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깃한 문어는 잊어라. 혀끝에 녹아 붙는 부드러운 문어 살의 매력에 빠져보자. 문어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한 전 세계 미식가들의 집념이 만들어낸 진화된 조리 테크닉.
와인 코르크와 간 무, 부드러운 문어 살을 향한 집념
여기 노릇노릇,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그리스식 문어 요리가 있다. 통통한 다리에 레몬즙을 뿌리고 칼로 슥슥 잘라 입에 넣는다. 기세 좋게 씹은 이가 무색할 정도로 부드럽게 무너져내리는 조직, 살캉거림을 넘어 껌처럼 맥없이 풀리는 식감, 이게 문어 맞는 거야? 우리 상식으로 ‘문어 요리’ 하면 쫄깃쫄깃하게 삶은 자숙문어부터 떠올리지만 지중해 연안 등 유럽 일대, 미국 등지의 서양에서 문어란 자고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드럽게 만들어야 하는 식재료’일 뿐이다.
먼 옛날부터 문어를 즐겨 먹던 지중해, 그리스 일대의 어부들은 문어를 잡자마자 해안가의 바위에 ‘패대기’쳤다. 문어 머리를 잡고 온 힘을 다해 바위에 때리고 문지르기를 반복하고 나면 문어 특유의 섬유 조직이 찢어져 익혔을 때 부드러운 질감을 내기 때문이다. 문어를 ‘패대기’쳐가며 부드럽게 만들어 먹던 전통은 점점 진화하고 발달한다.
이탈리아 가정에서는 문어를 삶을 때 와인 코르크를 함께 넣어 끓인다. 이렇게 하면 코르크에 묻어난 와인의 타닌 성분이 문어를 부드럽게 만든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이탈리아식 비법은 셰프들도 애용하는 방법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셰프 마리오 바탈리도 ‘와인 코르크를 함께 넣는 것만큼 문어를 부드럽게 만드는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고 말한다. 와인 코르크의 효과는 전혀 입증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와인 코르크 외에도 삶을 때 식초를 넣거나 무로 문어를 때리거나 무를 갈아 표면에 문지르는 등 전 세계 요리사들은 앞다투어 부드러운 문어를 만들기 위해 애쓴다.
끓는 물에 문어를 넣을 때 문어가 뜨거운 온도에 더 ‘편안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3초 정도 시간을 들여 천천히 넣는다는 이도 있다. 문어 요리를 즐기는 스페인에서는 문어 조직을 찢기 위해 세탁기와 비슷하게 생긴 전문 ‘문어 통돌이’에 문어를 넣어 빨래하듯 마구 돌린다. 옛날 ‘그리스 해안 바위’의 기계화인 셈인데, 사실 질 좋은 신선한 문어라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미식가들이 염원하는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문어 살’을 위한 요리 테크닉을 소개한다.
Killing Me Soffly 1 90~95℃에서 장시간 끓이기
아뼈 없는 문어의 다리가 어마어마한 힘을 지니는 것은 바로 문어의 촘촘한 근섬유 그리고 콜라겐 덕분이다. 이 근섬유와 콜라겐은 55℃에서 젤라틴으로 변하기 시작해 90~95℃에서 최적으로 젤라틴화된다. 때문에 속이 촉촉하며 살캉거리는 부드러운 문어를 만들기 위해서는 90℃가량의 온도로 문어를 조리해야 한다.
또한 문어 한 마리의 근섬유를 최대한 젤라틴화시키려면 1시간 이상 끓이는 것이 좋다. 보통 ‘아주 살짝’ 데치면 문어 살이 부드럽다고들 하는데 이 ‘아주 살짝 데치기’의 부드러움과 90℃에서 장시간 끓이는 부드러움은 차원이 다르다.
삶은 문어와 사과아보카도샐러드
양파, 셀러리, 허브 등을 넣고 함께 끓여 은은한 풍미를 내는 부드러운 문어. 살캉살캉 기분 좋게 씹히는 문어 살과 상큼한 레몬비네그레트, 아삭한 사과의 만남.
Killing Me Soffly 2 장시간 오일에서 저온 조리하기, 콩피
90℃ 혹은 그보다 낮은 온도의 기름이나 지방을 이용해 장시간 저온 조리하는 방법인 ‘콩피’는 본래 육류의 보존을 위해 발달한 조리법이지만 최근에는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질감을 위해 애용되는 조리법이기도 하다. 90℃ 정도의 물에 끓일 때와 마찬가지로 90℃ 정도로 가열된 기름 속에서 육류나 문어의 근섬유는 천천히 찢어지고 콜라겐은 젤라틴화되어 부드러운 질감으로 변해간다.
160~230℃ 기름에서 표면의 수분을 한순간에 뺏기며 ‘튀겨지는’ 것과는 다르다. 콩피는 같은 90℃의 물에서 조리할 때보다 식재료 자체의 수분이나 육즙 손실이 적을 뿐 아니라 기름이 문어 표면의 조직을 더 부드럽게 만드는 장점이 있다. 때문에 살은 부드럽게 녹아내리며 풍미도 진한 촉촉한 문어를 즐길 수 있다.
구운 문어콩피와 로즈메리마늘감자튀김
표면은 살짝 그릴링해 불 맛이 나고 속은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문어는 여느 스테이크보다 멋진 메인 요리가 된다.
Killing Me Soffly 3 오븐에서 장시간 굽기, 슬로 로스팅
저온의 물이나 기름에 조리하는 것은 문어의 조직을 부드럽게 하지만 어느 정도의 육즙과 풍미 손실은 감수해야 한다. 그렇다고 짧게 팬프라이하거나 로스트하면 풍미는 진하되 질긴 식감을 낸다. 부드러운 살결, 진한 풍미를 원한다면 문어를 두꺼운 냄비에 담아 오븐에 넣고 장시간 구워보자.
굽기 전에 끓는 물에 문어를 살짝 데쳐야 잡냄새와 불순물이 제거되고 다리 모양도 도르르 멋지게 말려 올라간다. 질긴 문어라면 100℃에서 4시간가량,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국산 문어라면 150℃에서 1시간도 충분하다.
포트로스트문어
문어가 부드럽게 익는 시간을 기다릴 인내심만 있다면 무엇보다 간편히 부드럽고 풍미 진한 문어 요리를 즐길 수 있다. 화이트와인과 레몬이 깔끔한 산미를 더하고 방울토마토와 칼라마타올리브가 감칠맛을 더한다.
포트로스트문어
에쎈 | 2015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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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료
문어(3kg) ½마리, 레몬 ½개, 방울토마토 8개, 칼라마타올리브 5개, 마늘 4쪽, 케이퍼 7~8개, 화이트와인 ½컵, 올리브유 3큰술, 이탈리안 파슬리·소금·후춧가루 약간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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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어의 머리 부분을 제거하고 깨끗이 씻은 뒤 밀가루 ½컵 정도를 뿌려 빨판을 깨끗이 닦아 손질한다.
- 2
끓는 물에 문어를 넣고 3분가량 데친 뒤 꺼내 물기를 제거한다.
- 3
레몬은 껍질째 깨끗이 씻고 방울토마토는 꼭지를 제거한다.
- 4
소금, 후춧가루를 제외한 문어와 모든 재료를 오븐용 냄비에 넣은 뒤 뚜껑을 닫아 150℃로 예열한 오븐에 넣고 1시간가량 익힌다.
- 5
문어가 부드럽게 익으면 문어와 방울토마토, 올리브, 레몬 등을 보기 좋게 접시에 담고 소금, 후춧가루로 간을 맞춘다.
구운 문어콩피와 로즈메리마늘감자튀김
에쎈 | 2015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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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료
문어(3kg) ½마리, 통후추 10알, 타임 3줄기, 로즈메리 1줄기, 월계수 잎 2장, 말린 오레가노 1작은술, 레몬 1조각, 식용유 2L,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 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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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메리마늘감자튀김
알감자 5개, 마늘 6쪽, 로즈메리 3줄기, 식용유 적당량,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 1
문어는 머리 부분을 제거하고 깨끗이 씻은 뒤 밀가루 ½컵 정도를 뿌려 빨판을 깨끗이 닦아 손질한다.
- 2
끓는 물에 문어를 넣고 2분가량 데친 뒤 꺼내 물기를 제거한다.
- 3
오븐용 냄비나 팬에 식용유를 붓고 통후추, 타임, 로즈메리, 월계수 잎, 말린 오레가노를 넣어 90℃로 예열한 오븐에 넣는다.
- 4
기름 온도가 90℃가 되면 문어를 넣고 90℃에서 1시간가량 익힌다.
- 5
감자는 껍질째 깨끗이 씻어 찬물을 넉넉히 부은 냄비에 넣고 뚜껑을 닫아 20분간 끓여 익힌 뒤 물기를 제거하고 반으로 가른다.
- 6
마늘은 칼등이나 손바닥으로 거칠게 으깬다.
- 7
달군 팬에 식용유를 넉넉히 두르고 삶은 감자와 마늘, 로즈메리를 넣어 갈색이 돌 때까지 튀기듯 구운 뒤 소금과 후춧가루로 간한다.
- 8
콩피한 문어를 꺼내 적당한 크기로 자른 뒤 그릴에 양면을 살짝 굽는다. 또는 달군 마른 팬에 올려 센 불에서 재빨리 팬프라이한다.
- 9
접시에 로즈메리마늘감자튀김과 구운 문어콩피를 담고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를 살짝 뿌린다. 레몬을 곁들여 낸다.
삶은 문어와 사과아보카도샐러드
에쎈 | 2015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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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료
문어(3kg) ½마리, 아보카도 1개, 사과 ½개, 피스타치오 10개, 프리세(또는 로메인) 20g, 올리브 4개,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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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비네그레트
레몬즙 ⅓컵,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 ⅔컵, 레몬껍질 적당량,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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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 삶는 재료
양파 ½개, 셀러리·대파 흰 대 부분 1대씩, 타임 2줄기, 통후추 10알, 월계수 잎 2장, 물 2L
- 1
문어의 머리 부분을 뒤집어 내장과 눈 등을 제거하고 깨끗이 씻은 다음 밀가루 ½컵 정도를 뿌려 빨판을 깨끗이 닦아 손질한다.
- 2
넉넉한 냄비에 물과 양파, 셀러리, 대파, 타임, 통후추, 월계수 잎을 넣고 불에 올려 끓기 시작하면 문어를 넣는다. 물 온도가 90℃가 되면 불을 최대한 약하게 줄여 뚜껑을 닫고 90~95℃를 유지하면서 50분간 끓인다.
- 3
레몬껍질을 깨끗이 씻어 하얀 부분을 잘라내고 가늘게 채 썬 뒤 레몬즙과 올리브유를 잘 섞고 소금, 후춧가루로 간해 레몬비네그레트 드레싱을 만든다.
- 4
문어 다리를 한 쪽씩 잘라 물기를 제거하고 볼에 담은 뒤 프리제를 먹기 좋게 잘라 넣고 소금, 후춧가루로 간한다.
- 5
아보카도는 반 갈라 씨를 제거하고 과육만 파낸 뒤 먹기 좋은 크기로 썰고 사과는 깨끗이 씻어 껍질째 가늘게 채 썬다. 피스타치오는 거칠게 으깨고 올리브는 얇게 저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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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에 문어와 프리세를 담고 아보카도, 사과, 피스타치오, 올리브를 보기 좋게 얹은 뒤 레몬비네그레트를 뿌려 낸다.
쫄깃한 문어는 잊어라. 혀끝에 녹아 붙는 부드러운 문어 살의 매력에 빠져보자. 문어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한 전 세계 미식가들의 집념이 만들어낸 진화된 조리 테크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