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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강과 함께 찾아 떠나는 한국의 맛과 멋

소반에 담긴 뜻

On October 03, 2013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 방으로 나르는 여인의 수고를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어깨너비보다 작은 크기로 만들어진 ‘소반’은 조상의 지혜와 멋이 담겨 있는 우리네 살림살이다.

데이비드 강 우리 전통의 소반을 보고 그 작은 크기에 놀랐습니다. 작게 만든 이유가 궁금합니다.

나성숙 교수 우리나라는 부엌에서 만든 음식을 방으로 운반해 식사하는 생활방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 부엌과 방의 거리도 멀고요. 음식을 나르는 쟁반과 상의 역할을 동시에 하는 것이 소반입니다. 이것을 운반하는 것이 여성인데 혼자 들기에도 어려움 없도록 어깨너비 이내의 작은 크기로 만들고 은행나무 등의 재질을 사용해 무게도 줄였지요. 또 조선 시대에는 유교 사상으로 남녀유별, 장유유서 의식이 강해 겸상보다는 독상을 일반적으로 사용하였기에 1인용 상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대갓집에서는 잔칫날 손님들에게도 일일이 독상을 대접했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양의 소반을 보유하고 있었지요. 우리의 식문화와 좌식 생활을 하는 주거 형태, 한옥의 구조와 유교 사상까지 소반 하나에 많은 의미가 응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데이비드 강 소반을 만드는 데 정해진 규격이 따로 있나요?

나성숙 교수 따로 정해진 규격은 없지만 일반적으로 상판의 너비는 어깨너비를 넘지 않고 소반 다리 사이에 두 다리를 넣을 수 있는 정도로 만들었습니다. 또 그 용도에 따라 더 큰 크기의 소반을 제작하기도 하였고요.

데이비드 강 계층에 따라 사용한 소반의 종류가 다른지요.

나성숙 교수 소반은 다른 가구와 달리 계층을 막론하고 널리 사용한 생활용품이었습니다. 식사용이 아니더라도 사랑방에서 책을 읽을 때, 차를 마실 때 사용하는 등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있었지요. 다만 궁중의 것은 상판에 빨간 주칠을 하고 다리의 곡선을 더 드라마틱하게 뽑아내는 등 화려한 모양을 냈습니다.

데이비드 강 소반은 전국에 걸쳐 두루 발달한 만큼 지역별 특색이 강하게 드러난다고 알고 있습니다.

나성숙 교수 그렇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통영반과 나주반, 해주반입니다. 통영반은 두꺼운 나무를 파내 상의 테두리인 전(변죽)과 상판이 하나로 되어 있는 것과 화려한 모양이 특징입니다. 다리는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내리고 그것을 연결·지지하는 중대가 윗중대, 아랫중대 상하 이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사이에 십장생이나 천도 등 문양을 화려하게 조각하고 나전칠기가 발달한 지역답게 수준 높은 칠 마감과 함께 자개를 수놓기도 하지요. 나주반은 전과 상판이 하나로 된 통영식 소반과는 달리 전을 따로 제작해 상판에 부착해서 상판의 휨을 방지했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 비해 큰 규모의 상을 제작하기 좋습니다. 다리는 직선으로 굳건하게 내려와 있고요. 해주반은 4개의 기둥이 아닌 2개의 판으로 내려오는 다리가 특징입니다. 그 판에는 뇌문, 연화문, 만문 등을 투조해 화려하게 장식하고요, 장방형으로 뻗은 네 귀는 능선으로 굴려 처리합니다.

데이비드 강 지역별 특징이 확실하네요, 그렇다면 모양에 따라서는 어떻게 구분하나요?

나성숙 교수 다리의 모양을 동물에 비유한 것이 재미있습니다. 다리가 호랑이 형태로 호쾌하게 구부러지면서 바깥을 향해 둥글린 것은 호족반, 상대적으로 가는 두께에 개다리 모양을 닮았다 해 붙은 개다리소반, 말의 다리 같다 하여 붙은 마족반 등이 그것입니다. 이 외에도 상판의 모양이나 쓰임 등에 따라 그 구분과 명칭이 굉장히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다리가 하나인 외족반이나 판 가운데가 뚫려 있어 전골틀을 올려놓을 수 있는 전골반 등 특이한 종류도 많습니다.

데이비드 강 오래도록 전해지는 소반을 보았는데 그 빛깔과 형태가 그대로 유지되어서 신기했습니다. 나무로 만들어진 소반이 오래도록 그 형태와 색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지요.

나성숙 교수 오래도록 변치 않는 소반의 비밀은 우리 전통 옻칠에 있습니다. 옻나무의 진액을 사용한 옻칠은 오천여 년간 지속되는 반영구적 불변성으로 나무를 보호하지요. 소반뿐 아니라 전통 식기나 함 등에도 옻칠을 사용하는 이유입니다. 오래도록 대물림해 사용하는 제기는 특히 옻칠기가 주를 이루고요. 방부 작용과 함께 항균 작용으로 음식의 부패를 막고 원적외선을 방출해 인체에도 이롭습니다. 옛 궁중과 사대부 집에서는 거의 모든 가구와 나무로 만든 생활용품에 옻칠을 활용하였습니다.

데이비드 강 교수님은 옻칠을 사용한 작품을 만드는 걸로 유명하신데, 옻칠의 재료가 되는 옻은 어떻게 구하시요?

나성숙 교수 옻나무에 홈을 파면 거기에서 액이 한 방울 두 방울 나옵니다. 그것을 일일이 긁어모아 담는데 하루 종일 긁어모아도 한 컵 분량이 채 안되지요. 옻이 살에 떨어지면 살이 타들어가기 때문에 각별히 조심해야 하며 채취에 고도의 기술을 요합니다. 현재 옻을 수집하는 기술자가 전국에 20여 명 남아 있습니다. 원주와 백두산의 옻이 특히 품질이 좋고요. 귀하게 얻은 것이니 만큼 가격도 1관에 240만원가량으로 굉장히 높습니다.

1 가느다란 개다리를 닮았다 해 이름 붙은 개다리소반.
2 검정 옻칠에 자개로 장식한 자개반.
3 꽃 모양의 상판이 아름다운 연화반.

데이비드 강 옻칠의 작업 과정도 힘든지요?

나성숙 교수 그 과정 또한 대단히 복잡하고 큰 노고가 따르는 것이 옻칠입니다. 일단 옻칠을 하기 위해서는 불 옆에 옻을 두고 50℃가량 되는 온도에서 7시간을 저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옻이 투명해져서 어디에든 투명한 코팅이 가능하게 됩니다. 그렇게 칠하는 것을 정제칠이라 하는데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투명해져 멋을 더합니다. 투명한 옻에 다양한 색의 안료를 넣어 색칠할 수도 있습니다. 산화철을 넣어 까만색을 만들기도 하고 주사가루를 넣어 빨간빛을 냅니다. 옻칠은 한 번의 과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일단 처음 나무에 ‘생칠’을 하고 나면 옻 속의 수분이 나무속의 섬유질과 만나 표면이 거칠어져 곱게 사포질을 해야 합니다. 여기에 또 옻칠을 하고 또 사포질을 하고… 그 과정을 12~20번에 걸쳐 반복해야 하지요. 나무가 뒤틀리는 것을 막기 위해 중간에 옻으로 풀을 끓여 삼베를 붙이는 과정도 들어갑니다. 그릇으로 사용할 때에는 나무의 구멍에 물방울이 새지 않도록 옻과 황토를 섞어 메우는 과정도 거쳐야 하지요. 마지막에는 광약을 솜에 발라 쉴 새 없이 문질러 광을 냅니다.

데이비드 강 그렇게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니 옻칠을 한 작품이 귀한 대접을 받았을 것 같습니다.

나성숙 교수 예나 지금이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세종대왕 때에는 흉년이 들면 옻칠을 금지시킬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그 불멸의 가치와 영롱하고도 강렬한 색상이 내는 매력은 쉽게 뿌리칠 수 없습니다. 최근에는 동백기름이나 들기름, 혹은 동남아 지역의 기름 ‘캐슈’를 칠한 것을 옻칠기라고 속여 팔기도 하는데 이런 것들은 장마철이 되면 기름 전내가 올라와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품질이 낮은 옻을 기계로 칠한 제품들도 있고요.

데이비드 강 교수님은 원래 서양미술을 전공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노고를 요하는 소반을 만들고 옻칠로 작품 활동을 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나성숙 교수 수십 년간 대학에서 서양의 것을 가르쳐왔지만 우리 전통문화의 매력과 가치를 깨닫게 되면서 소반, 옻칠 등 소중한 우리의 전통을 널리 알리는 것이 저의 사명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젊은 사람들에게 우리 전통을 알리기 위해 전통 공예를 체험하고 배울 수 있는 강좌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가 거주하면서 작업 활동을 하는 이곳 봉산재도 항상 문을 열어놓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옻칠기와 소반을 구경할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것을 보존하고 알리는 데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곧 미국으로 돌아가게 될 데이비드 강도 이 방법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실천하길 바랍니다.

재미교포 데이비드 강은…
컬럼비아 대학에서 경제수학과(Economics-Mathematics) 학위를 받은 뒤 미국 내 프랑스요리전문대학(FCI)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요리 공부를 시작했다. 부모님이 뉴욕과 뉴저지에서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어 한식문화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한국 음식·문화·사회에 관한 연구’를 주제로 한 프로젝트를 풀브라이트(Fulbright) 장학 재단에 신청하게 됐다. 지난 7월에 한국에 온 그는 한국에서 한식을 연구할 수 있는 장학금을 지원받아 한국의 전통 음식을 배우기도 하고 지방을 내려가 향토 음식을 직접 맛보는 등 한식에 관련된 모든 것을 경험 중이다.

국립서울산업대 나성숙 교수는…
서울대 미대에서 응용미술을 전공하고 하버드디자인대학원을 거쳐 슈퍼그래픽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시각디자이너이지만 한국의 전통 공예에 반한 뒤부터 소반과 옻칠 등을 익히며 그것을 널리 알리는 데 사력을 다하고 있다. 북촌에 우리 전통 공예를 몸소 체험하고 답사할 수 있는 공간 ‘봉산재’를 설립해 그곳에 거주하면서 소반과 옻칠 만들기 클래스를 진행하는 동시에 옻칠을 활용한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며 반향을 얻고 있다.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 방으로 나르는 여인의 수고를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어깨너비보다 작은 크기로 만들어진 ‘소반’은 조상의 지혜와 멋이 담겨 있는 우리네 살림살이다.

Credit Info

장소협찬
봉산재
포토그래퍼
정문기
에디터
강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