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품은 뿌리채소로 계절의 미학을 전하는 권우중 셰프의 계절밥상.
밥상에 계절을 담아내다
우리 땅에서 제대로 키운 식재료와 음식에 얽힌 문화와 역사를 알아보고 가치를 공유하는 TV 프로그램 <계절의 식탁>에서 패널을 맡고 있는 권우중 셰프. 그가 오너 셰프로 있는 한식 레스토랑 ‘이스트 빌리지’와 총괄 셰프로 활약하는 CJ푸드빌의 ‘계절밥상’에서 선보이는 음식 또한 TV에서 본 장면과 다르지 않다. 전통적인 한식을 낼 때도 있고 조리법이나 담음새를 변형해 모던한 한식을 낼 때도 있지만, 그 중심에는 이 땅에서 자란 식재료를 사용한다는 고집이 있기 때문이다. 식재료를 탐구하는 것은 셰프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말하는 그는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재래시장에 자주 들르고, 촬영이나 메뉴 컨설팅을 위해 산지를 찾아가 식재료 탐구를 하기도 한다. 최근에 찾아간 여주의 연근 농장에서 맛본 연근은 지금껏 맛보던 연근의 맛이 아니었다. 더 깊이 뿌리 내릴 수 있고 온갖 영양분을 기꺼이 내주는 사질토(모래가 주성분으로 찰흙이 섞인 토양)에서 자란 연근을 갓 따서 흙을 털고 뽀얀 속살을 씹는 순간 대지의 내음이 입안 가득 퍼져 연근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지금 땅속에서는 뿌리에 양분을 채워 가을을 맞이하는 채소들이 계절의 밥상을 준비하고 있다.
“뿌리채소는 가을을 품고 있습니다.”
은은한 향과 담담한 맛, 단아한 색을 지닌 뿌리채소는 온화한 가을과 닮았다. 흙의 정기를 흠뻑 빨아들인 무, 토란, 당근, 연근, 우엉과 같은 뿌리채소가 한창이지만, 제대로 된 음식으로 만나기는 힘들다. 가정에서는 뿌리채소를 주로 간장에 조려 양념 맛으로 먹고, 레스토랑에서는 절대 메인 재료가 될 수 없다. 뿌리채소의 매력에 빠져 음식을 개발하고 있는 권 셰프는 과연 어떤 레퍼토리를 구상 중일까.
연근 요리를 할 때 식촛물에 담가 아린 맛을 빼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상식이다. 싱싱한 연근에는 아린 맛이 없기 때문이다. 달콤한 흙 내음과 아삭함을 지닌 연근은 끓는 물에 살짝 데치면 살균 작용과 함께 텍스처가 살아난다. 이와 같이 손질한 연근은 샐러드로 먹거나 백김치와 같이 생채로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 토란은 질감이 미끈미끈한 데다 많은 섬유질로 인해 속까지 간이 배어들기 어려워 주로 오래 익히는 조림이나 탕에 사용한다. 그러나 토란 자체의 맛을 느끼려면 재료의 풍미를 잘 살리는 튀김이 적당하다. 쌉싸래한 우엉은 더덕과 같이 고추장에 박아 장아찌로 만들면 그 풍미가 예술이다. 달고 시원한 무는 김치나 시원한 육수를 낼 때 사용하는데, 문어와 함께 조리면 고급스러운 일품요리를 만들 수 있다. 무와 문어, 마른 고추의 씨, 버섯, 간장양념을 넣고 1시간 정도 푹 삶으면 문어의 짭조름한 맛과 무의 시원한 맛, 고추씨의 깨끗한 매운맛이 한데 어우러진다. 문어는 삶을수록 부드러워져 폭신하게 익은 무와 텍스처가 꽤나 잘 어울린다.
권우중 셰프의 뿌리채소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계절밥상’
CJ푸드빌에서 권우중 셰프를 필두로 지난 7월에 오픈한 ‘계절밥상’에서는 우리 땅에서 나는 제철 식재료를 기본으로 한 70여 종의 다양한 한식 메뉴들을 무제한 즐길 수 있으며 계절마다 새로운 메뉴를 선보인다. 올가을에는 뿌리채소밥과 뿌리채소들깨탕 등 뿌리채소 일품요리가 준비되어 있다.
계절밥상은 자연 그대로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스틱 채소와 쌈 채소, 간단한 드레싱 등으로 제철 식재료의 신선함을 그대로 담은 샐러드부터 고온의 가마에서 구워 기름기는 빼고 담백함을 더한 쇠고기와 삼겹살, 옛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오란다, 옛날 팥빙수 등 추억의 디저트류까지 계절의 순환뿐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한식의 다양성을 그대로 담았다. 이러한 메뉴의 다양성을 통해 계절밥상은 전 세대를 아울러 다양한 고객의 입맛을 만족시키고 특히 젊은 고객층에게 한식의 새로운 매력, 식재료의 생산지와 생산자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있다. 또한 매장 입구에는 농산물과 특산물을 직거래할 수 있는 ‘계절장터’가 마련되어 있다. 계절장터는 경쟁력 있는 농민 육성을 위해 설립된 한국벤처농업대학과 공조해 이 대학 출신 농민들이 땀과 정성으로 가꾼 농작물과 농축산 가공식품들을 직접 홍보하며 고객과 소통하는 장이기도 하다.
문의 www.seasonstable.co.kr
1. 우엉무침
시원한 배, 다디 단 무, 흙 내음 가득한 우엉을 고소한 깨드레싱에 무쳐 고소하면서 아삭한 맛이 일품이다. 배, 무, 우엉, 깨는 모두 가을이 제철로 접시 한 가득 계절이 담겨 있다.
2. 연근겉절이
연근 농장을 방문했을 때 농장주가 만들어준 음식 중 인상 깊게 남은 것으로 연근의 풍미와 아삭함이 그대로 살아 있고 입에 착착 감긴다.
3. 뿌리채소들깨탕
뿌리채소의 향이 듬뿍 밴 고소하고 녹진한 들깨탕. 탄수화물이 풍부한 뿌리채소와 단백질을 보충해주는 두부, 불포화지방산 리놀렌산이 풍부한 들깨 등 영양 밸런스가 잘 갖춰져 한 끼 식사로 충분하다.
4. 뿌리채소밥
표고버섯 우린 물로 밥을 짓고 각종 뿌리채소를 올려 지은 영양솥밥. 계절의 풍미가 가득 담겼다.
가을을 품은 뿌리채소로 계절의 미학을 전하는 권우중 셰프의 계절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