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11일 장중 8만 9,000원대를 노크했던 삼성전자 주가는 꾸준히 하락했다. 지난해 5만원이 잠시 무너지기도 했을 정도. 잠시 반등했지만 12·3 비상계엄 여파로 다시 하락하면서 올해 1월 17일 5만 3,700원에 거래를 마치며 6개월 만에 40% 하락했다. 같은 반도체 기업이지만 SK하이닉스의 주가 곡선은 사뭇 다르다. 지난해 7월 11일 24만 8,500원까지 거래됐던 SK하이닉스 주가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지난해 9월 14만원대까지 떨어졌지만 빠르게 회복해 올해 1월 17일 21만 4,500원에 거래를 마쳤다. 6개월 사이 14% 하락한 셈인데, 삼성전자 대비 선방했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줄어든 이재용 주식 가치
이는 자연스레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자산 감소로 이어졌다. 올해 1월 초 기준, 국내 대기업 총수 중 주식 재산 1위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었지만, 그 규모는 지난해 대비 크게 줄었다. 15조원 수준이었던 주식 가치가 3조원가량 줄어 11조 9,100억원 수준으로 평가됐다. 반도체 등 삼성전자의 수익이 부진한 탓이다.
증권가에서는 SK하이닉스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를 8조원으로 내다보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 DS(반도체) 부문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3조원 수준일 것으로 전망한다.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보다 2배나 많은 규모의 인력을 꾸리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삼성전자의 ‘완패’인 셈이다. 이는 AI 관련 반도체 기술에서 삼성전자가 뒤처진 탓이다. SK하이닉스의 호실적과 삼성전자 DS 부문의 부진 배경에는 모두 고수익 제품인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반도체 기술이 있다. SK하이닉스는 AI를 주도하고 있는 엔비디아가 원하는 제품 개발에 성공하며 실적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는 강점이었던 범용(레거시) 메모리 시장에선 중국의 저가 공세로 수익성이 감소했고, 아직 엔비디아 품질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자연스레 고대역폭메모리 시장에서 뒤처져 부진한 실적표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향후 시장 주도 가능성도 SK하이닉스 우세를 점치는 분위기다. SK하이닉스는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5’에서 5세대 HBM(HBM3E) 16단 제품을 처음 선보였다. 6세대 HBM4 제품도 올해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개발 중이다.
‘자국 중심’ 내세운 트럼프 2기 행정부도 부담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도 삼성전자 앞에 ‘불확실성’을 보탰다는 우려가 나온다. 바이든 행정부가 일궈놨던 ‘반도체 및 과학법(칩스법)’ 폐지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황. 바이든 행정부가 보조금을 내세워 미국 내 반도체 공장 설립을 유도했다면,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지원금 없이도 미국 내에 반도체 공장을 짓도록 관세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세금을 들이지 않고도 동일한 결과물을 이끌어내겠다는 것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생각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중국 견제’를 위해 내걸었던 60% 관세를 실제로 적용할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중국 현지에서 생산하는 메모리가 관세 폭탄의 영향을 받게 된다. 두 회사 모두 중국에서 생산한 메모리 반도체 등을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초격차를 내세워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삼성전자를 키워낸 이건희 선대회장의 리더십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평이 나오는 대목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혁신을 하기보다는 관리형 임원들을 내세워 ‘회계적으로 무리하지 않는 경영’을 한 것이 결국 지금의 삼성전자 위기론이 된 것 아니겠냐”며 “냉장고, 세탁기 등 기존 가전제품의 수익성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결국 미래 산업에 반영될 반도체 등 새로운 기술을 주도하지 않으면 삼성전자의 위기론은 실체가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SK하이닉스에 뒤처진 삼성… 주가가 말해주는 위기론
AI, 로봇으로 위기 타개할 수 있을까?
삼성전자의 최대 강점은 ‘안정적인 재무구조’다. 2024년 기준, 현금성 자산이 136조원에 달한다. 삼성전자는 M&A를 통해 미래산업군에 뒤처지지 않겠다는 계획이다. 우선 AI와 로봇 기술을 활용한 휴머노이드 시장을 점찍었다. 최근 주식시장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국내 로봇 전문 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가 대표적이다. 삼성전자는 레인보우로보틱스에 대해 보유 중인 콜옵션(주식매도청구권)을 행사하며 최대 주주로 등극했다.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역량을 보유한 레인보우로보틱스의 로봇 기술을 활용해 지능형 첨단 휴머노이드 개발에 속도를 내겠다는 계획이다. 자연스레 주가는 급등했다. 지난해 하반기 11만~13만원에 거래가 이뤄졌던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삼성전자의 최대 주주 등극 소식과 함께 주가가 급등하며 올해 1월 17일 26만 1,5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올해 상반기에는 AI 로봇 집사 ‘볼리’도 출시할 계획이다. 볼리는 노란색 공을 닮은 로봇으로, 다양한 사물인터넷(IoT) 기기를 제어하고 아이와 반려동물 등을 살피는 역할이 가능하다. 자율주행이 가능하고,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빔프로젝트를 켜서 사용자에게 제공한다. 빔프로젝트로 쏘는 영상을 사용자가 밟는 방식으로 지시도 가능하다. 또 냉장고 문이 열려 있으면 스스로 인지하고 이를 닫을 수 있다. 삼성전자가 2024년 공개한 영상에서 볼리는 집에 혼자 있는 반려동물의 기행을 목격하고 이를 메신저로 사용자에게 알린다. 또 사용자가 “개에게 밥을 주고 좋아하는 영상을 틀어줘”라고 지시하면 이를 수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2025년 신년사에서 “AI 기술의 변곡점을 맞아 기존 성공방식을 초월한 과감한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라며 “고도화된 인텔리전스로 올해 확실한 디바이스 AI 선도 기업으로 자리매김하자”고 강조했다. 한종희 부회장은 지난 1월 7일(현지 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5’ 기자간담회를 통해 로봇 산업을 삼성전자의 ‘미래’로 내세우기도 했다. 한 부회장은 “로봇 관련 기술은 저도 깜짝 놀랄 정도로 빨리 발전하고 있다”며 “삼성전자가 로봇 분야에서 그렇게 빠르다고 볼 수는 없지만 로봇은 미래 성장을 위한 중요한 포인트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AI와 로봇을 비롯해 메디테크(메디컬 테크놀로지) 분야 등에서도 M&A(인수합병)를 통해 주도하겠다는 계획이다. 한 전자업계 관계자는 “미국 주요 기업들에 비해 삼성, LG 등 국내 대기업들의 AI 개발이 뒤처진 것은 맞지만, 가전 영역에서 이를 반영해 활용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라며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경쟁 기업들보다 뒤처진 기술력을 1~2년 안에 만회할 수 있을지, AI를 실생활에 반영한 가전제품이 얼마나 혁신적일지가 올해 삼성전자의 주가를 좌우하지 않겠냐”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