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제 권고 용량이 줄어든 이유
여성 교통사고 빈발, 체지방 많은 여성에게 약효 오래가
남녀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개발한 신약이 문제를 일으킨 사례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미국 회계감사원이 1997~2001년에 부작용 때문에 퇴출된 10개의 의약품을 조사한 결과, 8개의 의약품이 여성에게 더 위험한 것으로 밝혀졌어요. 예를 들어 기능성 소화불량 치료제인 시사프라이드는 치료 효과가 우수했지만 여성에게 부정맥, 심장마비 같은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켜 결국 퇴출됐죠. 불면증 치료제인 졸피뎀도 여성에게 치명적인 부작용을 더 자주 일으켰어요. 미국에서 졸피뎀을 복용한 여성 운전자들의 교통사고 유발 건수가 증가해 조사한 결과 성별에 따라 졸피뎀을 흡수하는 비율과 시간이 다르다는 사실을 밝혀냈죠. 졸피뎀은 지방에 잘 흡수되기 때문에 체내 지방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여성의 경우 약물 혈중 농도가 4시간 이상 지속되며 가수면 상태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했던 것입니다. 결국 FDA는 이 약을 처음 복용할 때 여성은 남성의 절반가량만 복용하도록 권고 사항을 바꿨어요.
교수님은 소화기 질환 환자를 진료할 때 성차의학을 어떻게 활용하나요?
성차의학은 연구가 잘된 후 진료 현장에서 응용할 수 있어야 빛이 납니다. 남성은 장에 유익한 미생물이 적기 때문에 뷰티릭산 등 좋은 프로바이오틱스를 많이 복용하라고 권합니다. 또한 대장내시경을 예약하는 여성들에게는 대장내시경 전 장 청소를 아주 잘 해야 한다고 강조해요. 그 이유는 우측 상행 결장에 암이나 납작한 모양의 선종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아 잘 발견하려면 장이 더 깨끗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에요.
김나영 교수가 출간한 책 <제2의 뇌 장 혁명>.
김나영 교수가 출간한 책 <제2의 뇌 장 혁명>.
환자에게 성차의학을 적용해서 성과를 거둔 사례도 있겠지요?
당뇨와 고혈압이 있으면서 체중이 갑자기 줄어들고 허리가 아프다고 호소한 70세 남성 환자에게 골밀도 검사를 권고했는데, 검사 결과 요추 골다공증과 골절이 발견돼 신경외과에 자문을 받아가면서 골다공증 치료를 한 적이 있어요. 또 가슴이 아프고 쓰리다고 해서 위산 분비 억제제를 처방했지만 효과가 애매하다고 한 여성 환자가 있었어요. 협심증 가능성을 생각해 심장내과에 진료를 의뢰했고, 관상동맥 협착이 발견돼 스텐트를 삽입한 후 증상이 좋아졌습니다.
성차의학은 어떻게 발전할 것으로 예상하나요?
우리나라 연구자들은 매우 우수하기 때문에 정부와 학계에서 관심을 가지고 지원하면 성차의학 연구자가 많아지고, 국책 과제 주제로 선정되면 아주 많이 발전하리라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성차의학은 요즘 크게 각광받는 정밀의학의 기본이기 때문이에요. 정부에서 성차의학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수십억 원의 예산을 확보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립니다.
앞으로 어떤 성차의학 연구를 많이 할 계획입니까?
지난 5월에 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자 연구비를 수주해 위암의 성차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어요. 여성은 미만형 위암에, 남성은 장형 위암에 잘 걸리는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쥐와 인간 세포, 조직을 활용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 수용체가 건강한 남녀와 위암 남녀 환자 간에 어떻게 다르게 분포돼 있는지를 관찰하고, 그 활용 방법을 연구할 예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