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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구 셰프의 '그람모 키친'

유리병 속에 자연을 모으다...

On October 01, 2013

토마토잼, 양파잼, 사과처트니, 바질페스토, 흑돼지리예트까지 자연의 재료를 응축한 이색 잼과 스프레드가 담긴 색색의 유리병이 벽면을 가득 채운 곳. ‘그람모 키친’의 최병구 셰프는 제철에 나는 재료를 응축하고 숙성시켜 유리병 속에 보존하는 방법으로 계절의 맛을 선보인다. 그가 꿈꾸는 행복한 맛의 세계로.

사계절의 드라마를 담다

이탈리아 요리에 몸담은 지 16년, 최병구 셰프가 무엇보다 귀하게 여기는 것은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란 식재료다. 한정식집을 운영하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채소와 과일의 향을 맡고 질감을 느끼며 식재료에 대한 감각을 키웠다.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했지만, 언젠가 그러리라고 예상했던 것처럼 요리로 진로를 바꾼 뒤에도 언제나 그의 관심은 ‘우리 식재료와 이탈리아 음식’ 사이에 있었다. 그는 현재 현대 예술 갤러리로 유명한 ‘갤러리 시몬’의 프라이빗 레스토랑 총괄 셰프를 맡고 있기도 하다. 고객의 취향과 계절에 따라 매번 새로운 메뉴를 만드는 일이 그와 잘 어울리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우리나라의 사계절이 만들어내는 드라마를 어떻게 완성할지 고민했고 그는 각종 잼과 스프레드와 소스를 유리병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향긋하고 달콤한 꼬다마잼과 태양을 닮은 토마토잼

그람모 키친은 그의 작업실이자 테이스팅 룸이고 잼과 빵을 파는 베이커리이기도 하다. 다양한 스프레드와 천연 발효빵을 판매하며 창의적인 이탈리아 코스 요리도 선보이고 있다. 이곳에서 스프레드를 활용한 일품요리도 맛볼 수 있다. 그의 잼은 그람모 키친에서뿐 아니라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도시 농부 장터 ‘마르쉐@’에서도 판매하고 있다. 진한 유기농 토마토의 풍미와 달콤한 맛이 어우러진 토마토잼, 캐러멜라이징된 양파 특유의 알싸한 달콤함이 어떤 요리에 곁들여도 어울리는 양파잼 등이 인기가 높다. 생유에 생크림과 바닐라빈을 넣어 농축한 진한 우유의 맛이 일품인 밀크잼은 빵에 발라 먹어도 좋지만 아이스크림에 뿌려 먹으면 행복한 기분을 준다.
철마다 새로운 잼을 선보이는데 지난가을에는 강원도의 감자를 사용한 감자잼을, 올 초봄에는 귤보다 당도가 높고 맛이 진해 제주도 내에서 인기 높은 꼬다마(알이 매우 작은 귤)를 사용한 잼을 선보였다. 가능한 한 모든 재료를 국산 유기농 식품에서 사용하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잼을 만들 때에는 시판 펙틴 대신 과일을 직접 발효시켜 만든 펙틴을 넣고, 빵을 구울 때에도 직접 만든 천연 발효종을 사용한다. 밀가루는 경남 칠곡의 100여 년 된 금곡정미소에서 생산하는 ‘앉은뱅이우리밀’을 사용하고 케피르(kefir)로 만든 요구르트를 반죽에 활용한다. 손이 많이 가는 이 모든 작업이 고되기보다 즐겁기만 하다. 계절에 따라 맛이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자연 재료들이 자신의 손을 거쳐 맛있는 소스와 잼, 요리로 변하는 모든 과정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다.

1 생유 4L가 작은 병 속에 농축돼 신선하고 진한 풍미를 내는 그람모 키친의 시그너처 밀크잼. 달콤한 바닐라 향이 기분 좋다.
2 천연 발효종을 사용해 만드는 그람모 키친의 빵. 앉은뱅이우리밀을 사용한 우리밀빵과 호밀을 넣은 캉파뉴 등이 인기 메뉴.
3 직거래 장터나 SNS 등 다양한 경로로 농작물을 직거래하는 최병구 셰프. 장터에서 직접 재료를 구입하고 맛보는 일이 무엇보다 즐겁다.
4 꼬다마잼과 토마토잼, 양파잼 등 자연을 한가득 담은 그람모 키친의 홈메이드 잼과 스프레드.

이야기가 있는 부엌

연남동의 한적한 동네 골목에 가게를 오픈했을 때에 그는 ‘이야기가 있는 동네 사랑방’을 만들고 싶었다. 처음에는 무슨 가게인지 의아해하던 나이 지긋한 동네 주민들도 이제 흥미를 가지고 그의 가게에 들러 말을 건넨다. 게스트하우스가 즐비한 동네인 만큼 외국인도 많은데 그들의 반응이 특히 좋다. 젊은이가 주를 이루는 연남동 일대의 소규모 회사에서는 회식으로 코스 요리를 예약하기도 한다. 르 코르동 블뢰에서 함께 공부한 파티셰 강미선 씨는 요리와 어울리는 다양한 디저트를 만든다. 특별히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면 미리 전화해서 주문할 수 있다. 쿠킹 클래스도 진행 중이다. 잼을 사러 들러도 좋고 빵을 사러 들러도 좋다. 밥을 먹으며 잠깐 쉬거나 혹은 한적한 봄날 산책하다 잠깐 들러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다. 벽에 진열된 색색의 유리병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속에 자연을 담은 듯 기분 좋아지는 곳, 그람모 키친에서는 누구나 행복한 맛을 꿈꾼다.

1 허브와 크랜베리, 발사믹식초로 맛을 낸 의성양파잼과 구수한 호밀캉파뉴, 호밀빵과 라거 맥주로 쌉싸름하고 구수한 향을 낸 독일식 맥주수프의 절묘한 조화
2 리치하고 걸쭉한 맛의 리예트에 병아리콩과 홈메이드 슈크루트를 곁들여 빵에 발라 먹으면 한 끼 식사로 손색없다.
3 유기농 사과를 졸여 만든 새콤달콤 사과처트니와 달콤한 파인애플에 크랜베리와 허브 등을 넣어 만든 이국적인 맛의 파인애플처트니. 팬케이크나 토스트에 곁들이면 브런치 메뉴로도 좋고 요구르트와 함께해도 좋다.

Grammo Kitchen's Jam & Spread

1. 의성양파잼을 바른 호밀캉파뉴 플레이트와 호밀 향 맥주수프
2. 제주도야지리예트를 바른 우리밀빵 플레이트
3. 사과처트니와 파인애플처트니를 곁들인 팬케이크, 스크램블드에그
4. 허브 브랜디에 마리네이드 중인 제주도야지리예트

토마토잼, 양파잼, 사과처트니, 바질페스토, 흑돼지리예트까지 자연의 재료를 응축한 이색 잼과 스프레드가 담긴 색색의 유리병이 벽면을 가득 채운 곳. ‘그람모 키친’의 최병구 셰프는 제철에 나는 재료를 응축하고 숙성시켜 유리병 속에 보존하는 방법으로 계절의 맛을 선보인다. 그가 꿈꾸는 행복한 맛의 세계로.

Credit Info

촬영협조
그람모 키친(blog.naver.com/playfood)
포토그래퍼
정문기,김나윤
에디터
강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