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14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공식 석상에 동거인 김희영 티앤씨(T&C)재단 이사장과 동행했다. 파리 루이 비통 재단에서 열린 ‘하나의 지구,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다리 건설’ 갈라 디너 행사였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활짝 웃으며 레드 카펫 포토월 앞에 섰다. 그동안 김희영 이사장은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나, 두 사람이 포토월 앞에서 나란히 포즈를 취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당시 시점은 최태원 회장이 1심 선고에서 사실상 유리한 판결을 받은 후였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김희영 이사장의 행보가 본격화된 것은 1심의 유리한 선고와 함께 ‘SK그룹 사모님’ 자리를 구체화하기 위함이라는 설명이 나왔다. 당시 재계 관계자는 “1심에서 승소한 상황에서 언론에 밝힌 혼외자도 있기 때문에 향후 승계 등을 고려할 때 앞으로 더욱 공개적인 행보를 하려 하지 않겠냐”고 내다봤다.
통상적으로 이혼소송 중 내연녀와의 공개적인 행보는 ‘약점’이 될 수 있다. 향후 재판에서 가정 파탄의 책임을 더 많이 지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심 판결에서 최 회장은 징벌적 판결을 받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이러한 행보였다.
최태원 회장 “내가 김희영에게 이혼하라고 했다”
사실 김희영 이사장의 존재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최태원 회장보다 15살 어린 1975년생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2008년 이혼해 전남편 사이에 2002년생 아들이 하나 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최근 김 이사장은 인스타그램 활동을 꽤나 활발히 했다. 다만 2심 선고가 내려진 이후엔 업데이트가 없다. 그동안의 업데이트 피드를 보면 가수 옥주현, 배우 유태오와 그의 아내인 사진작가 니키 리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딸과의 일상을 스스럼없이 올리기도 하고, 이따금 최 회장과 자신의 뒷모습이 찍힌 사진을 올리며 일상을 공유한다.
그렇다면 최태원 회장과 김희영 이사장은 어떻게 만나게 됐을까? 2017년 최 회장이 이혼 조정을 신청했지만 성립되지 못해 소송으로 이어졌는데, 이 과정에서 김 이사장과 최 회장은 미국에서 심리 상담을 하며 만났다고 한다. 이에 대해 노소영 관장 측은 당시 유부녀였던 김 이사장이 상담을 빌미로 최 회장을 유혹했다고 주장하지만, 최 회장 측은 현 동거인 김희영 이사장은 이혼과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번 2심에서 재판부는 최 회장과 동거인 김희영 이사장의 관계가 시작된 시점은 2008년 11월 이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이사장은 2008년 11월 이혼했는데, 최 회장이 같은 시기 노 관장에게 보낸 자필 편지에 “내가 김희영에게 이혼하라고 했다. 모든 것이 내가 계획하고 시킨 것”이라고 적혀 있는 게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이 기재 내용은 혼인 관계의 유지·존속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고 결정적이다”라며 “만약 최 회장이 노 관장과의 혼인 관계를 존중했다면 도저히 이럴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김희영 이사장은 현재 티앤씨(T&C)재단을 운영 중이다. 최태원 회장 이름의 머리글자 T와 김희영 이사장의 영어 이름 ‘Chloe’의 머리글자 C를 딴 재단이다. 김 이사장은 운영 전반을 맡고 있고, 최 회장은 설립 당시 20억원을 기부하고 이듬해 10억원을 추가 기부하며 힘을 실어줬다. 한 행사에서 어떻게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게 됐냐는 청중의 질문에 최 회장은 “지독한 기업인이었고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했다. 공감 능력이 제로였고 모든 것을 일로 봤다”고 말하며 “그런데 저와 아주 반대인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돈은 전혀 관심 없고 전부 사람이었다. 이 세상에 있는 문제를 통해 사람에게 다가가는 방법이 무엇일까, 이것이 저한테 목표가 됐고 사회적 기업이 무엇인지 배우기 시작했다”고 말하며 김희영 이사장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흔히 재벌들의 송사는 쉽게 이야깃거리가 되기에 직접 나서 입장을 밝히는 경우는 드물다. 승계, 재산, 이혼 등 큼직한 일이 아니면 알려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최태원 회장은 김희영 이사장의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나섰다. 2019년 최 회장은 자신과 김 이사장에 대한 비방 글을 쓴 누리꾼 수십 명을 고소했다. 2021년에는 김 이사장과 관련된 허위 사실을 방송했다는 이유로 한 유튜브 채널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이 사실이 곧장 언론에 알려졌음에도 최 회장은 멈추지 않았다. 지난 3월에도 노소영 관장과의 이혼소송과 관련해 자신에 대한 비방 글을 쓴 누리꾼을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가 사과문을 받고서야 고소를 취하했다. 재벌의 이례적인 개인 고소가 언론에 알려진 사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