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이 우리네 음식 맛을 결정짓는 요소 중 으뜸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막상 장 담그는 일을 시도할 생각조차 못하는 이들이 많다. 질 좋은 메주만 구하면 생각보다 쉬운 장 담그기. 햇볕과 바람, 시간에 내맡긴 채 장 익기를 바라는 맛있는 시간은 비할 데 없는 소중한 체험이 된다. 사찰 음식 전문가인 대안스님과 함께 담그는 내 생에 첫 장.
“일 년 살림살이 중 가장 설렐 때가 정월에 담가놓은 된장독을 열어 고소한 햇된장을 맛 볼 때입니다. 황금빛으로 익은 된장이 짜지도 않고 어찌나 깊은 향을 내는지 자연의 섭리에 또 한번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장은 정월에 담가야 제맛’이라고들 하지만 정월을 놓쳤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3월까지도 맛있는 장을 담글 수 있습니다. 27년 전, 해인사로 출가해 첫 장을 담그던 때가 생각납니다. ‘큰 절집의 일 년 장맛을 망치면 어떡하나’ 어찌나 걱정이 되던지… 요즘 젊은이들은 장 담가본 일이 별로 없지요? 이번 봄에는 한번 담가 봅시다.”
대한불교 조계종에서 운영하는 사찰 음식 전문점 ‘발우공양’은 장이 맛있기로 유명하다. 구수하니 잡내 없고 뒷맛이 쓰지 않아 긴 여운을 남기는 그 맛에, 따로 구입할 수 없냐는 문의가 쇄도한다. ‘발우공양’의 음식을 책임지고 있는 대안스님이 기거하는 금수암에서 매년 정월 만드는 ‘정월장’이 바로 그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장을 담그고 싶어 하는데 여건상 시도조차 못 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대안스님은 사찰 음식 클래스에서 젊은이들을 위해 ‘싱글을 위한 장 담그기’를 강의했고 그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혼자 사는 이들을 위해 적은 양으로 미니 메주를 만들어서 집 안방에서 뜸 들이는 방법도 고안했다. 메주 만들 시기는 놓쳤지만 질 좋은 메주만 구한다면 생각보다 쉽게 맛있는 장을 담글 수 있다는 대안스님은 불교원에서 국산 콩만으로 깨끗하게 띄워 판매하는 메주를 사다 장을 담근다.
사천 금수암 대안스님 장 담그는 날
재료 메주 1말, 물 18L, 소금 5kg, 숯·고추 적당량씩
장 담그는 날 (양력)
2월 21일, 28일
3월 1일, 2일, 5일, 10일, 13일, 17일, 25일, 29일, 30일
대안스님이 만든 ‘싱글을 위한 미니 메주’ 손바닥이 넓어 보일 정도로 앙증맞은 사이즈다.
1 좋은 메주에는 황국균이 꽉 들어차 있다. 그만큼 발효가 잘 이뤄졌다는 것으로 누런곰팡이 대신 검정이나 초록 곰팡이가 잔뜩 피었다면 잘못 발효되어 부패된 메주다. 잘 띄운 메주는 고약한 냄새도 풍기지 않는다.
2 메주의 겉면에 붙어 있는 먼지를 제거하기 위해 찬물에 살짝 씻는다. 물에 너무 박박 씻으면 메주에 붙어 있는 미생물들까지 씻겨나가 된장이 제대로 익지 않으니 주의한다. 메주를 물에 하룻밤 불리는 것은 안 좋은 곰팡이인 검은곰팡이로 뒤덮인 경우에만 그렇다. 좋은 메주라도 초록이나 검정 곰팡이가 조금씩은 필 수 있기 때문에 잘 살펴보고 수세미 등으로 문질러 씻어 제거한다.
3 깨끗이 씻은 메주는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는다. 메주로 항아리를 3/5 정도 채우면 적당하다.
4 물에 소금을 살살 풀어 장에 넣을 소금물을 만든다. 물과 소금의 비율은 10:3이 적당하다. 이왕이면 장 담그기 하룻밤 전에 풀어놓아 불순물을 가라앉혀 웃물만 사용하는 것이 좋다. 소금은 3년간 간수를 뺀 임자도의 천일염을 사용하여 뒷맛이 쓰지 않고 개운하다.
5 메주가 담긴 항아리의 9부까지 소금물을 붓는다. 보통 메주 50:소금물 50의 비율로 장을 담그는데 금수암에서는 메주 60:소금물 40의 비율로 장을 담가 짠맛을 줄인다. 금수암이 자리 잡은 지리산은 일교차가 크고 햇볕과 바람이 잘 들어 염도를 줄여도 오랜 기간 보관하는 데 문제가 없다. 일반 아파트라면 50:50의 비율로 담그는 것이 안전하다. 짜지 않게 담근다고 메주의 비율을 너무 높게 잡아도 간장이 탁하고 맛이 없다.
6·7 뜨겁게 달군 숯을 바로 넣어 살균 효과를 낸다. 말린 고추도 두어 개 넣어 살균 효과를 더한다.
담근 지 1년 된 햇된장. 콩의 씨눈이 살아 있을 정도로 신선한 상태지만 제대로 숙성되었다.
8 이제 뚜껑을 닫고 햇볕 바르고 바람 잘 통하는 양지에 독을 앉혀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40일부터 간장과 된장을 분리할 수 있는데 간장 맛을 좋게 하려면 50~60일이 지나 분리하는 것이 좋다. 맑은 간장을 따라낸 된장을 만들 때에는 막장가루를 섞어 간장으로 농도를 맞추며 으깨어 다시 항아리에 담고 햇볕 바른 곳에서 숙성시킨다. 된장은 담근 뒤 일 년 지났을 때가 가장 맛있다.
대안스님은…
지리산 산청 금수암 주지이자 사찰 음식 전문가로 대한불교 조계종이 운영하는 사찰 음식 전문점 ‘발우공양’의 대표를 맡아 사찰 음식의 발전과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꾸준히 사찰 음식을 연구, 개발하며 다양한 매체와 쿠킹 클래스를 통해 대중과 소통한다. 저서로는 <열두 달 절집 밥상>, <사찰음식 다이어트>, <식탁 위의 명상>, <대안스님의 마음 설레는 레시피> 등이 있다.
장맛이 우리네 음식 맛을 결정짓는 요소 중 으뜸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막상 장 담그는 일을 시도할 생각조차 못하는 이들이 많다. 질 좋은 메주만 구하면 생각보다 쉬운 장 담그기. 햇볕과 바람, 시간에 내맡긴 채 장 익기를 바라는 맛있는 시간은 비할 데 없는 소중한 체험이 된다. 사찰 음식 전문가인 대안스님과 함께 담그는 내 생에 첫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