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의 불모지 남아공에 위치한 ‘The test kitchen’이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으로 승격되기까지 크나큰 조력자 역할을 했던 박무현 셰프가 9년간의 타지 생활을 끝내고 지난 6월 한국에 입성했다. 한국에 오자마자 그는 전국을 돌며 식재료 탐방에 나섰다. 셰프로서의 삶에 끝나지 않을 식재료 탐방 첫 여정을 소개한다.
요리를 하다 보면 항상 그런 생각을 한다. “이 재료가 조금만 더 신선하다면, 조금만 더 좋은 맛을 가지고 있다면….” 요리하는 사람이라면 한도 끝도 없을 욕심일 게다. 이러한 욕심을 부리려면 식재료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이 식재료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자라는지, 왜 다른 지역보다 더 품질이 좋은지, 얼마만큼의 노력으로 키워지는지…. 단순히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주방에서 배달되는 재료만 받아 쓰는 것으로는 식재료를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
오랜 외국 생활로 한국에서 자란 식재료를 사용할 기회가 거의 없어 이해력이 부족했기에, 오래전부터 한국에 들어가면 꼭 전국을 다니며 식재료 탐방을 하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그러다 올해 6월, 9년여의 외국 생활을 끝내고 한국에 정착해 구체적인 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주된 목적은 전국 8도(울릉도, 제주도 포함)를 한 달가량 다니며 대한민국의 식재료를 공부하고 전국 각지에 있는 맛집들을 찾아다니는 것이었다. 방문할 농장이나 맛집, 식품 장인 등을 굉장히 많은 사람들로부터 추천을 받았다.
일정을 조율해본 결과 6~7월에 20여일, 그리고 2차로 8월에 10여일을 나눴고 1차 식재료 탐방을 끝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부터 며칠 뒤면 2차 식재료 탐방을 시작한다.
사실 시작이 그리 순탄치 만은 않았다. 장마가 시작되는 기간인 데다가 메르스 여파로 한 달 전만 해도 괜찮다며 오라고 했던 농가에서 오지 말라고 하는 소식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불가피하게 많은 일정이 수정되었고, 많은 아쉬움이 들었지만, 애당초 전국 식재료 탐방이라는 게 한계가 많았다. 단기간에 지역의 주요 식재료만 탐방하는 일정이라 1년 사계절 각기 다른 식재료들을 두루 확인해볼 수 없었으며 여러 지역의 같은 식재료들을 비교 분석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쉽지 않으리라 예상했었기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밀어붙였다.
첫날 서울에서 시작한 일정은 주요 시장부터 둘러보는 것이었다. 노량진수산시장, 중부시장, 가락시장, 마장동축산시장 등 우리나라 대부분의 식재료가 올라온다는 이곳들을 다녀보니 출발 이전부터 한국 식재료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20여일의 일정은 시작되었다. 전국을 시계 방향으로 강원도-경상북도-경상남도-전라남도-전라북도- 충청남도-충청북도-경기도 식으로 돌기 시작했다.
강원도 철원 오대미를 알아보러 갔다가 우연히 방문한 DMZ 지역(민간인 출입금지)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샘통이라고 하는 곳에서 기르고 있는 ‘물고추냉이’를 직접 볼 수 있었다. 고추냉이는 이곳에 14.5℃의 1급수 물이 자연적으로 솟아 나오는 최고의 환경이기에 재배가 가능하다고 한다. 물과 환경에 아주 민감하여 대량 재배가 쉽지 않은 고추냉이를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대량 재배하고 유통구조를 가지고 있는 곳이라 가격도 꽤나 나갔다.
고추냉이는 맛의 밸런스를 맞추거나 포인트를 내기 위해 다른 재료와 섞어서 소량으로 사용한다. ‘맵다’라는 맛에 대한 개념이 일반적으로 단순히 고추라는 채소에 국한되어 있다면, 고추냉이는 고추와는 전혀 다른 또 하나의 매운맛의 개념을 정리한 좋은 식재료다.
강원도를 떠나 경상북도 봉화를 지나다가 ‘와송’을 전문적으로 재배하는 농가에 들렀다. 처음 접한 와송은 생긴 것 자체가 아름다웠다. 써보지 못했던 식재료를 발견하는 것은 요리사에게 엄청난 기쁨이고 행복이다. 물론 죽을 때까지 요리를 해도 지구상의 모든 식재료를 못 써보고 죽을 테니 삶 자체가 기쁨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테다.
와송도 종류가 많은데 그중에서 3가지 종류를 재배하고 있었다. 설명을 듣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잎을 떼어 먹었다. 생각한 것보다 많은 수분에 놀랐다. 새콤하면서도 씁쓸한 맛과 단맛이 동시에 느껴지는 게 이건 확실히 요리에 잘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와송 농장주에게 이건 주로 어떻게 쓰냐고 물으니 요구르트와 같이 갈아서 마시거나 말려서 차로 마신다고. 이런 식재료를 단순히 요구르트와 갈아서 마시다니…. 너무 아쉬웠다.
샐러드는 물론 얇게 슬라이스해 음식에 약간 곁들여 맛에 포인트를 주거나 즙을 내어 드레싱을 만들고, 말려서 가루로 만들어 활용하고, 한국식 장아찌로도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영화 필름처럼 스친다. 한국에는 좋은 식재료가 있는데 아직까지 사용하는 방법을 몰라서 잘 팔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개발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맴돌았다.
그렇게 이동하다가 들른 자연방사 닭 & 유정란 농원. 처음부터 이 일을 하려 의도한 것은 아니고 시골이니 닭을 몇 마리 키우게 되었는데, 그냥 풀어뒀더니 자기들끼리 자연교배를 하며 유정란을 낳고 병아리가 나오고 그렇게 닭들이 늘다가 한때 5만 마리까지 되었다고 한다. 달걀이 엄청나게 늘어나다 보니 팔기는 해야겠는데 팔 길을 몰라 헤매다가 시장에 가져다 팔기 시작했고, 품질 좋은 유정란이다 보니 입소문을 타고 알려졌다. 농장주가 닭이 밤에 잘 때 이용하는 계사를 구경시켜주었다.
마침 닭이 낳은 따뜻한 달걀을 그 자리에서 맛볼 수 있었다. 흐느적거리지 않는 탱탱한 노른자와 흰자가 뚜렷하고, 비린내가 없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고소했다. 품질이 좋기 때문에 가격도 비싸게 측정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잘 팔린다고 한다. 서울에서 사업을 오래 했다는 농장주는 의도치 않게 귀농 성공을 거둔 케이스였다. 닭을 지키고 있는 개 한 마리와 농장주는 가는 길까지 배웅 나와 잘 가라고 인사를 한다. 고품질의 재료를 만날 수 있어 산을 내려오는 내내 감사한 마음으로 가득 채워진다.
이동 중 갈증이 나기 시작한다. 슈퍼 앞에서 내려 물을 사 먹으려다 다음 일정이 ‘참외 농장’인 것을 보고는 마음을 바꿨다. 어린 시절부터 여름이면 수박과 함께 유난히 참외를 많이 먹었다. 성주 참외라 하면 대한민국에서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 유명하고 맛이 좋다. 얼른 달려가서 물 대신 시원한 참외를 선풍기 앞에서 먹고 싶었다. 끝없이 펼쳐진 성주 참외하우스를 지나 한 농장에 도착했다.
기다리고 있던 농장주 부부가 반가이 맞이해주었고, 앉자마자 선풍기를 머리 앞에 놓아두고 시원한 성주 참외를 썰어주었다. 당도가 오를 만큼 올라 과즙이 매우 풍부하고 참외가 보들보들하니 씹는다는 느낌보다는 입에서 녹는다는 느낌이었다. 참외는 보통 3월에서 6월 말까지 수확하며 4~5월 참외가 가장 맛있다고 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 참외는 거의 끝물이었다. 의아했던 것은 참외밭 밖에 엄청나게 쌓여 있는 참외 무덤이었다. 물어보니 조금이라도 흠이 있거나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것들은 가차 없이 빼버린다고 했다. 품질 관리에 엄격하고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는 다음 일정으로 출발하려고 일어나는데 아저씨께서 “참외 그냥 먹지만 말고, 장아찌를 꼭 해봐요.”라고 한다. 이분들도 참외가 더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많은가 보다. 그러한 일을 하는 것이 셰프일 터, 또 하나의 숙제를 담아간다. “요리사에게 써보지 못한 식재료를 발견하는 것은 엄청난 기쁨이고 행복이다. 물론 죽을 때 까지 요리를 해도 지구상의 모든 식재료를 못써보고 죽을 테니 삶 자체가 기쁨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테다.”
전라남도로 이동했을 때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황매실 농원이었다. 도착하고 보니 점심시간이라 식사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주인 부부가 서슴없이 같이 식사를 하자며 들어오란다. 매실농원에 왔으니 매실주 한 잔 받으라고 한다. 캬. 매실 전문가가 담근 진짜 매실주. 시중의 매실주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식사를 하고 난 뒤 밭으로 향하는데 아저씨가 갑자기 하소연을 털어놓는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청매만 원하는데, 청매는 익지 않은 매실이고 황매가 진짜 매실인데, 청매만 사람들이 고집하는 것이 많이 아쉬운 듯했다. 배송 환경이 좋지 않았을 때 황매로 익는 시간을 계산하여 청매를 미리 따서 배송하던 방식이었는데, 배송 환경이 좋아진 현재까지도 청매만 고집하게 되었다. 노란빛이 도는 황매실이 맛과 풍미가 깊고 좋으니 가능하면 황매실을 활용하는 게 좋다고 적극 강조한다. 황매실은 따자마자 바로 크기에 따라 분리한 뒤 저온 냉장고에서 더 익지 않도록 보관, 판매하니 너무 익어버릴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루 평균 5여 곳, 대략 100여 곳의 농장을 방문했다. 한 곳 한 곳, 기억이 선명하다. 그리고 좋은 식재료를 키워내는 삶, 목표, 희망이 마음으로 다가왔다. 단순히 식재료 공부하려고 떠난 이 여행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또 다른 무언가가 내게 돌아왔다.
대한민국은 사계절이 뚜렷한 곳이기에 전국의 다양한 식재료를 계절에 맞게 관찰하고 공부하려면 몇 년의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 3년이라는 긴 계획을 세워나가고 있다. 아마 3년이 지난 뒤 또다시 10년 계획을 세우게 될지도.
미식의 불모지 남아공에 위치한 ‘The test kitchen’이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으로 승격되기까지 크나큰 조력자 역할을 했던 박무현 셰프가 9년간의 타지 생활을 끝내고 지난 6월 한국에 입성했다. 한국에 오자마자 그는 전국을 돌며 식재료 탐방에 나섰다. 셰프로서의 삶에 끝나지 않을 식재료 탐방 첫 여정을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