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안 돼? 안 되는 건 없어”
장마 구름이 걷히고 오랜만에 햇볕이 쏟아지던 7월 어느 날, 서울 종로구 필운동에 위치한 비애이홈 사무실에서 배시정 대표를 만났다. 홍조 띤 수줍은 얼굴로 활짝 문을 열어준 그녀는 한 기업의 CEO이자 두 아이의 엄마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소녀처럼 밝고 해사한 모습이었다.
“시간만 주면 탱크도 만들걸요”
한국 전통문화에 기반해 침구를 포함한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제품을 선보이는 비애이홈은 자연 소재만을 사용하는 것은 물론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계승하며 천천히 반듯하게 나아가겠다는 철학을 가진 기업이다. 문을 연 지 올해로 10년이 된 이곳은 배시훈·배시정 자매가 공동대표로 운영 중이며, 이 둘은 이름난 한복 브랜드 꼬세르(COSER)를 만든 배영진 디자이너의 딸이기도 하다. 동생인 배시정 대표는 미국 뉴욕 파슨스대학교에서 파인아트를 전공하던 20대부터 방학 때마다 꼬세르 사무실에 출근하며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한다. 한국에 완전히 돌아온 26살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원단 개발에 몰두했다는 그녀. 전국의 원단 공장을 찾아가면 문전박대가 일상이었던 과거를 추억하며 지금의 배시정 대표를 있게 해준 문장에 대해 입을 열었다. “꼬세르가 대외적으로는 디자인 회사이지만, 사실 제조를 베이스로 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일하는 사람도 저와 언니 그리고 직원 1명까지 총 3명뿐이라서 모여 앉아 원단을 밤새 한 땀 한 땀 만들어보곤 했죠. 실패는 물론이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던 우리가 지금은 공장까지 차린 것을 보면 어머니가 늘 말씀하시던 ‘왜 안 돼?’를 실천한 것이 가장 잘한 일이 아닐까 싶어요. 맞아요. 저의 마음속 문장은 바로 ‘왜 안 돼? 안 되는 건 없어’랍니다.”
틈 없는 커리어
취미가 일이라고 말할 정도로 자신의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내는 배시정 대표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관으로 등록된 100년 고택 유선관의 리브랜딩 총괄과 더불어 현재 운영까지 맡은 주인공이기도 하다. “힘이 들어 못 하겠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어요. 제 뜻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는 ‘나 안 해’라고 내뱉기도 했죠. 돌이켜 생각해보면, 누구보다 잘해내고 싶었기 때문에 그런 말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원단 제조와 함께 비애이홈을 운영하는 중간중간 생기는 틈새 시간조차 새로운 일로 채우고 마는 배시정 대표. 공동대표인 언니를 포함해 회사의 직원들과도 10년 넘게 함께 일하며 이제는 눈빛만 봐도 모든 걸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라고 말한다. “뭔가를 새롭게 하는 게 좋아요. 물론 고정된 일도 많지만, 새로운 영감이 떠오르면 메모를 하고 제안서를 만든 후 내부 회의에서 다루죠. 재미있는 건, 제가 낸 의견에 언니나 직원들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때마다 저도 모르게 ‘왜 안 돼?’라고 말하고 있더라고요. 그래도 한 가지 자부하고 싶은 건 있어요. 저희 회사는 야근과 휴일 출근이 없습니다. 왜냐면 저도 빨리 집에 가야 하니까요.”
새롭게 시작될 미션
올 초 처음으로 진행한 꼬세르와 비애이홈 팝업을 통해 다양한 고객을 대면할 수 있었다는 배시정 대표는 자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미션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불가능할 것 같다고 여겼던 그 모든 미션을 클리어한 지금, 그녀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잠시 잠들어 있는 꼬세르를 다시 시작해보려고 해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이 담긴 꼬세르의 헤리티지를 새롭게, 그리고 제대로 해보려 준비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문득, 주어진 것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제는 우리가 꾸준히 해온 것을 더 잘해야 하는 시점에 도달한 것 같아요. 물론 더 바빠지고 생각지 못한 난관에 봉착하겠죠. 하지만 괜찮습니다. 전 이제 알고 있거든요. 안 되는 건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