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에는 “햇빛 날 때 우산 쥐어주고, 비 올 때 우산 뺏는다”는 말이 있다. 은행은 경기가 좋을 때나 신용도가 높은 고객에게는 저금리의 대출을 권하지만, 경기가 안 좋거나 신용도가 낮은 고객에게는 줬던 대출도 뺏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물론 은행들도 할 말은 있다. “정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난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결정과 함께 조기 대선이 확정됐다. 새로운 정부가 6월 4일 들어서는 것이 확정되면서 은행들도 하나같이 ‘미래 권력’의 눈치 보기에 나섰다. 국민의힘이 부르면 달려가고, 더불어민주당이 부르면 달려가는 판국이 된 것이다.
정치’에 치여 눈치 보는 은행장들
“우리 좀 그만 불러” 은행들 하소연
은행장들을 향한 정치권 호출이 잦다. 지난 4월 9일 국민의힘 의원들은 5대 은행장들을 소환했다. “소상공인 지원 방안에 대해 논의하자”는 것이 만나자는 요청의 배경이었지만, 이를 ‘요청’으로만 받아들일 곳은 없었다. 조용병 은행연합회 회장과 5대 은행장(이환주 KB국민, 정상혁 신한, 이호성 하나, 정진완 우리, 강태영 NH농협), 백종일 전북은행장, 이은미 토스뱅크 대표이사 등이 참석해 간담회를 가졌다. 은행장들은 맞춤형 소상공인 지원 방안에 대해 설명하며 “관세 피해 수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적극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기업 대출에 대한 위험가중치를 낮춰달라”고 제안했다. 앞선 1월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당시 대표)가 6대 은행장들을 소집했다. 탄핵 국면이었지만, 야당 대표의 소환 자체는 이례적이었다. 그리고 은행장들은 당연히 모두 간담회에 참석했다.
정치권의 잇따른 은행장 소환은 “이자 장사에 몰두한다”는 비판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기에 맞물려 취임한 지 이제 100여 일이 갓지난 은행장들이 다수인 지금, 모든 은행장이 눈치를 보면서 벌벌 떨고 있는 상황. 실제로 간담회 때마다 상생금융 확대를 논의하는 자리가 이어지자 은행들은 상생 지원액 규모를 놓고 서로 눈치작전까지 벌이는 판국이다.
언론에 밝히는 상생 지원액 규모를 보면 알 수 있다. 하나금융이 먼저 6조원 상당의 중소·소상공인 지원 패키지를 내놓자 뒤이어 KB금융은 8조원을 제시했고, 신한금융은 같은 날 오후 10조 5,00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하루 뒤 우리금융은 10조 2,000억원의 지원책을 내놓으며 눈치 싸움을 벌이고 있다.
땅 짚고 헤엄치는 은행들?
하지만 그런 금융권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시선은 많지 않다. 되레 ‘은행업=땅 짚고 헤엄치기’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이는 부동산 대출 비중이 높고, 금융 당국 기조하에 움직이는 우리나라 금융 구조 때문이기도 하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의 올해 1분기 예상 당기순이익은 총 4조 8,85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8% 증가할 것으로 나타났다.
KB금융지주가 1조 5,800억원으로 가장 높고, 신한금융지주 1조 4,700억원, 하나금융지주 1조 6,00억원, 우리금융지주 7,700억원가량으로 예상된다. 호실적이 계속되는 것은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정책에도, 정부가 부동산 가격 매수세를 막기 위해 대출금리를 높게 유지하도록 가계 대출 관리 방침을 정한 덕분에 이자 이익이 증가했던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