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좋아하지만 고통스럽죠
영화 <넘버3> <살인의 추억> <괴물> <밀양> <택시운전사> <설국열차> <기생충> <브로커>는 배우 송강호가 지난 35년간 함께한 명작들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 송강호가 데뷔 이후 드라마에 처음 도전했다. 스스로 ‘신인 연기자’라고 할 정도로 그에게 긴장되는 도전이었다. 혹자는 “송강호는 유일한 경쟁 상대 송강호를 이겼다”는 평으로 그의 첫 드라마 출연의 결과에 찬사를 보냈다. 그 설레는 여정을 마무리한 그가 언론과 마주했다.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삼식이 삼촌>은 전쟁 중에도 하루 세 끼를 반드시 먹인다는 철칙을 가져 ‘삼식이 삼촌’이라 불리는 사일개발 사장 ‘박두칠’(송강호 분)과 다 같이 잘 먹고 잘사는 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엘리트 청년 ‘김산’(변요한 분)이 혼돈의 시대 속에서 함께 꿈을 이루고자 하는 뜨거운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 <동주> <거미집>의 각본으로 주목받은 신연식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작품이다. 극 중 송강호가 연기한 박두칠은 목표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서슴지 않는 인물로 그려졌다.
배우 인생에서 첫 드라마다.
영화는 2시간 동안 인물의 서사와 캐릭터의 입체감을 임팩트 있게 전달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 그에 비해 드라마는 호흡이 긴 만큼 세밀하고 체계적으로 이것들을 설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덕분에 풍성해진다. 앞으로도 좋은 콘텐츠가 있다면 배역의 경중을 떠나 드라마에 출연하고 싶다. 물론 영화를 안 하겠다는 게 아니다. 이 말은 꼭 써달라.(웃음) 시나리오가 안 들어올까 봐 조마조마하다.
사실 <삼식이 삼촌>은 모두가 손꼽던 기대작이었으나 흥행에 대해선 평이 나뉜다. 자평하자면 어떤가?
아쉬운 게 왜 없겠나. 특히나 글로벌한 소재가 아니다 보니 더 아쉽다. 그럼에도 신연식 감독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시선들은 분명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많은 이들과 소통하지 못했다고 할지언정 드라마의 지표가 넓어졌다는 지점에서는 격려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연식 감독과의 인연은 영화 <거미집> <1승> 그리고 <삼식이 삼촌>까지 이어졌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신 감독에 대해 잘 알아서, 혹은 전작을 보고 이 사람의 매력 때문에 계속 작품을 한다기보다는 결국 ‘인연’인 것 같다. <거미집>을 할 때 약속한 것도, 대본을 미리 받은 것도 아니다. 그래서 결국은 당시 인연이 닿은 거라고 본다. 하고 싶어도 타이밍이 안 맞으면 못 하지 않나.
결국 삼식이 삼촌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마지막에 “피자가 그렇게 맛있던가?”라고 물었을 때 삼식이 삼촌은 “맛없다. 느끼하다”라고 말한다. 결국 우리가 말하는 풍요로움이 과연 물질적인 것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시루떡은 모양은 안 예쁘지만 입안에 들어가면 너무 맛있다. 우리의 이상은 우리 마음에 있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나 싶다. 사실 이런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인터뷰를 하니 말이 술술 나온다.(웃음)
조연 배우들의 연기가 대단했다.
나도 놀랐다. 감독이 캐스팅을 잘한다. 나도 처음 보는 배우가 많았는데, 한국에 좋은 배우가 정말 많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극 중 국무총리로 나오는 배우는 진짜 국무총리 같더라. 연기가 기가 막혔다.
안전한 선택을 본능적으로 거부한다.
누가 봐도 성공할 영화는 공식이 있지 않나.
그 대중적인 공식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작가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에 매력이 있다면 허술해도 도전하게 된다.
변요한, 이규형, 서현우 등 후배들과의 연기 호흡은 어땠나?
거침없이 연기를 한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다들 그랬다. 주저주저하는 게 아니라 거침없이 쭉쭉 연기가 나오는 걸 보고 많이 배웠다. ‘드라마 연기는 저렇게 해야 하는구나’ 하는 자극을 많이 받았다.
데뷔 이후 쉬지 않고 꾸준히 연기를 한다. 그 원동력이 궁금하다.
안전한 선택을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성향이 있다. 누가 봐도 성공할 영화는 공식이 있지 않나. 그 대중적인 공식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어딘가 조금 허술하고 빈틈이 보이지만 작가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에 매력이 있다면 허술해도 도전하게 된다. 그게 꾸준히 연기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결과까지 좋으면 너무 좋겠지만 세상사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결과를 먼저 생각하고 움직이는 건 동력이 안 생겨난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혹자는 “<기생충>이라는 작품으로 큰 상을 받은 뒤에 그런 생각이 들었나?”라고 묻는다. 아니다. 나는 예전에도 그랬다. 그래서 성공도 많이 했지만, 실패도 많이 했다. 결과를 떠나 갈구하는 걸 모색해왔다.
칸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 등 배우로서 큰 업적을 세웠다. 그때의 성과가 배우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없다. 영향을 주어서도 안 된다. 배우라는 직업은 자연인 송강호가 죽을 때까지 함께 가는 동반자적인 직업이다. 그렇다 보니 어떤 목적보다는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과 이야기를 통해 소통할 수 있는 작업을 하는 것이 순수하고 또 유일한 목적이다. 나는 연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오랫동안 해올 수 있었다. 좋아하지만 또 고통스럽다. 물론 기나긴 시간 속에 수상과 같은 벅찬 감동이 있으면 기쁘고 좋겠지만, 그게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배우 인생 중 언제가 가장 행복했나?
별게 없다. 지금 이 순간이다. 대중적으로 소통이 많이 됐을 때도 좋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오늘 같은 인터뷰 자리에서 이 작품이 가진 의도, 배우로서 내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 소통이다. 소통이 따로 있나. 극장에서 관객들이 영화를 보는 것도 소통이지만 이렇게 진지하게 내 삶과 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오래 연기를 하기 위한 철칙이 있나?
안주하지 말자. 문득 안정적인 형식의 시나리오를 그리워하는 시점이 있다. 하지만 결과를 먼저 생각하기보다 형식을 먼저 생각하고 싶다. 예를 들어 <1승>은 결과를 생각하면 선택할 수 없는 작품이다. 풋풋한 아마추어가 모여 만든 만화 같은 이야기다. 심지어 <기생충>으로 큰 상을 받고 돌아오자마자 택한 작품이다. 안주할 것 같았으면 이 시나리오를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고통스러운 순간도 있다. 결과가 의도와 다르게 나타날 때는 나도 사람인지라 고통을 받는다. 하지만 끊임없이 안주하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한 발짝 스텝을 밟아가는 나의 모습을 자꾸 찾게 된다.
이렇게 훌륭한 이력이 있는데,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두려움이 아직 있나?
늘 두렵다. 1989년에 연극으로 데뷔했으니 35년 정도 됐나 보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연기는 두렵고 어렵다. 고통스러운 직업이다. 희열도 있지만, 그 희열을 느끼기까지 똑같은 양의 고통이 수반된다. 창조하고 만들어간다는 게 고통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연기를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랑한다고 얘기 안 했다.(웃음) 사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건 우선 좋아하는 일이니까 그렇지 않을까 싶다. 35년을 했다는 건 좋아하지 않으면 못 한다. 아까도 말했지만 연기라는 작업은 고통스럽다. 그런데도 애초에 좋아했던 감정이 있으니까 오래 할 수 있는 것 같다.
연기가 인간 송강호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기술적인 측면을 생각하다 보면 연기에 대한 허무함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 철학적으로 변한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지?’, ‘왜 이렇게 고통을 받지?’, ‘이게 이렇게 대단한 일인가?’ 하물며 다른 배우를 보면서도 ‘왜 저렇게까지 열심히 할까?’ 하는 생각이 드는 이상한 지점이 있다. 뭔가 관조적인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그런 과정에서 성숙해지기도 한다. 설명할 수 없지만 그래서 더 연기가 농익고 깊어지는 게 아닐까 싶다.
스크린 영화를 고수하다가 이제 시리즈물, OTT 매체 등 다양한 도전을 하는 중이다. 영화 홍보차 유튜브에도 종종 출연한다.
OTT든 드라마든 다양하게 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소통 방식도 다양하게 실험적으로 도전해야 할 시기다. 코로나19라는 거대한 재앙을 거치며 어쩔 수 없이 변화한 것도 있지만 이제는 그것을 떠나 여러모로 풍성해지는 시대다. 박찬욱 감독이 수상 소감에서 그런 말을 하지 않았나. 그럴수록 영화적인 가치가 더 소중해진다고. 영화의 본질적인 가치가 그리워지고 소중해지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느 쪽이 망하고 성공하는 게 아니라 상생하는 것이다. 다양한 콘텐츠가 존중받는 세상이 온 것 같아 반기는 중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다. 그 수식어에 대한 부담감은 없나?
부담감이라기보다는 안주하지 않게 된다. 작품을 선택하는 데 있어 결과가 아닌 조그마한 가치라도 대중에게 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그런 노력을 끝까지 하고 싶다. 그게 부담이라면 부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