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 음식을 만들거나 팔거나 먹는 사람을 통틀어 ‘음식인’이라 정의하였다. 우리 사회에서 의사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고 의사 윤리강령을 지키며, 변호사는 법조인으로서 변호사 윤리강령을 지킨다. 그렇다면 음식인이 지켜야 할 윤리강령은 없을까? 현재는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 음식인 윤리강령이 필요할까?
윤리강령(ethical code)은 윤리적 덕목이나 권고를 압축해 제시한 것이다. 전형적인 윤리강령은 의료계나 법조계 등 전문 분야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 칼럼의 큰 제목인 ‘Expert’s Page’의 expert는 전문가를 가리킨다. 즉, 이 큰 제목 아래 글 쓰는 필자들은 의사나 변호사처럼 전문가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비전문가는 non-expert, 준전문가는 quasi-expert 또는 semi-expert라 한다. 그렇다면 음식인은 전문가에 속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음식인 윤리강령을 만들기 전에 먼저 검토할 필요가 있다.
윤리강령은 크게 종사자가 대상-환자나 의뢰인-에 대해 지켜야 할 윤리와 사회가 종사자 본인에게 요구하는 윤리로 이루어진다. 의료와 법조 분야 윤리강령의 예로서 국제의료윤리장전, 치과의사윤리강령, 법관윤리강령, 변호사윤리장전, 검사윤리강령 등을 들 수 있다. 음식과 관련된 윤리강령의 예로는 영양사윤리강령, 조리사윤리강령, 식품과학기술인헌장 등이 있다.
전문가인 의사에게 환자는 치료해야 할 대상이다. 물론 의사도 아플 수 있지만 그 경우에는 의사가 환자가 되어 다른 의사의 치료 대상이 된다. 변호사에게는 의뢰인이 변호해야 할 대상이다. 역시 변호사가 의뢰인이 될 수도 있지만 그 경우 다른 변호사의 변호 대상이 된다. 다시 말해 의사나 변호사는 환자나 의뢰인과 명백하게 구별되는 전문가이다.
그러나 음식인은 의사나 변호사와 경우가 다르다. 단식하거나 금식하는 때를 빼고는 누구나 매일매일 먹으면서 살아간다. 모두가 음식인인 것이다. 만드는 사람이든 파는 사람이든 자기가 만든 음식, 혹은 다른 이가 만들거나 파는 음식을 먹는 사람이 된다. 한 사람이 1인2역을 하는 셈이다. 이런 경우 만들거나 판매하는 음식인은 전문가이고 먹는 음식인은 비전문가일까?
오늘날에는 음식에 관한 정보가 넘쳐난다. 웬만한 음식에 관해서는 많은 사람이 방대한 지식을 지니고 있다. 인터넷이나 서적, 방송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고급 정보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또한 음식을 먹는 이들은 소비자단체의 도움을 받아 비윤리적 상황에 대해 합리적으로 저항할 수 있는 기회도 있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만 음식 전문가라고 할 수 없다. ‘음식을 만드는 일’에서는 전문가와 비전문가가 나뉠 수 있지만, ‘음식’ 자체에 대해서는 저마다의 전문성과 역사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음식을 먹는 사람 중에도 전문가가 있고, 그렇지 않아도 자기만의 지식을 지닌 준전문가 정도는 된다.
산업화 이전의 과거에는 나와 가까운, 잘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음식을 만들거나 팔았기 때문에 음식에 대해 의심하거나 불신할 염려가 없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내가 먹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는 익명의 시대여서 어떤 재료를 사용했는지조차 알 수 없어 불안한 마음을 지닌 채 살아간다. 오죽하면 가공식품 포장지에 만든 사람의 이름까지 써놓겠는가.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도 불신은 해소되지 않는다. 그래서 음식 윤리가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게다가 우리 모두는 음식인으로서 음식과 관련해 전문가 혹은 준전문가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음식인의 윤리강령은 이 시대에 꼭 필요하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지난해 대학에서 ‘음식 윤리’를 강의하면서 학생들에게 ‘음식인 윤리강령’을 만드는 과제를 냈다. 학생들은 학기 내내 자료를 수집하고 토의하고 정리해 저마다 ‘음식인 윤리강령’을 만들었는데 공통적으로 자주 등장한 강령은 다음과 같다.
하나. 음식인은 생명을 위태롭게 하거나 위협하는 행위를 하면 안 된다.
하나. 음식인은 세속적 가치보다 정의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하나. 음식인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지키고 이윤 추구에 앞서 책임 의식을 지녀야 한다.
하나. 음식인은 지속 가능한 환경 보전 실천에 적극적이어야 한다.
물론 학생들이 만든 것을 음식인 윤리강령이라 주창하려는 것은 아니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많은 사람이 함께, 깊이 연구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예전 칼럼에서 밝혔던 음식 윤리의 다섯 가지 원리-생명 존중, 정의, 안전성 최우선, 환경 보전, 동적 평형-를 바탕으로 삼는 것이 한 방안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독자 스스로도 음식인 윤리강령을 만들어보면 좋겠다. 이 글을 읽는 독자 모두가 음식에 대해 적어도 준전문가 이상은 되기 때문이다.
김석신 교수
서울대학교 식품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식품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1년 <잃어버린 밥상, 잊어버린 윤리>(공저, 북마루지), 2012년 <좋은 음식을 말한다>(공저, 백년후)를 펴낸 바 있다. 전공 분야의 오랜 연구를 바탕으로 음식 윤리를 대중에 알려 우리 사회에 올바른 식문화가 정립되기 바라는 그는 <에쎈> 독자들과 함께 음식 윤리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