바 출신 패션 디자이너 김진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삼각 스캔들을 암시하는 글을 올렸다. 두 사람은 몇 달 전 스캔들 기사가 난 적이 있다. 당시 김진은 “정우와 교제한 건 맞지만 이미 1년 전에 헤어진 상태”라고 말했다.
“내 기사를 막든가, 가만히 있는 사람 뭐 만들어놓고 양아치에 양다리까지 진짜 이건 아니지. 결혼 약속에 갑작스러운 일방적인 이별 통보, 우리 어머니 가슴에 못 박아놓고. 이제 좀 빛 보는 것 같아 끝까지 의리 지키려 했는데 넌 참 의리·예의가 없구나.”
많은 상상을 하게 하는 글이다. 두 사람이 헤어진 시기와 정우가 김유미와 만난 시기가 겹친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정우의 수난시대다. 어쨌든 정우는 현재 김유미와 교제 중이라는 사실. 아무렴, 부럽다.
제대로 망가졌다, ‘나정’ 역 고아라
캐릭터 ★★★ 캐릭터 자체로만 보면 그리 매력적인 인물은 아니다. 목소리 크고 행동은 단순과격하며 눈치도 둔감하다. 이런 나정에게 멋진 남자들이 목매는 이유는 인형 같은 외모와 순정만화 같은 몸매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연기 ★★★☆ 망가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한 몸 개그가 돋보이며 자연스러운 사투리 연기도 기대 이상이다. 가끔씩 너무 힘이 들어가 ‘나 열심히 연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은 아쉬운 지점.
전작 ★★ 데뷔작 <반올림> 이후 늘 나이보다 성숙하거나 어울리지 않는 배역을 맡았던 탓에 주목받지 못했다. 어느덧 연기 11년 차, 드디어 제2의 대표작을 갖게 됐다.
스타성 ★★★★ 남배우에 비해 연기력과 외모를 모두 갖춘 20대 여배우가 드문 현실에서 고아라의 재발견은 앞으로 더 큰 활약을 짐작하게 한다.
코믹 감초에서 대세 감초로 ‘삼천포’ 역 김성균
캐릭터 ★★★☆ 시청에서 신촌까지 오는 데 10시간 걸리는 막강 촌놈. 코믹 감초인 줄로만 알았던 삼천포는 갈수록 진국인 면모를 드러내며 첫사랑에도 제일 먼저 성공했다.
연기 ★★★★☆ 34살의 외모로 18세 새내기 캐릭터를 설득시키는 미친 연기력. 입을 꼭 다물고 밥 먹는 장면부터 물 마시는 손끝 하나하나까지 예민하고 깔끔한 성격의 삼천포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깊은 내공의 소유자.
전작 ★★★ 1994년 데뷔 이후 쭉 무명이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의 비열한 검사 역으로 빵 터지기 전까지 일주일 용돈이 1만3천원이었을 정도. 최근 영화 <화이>에서도 분량에 상관없이 미친 존재감을 발휘하며 충무로 대표 신 스틸러에 합류.
스타성 ★★★ 이미 주연보다 잘나가는 명품 조연 도장 쾅쾅쾅.
눈빛만은 멜로 남자주인공 ‘해태’ 역 손호준
캐릭터 ★★★ 해태는 캐릭터 설명이 가장 부족한 인물이다. 다른 인물들처럼 가족이 등장한 적도 없고, 러브 라인에서도 멀어졌다. 삼천포가 윤진이와의 멜로를 꿰찬 뒤에는 해태가 오히려 코믹 감초에 가까워진 상태. 외모만큼은 남주감인데, 이것도 반전이라면 반전.
연기 ★★★☆ <응사> 배우들 중 적어도 사투리 연기만큼은 최고로 매력적이다. 그가 내뱉는 차지고 구성진 전라도 사투리는 허세스러움까지 귀여움으로 포장해준다.
전작 ★★ 무명에 가까운 경력. 연기 데뷔 전 남성 그룹 타키온의 리더였으나 기억하는 이들은 없다. 언급할 만한 대표작은 정우와 함께 출연한 <바람>. 전라도 출신이지만 부산 사투리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응사> 제작진의 눈도장을 받았다.
스타성 ★★★ 분량에 비해 강렬한 임팩트. 주연급으로 통할 수 있는 외모 역시 성장 가능성을 높이는 플러스 요인. 심지어 인터넷에 떠도는 평상시 모습은 도시남 그 자체.
스무 살의 느낌 그대로 ‘빙그레’ 역 바로
캐릭터 ★★★ 빙그레는 아직 비밀이 많은 캐릭터다. 꿈과 미래에 대해 생각이 깊기 때문이다. 쓰레기가 귀여워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
연기 ★★★ 아이돌의 연기 데뷔작치고 무난하다. 애매한 충청도 사투리가 오히려 내성적인 빙그레와 잘 맞아떨어진다.
스타성 ★★★ 다른 배우들과 달리 아이돌로서 B1A4의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양날의 검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성장 가능성이 달려 있다.
꼴통 가스나 ‘윤진이’ 역 민도희
캐릭터 ★★★★ 서태지 열혈 빠순이로 시작했던 윤진은 삼천포의 멱살을 잡고 가공할 만한 욕설을 내뱉는 신에서 명장면을 만들어냈다. 평소엔 조용하다가 ‘한 방’이 있는 캐릭터.
연기 ★★★ 아이돌의 첫 연기 데뷔작으로선 합격점. 작은 몸집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와 연약함이 공존하는 연기가 매력적.
스타성 ★★★☆ 대배우 문성근이 트위터를 통해 “저 배우는 누구냐?”고 할 정도로 잠재력이 크다. 고 이은주, 하지원, 한혜진 등을 섞어놓은 듯한 외모에 90년대 미인의 고전적인 분위기까지 갖추고 있다.
두근두근 야구 소년 ‘칠봉이’ 역 유연석
캐릭터 ★★★★☆ 미소년 외모에 다정다감한 성격을 갖춘 달달한 서울 남자. 외모와 달리 애정 공세는 최고의 투수답게 돌직구만 던진다. 제작진이 ‘몰빵’한 쓰레기에 밀렸다가 돌직구에 끌린 여성 팬들의 마음을 무섭게 끌어당기는 중.
연기 ★★★★ 훈훈한 몸에 딱 맞는 야구 유니폼처럼 그야말로 칠봉이 그 자체를 연기하는 중. 야구만 알던 소년이 처음 사랑에 빠지는 순간의 설렘을 너무도 잘 표현해낸다.
전작 ★★★☆ 올해 서른을 맞은 11년 차 배우. <올드보이> 유지태 아역으로 데뷔한 뒤 <건축학개론>, <늑대소년>에서 악역으로 열연. 그 덕에 반전 이미지에 성공.
스타성 ★★★★ 주연급으로서의 가능성을 증명한 작품. 부드러운 외모에 글래머러스한 반전 몸매도 플러스 요소.
신원호 PD 인터뷰
신원호 PD는 94학번이다. 작가인 이우정도 마찬가지. <응사>는 결국 그들이 가장 잘 아는 시대의 드라마인 셈이다.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고 잘 전달할 수 있는 정서여서 90년대 이야기를 다루게 됐어요. 속편에 대한 부담감요? 전작과 달라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니 그때부터 일사천리였어요. 서울에 온 촌놈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습니디. 속편과 닮았으면서도 굉장히 다른 구도가 나오지 않을까 싶었어요. 잘 절충됐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과 같은 세대를 살았던 동지들에게 이 드라마를 바친다고 말했다. “90년대에 젊음을 보내고 IMF를 겪은 사람들이 20년을 잘 견뎌내 살고 있다는 동질감이 있는데 이들에게 바치는 위로라고 할까요? 하하.”
그는 예능 출신 PD다. “기존 드라마의 작법을 지양하고 딴따라로서의 본능에 따르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아마도 이 점이 <응답하라> 시리즈의 연이은 성공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답이 아닐까 한다. 분명 이 시리즈는 이전에 보지 못한 신선한 시도로 모두를 사로잡았으니 말이다.
신 PD는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 출신으로 KBS 예능 <해피선데이>와 KBS 드라마 <올드미스 다이어리>를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