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바쁜 스케줄로 주안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주중엔 밤늦게 들어와 잠들어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는 일이 빈번했다. 자는 주안이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 시간이 금방 지나가 훗날 후회를 남기게 될까 봐 여러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날씨 좋은 주말에 가족들을 부추겨 외식을 하러 나갔다. 산책하기 좋은 날이라 기분도 덩달아 좋았다. 이번 주 내내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터라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내 수다는 계속 이어졌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주안이는 “아빠, 왜 이래? 천천히” 하며 나를 진정시켰다. 그도 그럴 것이, 일주일 동안 졸린 눈으로 등교를 도와주던 내 모습과는 정반대의 텐션이었던 것이다. 괜스레 허둥지둥하는 내 모습이 스스로 생각해도 재미있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며칠 후 주안이가 지방으로 시험을 보러 가는 날이었다. 하필 그날 공연 일정이 잡혀 아내만 주안이와 동행해야 했다. 주안이가 나에게 공연 일정을 바꿀 수 있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불가능하다는 답을 듣고는 무척 아쉬워했다. 주안이에게 큰 행사가 있을 때는 늘 함께했던 터라 주안이도 꼭 함께 가길 바랐으나 이내 납득을 했다. “주안아, 함께 가지는 못하지만 그 누구보다 응원하고 기도하면서 주안이가 잘되길 바라고 있을 거야.” 주안이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괜찮아, 아빠. 준비 잘했으니 걱정 마. 아빠도 파이팅!” 오히려 나를 응원해주는 아들을 보면서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이 자랐다는 걸 느꼈다.
시험장에 들어가기 전 파이팅 전화 통화를 하고 이후 아내와 계속 연락을 주고받으며 부모님 생각이 나기도 했다. 자식을 키워봐야 부모님 마음을 안다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되새기곤 한다.
며칠 전 내가 출연하는 뮤지컬 <광화문연가>를 가족들이 보러 왔다. 주안이와 아내 그리고 부모님까지 총출동했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 주안이가 내게 물었다. “아빠, 공연 보는데 엄마가 울었어. 아빠도 무대에서 울던데, 그거 진짜 우는 거야?” 호기심 어린 표정이었다. “우는 것도 연기이지만 그 순간에는 진심으로 하는 거야.” 모범 답안을 냈더니, 아니나 다를까 주안이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래서 가짜로 운다는 거야, 진짜로 운다는 거야?”
사실 아들의 마지막 질문에 나는 아직 답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아내의 눈물 이야기로 화기애애하게 넘어갔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동안 바빠서 주안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는데, 그 결과물을 온전히 보여줄 수 있다는 게 감사한 하루였다. 공연을 본 뒤 주안이는 공연에 나온 음악을 흥얼거리기도 했다. 유튜브 쇼츠를 통해 자기도 알고 있는 노래라고 한다. 주안이가 나와 음악까지 공유하는 나이가 됐다고 생각하니 괜히 신기하기도 했던 하루였다.
글쓴이 손준호
1983년생으로 연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뮤지컬 배우다. <팬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페라의 유령> 등 다수의 뮤지컬에 출연했다. 2011년 8살 연상의 뮤지컬 배우 김소현과 결혼해 2012년 아들 손주안 군을 얻었다. 뭘 해도 귀여운 아들의 행복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