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것의 하정우
배우 하정우가 영화 <브로큰>을 통해 영화 <추격자> <황해> 속 날것 그대로의 거친 매력으로 돌아왔다. <브로큰>은 시체로 돌아온 동생과 사라진 그의 아내, 사건을 예견한 베스트셀러 소설까지, 모든 것이 얽혀버린 그날 밤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끝까지 달려가는 ‘민태(하정우 분)’의 분노의 추적을 그린 이야기다.
<브로큰>은 하정우의 거침없는 매력이 고스란히 담긴 영화다. 차갑게, 냉정하게, 건조하게, 꾹 눌러 담은 복수심이 끝내 폭발할 때까지 추적하는 그의 분노 연기는 과거 <추격자> <황해>에서 보여준 하정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하정우는 <브로큰> 개봉과 함께, 올해 자신의 세 번째 연출작인 영화 <로비>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현재는 자신이 연출 겸 주연을 맡은 영화 <윗집 사람들> 촬영으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이 작품 역시 올해 개봉될 예정이다. 문화예술계에서 다양한 역할을 소화 중인 하정우를 직접 만났다.
현재 개봉 중인 <브로큰>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최근에 받았던 시나리오 중 가장 하드보일드한 느낌이 들었다. ‘민태’ 외에도 이야기에 발을 담그고 있는 주변 캐릭터들에게서 활어 같은 날것의 파닥거림이 느껴졌다. 이들이 서로 부딪치면서 각자 살아나가는 방식 그 자체가 가장 큰 매력이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장르의 영화로 시작했기 때문에 이런 스타일의 영화를 하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다. 안 할 이유가 없었다.
맞다. 초기 작품인 <추격자> <황해> 느낌이 물씬 났다.
초심을 늘 가지고 가긴 하는데(웃음), 이런 캐릭터와 이런 영화는 정말 오랜만이다. 사실 시나리오 받기 전에 제작사 대표를 만나 우연히 얘기를 먼저 들었는데, 흥미로웠다. 보통 텐트폴 무비(대작)나 상업적인 영화는 스토리가 선행되고 이후 캐릭터가 정해지는데, 이 작품은 그 반대였다. 배우로서 자유롭게 연기할 만한 캐릭터였다.
배우 하정우의 초창기 모습을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영화의 흥행을 떠나 반가운 작품이었다.
나 역시 신(scene)을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었다. 재단하고 꾸미고 어루만져 끌고 가는 게 아니라 투박하게 툭툭 만들어 끌고 가는 느낌이었다. 세트가 하나도 없었다. 상가, 시장, 아파트 등 장소를 다 섭외해 진행했다. 이런 곳을 어떻게 헌팅했을까 싶은 공간이었다. 영화적인 공간이라 캐릭터에 집중할 수 있었다. ‘많은 분이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새삼스럽게 느꼈다. 웃긴 건 내가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지 반년 정도 됐는데, 게시물을 올리면 세련된 모습보다도 후줄근한 아저씨 일상의 모습을 좋아하시더라.
민태 캐릭터를 소개해달라.
민태는 굉장히 거침없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 두려울 것도 없다. 이런 인물이 동생의 죽음 후 선택과 행동을 해나가는데 그의 분노가 공감 가면서도 거침이 없다.
연기를 하면서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감정을 섞지 않는 캐릭터다. 어차피 한 주먹이면 나가떨어질 상대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필요할 때는 바로 응징하고 행동에 옮기는 사람이다. 그 와중에 감정이 보이지 않으니 섬뜩하고 잔혹하고 폭력적이다. 정제되지 않은 민낯 그대로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오랜만에 신인 감독과 호흡을 맞춘 소감도 궁금하다.
이 스토리는 본인이 목격한 경험이라고 한다. 실제로 통영 출신이다. 영화는 해남으로 설정을 바꿨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설득이 됐다. 그리고 그쪽 출신들이 거친 매력이 있다. 작품을 할 때는 그와 반대되는 부조화의 느낌이 있었는데, 그게 참 매력적이었다. 그러면서 유연한 부분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의 최종본을 보고 오묘한 느낌을 받았다. 어떤 신을 보면 진지한데 코믹하기도 한, 그 경계를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감독님이 가진 부조화의 느낌들이 많이 투영이 된 듯싶었다.
이 작품은 흥행 재질이 아니다. 게다가 요즘은 한국 영화의 위기다. 덧붙여 하정우라는 배우에 대한 기대감이 준 것도 사실이다. 영화를 들고 나온 입장에서 부담은 없나?
글쎄,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생각은 늘 변하고, 또 그 와중에도 깨달음이 있다. 좋지 않은 성적을 받더라도 홍보를 부지런히 하면 조금씩은 나아지는 부분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예상치 못했던 작품이 흥행에 성공한 경험이 있고, 그 반대도 있다. 연달아 말도 안 되게 잘된 작품도 있다. 다 때가 있고, 어쩌면 시기의 문제인 것 같다. 특별히 묘책은 없다. 그저 최선을 다해 영화를 만들고 있는 입장이다.
촬영 중인 연출작들이 그런 것들에 대한 돌파구는 아닌가?
블라인드 시사회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던 작품들이 연이어 안되는 경우도 있었다. 영화는 참 모를 일이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면 다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남성미 가득한 영화에 줄곧 출연 중이다. 달달한 로맨스를 하고 싶지 않나?
요즘 그런 시나리오가 있나? 이제 아저씨라 치정 라인을 해야 하나.(웃음)
과거 하정우 배우와 인터뷰할 때면 너무 재미있었던 기억이 난다. 나이를 들어서인지 웃음이 조금 줄어드는 것 같기도 한데, 사석에서는 여전한지도 궁금하다.
나는 누울 자리를 보고 발 뻗는다. 혼자 탈춤 출 수는 없지 않나.(웃음) 이 영화 자체가 가볍게 뭔가를 얘기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최근 홍보차 여러 유튜브에 출연했다. 특히 <빠더너스-딱대>에서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대본이 있긴 했는데 전날 받아서 달달 외울 수는 없었고, 중요 포인트 대사만 외워 편하게 대답했다. 생각보다 연기를 해야 하는 콩트라 뻘쭘하더라. 프리하게 연기를 하고 주고받고 하긴 했다. 당시에는 조금 뻘쭘했는데 나중에 반응이 나쁘지 않더라.
올해 목표한 것도 궁금하다.
우연찮게 연출작 두 편이 개봉하게 됐다. 이례적인 일이다. 요즘 여러 매체를 보며 느끼는 건, 각자의 알고리즘이 명확하다는 것이다. 네이버 메인 창처럼 공통으로 볼 수 있는 알고리즘이 사라졌다. 그래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어쨌든 <로비>와 <윗집 사람들>의 홍보가 되고 잘 알려져 연출자 하정우라는 사람이 이런 색깔을 가지고 있구나 하고 자리매김하는 해가 됐으면 한다. <브로큰>도 이 영화의 장점을 보고 좋아해주셨으면 좋겠다. 그게 올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