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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할 것 없는 사람들

여전히 장애인의 삶이 낯설게만 느껴진다면, 여기 모은 15가지 이야기를 만나 볼 때다.

UpdatedOn August 2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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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장애가 있는 사람을 보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디서도 배운 적 없어요. 그래서 그랬어요.” 영옥의 쌍둥이 언니 영희는 다운증후군을 지녔다. 영희를 처음 대면한 영옥의 연인 정준은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고, 영옥의 주문대로 다운증후군이 무엇인지 검색해 보고서야 자신의 무지를 사과한다. 맞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는 그것을 마땅히 미안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미처 배운 적 없는 일 말이다.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나 아닌 다른 삶을 만나고, 역지사지의 감수성을 기르며 살아간다. 애석하게도 장애인은 서사의 세계에서마저 배척되거나 소외되어 왔다. 희귀하게나마 장애인을 다루는 이야기라 해도, 인물이 평면적으로 묘사되기 십상이었다. 안타까운 존재, 혹은 역경을 ‘극복’한 영웅적 존재. 창작자가 사려 깊게 완성한 작품일지언정 그것이 다시 대중에게 회자되는 과정에서 인물이나 설정에 대한 희화화가 뒤따랐다. 일례로 영화 <말아톤>에서 자폐인 마라토너를 섬세하게 표현한 배우 조승우는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극 중 인물을 재연해 달라는 요구에 시달려야 했고, 끝내 분노를 터뜨렸다. 이 사회가 장애인의 삶을 간접적으로든 직접적으로든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탓에 벌어진 풍경이다. 다시, 무지가 빚은 무례다.

그로부터 17년이 흘러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등장했다. 다행히 오늘날 시청자는 그 시절보다 성숙한 태도로 장애인 주인공을 이해하는 중이다. 판타지와 다름없다는 비판도 받지만, 최소한 이 드라마는 자폐인과 그 주변 사람들의 삶을 수면 위에 올려놓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자폐 스펙트럼이나 반향언어처럼 낯선 어휘를 귀에 익게 했고, 무엇보다 작품 속 인물이 나와 다르면서도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했다. 누군가는 ‘봄날의 햇살’ 최수연이 우영우를 대하는 모습을 보며 자폐인과의 생활을 상상하기도 했을 것이다. 거기엔 동정이나 연민이 아닌, 얼마간의 무심함이 섞인 배려와 존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웠을 테고 말이다.

한국에서 <우리들의 블루스>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화제를 모았다면, 미국에선 이에 앞서 영화 <코다>가 2022 아카데미 시상식을 빛내며 눈길을 끌었다. 농인 부모의 청인 자녀를 뜻하는 코다와 그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주인공 루비의 아버지를 연기한 농인 배우 트로이 코처의 열연에 찬사가 쏟아졌다. 코처는 이 작품을 통해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한 두 번째 농인 배우로 기록됐고, 이를 계기로 장애인 역은 장애인 배우가 연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금 터져 나왔다. 바꿔 말하면 ‘크리핑 업’을 지양하자는 주장이다. 크리핑 업이란 비장애인 배우가 장애인을 연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코카서스계 배우가 아프리카계 인물을 연기하는 ‘블래킹 업’처럼 윤리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행위임을 꼬집는 말이다. 동시에 장애인 배우의 존재도 새삼 주목받기 시작했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으로 알려진 피터 딘클리지, <우리들의 블루스>에 이어 다큐멘터리 영화 <니 얼굴>에 출연한 정은혜, 드라마 <갑동이>에서 열연한 길별은, 영화 <카운트다운>과 <채비>에서 활약한 권혁준…. 더 많은 이를 호명하고 싶지만, 아직은 그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어지는 지면에서는 장애인을 조명한 이야기를 그러모아 소개한다. 역시 수가 많지 않다. 그래서 더 귀하고 소중할 따름이다.

 

읽어 보아요, 지금 가장 뜨거운 목소리

  • # 장애여성

    <하고 싶은 말이 많고요, 구릅니다>

    “언제부터 장애인이 되었냐고요? 안 알려 드릴 거예요.” 유튜버 굴러라 구르님은 장애에 대한 편견과 무례한 태도 앞에 도발적인 화제를 던진다. 유쾌하게, 뾰족하게. 왜 유튜브를 하느냐는 질문에는 “그냥, 재미있어서”라고 대답하곤, 휠체어를 장식하는 ‘휠꾸’를 취미 삼는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책도 썼다. “모두가 당연한 자리를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받아 적어야 할 문장이 빼곡하다. 굴러라 구르님(김지우)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어쩌면 이상한 몸>

    장애여성의 몸은 여성이자 장애인이라는 이중고를 지닌다. 그렇기에 여성 장애인이 아닌, 장애여성이라 붙여 쓴다. 세상의 편견과 규범에 맞선 장애여성의 몸, 노동, 관계 등 같은 주제와 함께 활동, 제도, 양육 등의 쟁점을 치열하게 기록했다. 장애여성공감 지음 오월의봄 펴냄

  • # 장애인_사이보그

    <사이보그가 되다>

    청각장애를 지닌 소설가 김초엽, 지체장애를 지닌 변호사 김원영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의 몸과 기계(보청기, 휠체어)를 결합한 사이보그적 정체성을 인식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몸소 경험한 환경과 문제의식을 토대로 과학기술의 미래를 그린다. ‘결여된’ 것이 아닌 ‘연결된’ 존재, 불편함을 발견하고 호소하는 역량을 가진 존재로 거듭난 장애인 사이보그의 모습을 상상한다. 김초엽·김원영 지음 사계절 펴냄

  •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누군가의 삶을 두고 실격이라 말할 수 있을까. 걷지 못하는 몸으로 태어나 법학을 공부한 김원영은 실격당한 인생이라 취급받는 모든 소수자가 저마다 고유함과 존엄을 지닌다는 사실을 역설하고, 이들을 위한 변론을 펼쳐 보인다. 김원영 지음 사계절 펴냄

  • # 일상_속_장애인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

    버스나 전철 같은 공공장소에서 장애인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장애인의 생활은 일부러 들여다보지 않으면 영영 이해하기 어렵다. 어느 날 갑자기 장애인 동료가 팀에 합류했다면, 무엇을 준비하고 고려해야 할까? 이 질문에 눈앞이 캄캄한 사람을 위한 해답이 여기 있다. 간섭에 가까운 배려보다는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최선이라는 것부터 차근차근 알려 준다. 백정연 지음 유유 펴냄

  •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이런 말, 나만 불편해?>

    ‘눈뜬장님’이나 ‘동네 바보 형’처럼 만연한 혐오 표현도 문제지만,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차별적 언어도 문제다. 이를 테면 ‘장애를 극복한 영웅’ 같은 말.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에 어떤 잘못이 있는지, 풍부한 용례와 적확한 설명을 통해 짚어 낸다. 김효진 지음 이후 펴냄

  • # 장애인과_가족

    <‘나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장애인 가족은 희생과 인내를 아무렇지도 않게 강요받곤 한다. 특히 장애인 당사자와 비슷한 또래의 형제자매라면 상황은 더 혹독해진다. 발달장애 또는 정신장애가 있는 형제자매를 둔 여섯 사람이 펜을 들어 누구에게도 이해받기 힘들었던 자신의 내밀하고 혼란스러운 성장담을 털어놓았다. 실은 우리 모두 괜찮지만은 않은 인생이기에 쓴 이도, 읽는 이도 이상스러운 위로를 얻는 책이다. 비장애형제 자조모임 ‘나는’ 지음 한울림스페셜 펴냄

  •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반짝이는 박수 소리>

    농인 부모의 청인 자녀로, 경계인으로 살아 온 이길보라 감독은 7년 전 이 책을 통해 코다라는 화두를 던졌다. 코다는 물론 수어, 농인, 청인과 같은 단어가 익숙하지 않던 시절이다. 지난봄 출간된 개정판을 통해 장애를 둘러싼 풍경을 다시금 바라본다. 이길보라 지음 문학동네 펴냄

  • # 탈시설

    <집으로 가는, 길>

    장애인이 시설을 벗어나 지역사회 안에서 자립해 살아가는 일을 탈시설이라 한다. 여기 스스로 문을 닫아버리고 탈시설을 선언한 최초의 시설이 있다. 경기도 김포 향유의 집이다. 자신의 장애 수당을 재단이 갈취해 온 사실을 알게 된 거주인들은 생활재활교사들에게 비리를 증명해 달라고 요청한다. 이렇게 시작한 투쟁은 탈시설 운동으로 이어지고, 그 속에서 뜨거운 논쟁과 연대가 싹튼다. 홍은전 외 지음 오월의봄 펴냄

  •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어른이 되면>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한 장혜영 의원이 생생하게 기록한 탈시설 이야기. 그는 2017년에 발달장애인 동생 혜정을 시설에서 데리고 나와 동거를 시작했고, 그 일상을 책과 영상으로 남겼다. 세상과 격리된 장애인, 이를 둘러싼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장혜영 지음 시월 펴냄

같이 보아요, 다르지만 다르지 않은 이야기

  • 〈녹턴〉

    다큐멘터리 / 한국 / 98분 / 2019년 / 감독 정관조 출연 은성호, 은건기
    피아니스트 은성호는 중증 자폐인이다. 그의 동생 건기는 엄마 없이 아무것도 못하는 형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언뜻 갈등의 골이 깊어 보이지만, 이 가족을 11년 동안 응시해 온 카메라는 이해와 소통의 빛나는 순간을 포착해 낸다.

  • 〈소나타〉

    영화 / 폴란드 / 118분 / 2021년 / 감독 바르토시 블라슈케 출연 미할 시코르스키
    폴란드 뮤지션 그제고시 플론카의 실화를 옮긴 작품이다. 자폐인으로 규정된 채 살아 온 소년 그제고시는 우연한 계기를 통해 자신이 자폐가 아닌 청각장애를 가졌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작.

  • 〈원더〉

    영화 / 미국 / 113분 / 2017년 / 감독 스티븐 크보스키 출연 제이콥 트렘블레이, 줄리아 로버츠
    조금 다른 얼굴로 태어난 소년이 세상에 발을 내딛는다. 어렵사리 학교 갈 용기를 낸 어기는 예기치 못한 친구들의 싸늘한 시선에 주눅 들고 만다. 그래도 다시 일어선다. 스물일곱 번의 성형수술을 견딘 어기만큼 단단한 열 살은 없을 테니까.

  • 〈도리를 찾아서〉

    애니메이션 / 미국 / 97분 / 2016년 / 감독 앤드루 스탠턴 목소리 출연 엘런 디제너러스, 앨버트 브룩스
    한쪽 지느러미가 짧은 물고기 니모에 이어, 단기 기억상실 장애를 가진 도리를 찾으러 간다. 다리가 일곱 개인 문어 행크, 음파 반사력이 약한 흰고래 베일리, 시각장애 고래상어 데스티니가 등장해 예측 불가한 모험을 펼친다.

  • 〈잠수종과 나비〉

    영화 / 프랑스 / 111분 / 2007년 / 감독 줄리안 슈나벨 출연 마티유 아말릭, 엠마누엘 자이그너
    잡지 편집장으로 승승장구하던 장 도미니크 보비는 벼락처럼 찾아온 전신 마비 증상으로 잠수종에 갇힌 듯한 삶을 산다.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곤 한쪽 눈꺼풀이라, 이를 통해 세상에 말을 걸고 책까지 완성한다.

 

배리어프리 영화

음성 해설, 대사와 음악 등 소리 정보 자막을 넣어 시청각장애인이 감상할 수 있도록 제작한 영화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에서는 장애를 중심 소재로 다룬 영화를 선보이기도 했다. 배우 박보검과 이청아가 출연한 <반짝반짝 두근두근>, 배우 박규리와 김흥수가 출연한 <볼링볼링>이 대표적이다. 제12회 서울배리어프리영화제는 11월 9일부터 29일까지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동시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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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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