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에 부고가 찍히면 죽음은 배달상품처럼 눈앞에 와 있다. 액정화면 속에서 죽음은 몇 줄의 정보로 변해 있다. (중략) 부고를 받을 때마다 죽음은 이행해야만 할 일상의 과업처럼 느껴진다. 애착 가던 것들과 삶을 구성하고 있던 치열하고 졸렬한 조건들이 서서히 물러가는 풍경은 쓸쓸해도 견딜 만하다. 이것은 속수무책이다.” -<허송세월> 중 ‘늙기의 즐거움’에서
기자에서 소설가로 50년 넘게 문장을 만들며 살아온 김훈 작가는 지난 몇 년간 심혈관계 질환으로 사경을 헤맸다. 오랜 시간 즐겨온 술을 멀리하기 시작했고, 언어와 개념으로부터 그를 자유롭게 했던 높은 산 대신 둘레길을 걸었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뒤 두 다리로 걷는 일의 복됨을 깨달았고, 꽃을 보고 과일을 먹으며 생명의 고귀함을 느꼈다. 김 작가는 나이 들어 죽음에 다가가는 일의 아득함을 산문집 <허송세월>(나남)에 담담하게 적었다.
열대야가 기승부리던 7월의 어느 날 밤, 김훈 작가가 ‘나의 허송세월과 글쓰기’라는 제목으로 독자와 만났다. 사전 참가 신청에 1,200명이 몰려 추첨 끝에 300여 명의 독자가 모였다. 김 작가와 독자가 주고받은 대화를 인터뷰로 재구성했다.
허송세월의 일상
2년 만에 출간한 산문집의 제목이 <허송세월>입니다. 무슨 의미인가요?
제가 몇 년 전부터 술을 마시면 안 되는 몸이 됐습니다. 그럼에도 가끔 위스키를 마시는데 그때면 술맛이란 걸 알게 돼요. 내게 필요한 것이 드디어 왔다는 걸 느끼죠. 여태까지 이 맛을 모르고 그 많은 술을 마신 거예요. 그게 허송세월이죠. 허송세월은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일상적인 감정이에요.
그래서일까요? 이번 책엔 생로병사부터 사계절의 변화, 밥 먹는 것까지 누구나 겪는 일상이 담겼죠.
이번 책은 우리 일상의 파편이에요. 봄·여름·가을·겨울, 밥을 먹고 똥을 싸는 것, 우리 집 마당에 찾아오는 새,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느낀 생각을 썼으니까요. 책의 제목과 내용이 딱 어울리는 것이지요.
책에서, 즐기던 등산 장비를 후배에게 줬다고 밝혔습니다. 무슨 재미로 일상을 보내고 있나요?
글쎄요. 별 낙이 없네요. 3년 전 몸이 안 좋아지면서 입·퇴원을 거듭했고 의사들한테 의지해 살고 있지요. 이제 몸이 많이 회복됐으니까 여생은 되도록 혼자 지내려고 합니다. 나 자신을 소외시켜 스스로 헐거워지려고 하지요. 필요한 물건만 남기려고 책도 많이 버렸습니다. 가장 버리기 아까웠던 건 신발이에요. 낡은 등산화나 구두, 오래된 운동화 같은 것들이요. 내 몸을 끌고 다닌 노고의 표적이 남아 있어서 버리기 아까웠죠. 하지만 다 버렸습니다. 이것도 전부 허송세월이에요.
1995년 소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을 시작으로 30년 가까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작업에 몰두하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글쎄요, 내게 무슨 동력이 있을까요? 내게 글쓰기는 문화예술이라기보단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동입니다. 내게 어디서 영감을 받아 글을 쓰냐고 물으면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겠어요. 내가 작업을 하는 근간은 영감이 아닌 노동 근성입니다. 노동, 근면, 성실이란 생각으로 이날까지 버티고 있어요. 참으로 예술적이지 못한 말이지만 정직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원고지에 연필로 원고를 쓰는 것으로 유명하죠. 이번 산문집도 연필로 원고를 썼나요?
기계를 잘 다루지 못해 컴퓨터를 못 하니 평생 연필로 썼어요. 내가 만질 줄 아는 기계는 자전거뿐이에요. 기계에 대한 적응 능력이 없이 낙후된 거죠. 그런데 삶의 방식을 고치지 못하고 낙후된 대로 살다가 갈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연필로 쓸 때 좋은 점도 있어요. 저는 나의 글을 내 육체로 밀고 나간다는 확실한 느낌이 있어요. 살아 있는 육체의 감각은 제가 글을 쓰는 데 중요한 요소기 때문에 연필로 글을 쓰는 건 낙후된 것이지만 제겐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나름대로 즐거움도 있습니다.
“혀가 빠지게 일했던 세월도 돌이켜보면 헛되어 보이는데,
햇볕을 쪼이면서 허송세월할 때 내 몸과 마음은 빛과 볕으로 가득 찬다.
나는 허송세월로 바쁘다.”
-<허송세월> 중 ‘허송세월’에서
‘시대의 문장가’의 글쓰기 원칙
작가님은 ‘이 시대의 문장가’라는 수식어를 갖고 있습니다. 이번 산문집에서도 형용사나 부사가 거의 없는 하드보일드한 문장이 돋보이는데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좋은 문장은 어떤 것인가요?
내 문장이 ‘좋은 문장’이든 아니든 나는 어느 쪽이든 괜찮아요. 왜냐하면 내게는 내가 쓴 문장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내적인 필연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내적 필연성이 표현됐으면 만족합니다.
내적 필연성이 표현됐다는 느낌을 자주 받나요?
많지 않죠. 저는 출판사에서 제가 쓴 책을 주면 다시 읽은 적이 거의 없어요. ‘내가 이런 문장을 썼다니’라는 고통을 견딜 자신이 없거든요. 여러분은 웃지만 나는 고통스러운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문장을 쓸 때 갖는 원칙이 궁금합니다.
수다를 떨지 말자. 문장의 뼈다귀만 가지고 써야 해요. 뼈다귀라고 하는 것은 주어, 동사, 목적어, 보어만 갖고 쓰는 것이지요. 형용사나 부사는 되도록 제하려고 합니다. 뼈다귀만 갖고 쓰려니 저도 힘들어요.(웃음)
여태 썼던 문장을 다시 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문장을 고치고 싶나요?
<하얼빈>(2022)에서 이토가 총을 맞고 죽는 장면이 있어요. 쓰러졌으면 죽는 수밖에 없으니 “이토는 죽었다”라고 여섯 글자를 썼어요. 그런데 다시 보니까 영 재미없고 멋이 없게 느껴져요. ‘이렇게 뻣뻣하면 독자들이 감정선을 따라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부드럽게 쓰자고 마음먹고 “이토는 곧 죽었다”라고 고쳤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곧’이라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병원에 실려 가서 며칠 뒤에 죽은 건지, 30분 뒤에 죽은 건지 알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하얼빈>을 재판할 때 ‘곧’이란 글자를 빼려고 했는데 아직 못 뺐어요. 독자들에겐 하찮은 일 같지만 내겐 고통스러운 일이에요.
이번 산문집에서 조사 ‘에’에 대해 헐겁고 느슨하고 자유로워서 한국어의 축복이라고 했습니다. 이전에도 ‘에’를 가장 사랑하는 우리말로 꼽은 적이 있죠.
한국어를 읽는 것은 조사를 읽는 것이에요. ‘아이 러브 유(I Love You)’는 조사 없이 동사가 목적어를 지배합니다. 그런데 한국어는 ‘나는 너를 사랑해’처럼 ‘를’을 읽지 않으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어요. 5~6개의 조사가 문법 시스템에서 논리 전개의 역할을 하죠. 조사는 헐거워서 논리가 빈약한 대신 그만큼 자유의 영역이 존재해요. 조사가 가진 자유의 영역을 어떻게 활용할지가 나의 고민입니다.
또 한 음절의 명사와 동사를 소중하게 여기시죠.
명사로는 달·별·밥·꽃·똥·산·강·물, 동사는 먹다·싸다·누다·꽂다·갈다·빻다·찧다·밀다·깎다 등이 있어요. 한 음절짜리 말은 우리 몸에 가장 가까운 동작이나 사물을 표현한 것이에요. 구석기나 신석기 시대의 유물은 대부분 칼이나 도끼처럼 인간의 생산과 관련된 도구예요. 빻다, 썰다, 깎다, 찌르다 등 한 음절짜리 동작을 할 수 있는 도구이고요. 가장 순수하고 원론적인 단어가 인간의 삶을 만들고 문명을 건설했어요. 김소월 시인의 ‘산’을 보면 순수한 동사 4개와 명사 3개를 활용해 자연이 순환하는 모습을 그렸어요. 아주 놀라운 문장이죠. 단순한 언어들이 갖는 힘은 고귀합니다. 한 음절짜리 순수하고 원초적인 언어의 영역으로 어휘를 넓히고 싶은데 뜻대로 될지 모르겠어요.
반대로 쓰지 않을 단어를 공책에 적어놨다고 들었습니다.
사실 젊었을 땐 사전에 있는 단어는 다 써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참 어리석은 생각이었죠. 그런데 내 인생을 통과해 나오지 않은 단어를 쓰는 것은 헛된 소리일 뿐입니다. 그래서 점점 더 쓸 수 있는 단어가 줄어요.
공책에 쓰인 단어는 어떤 것들인가요?
지금까지 제가 버린 단어는 무지하게 많습니다. 아직 버리진 않았지만 쓰기가 머뭇거려지는 단어는 말할 수 있어요. 대표적인 것은 사랑이죠. 다른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쓰니까 따라 써보려고 했는데 주저하다가 결국 못 썼어요. 내 글을 보면 사랑이란 말이 거의 안 나옵니다. 앞으로도 못 쓰고 죽을 것 같아요.
듣지 못하는 시대
“듣기를 통과해 나오지 않는 말을 듣는 일은 괴롭고, 프레임이 빚어내는 말을 듣는 일은 괴롭고, 프레임을 향해서 말을 해야 하는 일은 괴롭고, 말을 해도 들리지 않으리라는 예감은 괴롭고, 전체와 부분에 대한 성찰이 없는 말을 듣는 일은 괴롭습니다. (중략) 말을 하거나 말을 들을 때 말을 오염시키고 있는 정치사회적 조건들을 생각하는 일은 불편하지만 필요한 일입니다. 이 세상을 향해서 어떤 어조로 말해야 하는지를 늘 생각하고 있겠습니다.” -<허송세월> 중 ‘말하기의 어려움, 듣기의 괴로움’에서
책을 많이 읽되 함몰되지 마세요.
글자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징검다리가 되지만 세상 자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인간 세상을 보는 것 같은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게 필요합니다.
작가님은 대상을 깊이 살펴보고 관찰해 간결하게 표현합니다. 대상을 어떤 방식으로 관찰하나요?
관찰은 정말 어렵고 힘듭니다. 눈을 뜨고 바라본다고 해서 다 보이는 게 아닙니다. 볼 시(視)는 두 눈으로 보는 것이에요. 견(見)은 어떤 것을 보고 판단에 도달하는 것이고, 관(觀)은 꿰뚫어보는 것입니다. 사물을 볼 땐 어떤 각도에서 얼마나 떨어져서 보느냐가 문제이고, 세상을 볼 때는 어느 쪽을 향해서 보느냐가 문제이죠. 아주 어려운 문제입니다. 모든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은 쪽을 보면서 그게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말을 걸고 있어요. 마르크스가 보는 세상이 있고 공자가 보는 세상이 있죠. 어떻게 관찰하느냐는 것은 인간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예요.
지금 한국 사회의 문명화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소통 불가를 꼽으셨죠.
우리 사회의 병은 대부분 말병입니다. 지금 우리는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고 말을 하면 할수록 단절되는 시대에 살고 있어요. 기막힌 일이지요.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은 말하기와 듣기로 나뉩니다. 말하기는 듣기를 바탕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상대의 말을 듣지 않으니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죠. 소통이 안 되니까 적대감과 극단적인 언어가 쌓이고 있어요. 듣는 세상이 와야 해요. 상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듣고, 내 마음을 상대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말해야 합니다.
좋은 말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좋은 책을 많이 읽으면 될까요?
현실을 바로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해요. 책을 읽으면 간접 체험을 할 수 있지만 글자 밖에 더 넓은 세상이 있습니다. 사물과 자연, 타인을 통해 배울 수 있고 우리 사회에서 매일 벌어지는 사건, 사고, 사태를 보고 배울 수 있습니다. 책을 많이 읽되 함몰되지 마세요. 글자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징검다리가 되지만 세상 자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읽은 것에 의지하지 말고 처음부터 보세요.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인간 세상을 보는 것처럼 그런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게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부탁합니다.
지금 시대의 젊은이들이 겪는 고통의 대부분은 우리 세대가 만든 것입니다. 우리 세대는 가난을 극복하며 눈부시게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말도 못 할 악을 저질렀어요. 억압, 독재, 비리, 부패가 지금 사회의 밑바닥에 깔려 있어서 젊은이들의 삶이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감당할 일입니다. 우리 세대에게 “당신들이 한 일이니까 책임지세요”라고 말할 순 있지만 소용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제 곧 가니까요. 우리 세대가 식민지, 분단국의 유산을 끌어안고 살아왔듯이 여러분이 끌어안고 가야 합니다. 죄송하지만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어요. 밑바닥에 깔린 악을 해체하는 게 젊은 세대가 해결할 문제입니다.
어떻게 해체할 수 있나요?
주변을 정확하게 들여다봐야 합니다. 기득권들이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길 바라면 안 돼요. 인류사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젊은이들은 기득권층에 문제 제기를 하고 저항하고 해답을 요구해야 합니다. 1970~1980년대엔 많은 젊은이가 목숨을 걸고 독재 정권에 치열하게 저항했어요. 그런데 지금 세대의 젊은이들은 합리적이고 첨단으로 가는 기능은 뛰어나지만 무질서와 혼란을 돌파하는 능력, 난관을 극복하는 열정이 우리 세대보다 현저히 모자랍니다. 저는 젊은 세대들이 저항하고 들이받아 세상을 올바른 방향으로 몰아가기를 바랍니다.
김훈 작가는
1948년생으로 소설가이자 수필가, 문학평론가, 언론인이다. 1973년 한국일보 사회부 기자로 언론인 생활을 시작해 국민일보, 한겨레신문, <시사저널>을 거쳤다. 이후 1995년 장편소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을 발표해 소설가로 데뷔했다. <칼의 노래>(2001)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화장>(2004)으로 이상문학상, <언니의 폐경>(2005)으로 황순원문학상, <남한산성>(2007)으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