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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지도’의 패러다임을 바꿀 대장질환 해법에 대해 말하다

서울아산병원 대장암센터 유창식 소장

대장암 발병률은 지난 10여 년간 가파르게 상승해 지금은 우리나라 국민의 건강을 가장 위협하는 위험 질병으로 급부상했다. 대장암 수술 명의 유창식 교수에게 그 원인과 해법을 물었다. .

On October 16, 2013

  • 각종 건강 정보와 지식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그렇지만 막상 나와 내 가족이 아프면 누구를 찾아가야 할지 막막한 게 현실입니다.
    <우먼센스>는 매달 각 분야 최고의 명의로 손꼽히는 분들을 차례로 만나고 있습니다.
    믿고 맡길 수 있는, ‘명의가 추천하는 명의’를 소개합니다.


몇 인기를 끌었던 메디컬 드라마 탓인지, ‘외과의사’라고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까칠하다 싶을 만큼 예민하고 날카로운 성격은 예사고,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도 한 치의 틈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치밀한 모습 등이 그것이다. 물론 차가운 수술실에서 오로지 자신의 판단과 선택만으로 환자의 생사가 판가름나니, 그럴 만도 하다. 유창식 교수의 훤칠한 풍채와 호방한 웃음은 언뜻, 이러한 외과의사의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였다. 그 부드러움 속에 감춰진 관록의 깊이를 어렴풋하게나마 가늠할 수 있는 것은 ‘고수’를 만나는 큰 즐거움이다. 국내 최고의 대장암 수술 권위자 유창식(52세) 교수와의 만남도 그런 호기심과 기대에서 시작됐다.

기름진 식사습관, 대장암 부른다
“사실 전문적인 의학 매체가 아니면 인터뷰는 대부분 정중히 거절하는 편이에요. 의학 지식 외에 제가 딱히 할 얘기도 없고 개인에게 집중되는 인터뷰가 부담스럽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자타 공인하는 최고의 의사인 박승정 원장님이 추천하셨다는 말에 일고의 여지도 없이 곧바로 ‘하겠다’고 했죠.(웃음) 제가 다른 분들처럼 ‘명의’의 반열에 오를 만한 사람인지 생각해보면 사실 부족한 점도 많지만, 평소 존경하는 분이 추천해주신 것이니 기쁘고 영광스러운 마음으로 인터뷰에 임하게 됐습니다.”
서울아산병원 대장암센터 유창식 소장은 20년 넘게 줄곧 대장항문질환 수술과 연구에 몰두해왔다. 지금도 해마다 5백~6백 건에 달하는 대장암 수술을 집도하고 있고, 염증성 장질환자의 경우 전국적으로 의뢰를 받아 국내 환자의 절반 가까이를 그가 직접 수술한다. 겸손의 말로 자신을 낮추었지만, 이러한 연륜에서 묻어나는 여유로움까지 숨길 수는 없다. 그리고 바로 이 여유로움 뒤에, 환자의 수술 시기를 정하는 것부터 합병증 발생 등 위급한 상황에서 신속하게 대처하는 순발력과 판단력을 발휘하는 냉철한 외과의사의 모습이 숨어 있는 것이다. 이런 그에게 동종업계에 몸담고 있는 동료 의사의 인정은 화려한 수식어보다 훨씬 값진 일일 터다.
그는 한 분야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공부하고 연마하는 전형적인 ‘수직형 인재’다. 그가 직접 소화하는 수술 건수도 엄청나지만, 그 와중에 쉬지 않고 꾸준히 논문 발표까지 한다. 여기에 20년 넘게 쌓아온 풍부한 임상 경험은 누구도 쉽게 넘볼 수 없는 그의 업적이다. 다른 진료과에 비해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한 외과에서 그가 인정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나 대장암은 우리나라 국민의 건강을 해치는 주범으로, 최근 10년 사이 발생률이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질환이다. 지금까지 그가 그려온 궤적도 의미가 있지만, 앞으로의 역할이 훨씬 중요한 이유다.
“대장암은 국내에서 암 발생률 기준으로 현재 2위를 기록하고 있어요. 1위는 여전히 위암이지만 점차 줄어드는 추이인 반면, 대장암은 10년 동안 60%가 증가할 정도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죠. 사망률 또한 폐암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고요. 위암의 경우 정부의 적극적인 홍보와 지원, 국민들의 인식 전환으로 조기암 환자 발견이 늘고 있어요. 위암 수술의 50%가 조기암 환자입니다. 이들의 치료율은 90%에 육박하죠. 하지만 대장암은 조기암 수술이 20%에 불과해요. 초기 치료시기를 놓쳐서 오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예요.”
대장암은 대표적인 ‘서구형 암’이다. 생활습관이나 식습관 등이 급속히 서구화되면서 발생하는 병이란 의미다. 이 밖에 대표적인 서구형 암으로는 유방암, 전립선암 등이 있다. 모두 최근 수년간 발병률이 급증한 병이기도 하다.
“한국의 경제가 성장하면서 당장 먹는 문화 자체가 급변했어요. 동물성지방 섭취가 늘고, 고칼로리 음식을 선호하게 되었죠. 반면에 과거 우리의 주식이었던 채소나 잡곡 등의 섭취는 줄고요. 건강식에 관한 다양한 이슈가 있지만 개개인으로 봤을 때 식습관을 관리하는 인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대장암 발병은 대체로 기름진 식사와 비례하고, 배변 양과 반비례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배변 양이 많으면 암 유발 물질의 농도가 희석되고, 발암 물질이 대장 내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빨리 배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배변이 원활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암이나 염증성 장질환 등 대장질환에 유의해야 한다. 이를 해소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잘 알려진 대로 식이섬유가 풍부한 채소를 충분히 섭취해 배변 활동을 원활히 하는 것이다.
“대장암의 상당수는 용종에서 발전하기 때문에 대장 내 용종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적극적인 암 예방법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정기적인 대장 내시경 검사는 필수입니다.”
대장학회에서는 50세 이상이면 5년에 한 번씩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을 것을 권장한다. 가족력이 있거나 불규칙한 생활을 장시간 지속한 경우라면 50세가 안 되었더라도 검사 시기를 앞당기는 것이 안전하다. 혈변이 나오거나 배변 습관이 갑자기 변한 경우는 즉시 전문의를 찾아야 한다. 또 대장항문질환 중 대표적인 질환인 직장암의 경우 환자 4명 중 1명이 단순 치질로 증상을 오인해 치료 적기를 놓치곤 한다. 특히 대장암의 95%는 평소 식생활과 흡연 등 후천적 요인에 기인하므로 평소 생활 습관 관리가 암 발병 여부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염증성 장질환, 더이상 희귀 질환 아니다
유창식 교수가 최근 주목하는 대장항문질환의 새로운 이슈는 바로 ‘염증성 장질환’이다. 이는 암처럼 당장 생사를 다툴 만큼 시급한 질병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비만, 생리불순, 불임 등 예상치 못한 합병증과 후유증을 남길 수 있어 관리와 치료가 시급한 질병이다. 수술 시 돌발 변수가 생기면 생사의 기로에 놓이기도 한다. 게다가 대장암처럼 발생 추이가 급증하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염증성 장질환은 국내에서는 희귀 질병으로 분류됩니다. 대표적인 것은 크론병이나 궤양성 장질환 등이 있죠. 10여 년 전만 해도 국내에서는 극히 보기 드문 질병이었는데, 해마다 발생 건수가 급격히 늘고 있어요. 염증성 장질환의 뚜렷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어요. 대장암 환자가 늘고 있는 이유와 비슷한 원인이 아닐까 추측만 할 뿐이죠. 서구에는 대장암만큼이나 흔한 병이 염증성 장질환이거든요. 체내 면역체계 이상으로 인한 ‘자가면역질환’이란 것 정도로만 알려져 있어요.”
염증성 장질환은 궤양이 생기거나, 대장에 협착이 생겨 장이 막히거나, 또는 천공(구멍)이 생기는 증상 등이 있다. 대장암의 경우 수술이 가장 기본적인 치료법인 반면, 염증성 장질환은 약물 치료를 시도하고 최후의 수단으로 수술을 한다.
“벌써 20년 가까이 된 일인데, 처음 염증성 장질환 환자를 수술한 일이 아직도 생생해요. 수술하려고 개복해보니 이건 제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인 거예요. 너무 당황했어요. 우여곡절 끝에 2차 수술까지 했죠. 다행히 환자는 무사했지만 외과의사로서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그 수술이 거의 몇 달간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 거예요. 얼마 뒤 미네소타 병원 심포지엄에 갈 일이 있었는데, 그때 제가 수술한 환자와 비슷한 케이스의 섹션이 있어서 그 분야 전문의에게 자문을 구했죠. 그 교수는 제가 증상을 말하자마자 곧바로 ‘해결책’을 내놓더군요. ‘이렇게 수술하면 돼’ 하면서요.(웃음) 이미 서양에서는 너무도 흔한 대장질환이었던 거예요. 한국에 와서 비슷한 증상의 염증성 장질환 환자에게 그 치료법을 시도해보니 효과는 즉시 나타났어요. ‘서전(외과의사)’에게 경험은 정말 중요한 거구나, 깨닫고 바로 미국의 메이요클리닉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거의 모든 케이스의 염증성 장질환 수술을 경험할 수 있었다. 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그는 치료가 힘든 염증성 장질환 환자의 수술을 잇달아 성공시키며 크게 주목을 받았다. 대장항문외과 권위자로서 좀 더 견고히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것이다. 그가 몸담고 있는 서울아산병원은 국내 최초로 염증성 장질환센터를 개설하기도 했다. 아직은 희귀성 질환이지만, 급증하는 환자 수에 대비해 이를 위한 치료 시설과 시스템, 의료진이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추진된 일이다. 대장암과 염증성 장질환은 자칫 증상이 비슷할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대비되는 것이 바로 발병 시기다. 대장암은 노인성 질환으로, 60~70대 환자가 많다. 반면 염증성 장질환은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처럼 비교적 젊은 연령층에서 호발한다. ‘나이’만 믿고 방관하면 더욱 심각한 장질환에 시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젊은 나이임에도 설사가 잦거나 혈변이 보이는 경우, 복통에 장기간 시달리는 경우라면 염증성 장질환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또 30~40대에는 ‘변 습관’을 꼭 챙겨야 한다. 굵기와 묽기는 물론, 혈변 여부도 확인할 것. 문제가 있다 싶으면 바로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장항문질환 분야에서 그의 수술 실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그럼에도 수술을 할 때마다 매번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은 그의 인생의 큰 원동력이다.
“모든 의사가 그렇듯 저 또한 환자들이 더 이상 병과 고통에 시달리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모든 병을 극복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죠. 현재까지 외과의사는 환자에게 가장 많은 것을 해줄 수 있는 의사입니다. 사람들은 외과의사가 하루에 수술 대여섯 건씩 한다고 하면 대단하다고 하는데, 사실 저 같은 사람에게 수술은 제 일과이고 일상이에요.(웃음) 외과의사로서 다양한 수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제게는 큰 즐거움이었던 것 같아요. 비슷한 부위, 비슷한 증상의 수술이라고 해도 환자의 해부학적 구조나 연령 등 모든 것을 고려해 수술하니까 매번 새롭게 느껴져요. 고단하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이 환자에게는 어떻게 해주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면 신선한 자극도 되고요.”

자유를 꿈꾸는 영원한 외과의사
자칫, 뻔한 일상의 반복이 될 수 있는 현실에서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는 것 또한 ‘명의’들의 공통점이다. 그는 매일 아침 5시 반에 일어나 여러 개 신문을 정독하고 7시에 출근한다. 이른 아침부터 회진과 수술 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저녁 7시쯤 대부분의 일과가 끝난다. 집 밥을 좋아해 저녁은 되도록 아내가 차려주는 식사를 하는데, 저녁 식사에 곁들이는 와인 한 잔이면 하루의 모든 피로가 말끔히 가신다고. 밀린 업무와 논문 작업 등을 마치고 나면 새벽 1시. 평균 수면시간은 6시간을 넘기지 않는 것이 그의 원칙이다.
“되도록 가족과 함께 집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게 저만의 ‘힐링타임’이거든요. 릴랙스할 수 있는 자기만의 노하우가 있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그는 영화와 음악, 그림 등의 예술에도 조예가 깊다. 그의 아버지는 영화감독 출신에 어머니는 배우 출신이다. 동생은 현재 영화감독으로 활동 중이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예술을 접할 수 있었던 성장 환경이 영향을 미친 것일까? 그는 서울대 의대 재학 당시 메디컬 오케스트라에서 오보에 연주자로 활약했다. 또 운동에도 소질이 있어 당시 노르딕 크로스컨트리 선수로 경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아마 의대에 안 왔다면 영화인의 길을 걷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예전에는 감독이 직접 영화에 투자하는 것이 관행이었어요. 아버님이 영화 몇 편 찍으니 집안이 망하더라고요.(웃음) 장남이었기 때문에 저는 내 가족을 지킬 수 있는 직업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돈을 벌면 만들고 싶은 영화를 실컷 만들어야지 하면서요. 물론, 아직까지 그 꿈은 이루지 못했습니다.(웃음) 동생은 달랐어요. 건축을 전공했는데, 졸업과 동시에 ‘영화를 하겠다’고 선언하더군요. 부모님이 펄쩍 뛰셨는데, 제가 ‘동생은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하자’고 했어요. ‘나는 못 했으니 너라도 하라’는 심정으로요.(웃음) 제 예술적 감성이 크게 도움이 된 것은 아마 연애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당시에는 공연 보고 전시회 다니는 데이트가 흔하지 않았는데 그런 걸로 아내의 마음을 사로잡았죠.(웃음) 지금도 아내와 대학생인 두 아들과 같이 여행 다니고, 운동하고, 공연 보러 다니는 것이 인생의 즐거움 중 하나예요.”
그는 “연애를 한 얘기만 해도 밤을 새워야 한다”며 웃어 보였다. 의사로서의 명성만큼이나 인생에서도 그는 이미 큰 수확을 얻은 듯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자유’입니다. 내 마음대로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굉장히 포괄적인 의미를 지닌 말이죠. 어떤 사람이 ‘마스터’가 되면 자유로운 상태가 된다고 하잖아요. 외과의사로서, 교수로서, 수술 등 제 전공 분야에서 학문적 자유를 한번 느껴보고 싶어요. 한 분야를 오랜 시간 공부한 학자라면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고 더 이상 다다를 수 없는 완벽한 경지에 올라보고 싶은 욕심이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의사가 할 수 있는 범위 너머의 영역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최대한 그 ‘자유’에 가깝게 가기 위해 매일매일 몰입하는 삶 자체가 제게는 큰 기쁨이죠.”
의사로서 그의 집념은 예술가적 기질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지식과 기술을 연마하고 갈고닦는 것. 자신감과 겸손이 적절히 배합된 삶의 태도야말로 유창식 교수가 터득한 ‘인생의 비법’이 아닐까?

CREDIT INFO
취재
김은향
사진
박원민
2013년 09월호
2013년 09월호
취재
김은향
사진
박원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