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 “양육은 YES, 결혼은 NO”
2024년 11월 모델 문가비가 SNS를 통해 “한 아이의 엄마로 조금 더 평범한 행복을 누리며 살기 위해 용기를 냈다”며 아들을 출산했음을 고백했다. 아들의 친부는 배우 정우성.
그는 소속사를 통해 친부임을 인정하며 “아이의 양육 방식에 대해서 최선의 방향으로 논의 중이다. 아이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다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2022년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정식으로 교제한 사이는 아니었으며 결혼 계획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가정을 꾸리지 않고 아들에 대한 양육만 책임진다는 것. 정우성 혼외자 스캔들은 결혼과 양육, 가족이라는 전통적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태의 양육 방식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비혼 출산 YES! 결혼은 양육 책임의 전제 아냐
혼외자는 법률상 혼인 관계가 아닌 남녀 사이에서 출생한 자녀를 말한다. 결혼했지만 혼인신고는 하지 않은 사실혼이나 비혼동거 커플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도 혼외자다. 통계에 따르면 2023년 우리나라에서 혼인 외 관계에서 태어난 신생아는 1만 명을 돌파했다. 전체 출생아 20명 중 1명이 혼외자에 해당하는 것.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혼외 출생률 41.5%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지만 우리나라 정서상 놀라운 기록이다.
정우성과 문가비의 비혼 출산에 찬성하는 이들은 “양육 책임에 결혼이 전제될 필요 없다”는 의견을 내세운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결혼 없이도 자녀를 낳을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2024년 5월 통계청이 만 13세 이상 3만 6,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4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37.2%는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29세 응답자 중엔 42.8%가 비혼 출산을 찬성했는데, 이는 10년 전 30.3%와 비교해 12.5%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이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반영한 결과로 전통적 결혼관 약화, 성평등 인식 향상, 경제적 불안정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또 미국이나 유럽처럼 개인의 선호와 선택을 중시하는 사회로 변화 중인 방증이라는 주장도 있다. 모든 사람에게 결혼하지 않을 자유가 있기에 자발적 미혼모·미혼부가 되기로 한 것을 비난받을 이유가 없으며,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될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 비혼 출생아가 차별 없이 자랄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해 비혼 출산을 찬성한다는 의견도 뒤따른다.
국내에선 정우성의 스캔들로 비혼 출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비혼 출산은 세계적 흐름이다. 영국의 경우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갖기 위해 난임 시술을 받는 여성이 2012년 1,400여 건에서 2022년 4,800여 건으로 10년간 3배 이상 증가했다. 프랑스는 신생아의 약 63.9%, 스웨덴은 57.8%, 독일은 33.5%가 비혼 부모에게서 태어난다고.
비혼 출산 NO! 재정 지원이 전부 아냐
국내에서는 비혼 출산에 대한 우려가 여전하다. 비혼 출산으로 생명을 지키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국내 정서상 비혼 출산에 대한 관용이 부족하고, 미혼모와 미혼부에 대한 차별이 심해 사회적 또는 가족의 지원 없이 실행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 무엇보다 정상 가족의 범주 밖에 있는 가정까지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급선무다. 부계 중심의 혈통주의를 따르는 민법이 수정되는 등 비혼 출생아가 성장 과정에서 받게 될 부정적 시선이 사라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또 정우성의 경우 결혼은 하지 않고 아들에 대한 양육 책임은 다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를 두고 재정 지원이 양육 책임을 대신할 수 없다는 비판이 거세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양육비를 강제하는 법은 있지만 강력한 패널티가 없다. 친부가 양육비를 주지 않으면 인지청구소송을 걸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승소하더라도 양육비 지급을 이행하지않는 경우도 많은 상황이다. 물론 복지 측면에서는 제도가 영유아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지원 차별은 없지만, 비혼 출산은 친부가 양육 책임을 거부하면 경제적 위기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 만큼 아이가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양육비를 보장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2022년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양육비이행법의 입법영향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미혼모들이 자녀의 친부에게 양육비를 청구해 실제로 돈을 받은 비율은 2021년 기준 38.3%에 그쳤다.
2025년 7월부터 ‘양육비 선지급제’가 시행된다. 양육비를 받지 못한 한부모가족(기준 중위소득 150% 이하)에 자녀 1인당 만 18세까지 월 20만원씩 국가가 양육비를 먼저 지급한 뒤 비양육자에게 돌려받는 제도인데, 정부는 이를 보완해 비혼 출산과 관련된 추가 지원책을 모색하겠다는 방침이다. 사회적 시선, 제도 보완 등이 갖춰진 뒤에 비혼 출산이 이뤄져야 태어난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란 의견도 상당하다.
혼외자 폐지 및 제도 개편 필요성 제기
비혼 출산 허용 여부와 함께 혼외자라는 명칭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혼외자 낙인이 자라날 아이에게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 이에 대해 김희경 전 여성가족부 차관은 SNS를 통해 혼외자 대신 비혼 득남으로 표현할 것을 권유하며 “혼외자 표현은 부모를 중심에 두고 바라보는 시각이고, 아무런 책임이 없는 아이에게 부정적 낙인을 찍는 용어다”라고 했다. 또 “혼외자가 아니라 그냥 아들이다”라고 소신을 밝혔다.
실제로 2019년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가족다양성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75.6%가 혼인 외의 출생자라는 법적 용어 폐기에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에서도 혼외자와 혼중자에 대한 개념이 폐지되는 추세다. 독일은 1997년 아동권리개혁법을 만들어 혼외자와 혼중자에 대한 개념을 없앴고, 미국은 주마다 다르지만 2002년 통일친자법을 통해 혼외자, 혼중자에 대한 구분을 없앴다. 프랑스도 2005년 민법을 개정해 혼중·혼외 출산자 구분을 폐지했다. 또 가족의 다양한 형태를 인정하는 제도 마련에 대한 논의가 다시 시작됐다. 가장 대두되는 건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가 도입한 ‘등록 동거혼(PACS)’이다. 동거 신고만 하면 국가가 혼인 가족에 준하는 세금·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제도다. 다만 전통 결혼보다 헤어짐이 쉬워 비혼을 조장하거나 가정 해체로 이어질 수 있으며, 동성혼 합법화에 대한 우려로 종교계의 반발이 예상된다. 실제로 프랑스는 PACS 도입 이후 이성·동성 간 동거 문화가 빠르게 확산됐다. 결국 프랑스는 PACS 도입 14년 만인 2013년 동성혼을 합법화했다.
이와 함께 미성년 자녀를 키우는 한부모가 정이나 1인 가구의 경우 병원에 입원하거나 수술, 장례 시 가족으로 사전에 등록한 연대 관계인이 대신 동의할 수 있는 ‘연대관계등록제’ 도입과 결혼하지 않더라도 자녀를 출산한 동거인에게 부모로서 법적 지위를 인정해주는 ‘동반가정등록제’ 도입에 대한 법안이 나오고 있다.
독자 대상 앙케이트
혼외자가 생기면 결혼해야 할까?
유럽, 다양한 가족 형태 인정 및 돌봄 경제적 지원
해외에서는 미혼모, 비혼 부모를 위해 어떤 정책을 시행하고 있을까? 2022년 기준 비혼 부모가 출산한 신생아의 비율이 64%에 달하는 프랑스는 등록 동거혼 제도인 팍스(PACS·시민연대계약)에 따라 비혼 커플이나 동성 커플도 법적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비혼이라도 아이가 3세가 될 때까지 지급되는 가족수당(CAF)과 첫아이 기준 최대 6개월인 유급 육아휴직 등의 혜택을 동일하게 적용받는다. PACS는 법적으로 부부와 유사한 지위를 제공하지만 한 사람이라도 계약 해지를 원한다면 쉽게 해지할 수 있기 때문에 결혼에 부담을 느끼는 프랑스인들이 PACS를 통해 함께 생활하고 아이를 낳아 양육한다.
비혼 출산 비중이 57.8%로 절반이 넘는 스웨덴에는 혼인 외에도 이혼을 포함해 서로 다른 형태로 사는 것에 대한 도덕적 견해와 관련해 중립적이어야 하고 비혼 양육자에게 불편을 초래하는 조항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한 가족법이 있다.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인정하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것. 법 제정 외에 비혼 부모는 아이 한 명당 최대 480일간 지급되는 부모 수당을 제약 없이 받을 수 있으며, 양육 휴가를 보장받는다. 남성은 의무적으로 3개월간 양육 휴가를 쓰며 함께 아이를 돌보는 것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독일에선 비혼 부모도 자녀 출생 뒤 최대 14개월간 소득의 약 65~67%에 해당하는 부모 수당을 받는다. 서유럽만큼 비혼이 보편화되지 않은 동유럽 국가들도 비혼 출산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2022년 기준 출생률이 1.62명으로 한국(0.78명)의 2배가 넘는 체코는 비혼을 포함한 한부모가정의 유치원 및 방과후 서비스를 위한 지원금과 무료 급식을 제공하는 내용 등이 포함된 ‘2022~2030년 아동 보장을 위한 국가 행동 계획’을 마련했다. 이민 정책 대신 출산 지원을 강화해 출생률을 2011년 1.23명에서 2021년 1.59명으로 끌어올린 헝가리에선 여름방학 캠프, 돌봄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한부모 센터’가 비혼 가정을 지원한다. 벨기에는 월 소득 2,200유로(약 330만원) 이하의 저소득층 한부모가정에서 상대방 부모가 1년간 최소 2개월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으면 정부가 양육비를 선지급한다. 아일랜드는 ‘한부모가족 지급금(OFP)’이란 제도를 통해 근로자인 싱글맘이나 싱글대디에게 세액공제와 함께 의료비, 임대료 지원 등의 혜택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