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동이 드디어 방송국 3사를 모두 섭렵했다. 2011년 9월 잠정 은퇴를 선언하고 휴식에 들어간
그가 1년 만에 SBS <스타킹>을 통해 전격 복귀하고, 이어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도 차례로 출연하면서 본격적인 예능킹의 귀환을 알렸다. 그랬던 그가 이번엔 KBS 새 예능 <달빛 프린스>를 맡으며
방송국 3사를 모두 섭렵했다. 친정 격인 SBS <스타킹>과 MBC <무릎팍 도사>를 통해
워밍업을 끝낸 그가 KBS <달빛 프린스>로 ‘강호동표 국민예능’을 탄생시킬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
달변가는 아니었다
기자가 만난 강호동은 파워가 넘쳤다. 온몸이 뜨거운 남자였고 다양한 표정으로 카메라 앵글을 빨아들였다. 뽀얀 피부와 단정한 옷차림도 인상적이었고, 특유의 친화력과 겸손함으로 좌중을 압도하는 모습이었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들고 오랜만에 공식 석상에 나온 그는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생각보다 달변가는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방송에서의 완벽한 모습이 결국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뤄낸 노력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첫마디는 시원했고, 강호동스러웠다.
“눈이 이렇게 많이 오는데 멀리까지 오셔서 감사합니다. <달빛 프린스> 진행을 맡은 강호동입니데이~!”
<달빛 프린스>는 매주 게스트가 한 권의 책을 직접 선정해 책의 키워드에 대한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북 토크 형식의 프로그램으로, 강호동이 탁재훈, 정재형, 용감한 형제, 최강창민과 함께 진행을 이끌어간다. 그건 그렇고, 책과 강호동? 조금은 낯설다.
“그렇죠? 그래서 노파심이 있었지만 도전 욕구도 불끈 생겼습니다. 사실 이 강호동이 예능에서 책이라는 소재로 방송을 이끌어간다는 게 말이 됩니까? 하하. 한데 작가와 피디에게 신뢰가 갔고,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변분들 역시 ‘강호동이가 책을?’ 하는 분이 많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너무 안 어울리니까 거기서 묘한 색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강호동이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컴백 이후 그가 맡은 대부분의 방송은 컴백 전 맡았던 방송의 연장선이었고, 비슷한 포맷의 방송이었다. 1년간 내공이 업그레이드된 그의 진가를 보여주기엔 ‘판’이 없었다.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주제는 강호동과 어울리지 않는 ‘책’이고, 각기 개성이 다른 네 명의 ‘프린스’가 동반 출연한다. 예능과는 거리가 먼 중견 가수, 아이돌, 반항 어린 작곡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까칠한 예능 선배까지 다양한 직업군의 고정 MC들을 이끌어가야 한다. 강호동의 진가를 평가하기에는 <달빛 프린스>가 적격이다.
“고백하자면, 첫 녹화를 했는데 어려움이 있었어요. 책을 소재로 풀어가는 것도 낯설었고, 탁재훈 형님과는 친한 사이지만 나머지 분들과는 처음 뵙는 자리였거든요. 녹화가 끝나고 작가분은 ‘멘붕’이라는 표현을 썼을 만큼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것 같아요. 하하. 기대했던 그림이 안 나온 거죠. 저는 멘탈 붕괴까지 온 건 아니고요, 오히려 발전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호동의 힘, 그것이 ‘긍정’이다. 사실 현재까지 그가 믿을 수 있는 ‘보험’은 예능인들 사이에서 ‘예능 천재’라고 불리는 탁재훈이다. 그런데 탁재훈은 강호동보다 나이로나 경력으로나 형님이고 선배다. 맏형 역할을 자처하며 강호동표 카리스마로 프로그램을 이끌어갔던 그의 진행 스타일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
“사실 탁재훈 형님은 제가 배신감을 느끼는 캐릭터예요. 저는 부족하기 때문에 노력을 해야 만회되지만 형님은 제가 노력으로도 따라갈 수 없는 기질이 있어요. 방송을 모니터하다 보면 어떻게 저 타이밍에 저런 재치가 나올까,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런 형님과 같이 방송을 하고, 형님으로 모실 수 있다는 게 진심으로 감사할 뿐입니다.”
탁재훈 역시 강호동에 대한 믿음을 강하게 피력했다.
“아시다시피 호동이는 실력 있는 방송인이에요. 걱정 안 해요. 잘해나가리라는 것을 의심치 않거든요. 저희 집에는 책이 많아요. 하지만 많기만 해요. 한데 호동이는 ‘몰래’ 꾸준히 책을 읽고 있어요. 모니터를 해보면 알 수 있죠. 적시적소에 늘 좋은 글귀를 인용하는데, 책을 안 읽고는 그럴 수가 없어요. 괜히 스스로 멋쩍은 거죠. 책을 읽는 게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을까 봐 몰래 혼자 읽고 있는 것 같아요. 호동이는 걱정이 없는데…, 문제는 나머지 멤버들입니다. 용감한 형제는, 그냥 모르겠어요. 저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감이 안 오는 사람입니다. 창민이는 예쁘장한 외모와 달리 한마디로 ‘상남자’더라고요. 의외의 매력이 있어요. 재형이는 가수할 때 보고 처음 보네요. 우리 이런 사이예요.”(탁재훈)
실제로 강호동은 소문난 다독가다. 늘 책을 옆에 두고 정독하며 메모를 한다. 강호동의 말대로 부족한 것을 메우려는 부단한 노력이다.
“호동이는 운동했던 친구라 힘을 주체 못 해요. 그리고 지나치게 예의 바른 사람이기도 합니다. 제 역할은 강호동씨를 교란시키는 방해 공작원 같은 거예요. 저는 강호동을 도와서 이 프로그램을 이끌어갈 생각이 없어요. 그래야 강호동도 살고 저도 살아요. 하하. 누군가는 탁재훈이 ‘강 라인’에 들어왔다고 하는데, 라인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고…, 저는 그저 저대로 강호동을 교란시킬랍니다.”(탁재훈)
제 인생의 최고 극찬이 ‘유재석의 라이벌’이라는 말입니다. 저는 재석이가 항상 부러워요. 코미디라는 한 분야를 어릴 때부터 학습했고 몸에 배어 있어요. 저는 운동을 해선지 부족함을 많이 느껴요. 그래서 남들보다 노력할 수밖에 없어요. ‘유재석의 라이벌’이라는 소리가 그럴듯하게 들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강호동의 힘, 그것이 ‘긍정’이다
<1박 2일>에는 이승기가 있었다. <달빛 프린스>에는 최강창민이 있다. 예능 초짜 이승기를 예능 샛별로 이끌었던 강호동 아닌가. 이번엔 어떨까?
“제가 이끌었다기보다는 승기씨 자체의 매력과 노력이 주효했어요. 창민씨가 부담감이 아주 크다고 하는데, 대중이 알지 못했던 창민씨의 숨은 매력이 어필될 것 같아요. 두 사람의 공통점이 있어요. 노력하는 것과 또 뭘 해도 얄밉지 않은 캐릭터라는 거예요. 창민씨를 비롯해 멤버들의 조화가 아주 신선하지 않습니까?”
아이러니한 건 <달빛 프린스>의 편성이 SBS <강심장>과 같은 시간대라는 점이다. 강호동은 친정 프로그램과의 경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예능판은 전쟁이다. 상대는 역시 만만치 않은 신동엽이다. 그의 전략이 궁금하다.
“사실 편성까지는 제 역량이 아닙니다. 저는 아이템에만 집중했습니다.”
말을 아끼는 강호동이다. “허허” 웃지만 분명 강호동은 자신의 저력을 보여주고 싶을 것이다. 유재석과의 비교도 피해갈 수 없다.
“진심을 담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인생의 최고 극찬이 ‘유재석의 라이벌’이라는 말입니다. 저는 재석이가 항상 부러워요. 코미디라는 한 분야를 어릴 때부터 학습했고 몸에 배어 있어요. 뼛속까지 예능인인 거죠. 그런 면에서 재석이뿐만 아니라 신동엽씨, 탁재훈 형님, 이경규 형님이 저는 부럽습니다. 저는 운동을 해선지 부족함을 많이 느껴요. 그래서 남들보다 노력할 수밖에 없어요. 지금도 그 과정이고요. 그들과 비교해주시면 저는 영광이지만 솔직히 부끄럽기도 해요. 하지만 그들과의 비교가 가능하게끔 더 노력해야 하죠. ‘유재석의 라이벌’이라는 소리가 그럴듯하게 들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시베리안 예능 호랑이’ 강호동의 겸손이 넘치는, 그럼에도 진심이 느껴지는 멘트다.
강호동은 말한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 귀감이 된 책이 있을 것이라고. 게스트의 그것을 교감하고 시청자들에게 위로와 희망과 즐거움이 되는 방송으로 만들겠다고 말한다. ‘강호동표 감동 예능’은 어떤 색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