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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쌀한 바람 불 때 후루룩~ 우동 한 그릇

On December 24, 2013

뜨거운 국물에 면발을 후루룩, 우물우물 씹어 넘기는 그 맛. 맑은 국물에 참방 담가 탱글탱글한 면발 즐기는 정통 일본식 우동에서 먼 여행길 기차역 휴게실에서 허겁지겁 넘기던 푸근한 ‘가락국수’까지…. 허기진 마음을 오롯이 채우는 한 그릇 우동 이야기.

제면소에서 갓 뽑은 면에 간장 뿌려 비벼 먹는 맛

일본에서 우동은 소박한 온기를 전하는 온 국민의 솔푸드(soul food)다. 사누키우동으로 유명한 일본 가가와 현에서는 거의 모든 이들이 매일처럼 우동을 먹고, 우동 가게만 1,000여 곳에 달할 정도로 ‘고향의 맛’으로 뿌리박혀 있다. 우동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이 난무하지만 헤이안 시대, 당나라에서 유학하던 일본의 승려 고보가 밀과 함께 우동 만드는 법을 자국에 들여왔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본의 우동은 크게 면발이 쫄깃하고 탱탱하며 국물이 맑은 면발 중심의 관서지방 우동과 면발이 부드럽고 국물이 진한 관동지방 우동으로 나눌 수 있다. 특히 가가와 현이 속한 관서지방은 강우량이 적고 온난한 기후로 질 좋은 밀이 생산될 뿐 아니라 국물 내기 좋은 멸치 등 풍부한 해산물이 나서 우동이 크게 발전했다. 가가와 현의 옛 지명을 따온 사누키우동의 정수는 하루 숙성한 반죽을 그 자리에서 바로 밀어 삶은 면발의 탱글탱글하고 차진 맛이다. 그래서 동네의 우동 제면소에는 갓 뽑은 면을 사거나 먹으러 오는 주민들로 북적인다. 자기 그릇을 들고 가면 면을 삶아 내주는데 갓 건진 매끈매끈 탱탱한 면에 간장만 뿌려 비벼 먹는 맛이 백미로 가가와 현의 명물이 되었다. 테이블도 없이 옹기종기 모여 서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우동을 오물거리며 먹는 장면은 생각만으로도 흐뭇하다.

우동과 가락국수

우동은 따뜻하게 먹는 국수라는 뜻의 ‘온돈’을 일본식으로 발음한 것으로 국내에서는 우리말로 순화시켜 ‘가락국수’라고 사용하기를 권장하고 있다. 가락국수의 사전적 의미는 ‘가락을 굵게 뽑은 국수의 하나. 또는 그것을 삶아서 맑은 장국에 요리한 음식’으로 이 뜻에 따르면 우동 역시 가락국수로 불릴 수는 있지만 모든 가락국수가 우동이 되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가락국수’라 하면 정통 일본식 우동이 아닌 20세기 초반 일본에서 건너와 한국식으로 개량된 우동, 혹은 우동과 비슷한 굵기의 두꺼운 밀가루 국수를 떠올리게 된다. 국내에 우동이 처음 들어온 것이 언젠지 확실치는 않지만 개화기 시절, 종로의 모던보이, 모던걸들이 모여들던 번화가 ‘진고개’거리에는 이미 빙수집, 찻집과 함께 우동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국내에서 우동 면을 뽑는 오래된 공장 하면 포항 구룡포를 떠올릴 수 있다. 80년여 전, 일본과 한국의 항구 노동자와 어부들이 바쁜 노동 중 고픈 배를 넉넉히 채우기 위해 갖가지 잡고기를 섞어 끓인 일종의 매운탕에 국수사리를 넣은 ‘모리국수’를 만들기 시작했고 항구 일대에 작은 규모의 국수 공장이 여럿 생겼다. 거기에서는 소면이나 칼국수 면 이외에 우동 면도 판매했는데, 굵기는 우동 면만 하거나 더 굵지만 그 모양은 칼국수 면처럼 넓적한 것이 정통 스타일과 달랐다. 개화기 이후 우동은 고픈 배를 급히 채우고 영혼을 달래는 서민들의 별미로 발전했다. 우리에게도 유명한 일본의 단편소설 ‘우동 한그릇’의 원제가 본래 ‘소바(메밀국수) 한그릇’ 이었는데 ‘우동’으로 임의 번역한 것만 보더라도 우동이 얼마나 정감 가고 친근한 이미지인지 알 만하다.

대전역 가락국수와 정통 수타 우동

대전역 하면 가락국수, 가락국수 하면 대전역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예전에는 서울에서 호남 지방을 갈 때 대전역에 정차한 뒤 기관차의 방향을 반대로 바꿔 가는 법밖에 없었는데, 대기 시간의 지루함을 달래기에 간이매점에서 판매하는 가락국수만 한 것이 없었다. 기차를 놓칠까 시계를 살피며 후룩후룩 급하게 삼키던 진한 멸치국물 우동의 맛은 여행의 설렘과 노동의 피곤함이 혼재된 남루한 플랫폼 공기의 정취와 어우러져 잊을 수 없는 맛이 되었다. 지금은 호남선이 대전역을 경유하지 않지만 열차 대기 시간이나 환승 시간을 틈타 찾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서민의 친구가 된 우동은 보통 멸치나 다시마 국물에 쑥갓 등으로 향을 내고 고춧가루와 김을 듬뿍 뿌린 ‘분식 스타일’이었다. 하루 종일 공부와 일에 시달리고 집에 가는 길, 달랑거리는 백열등 달아놓은 우동 트럭은 주머니 가벼운 학생에게도 허기진 직장인에게도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우동은 칼국수나 잔치국수 등 여느 국수보다 술안주로 사랑받기도 한다. 포장마차 안주의 최고봉이 우동이냐 닭발이냐로 논쟁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다. 처음으로 포장마차에서 우동과 소주잔을 기울이는 스무 살의 발개진 볼에는 어른이 되었다는 설렘과 어색함이 동시에 묻어난다.
21세기 들어서는 일식 요리가 우리나라 젊은이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면서 ‘일본식 정통 우동’ 가게가 크게 늘었다. 그전까지 한국의 우동이 오뎅우동이나 튀김우동, 혹은 돌냄비우동이나 냄비우동으로 구분되었다면 정통 일본 우동 가게의 메뉴는 한층 본격적이다. 갓 삶아 찬물에 행군 뒤 따뜻한 국물에 말아 내는 가케우동, 갓 삶은 면을 찬 물에 헹구지 않고 따뜻한 채로 소스에 찍어 먹는 가마우동, 따뜻한 면에 양념을 부어 비벼 먹는 가마붓가케우동, 찬물에 헹군 우동을 메밀소바처럼 소스에 찍어 먹는 자루우동 등등… 이 우동들은 국물보다는 면을 내는 방식에서 차이를 보이기에 면의 맛에 집중하게 된다.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서는 소불고기가 올라간 우동이나 화려한 일식 튀김이 올라간 우동, 퓨전화된 샐러드우동이나 카레우동 등이 인기를 얻고 있다. 낡은 양은 냄비에 담긴 우동이건 일본식 수타 우동이건, 그게 어떤 모습이든지 간에 우동은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달래주고 있다.

입안을 놀라게 하는 수타면발 영등포구청 교다이야

가가와 현에서 수타면 만들기를 배워 온 주인장이 주문이 들어오면 미리 숙성시킨 반죽을 그 자리에서 밀대로 밀고 잘라 면을 뽑아 삶는, 보기 드문 진짜배기 수타우동집이다. 면을 자르고 나서 삶기까지 5분 이내, 삶고 나서 손님한테 가기까지 30초 이내, 그 이상이 지난 면은 모두 폐기할 정도로 ‘면발’ 관리에 철저하다. 반투명하고 윤기 나는 면발은 탱글탱글 입안에서 살아 움직이며 찰기까지 지녀 졸깃하다. 밀가루, 소금, 물만으로 만드는 반죽은 몇 번이고 접어가며 반죽해 숙성한 것으로 면의 단면을 자세히 들어다보면 마치 페이스트리처럼 층층이 단면이 잡혀 있어 씹는 맛이 조밀하고 국물에 들어가도 빨리 불지 않는다. 부드럽게 풀어지는 면이 아니라 오물오물 씹으며 자체의 식감을 즐기는 면이다. 기본적인 가케우동은 면 본연의 맛을 즐기기 위한 맑은 스타일의 국물이다. 여기에 일식 튀김을 푸짐하게 올린 덴푸라우동은 특히 여성들이 좋아한다. 면의 맛이 좋기 때문에 차가운 면을 쓰유에 적셔 먹는 자루우동, 갓 삶은 우동을 그대로 뜨겁게 내 날달걀과 양념을 넣어 비벼 먹는 가마붓가케우동도 인기다. 가쓰오부시 등 일본산 재료는 후쿠시마와 해류가 반대 방향이고 부산과 가까운 가가와 현의 것만 수입해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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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뉴 가케우동 6천원, 덴푸라우동 8천원, 가마아게우동·가마붓가케우동 7천원씩
    영업시간 11:00~15:00, 17:00~22:00(마지막 주문 21:00, 매주 토요일 휴무)
    주소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3가 314
    문의 02-2654-2645
푸근함에 먼저 입맛 다시는 추억의 냄비우동 이촌동 동문우동

일본인이 많이 거주해 일본 음식이 발달한 이촌동. 오래된 우동 가게가 모여 있는 전통의 강호다. 그 사이에서 20년 동안 한자리를 지키며 단골들의 사랑을 받아온 동문우동은 얼핏 보기에는 작은 동네 분식집에 불과하다. 5평밖에 안 되는 작은 공간에 테이블도 많지 않지만 언제나 줄을 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곳을 유명하게 한 것은 누런 양은 냄비에 푸짐하게 담긴 냄비우동, 어묵과 유부가 넉넉히 들어가고 달걀까지 푼 한국식 우동이다. 육수의 베이스는 가쓰오다시지만 한국식으로 구수하고 진한 데에다 냄비째 팔팔 끓여 뜨거운 국물이 친근하다. 얌전히 먹는 우동이 아니라 입안 가득 면을 넣어 우걱우걱 씹으며 국물을 후루룩 마셔 넘기는 털털한 우동이다. 맛을 잊지 못해 찾아오는 오래된 단골부터 혈기 왕성한 청년까지 고픈 배를 흐뭇하게 채우고 가는 푸근한 집이다.

  • shop info

    메뉴 가케우동 4천5백원, 냄비우동 6천원, 김초밥·유부초밥 3천원씩
    영업시간 10:00~22:00
    주소 서울 용산구 이촌동 300-10
    문의 02-798-6895
기분이 좋아지는 소박한 카레우동 을지로 3가 동경우동

국내에는 흔치 않지만 일본에서는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카레우동,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두 가지를 합쳐놓았으니 좋아할 만하다. 동경우동은 30년여 전 우리나라에 거의 처음으로 카레우동을 소개한 곳. 정구 선수였던 주인장이 대회 참가 차 일본에 갔다가 카레우동 맛에 반해 한국에 돌아와 가게를 차렸다. 솜씨 좋은 엄마가 끓인 듯, 큼지막한 감자가 들어간 우리네식 카레에 부드러운 면발이 어우러진 소박한 맛이 중독성 있다. 품질 좋은 면을 공장에서 받아다 쓰는데 부담 없이 훌훌 들어가는 밀가루 면 특유의 맛이 카레양념과도 잘 어울린다. 일본식 가케우동은 가쓰오부시 육수의 깔끔한 맛에 단맛이 두드러진다. 유부를 잔뜩 넣은 유부우동이나 분식집 스타일 튀김이지만 섭섭지 않게 올려주는 튀김우동, 냄비우동도 인기다. 허기진 이라면 유부초밥을 곁들여 먹어도 좋다. 허름한 골목에 위치한 작은 가게이지만 30여 년의 세월을 지켜온 만큼 명성도 높아 인근 나이 지긋한 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아 언제나 복작거린다. 저렴한 가격으로 뜨끈한 우동을 먹고 싶을 때 찾을 만하다.

  • shop info

    메뉴 카레우동·유부초밥 3천9백원씩, 가케우동 3천5백원, 튀김우동 4천3백원
    영업시간 09:00~21:00
    주소 서울 중구 초동 17-1
    문의 02-2274-3440
일본 기술제휴 기계식 우동 이태원 니시키

니혼TV에서 주최한 ‘전국 사누키우동 대회’에서 1위를 했던 일본 현지의 가게와 기술제휴를 했다는 이태원 니시키는 수타면보다 맛있는 기계식 우동을 지향한다. 수타면 만들기에 상당한 공력을 지닌 주방장이 아닌 바에야 기계로 만드는 것이 한결같이 높은 퀄리티를 유지하는 데 낫다는 것이 이곳의 의견. 일본 현지에서도 최상급으로 치는 기계에 물과 밀가루, 소금만을 적정한 비율로 넣어 반죽해 3차에 걸쳐 13시간가량 숙성한 면은 탱글탱글하면서도 씹는 맛이 상당하다. 기본 메뉴인 니시키우동 역시 면의 맛을 위해 다시마, 멸치 등으로 맑게 우린 국물을 쓴다. 토핑도 파와 미역 두 가지로 최대한 맑은 느낌을 살렸다. 탱탱한 면발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냉우동류도 인기가 높은데 그중에서도 검은깨소스에 비벼 먹는 히야시탄탄멘이 특이하다. 저녁에는 꽤나 수준 높은 안주와 사케를 마실 수 있는 우동 & 다이닝 바로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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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뉴 니시키우동·자루우동 9천원씩, 니주미조레우동 ·히야시탄탄멘 1만1천원씩
    영업시간 11:30~14:30, 18:00~24:00
    주소 서울 용산구 한남동 683-122
    문의 02-749-0446

뜨거운 국물에 면발을 후루룩, 우물우물 씹어 넘기는 그 맛. 맑은 국물에 참방 담가 탱글탱글한 면발 즐기는 정통 일본식 우동에서 먼 여행길 기차역 휴게실에서 허겁지겁 넘기던 푸근한 ‘가락국수’까지…. 허기진 마음을 오롯이 채우는 한 그릇 우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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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그래퍼
강태희,김나윤
어시스트
최지은
에디터
강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