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내 미생물은 자가면역질환, 치매, 파킨슨병, 당뇨병,
비만, 알레르기질환 등 다양한 질환과 연관돼 있다.
신성재 아주대학교병원 소화기내과 교수에 게 ‘장은 ( )이다’라는 문장의 괄호 안을 채워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편안함의 시작’이라고 말하고,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장이 불편하면 우리의 몸과 마음도 불편해지죠. 길거리를 가다가 아랫배가 아파서 식은땀이 났던 적이 있을 거예요. 염증성 장질환을 가진 사람은 긴박변으로 인해 하루에도 10여 차례나 화장실을 들락거리는데, 이 순간에는 누가 큰돈을 준다고 해도 화장실 가는 것이 더 급할 거예요.”
설사나 변비는 누구나 경험하지만 만성일 경우 매우 괴롭다. 약을 복용하거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도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과민대장증후군은 설사와 변비가 3개월 이상 지속돼야 진단받는다. 과민대장증후군으로 병원 치료를 받는 사람은 매년 140여만 명에 이른다. 대장에 염증이나 궤양이 생기는 궤양성 대장염이나 입부터 항문까지 모든 소화관에 염증이나 궤양이 발생하는 크론병에 걸리면 심할 경우 생명까지 잃을 수 있다. 궤양성 대장염이나 크론병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은 연 9만여 명에 이르고, 10년 전에 비해 2배로 급증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비단 질병이 아니라도 장 건강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장내 미생물이 우리의 면역력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어서다. 신성재 교수는 “우리 몸의 면역세포 중 70% 이상이 분포돼 있는 대장과 소장은 면역력 컨트롤 타워다”라고 강조했다. 대장과 소장에는 약 100조 마리의 장내세균이 살고 있다고 알려졌다. 장내 미생물은 유익균과 유해균, 그리고 양쪽에 속하지 않는 중립균이 있는데, 유익균에게 유리한 장내 환경을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신 교수는 “장내 미생물은 자가면역질환, 치매, 파킨슨병, 당뇨병, 비만, 알레르기질환 등 다양한 질환과 연관돼 있다는 여러 논문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궤양성 대장염과 크론병 등 중증 장 질환 환자를 많이 진료한다. 그는 KBS2 시사·교양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EBS1 시사·교양 <명의> 등 방송에도 자주 출연해 장 질환 치료와 장 건강 증진 방법을 제시해왔다.
장은 면역력 컨트롤 타워다
면역세포 70% 이상이 대장과 소장에 분포
여러 논문과 방송 등에서 장 건강의 중요성 이 강조되는 이유는 뭘까요?
장은 음식물 등과 함께 몸속으로 들어오는 오염 물질과 세균을 막는 ‘1차 방어선’이라서 장 건강을 지키는 것이 우리 몸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장은 소화, 배설 외에 면역 기능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관으로 조명되고 있어요. 우리 몸의 면역세포 중 70% 이상이 분포된 대장과 소장은 면역력을 관장하는 컨트롤 타워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장 면역력과 관련해 주목받는 마이크로바이옴은 무엇인가요?
우리 몸에는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라고 불리는 수많은 미생물이 공존하는데, 대부분은 대장과 소장에 있어요. 마이크로바이옴은 미생물(microbe)과 생태계(biome)를 합친 말로, 사람의 몸속에 존재하는 미생물과 그 유전자 집단을 의미합니다. 미생물에는 유해균과 유익균이 있는데, 유해균이 많아지면 다양한 질환의 원인이 되므로 유익균이 많아지도록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이크로바이옴을 내세운 건강 제품들이 만병통치약처럼 홍보되고 있는데 이는 믿을만한가요?
유행적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위 건강과 관련해 헬리코박터균이 한참 동안 관심을 끌었지만 요즘은 줄어든 경향이 있거든요. 마이크로바이옴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초보 단계이기 때문에 실제 병원에서 환자 치료에 사용하기까지는 조심스러운 면도 있어요.
마이크로바이옴과 함께 주목받는 유산균 섭취는 실제로 장 건강에 큰 도움이 될까요?
유산균 제제를 먹으면 위산에 의해 많은 수가 죽고 소장이나 대장까지 가는 경우는 30%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해요. 그래서 캡슐 안에 유산균을 넣는 등 유산균이 죽지 않고 장에 도달하게 하는 기술이 꾸준히 개발되고 있어요. 유산균을 섭취하는 사람 대부분이 너무 단기간에 효과를 원하는데, 석 달은 먹어야 합니다. 모내기를 하면 뿌리가 안착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미생물도 안착하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또한 유산균을 먹으면 설사를 하는 등 안 맞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유산균 제제를 너무 맹신하지 말라고 환자들에게 당부합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장 질환
궤양성 대장염, 크론병은 전문가 치료 받아야
설사는 누구나 경험하는 흔한 증상인데, 병원에 가야 할 설사 증상이 따로 있나요?
무른 변이나 하루 1~2회의 설사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그러나 물설사가 계속된다면 감염이나 식중독에 의한 것일 수 있기 때문에 병원에 가야 합니다. 또한 설사가 오래 지속되면서 체중이 줄고 혈변, 복통, 발열이 있으면 궤양성 대장염이나 크론병 같은 염증성 장 질환일 수 있으므로 병원을 방문해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해요. 이런 질환은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습니다.
궤양성 대장염은 왜 생기며 어떻게 치료하나요?
궤양성 대장염은 대장 벽에 염증이나 궤양이 발생하는 만성 재발성 질환입니다.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유전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불규칙하고 자극적인 식습관, 카페인 섭취, 스트레스 등과도 관련된다고 알려져 있어요. 항염증제, 스테로이드제, 면역억제제, 생물학적 제제를 사용해 치료합니다.
같은 염증성 장 질환인 크론병은 궤양성 대장염과 어떻게 다른가요?
궤양성 대장염은 대장에서만 발생하지만, 크론병은 입에서 항문까지 소화관 전체에 걸쳐 발생할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염증이 장벽은 물론이고 장의 모든 층을 침범할 수 있어요. 염증 부위에 고름이 생겨 샛길인 ‘누공’을 만들기도 해요. 원인은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지만 궤양성 대장염과 비슷하리라 추정됩니다. 치료 약제도 궤양성 대장염과 비슷한데, 장에 구멍이 생기거나(천공) 좁아지면(협착)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어요.
염증과는 관련 없는 과민대장증후군도 치료가 까다롭지요?
과민대장증후군은 위장관 운동 이상, 내장과민성, 장내세균 불균형 등 다양한 원인이 작용해 발병한다고 추정되고 있어요. 치료로는 스트레스를 줄이고 원인으로 추정되는 음식물을 피하게 하며 변비, 설사, 복통 치료 약물이나 정신과 약물을 처방하지만 치료가 쉽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