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은 먹는 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먹고살다’, ‘먹여 살리다’ 등 먹는 것과 관련된 말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나트륨과 당류를 과다 섭취할 뿐만 아니라 우리 주위에는 보존 기간을 늘리기 위해 화학물질이 첨가된 음식, 높은 열량에 비해 낮은 영양가의 음식들이 넘쳐난다. 건강한 삶을 위해 꼭 필요한 음식이 오히려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밥상의 품격>을 쓴 김외련 작가는 오랜 세월 동안 자신과 가족, 이웃을 위한 밥을 손수 지어왔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작가의 인생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최근 출간한 <밥상의 품격>은 2020년에 출간한 <김외련 평생 레시피>의 증보판이다. 육필로 써왔던 레시피와 음식 그림이 담긴 노트에서 출발한 아담한 요리책에 많은 부분을 새롭게 개발, 정리해 완성했다. 제철의 싱싱한 재료와 최소한의 양념을 사용한 간단한 조리법 256종이 수록돼 있다. 사시사철 먹을 수 있는 음식과 계절에 따라 만들어 먹는 음식들이 순서대로 담겼다.
인생을 바꿔놓은 요리 교실
김외련 작가는 1997년, 약사로 일하던 중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유방암은 그에게 요리의 본질을 깨닫고, 요리를 즐길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했다. 재앙이라고 생각했던 병은 시련과 고통만큼이나 많은 귀한 것을 안겨주었다. 유방암과 싸우면서 ‘약식동원(藥食同源·약과 음식은 근원이 같다)’의 이치를 깨달았다. 제철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으면 입맛이 돌고 기운이 나는 것을 느끼면서 신선한 식재료를 사기 위해 새벽 시장에 자주 들렀다. 남들보다 이른 아침을 맞이하는 이들의 건강한 기운도 그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늦은 나이에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만난 평생 친구 덕분에 시작한 요리 교실은 그의 인생을 훨씬 더 의욕적으로 바꿔놓았다. “유방암 발병 후 건강상으로 두 번째 고비를 넘길 때였어요. 불면증이 심해 약을 먹고, 병원에 입원도 하고요. 그때 뉴욕에 있는 딸에게 엄마를 돌봐달라는 부탁을 받은 대학원 친구가 요리 교실을 제안했어요.” 그의 두 친구까지 동참해 4명으로 요리 교실이 시작됐고, 지금은 수강생이 늘어 G반까지 운영 중이다. “요리 교실은 내 요리에 대한 소신을 그대로 실습하고 확인하는 과정이에요. 음식 그 자체는 물론 손수 만든 음식을 다른 사람들과 즐기는 것은 관계가 친밀해지는 과정의 촉매가 됐어요.”
<밥상의 품격>
김외련│나남
갓 지어 뜨끈한 밥과 제철 먹거리로 만든 반찬, 정성 어린 밥상으로 사람과 마음을 나누는 김외련 작가의 음식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책. 사시사철 먹을 수 있는 음식과 철 따라 만들어 먹는 음식이 순서대로 수록됐다.
고향을 음식으로 기억한다는 것
김외련 작가의 고향은 경상남도 마산. 현재는 창원시로 편입됐지만 그는 여전히 고향을 마산이라 부른다. 그래서인지 <밥상의 품격>에는 경상도식 레시피를 꽤 많이 볼 수 있다. 경상도식 떡국과 콩나물국, 통영식 멍게비빔밥 등 바닷가에서 나고 자란 그는 생선 요리를 좋아하고 잘한다. 특히 주변 사람들이 극찬하는 메뉴는 대구 요리. “대구 요리라고 하면 겨울 밥상에 자주 오르던 대굿국이 떠올라요. 거제, 통영, 마산 앞바다에서는 동지 무렵이면 대구 김장을 했을 정도로 겨울에 대구가 많이 잡혔죠.” 대구 풀코스를 개발해 겨울이면 대구 맛을 아는 지인들을 집에 초대해 함께 즐긴다. <밥상의 품격>에도 대구 요리 카테고리가 따로 있을 정도. 통대굿국, 우거지통대구찜, 통대구된장찌개, 통대구무침, 대구저냐, 대구양념구이 등 대구가 주인공인 요리만 10가지가 넘는다. 대구의 식감과 맛을 좋아한다면 김외련 작가의 레시피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시절
김외련 작가는 요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고 말한다. “요리는 제가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이에요. 좋은 사람들을 집에 초대해 함께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면 밖에서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것보다 훨씬 빨리, 깊이 친해지죠.” 그림 역시 그의 오랜 취미 중 하나다. <밥상의 품격>에 실린 그림 모두 김외련 작가가 직접 그렸다. 요즘 그가 가장 몰두하는 일은 기록이다. 평생 써오던 일기를 유방암 재발 이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평소 마음이 잘 통하던 둘째 딸의 제안으로 자전적인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사람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딸이 어느 날 ‘우리가 엄마라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도록 글을 써줘’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마음 한구석에 숙제로 남아 있었는데 이제 그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이 생겼어요.” 기억의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하면서 새벽에도 떠오르는 걸 쓰기 시작했다. 글의 첫 독자이자 편집자는 남편 김형국 교수. “남편이 독자 겸 편집자 역할을 잘해줬어요. 덕분에 음식을 주제로 한 글을 써야겠다는 큰 틀이 생겼죠. 글 쓰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쓰고 나면 엄청난 희열이 있더라고요. 2년 동안 꾸준히 해내는게 저 혼자만의 목표죠.” 목표를 이야기하는 눈빛이 장난감을 앞에 둔 아이처럼 반짝거린다. 정말 에너지가 넘치는 것 같다는 말을 건네자 “체력은 달리는데 맨날 좋은 생각이 떠올라요”라고 답한다. 김외련 작가는 인적이 드문 서울 평창동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살고 있다. 밤이 되면 도시의 화려한 불빛이 아닌 어둠이 내려앉는 곳. 이른 저녁 식사를 마치고, 새벽 4~5시에 일어나 글을 쓰는 것이 요즘 그의 낙이다. “여기는 늘 정말 조용해요. 차를 마시고 책을 읽고, 사색을 즐기기에 이만한 곳이 없죠. 다른 사람의 시선이 아닌 오롯이 나에게 초점을 맞추고 자연의 흐름을 느낄 수 있어 좋아요. 글쓰기에도 정말 좋고요.”
RECIPE
더덕 튀김
재료
더덕 100g, 찹쌀가루 1컵, 물 1/2컵, 튀김 기름
만들기
1 더덕은 깨끗이 씻어 껍질을 벗긴 다음, 반으로 갈라 방망이로 자근자근 두드려 펴서 가운데 심을 빼낸다.
2 찹쌀가루 ½컵에 물을 부어 묽은 반죽 물을 만든다.
3 ①의 더덕을 찹쌀 반죽 물에 담갔다 뺀 뒤 남은 찹쌀가루를 고루 묻힌다.
4 160℃ 튀김 기름에 바삭하게 튀긴다.
5 튀긴 더덕을 접시에 담고 소금이나 꿀을 곁들인다.
TIP 전채로 쓸 때는 소금을, 후식으로 내놓을 때는 꿀을 곁들이면 좋다.
* 더덕은 예로부터 산삼에 버금가는 약으로 여겼다. 싱싱할수록 껍질이 잘 벗겨지니 제철에 즐기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