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들은 음악이 좋으면, 그 아티스트에 대해 견해가 깊지 않아도 공연을 보러 다닌다.
공연을 보며 연기에 대한 영감도 얻는다.
배우 오정세는 열일 중이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인간미 폴폴 풍기는 캐릭터로 쉼 없이 대중과 만나고 있다. 오정세를 만나면 그 어떤 캐릭터도 매력적으로 변한다는 ‘오정세 매직’ 때문인지 ‘호불호 없이 모두에게 사랑받는 배우’ 중 한 명이다. 이번엔 그가 넷플릭스 시리즈 <Mr. 플랑크톤>으로 돌아왔다.
<Mr. 플랑크톤>은 실수로 잘못 태어난 남자 ‘해조’(우도환 분)의 인생 마지막 여행길에 세상에서 가장 불운한 여자 ‘재미’(이유미 분)가 강제 동행하면서 벌어지는 로맨틱 코미디다. 넷플릭스 시리즈 <소년심판>의 홍종찬 감독과 tvN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조용 작가가 의기투합했다. 극 중 오정세는 종갓집 5대 독자이자 재미의 순애보 신랑 ‘어흥’ 역할을 맡았다.
1997년 영화 <아버지>로 데뷔한 오정세는 2010년 영화 <부당거래>에서 ‘김 기자’ 역을 맡아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렸다. 이후 영화 <남자사용설명서> <조작된 도시> <극한직업> <스위치> 등을 비롯해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사이코지만 괜찮아> <악귀> <이재, 곧 죽습니다> <스위트홈> 등 수많은 작품에서 넓은 연기 스펙트럼으로 인기와 연기력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오정세표’ 연기는 장르가 됐을 만큼 그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도 심심치 않게 있을 정도다.
2020년 <동백꽃 필 무렵>으로 제56회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남자 조연상을 수상한 데 이어, 다음 해인 2021년 <사이코지만 괜찮아>로 2년 연속 TV 부문 남자 조연상을 수상했다. 작품이 곧 그의 캐릭터로 기억될 만큼 강렬한 개성과 매력을 가진 캐릭터를 완성해온 오정세가 <Mr. 플랑크톤>에서도 ‘오직 오정세만이 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여전히 연기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고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연기에 대한 영감을 무대 위 뮤지션을 보고 받는다는 그의 루틴도 인상적이었다.
넷플릭스에 공개된 <Mr. 플랑크톤>의 반응이 좋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독특한 캐릭터들이 펼치는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의 연속, 그리고 그 끝에 코끝이 찡해지는 작품이라 감동적이었다. 아쉬운 부분은 모든 배우가 다 그렇겠지만 내 연기적인 부분이다. 아주 디테일한 것들, 예를 들어 이 장면에서 소리를 1초 정도 더 지를걸 하는 것들이다.(웃음) 그런 것 외에는 재미있게 봤다.
조용 작가와 두 번째 작품이다. 처음부터 오정세 배우를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썼다고 들었다.
함께 호흡을 맞췄던 전작 <사이코지만 괜찮아>(2020)로 배우로서, 또 사람으로서 큰 선물을 받았다. 그래서 작가님의 다음 작품은 어떤 역할이라도 참여하고 싶었다. 이렇게 좋은 역할로 손을 내밀어주셔서 누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참여했다.
극 중 캐릭터인 ‘어흥’에 자신의 모습을 어느 정도 투영했나? 오정세 맞춤형 캐릭터더라.
이 인물을 만났을 때 내가 생각했던 키워드는 ‘처음’이었다. 어흥은 재미라는 여자를 만나면서 처음 사랑, 처음 이별, 처음 가출, 결국 처음 느끼는 삶을 살게 된다. 나 또한 20살 때까지 내 의지로 뭔가를 선택한 게 없다. 대체로 다들 그렇겠지만 당연히 해야 할 것들을 하면서 흐르듯이 살았다. 그리고 내가 처음 내 의지로 선택한 것이 전공이었다(선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졸업). 해보고 싶은 걸 처음 했는데 그게 내 인생에서 첫걸음이었던 것 같다. 그 첫발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우는, 그리고 아직 첫발을 못 디딘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될 수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어흥과 실제의 내가 ‘처음’에 대한 교집합이 있다고 생각했다.
어흥이라는 캐릭터에게 닮고 싶은 부분이 있나?
순수하고 선하지 않나. 누군가가 보기에는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사는 고구마 같은 답답함도 느끼겠지만 그 답답함도 덮을 수 있는 순수한 사랑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이다. 연기를 함에 있어서 그 부분에 집중했다.
극 중에서 너무나 순수한 사랑을 한다. 납득이 갔나?
언젠가 지인이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깊게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는 과정에서 상대를 잡으려고 애를 썼지만 더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 사람과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다는 것으로도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마음이 편해졌다는 거다. 그 정서를 투영해 어흥의 순수한 사랑을 이해했다.
극 중 어흥이 상대역인 재미에게 푹 빠지는 포인트가 뭐라고 생각하나?
별것 안 해줬지만 이 사람이 치유되는 느낌이랄까. 그냥 손수건을 내밀었는데 큰 감동을 받고, 옆에 사탕이 있어서 한두 개 줬는데 너무 즐거워하는 거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빠져들지 않았나 싶다.
이 작품이 좋았던 점은 무엇인가?
통통 튀는 캐릭터들이 예측할 수 없는 사건에 맞닥뜨리면서 벌어지는 여정이다. 그 재미를 좇다 보면 강요하지는 않지만 작은 메시지가 의미 있게 다가온다. 스스로를 보잘것없고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나도 소중한 존재라는 걸 느끼게 해준다. 나는 그래서 좋았다.
극 중에서 많이 뛰어다닌다. 힘들지 않았나?
아직 젊기 때문에 부담 없이 뛰어다녔다. 모든 배우가 많이 뛰면서 촬영했다. 체력을 기르기 위해 퍼스널 트레이닝과 필라테스를 꾸준히 하고 있다.
극 중 배경이 되는 고택이 아름답더라. 어딘가?
전북 완주에 있는 고택이다. 그곳에 있으면 소중한 사람과 다시 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주변을 둘러싼 산과 그 기운이 너무 좋다. 신선이 된 기분이랄까.
함께 출연한 이유미·우도환 배우와 호흡을 맞춘 소감도 궁금하다.
유미는 딱 극 중 캐릭터 같더라. 보면 기분 좋고 사랑스럽고 귀엽다. 언제부터는 극 중 캐릭터처럼 내가 지켜줘야 할 것 같기도 했다. 우도환 배우는 첫인상은 카리스마 넘치는 친구 같지만 알고 보면 허당미도 있고 인간적인 매력이 있다. 셋이 즐겁게 촬영했다.
좋아하는 연기를 시작했고, 또 좋아하는 작품을 하고 있으니 행복하다.
내 목표는 이 일을 최대한 즐기면서 오랫동안 하는 것이다.
정세라는 배우는 그동안 맡았던 캐릭터 때문인지 인간적이고 유머러스한 이미지가 강하다. 실제 모습은 어떤가?
유머러스하고 철없는 모습, 진지하고 조용한 모습 등 이런저런 모습이 다 내 안에 있는 것 같다. 누군가와 차를 타고 5시간 동안 갈 때 조용한 게 불편하지 않은 모습도 있다.(웃음)
<동백꽃 필 무렵>에서도 그렇지만 이번 역시 조금은 어리숙한 캐릭터다.
잘못하면 비호감이거나 답답함을 느끼게 하는 인물들도 간혹 있다. 현실에 없을 거 같은, 발이 땅에 닿지 않는 인물도 있는데 이 인물을 땅으로 데리고 오는 데까지 나름 도움을 받는 것이 있다. 바로 음악이다. 나는 무대 위의 뮤지션을 보고 자극을 받는다. 고음이 잘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도 감동을 받겠지만 조금 서툴고 부족하지만 감동을 주는 뮤지션이 있다. 결국 진심만 있으면 부족한 것들을 덮을 수 있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이 캐릭터 역시 부모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 답답할 수도 있지만 어흥만이 할 수 있는 순수한 사랑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걸 진심으로 표현하면 발이 땅에 닿을 것이라고 믿었다.
선한 역할과 악역의 구분 없이 다양하게 연기한다. 역할을 선택하는 데 나름의 기준이 있나?
우리가 여행을 떠날 때 좋은 풍경과 좋은 사람들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으로 출발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은 풍경을 보기도 한다. 그렇게 여행이 만들어진다. 작품도 그렇다. 배우로서 굵직한 나름의 계획이 있지만 작품을 선택할 때는 그런 것들이 악역이든 선한 역이든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다음에 만날 친구는 누굴까 하는 기대가 더 크다. 좀 어려우면 해보고 욕먹자, 이겨내자 하는 마음이 든다. 선입견 없이 열어두고 작품을 고르는 편이다.
섭외가 들어오는 작품은 대체로 수락한다는 의미인가?
그렇지는 않다. 악역이든 선한 역이든 내 마음을 울리는 것 위주로 선택한다.
연기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 중 하나다. 각기 다른 캐릭터를 만드는 노하우가 있나?
정답은 없다. 매번 혼란스럽고 어렵지만 나름의 방법은 그 인물에 대한 키워드를 정하는 것이다. 이번 작품에서 어흥의 키워드를 ‘처음’으로 정했듯이 말이다. 그리고 실제 현장에서 동료들과 합을 맞추면서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균형을 이뤄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다작을 하는 이유가 있나?
작품을 만나는 게 즐겁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만나 그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 즐거우니 이 즐거움을 못 놓는 것 같다.
오정세 배우의 일상에서 소소한 재미는 무엇인가?
앞서 언급한 음악이다. 나는 인디 밴드의 공연을 보러 다니는 걸 좋아한다. 우연히 들은 음악이 좋으면, 그 아티스트에 대해 견해가 깊지 않아도 정보 없이 보러 다니기도 한다. 전시도 좋아한다. 그림이나 작가에 대해 잘 모르지만 보고 느끼는 그 자체가 즐겁다.
의외의 모습이다. 최근에 좋았던 공연이 있나?
최근에 김필선이라는 뮤지션의 공연을 봤다. 멜로디도 좋고 가사도 좋지만 무엇보다 순수함이 좋다. 가사를 읊조린다고 해야 할까. 그 무대를 보면서 저렇게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모든 캐릭터가 그렇지는 않지만 어떤 작품에서는 읊조리듯 대사하는 게 필요한 캐릭터가 있다.
오정세에게 음악이란?
잘 모르는데 좋아하는 것. 누군가에게 음악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좋아한다. 아, 얼마 전에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몇 년 전에 우연히 영상을 보고 버스킹을 하는 해외 뮤지션에게 꽂혔던 적이 있는데 최근에 청담동 카페에서 우연히 그들을 본 거다. 나도 모르게 달려가서 팬이라고 아는 척을 했다. 알고 보니 한국에 공연이 있어 왔더라. 그 인연으로 공연도 보러 가고, 귀국하기 전에 다시 만나 공원 벤치에 앉아 노래도 들었다. 결국 그날 코인 노래방까지 같이 갔다.(웃음)
앞서 언급한 오정세 배우의 굵직한 목표점이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좋아하는 연기를 시작했고, 또 좋아하는 작품을 하고 있으니 행복하다. 물론 그 안에서 캐릭터가 잘 안 풀릴 때는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내 목표는 이런 환경을 최대한 즐기면서 하는 것이다. 이번 작품에서 내 어머니로 출연하신 김해숙 선배님을 보면서도 많이 느꼈다. 촬영장은 배우들에게 직장이라 매 순간 즐겁지 않을 수도 있다. 근데 선배님은 늘 현장에 오실 때 신나는 모습이고 실제로 현장에서도 즐기며 일하신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도 선배님처럼 즐기며 오랫동안 일해야지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게 내 목표점이다.
오정세라는 배우는 호불호 없이 대중이 좋아하는 배우다.
그런 대중의 마음이 오래갔으면 하지만 앞으로 어떤 역할을 맡느냐에 따라 좋지 않은 평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잘 버텨야지, 넘겨야지 하는 생각은 한다.
진한 멜로도 한번 해달라.
무미건조하지만 가슴 아픈 사랑을 연기해보고 싶다. 격정적인 빨간색 사랑이 아니라 건조하고 차가운 사랑 말이다. 가슴 아프지만 행복한 사랑, 해보고 싶다.
끊임없이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드라마 <굿보이>를 촬영 중이다.
배우로서 거창한 계획이 있다기보다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시나리오 안의 내 캐릭터가 작품 안에 잘 녹아들어 전반적으로 좋은 작품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쉴 새 없이 작품을 하고 있지만 즐기려고 한다. 캐릭터가 잘 안 풀려서 어렵지, 계속 작품을 해서 힘든 건 아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