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 당시 남편이 유부남이었다는 사실, 첫 애 낳고 알았다”
“조지워싱턴대 입학은 했지만 졸업 여부는 불투명”
“상습 폭행, 아이들까지 손대 이혼 결심”
vs
“공개석상에서 아내에게 뺨 맞는 수모 당했다”
“커터칼로 시어머니 협박했다”
“친정에 매달 3백만원씩 경제적 지원 했다”
지난해 11월, 둘째 딸 돌잔치에서 다정했던 한 때를 보내고 있는 김주하·강필구 부부. 두 사람 모두 돌잔치 내내 연신 행복하게 웃고 있었기에 이혼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1 김주하 앵커 이혼소송 전말
김 앵커 측의 한 관계자는 “김주하는 결혼 기간 내내 폭행에 시달려왔다. 화가 나면 무차별적으로 폭행을 가하는 남편 때문에 정신적·육체적 고통이 컸다”면서 “심지어 아이들에게도 손을 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김주하는 자신이 공인이라는 사실과 자신을 멘토로 여기는 팬들을 위해 그동안 혼자 참고 살았다”면서 “그렇게 잘 참아오다 가정폭력이 아이들에게 더 큰 상처로 남을까 걱정돼 결국 이혼소송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김 앵커 측의 주장대로라면 강씨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과 겨우 돌이 지난 딸에게 폭력을 행사한 파렴치한 아버지가 되는 셈이다. 하지만 강씨의 변호인 측은 “9년간의 결혼생활 동안 상습 폭행을 당했다는 원고 김주하의 주장은 말이 안 된다”면서 “오히려 남편 강씨가 공개석상에서 김주하에게 수차례 뺨을 맞는 등 인격적으로 모욕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재산 명의가 대부분 김주하로 되어 있는 만큼 재산 분할 신청도 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김 앵커 측 관계자는 “김주하의 재산이라봐야 이촌동 아파트 전셋집이 전부다. 아이들과 살고 있는 집 전세금마저 내놓으라는 것”이라며 혀를 찼다.
김 앵커와 강씨를 둘러싼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같은 날 김 앵커는 강씨가 자신의 얼굴을 때려 귀에 상처를 입었다며 전치 4주의 진단서를 첨부해 강씨를 고소했고, 강씨 역시 말싸움 중에 김 앵커에게 맞았다며 김 앵커를 폭행 혐의로 맞고소했다. 이와 함께 강씨가 최근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경찰은 “당초 강씨가 대마초를 피웠다는 제보를 받았다”며 “강씨 동의하에 조사를 했고 본인 입으로 대마초 피운 사실을 시인했다. 그러나 머리카락과 소변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분석한 결과 음성 판정이 나와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시어머니 이씨와 김 앵커의 고부갈등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10월 7일 용산구 이촌동의 한 아파트에서 이씨가 이삿짐센터 직원들과 함께 김 앵커의 집에 들어와 짐을 싸는 것을 보고 두 사람이 말다툼을 벌였다. 김 앵커는 이삿짐센터 직원이 갖고 있던 커터를 빌려 남편 강씨의 짐을 풀던 중 이씨를 향해 “너 오늘 나한테 죽어볼래? 경찰 부르기 전에 나가”라고 협박한 것으로 시어머니 이씨는 진술했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아들 부부를 화해시키기 위해 미국에서 입국했고 잠시 별거를 해보라며 이삿짐을 싸던 중 집에 들어온 며느리가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 앵커는 “남편의 이삿짐에 내 물건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바로 옆에 있던 이삿짐센터 아저씨에게 빌린 커터로 이삿짐을 풀다가 시어머니와 언쟁한 것밖에 없다”고 진술했다.
사건을 담당한 경찰의 한 관계자는 “시어머니 이씨가 김 앵커를 존속폭행죄로 신고했고, 증거로 현장을 목격한 이삿짐센터 직원의 진술과 병원 진단서를 첨부했다”면서 “이를 토대로 상대방(김 앵커)에게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한 결과, 두 사람 사이에 신체 접촉이 전혀 없어 ‘혐의 없음’으로 처리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앵커 측 관계자는 “김 앵커의 명성에 흠집 내기가 목적이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시어머니 이씨는 본래 거주하던 미국으로 출국한 상태지만 추가적으로 소송을 제기할 계획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의 한 측근은 “결혼 직후부터 지금까지 시댁에서 김 앵커의 친정에 매달 일정 금액의 경제적인 도움을 줬다. 그중 매달 3백만원은 시어머니가 소유하고 있는 건물 월세에서 충당했다. 이처럼 물심양면으로 지원했음에도 이런 사달이 나자 돈을 돌려받기 위해 소송을 고려하고 있는 것”이라며 “지금은 미국으로 돌아갔으나 추가적으로 조사가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얼마든지 귀국해 협조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김 앵커 측 관계자는 “오히려 시댁 쪽에서 친정 돈과 김 앵커의 돈 수억원을 빌려갔고 증거도 있다”면서 “심지어 이자도 지금까지 (김 앵커 측에서) 내고 있다”고 말했다.
김 앵커는 한동안 이촌동 자택을 피해 친정집과 지인의 집을 전전하다 최근 다시 이촌동 자택으로 돌아와 친정부모와 함께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MBC에 정상 출근하고 있는 김 앵커는 현재 인터넷 뉴스부 업무에 집중하고 있으며, 이전에 진행하던 모든 프로그램에서는 하차했다. 그녀는 소송이 마무리되는 대로 복귀 여부를 다시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혼 소송과 각종 논란이 잠잠해지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시청자 입장에선 스타 앵커를, 방송사 입장에선 인재를 잃었다. 그 개인의 상처가 하루 빨리 아물고, 당당한 여성으로 다시 돌아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한편, 김 앵커의 이혼소송은 가사합의부에서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김 앵커 부부의 이혼소송 건을 재정 합의사건으로 처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 새로운 합의사건으로 가사단독부에서 가사합의부로 이관했다. 합의부는 판사 3명(부장판사·단독판사·배석판사 1명씩)으로 구성된다. 쟁점이 복잡하거나 사건의 성격상 합의체로 심판하는 것이 적절할 경우 합의부가 심리한다. 서로 입장 차이가 뚜렷해 조정기일에도 이혼 조정 불성립으로 끝난 가운데 김 앵커의 이혼소송이 어떻게 끝날지 귀추가 주목된다.
2 남편 강씨와 만남에서 이혼까지
김주하 앵커와 남편 강씨의 만남은 교회에서 이뤄졌다. 김 앵커와 강씨의 말에 따르면 시어머니 이씨는 김 앵커가 다니는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찾아와 아들을 소개시키고 싶다며 접근했다. 김 앵커가 부담스러워하자 이씨는 “그럼 전도라도 해달라”며 주변을 맴돌았다. 이 관계자는 “나중에 알고 보니 당시 강씨는 유부남이었는데 그걸 숨기고 접근한 것이었다”면서 “심지어 아들이 싱글이 아니라는 소문이 돌자 싱글이라는 미국 서류까지 위조해 김 앵커에게 보여준 것으로 안다”며 혀를 찼다. 당시 김 앵커는 이화여대 과학교육과를 졸업하고 1997년 아나운서로 MBC에 입사해 <뉴스데스크> 메인 앵커를 맡고 있을 때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이가 가까워진 두 사람은 김 앵커가 기자로 전직하기 전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이후에도 김 앵커는 <뉴스데스크> 진행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고 2004년 7월 한 차례 결혼설이 흘러나왔으나 “만나는 사람은 있지만 아직 결혼을 얘기할 단계는 아니다”라며 이를 극구 부인했다. 하지만 불과 2개월 만에 김 앵커의 결혼이 발표됐다. 급작스러운 결혼 발표는 남편 강씨의 ‘시나리오’였다. 세간에는 “김 앵커가 올림픽 취재를 위해 해외출장을 떠난 사이 김 앵커의 어머니가 직접 나서서 결혼을 급하게 서두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라고 김 앵커 측 관계자는 전했다. 당시 김 앵커는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출장을 간 사이 어머니가 그리스로 전화를 걸어 남편과의 결혼 의사를 물었다. 이에 (결혼 상대를) 바꿀 마음이 없다고 답했더니 바로 결혼 날짜를 잡았다”며 결혼 과정을 들려주기도 했다. 이 때문에 어머니가 급히 결혼을 시켰다는 소문이 난 것으로 보인다.
교제 1년여 만에 결혼에 이른 두 사람은 비교적 간소하게 식을 진행했다. 강씨가 재미교포 출신이라 시부모가 살고 있는 미국에서 약식으로 결혼식을 올린 뒤 국내에서 정식으로 결혼식을 치렀다. 주례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가 맡아 한차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는 두 사람의 스케줄 때문에 ‘일반적인’ 신혼생활을 보내진 못했다고 한다. 신혼여행도 미국 방문으로 대신했을 뿐만 아니라 서로 얼굴을 보는 시간이 하루에 30분도 채 되지 못했다. 1년 뒤 희소식이 들려왔다. 김 앵커의 임신 소식이었다. 2세를 간절히 기다려온 강씨는 아내의 임신 소식을 듣자마자 40만원어치의 육아 관련 서적을 구입할 정도로 기뻐했다고 한다. 김 앵커의 임신 소식에 주변에서는 혹 방송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냐는 예상도 했지만 기우였다. 임신도 김 앵커의 일에 대한 열정을 식히지 못했고 결국 출산 전날까지 MBC 보도국에 출근하는 열의를 보였다. 그렇게 김 앵커는 2006년 5월 첫째 아들 준서를 낳았다.
김 앵커는 아들이 태어난 이후 그전까지 사생활에 대해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던 것과 달리 언론을 통해 종종 화목한 가족의 모습을 공개했다. 한 가정의 아내로서, 한 아이의 엄마로서, MBC 간판 앵커로서 1인 3역을 소화하며 바쁘게 사는 모습은 주변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2011년 김 앵커는 둘째 임신 소식을 전했다. 남편이 둘째를 갖자며 6년 동안 김 앵커를 졸랐다는데, 원하던 딸이라 기쁨은 두 배가 됐다. 물론 김 앵커는 첫째 때와 마찬가지로 출산 직전까지 출근했고 그해 12월 예쁜 딸 준이를 얻었다. 첫째 때는 빠른 복직으로 아들과 오랜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이 남았던 김 앵커는 둘째 때는 1년 8개월이라는 비교적 긴 시간의 육아휴직 기간을 보내며 가족들과 함께했다. 해외 봉사활동을 다녀오며 의미 있는 시간도 보냈다.
지난해 11월 있었던 딸의 돌잔치에서도 부부 사이의 이상기류를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김 앵커와 강씨 모두 돌잔치 내내 연신 행복하게 웃고 있었기에 이혼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겉으로 보이는 김 앵커는 견고하고 단단했다. 여대생들이 손꼽는 멘토였으며, 성공한 커리어 우먼의 대명사였다.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완벽한 ‘알파맘’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이뤘지만 여자로서 행복하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로 김 앵커 측 관계자는 ‘김 앵커가 사기 결혼을 했다’는 식의 세간의 소문에 대해 확인해 주었다. 이 관계자는 “김주하가 사기 결혼을 당한 것이 맞다”며 “심지어 김주하는 교제 당시 남편이 이혼남도 아닌 유부남이란 사실을 첫째를 낳은 후에야 알았다. 그 충격과 배신감에 상상 이상으로 힘들어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가 없었다면 벌써 헤어졌을 것“이라면서 ”결혼도 아이도 물릴 수는 없기에, 마음을 다잡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 오랜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3 김주하 남편 강씨, 시어머니 이씨는 누구?
지난 2004년 만인의 부러움을 받으며 김주하 앵커와 결혼식을 올린 남편 강필구씨. 결혼 당시에도 강씨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이혼소송을 진행 중인 지금 또 한 번 과거 못지않게 그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시민권자인 강씨는 명문 조지워싱턴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경영대학원을 수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취재 결과 강씨가 해당 학교를 졸업했다는 기록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같은 대학에 다닌 친구들도 기자에게 ‘강씨가 졸업을 했냐’고 오히려 반문 했다. 실제로 확인 가능한 사이트를 찾아 강씨 관련 몇 가지 이름을 넣어 검색해보았지만 확인되지 않았고, 학교 측에서도 ‘졸업 여부를 알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김 앵커측 관계자는 “한마디로 강씨는 조지워싱턴 대학 경영학과에 입학은 했지만 졸업 여부는 불투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강씨는 벨 애틀랜틱 크레디드 코퍼레이션과 트렌스포테이션그룹의 기업금융부를 거치며 경력을 쌓았다. 이후 네덜란드계 ABN암로 서울지점으로 근무처를 옮기면서 한국과 다시 인연을 맺은 강씨는 2001년 맥쿼리증권의 해외영업 부문 헤드로 낙점되면서 이름을 알렸다. 맥쿼리증권은 ING그룹 내 주식사업부를 호주계 맥쿼리은행에 매각하면서 기존의 ING증권에서 이름을 바꾼 것이다. 승승장구하던 강씨는 1년간 코스닥 등록법인 로토토의 비상근 사외이사로 재직했으며, 현재는 도이치증권코리아에서 상무로 재직 중이다. 강씨는 180㎝가 넘는 훤칠한 키에 준수한 외모를 갖춘 데다 젊은 나이에 책임자급으로 성장해 꽤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젊은 나이에 높은 자리까지 올라 이 바닥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성격도 유순해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편”이라고 전했다. 강씨는 가수 송대관의 처조카로도 유명하다. 지난해 KBS2-TV <스타 인생극장-송대관 편>에 출연한 강씨는 김 앵커와 함께 단란한 한때를 공개한 바 있다.
한편, 강씨의 어머니이자 김 앵커의 시어머니인 이모씨에 대한 궁금증도 커지고 있다.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이씨는 가수 송대관의 아내 이정심씨와 친자매로, 강씨가 한 살일 때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미국 워싱턴 지역에서 노인복지사업을 하는 유명인으로 알려져 있기도 한 이씨는 김 앵커가 결혼 당시 미국 메릴랜드 주 포토맥에서 ‘휄로십 노인 데이케어 센터’를 운영하는 원장이었다. 이씨가 운영하는 ‘노인 데이케어 센터’는 한식 식단으로 짜인 음식에 한인 의사와 간호사들이 노인 환자를 돌보는 의료보호센터다. 이 센터의 특징은 한인에 의한, 한인을 위한 시설이란 점. 수용 인원은 1백50명으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노인들을 돌본다. 또 이씨는 당시 노인 재활을 위해 미국 기업이 운영하던 너싱홈인 ‘포레스트 글렌(Forest Glen)’도 인수, 리모델링을 통해 입원실 1백38개, 응급실 11개에 포터블 물리치료 장비를 갖춘 매머드급 시설을 관리했지만 이후 사정이 좋지 않아 다시 되판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는 도이치증권코리아에서 상무로 재직 중인 강씨는 180㎝가 넘는 훤칠한 키에 준수한 외모를 갖춘 데다 젊은 나이에 책임자급으로 성장해 꽤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