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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 세기의 이혼 판결 후폭풍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2심에서 1심을 뒤엎는 판결이 나오면서 세상이 들썩이고 있다. 이에 최태원 회장은 지난 6월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재산분할에 관해 객관적이고 명백한 오류가 발견됐다”며 ‘상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재판부도 판결문 오류를 수정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On July 0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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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은 노소영에게 1조 3,808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에 대한민국 ‘들썩’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부부 사이의 불화가 세상에 드러난 계기는 최태원 회장이 2015년 12월 29일자 세계일보를 통해 6살짜리 혼외 딸이 있다는 사실과 노소영 관장과 이혼하겠다는 편지를 공개하면서부터다.

최 회장은 2017년 정식으로 법원에 이혼 조정 신청을 냈지만 노 관장은 이혼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노 관장은 2019년 12월 태도를 바꿔 이혼에 응하겠다며 맞소송을 냈다.

2022년 12월 1심 선고에선 “최태원 회장이 노소영 관장에게 위자료 1억원, 재산분할로 665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사실상 최 회장의 승리였다.

하지만 지난 5월 30일 2심 선고에선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원과 재산분할로 1조 3,808억여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말 그대로 노 관장의 대역전승이었다. 최 회장이 상고하면서 최종 결론은 대법원까지 가게 됐지만 2심 재판부가 최 회장에 대해 징벌적 판결을 내린 배경에 대해서는 여전히 궁금증과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결정타 된 김옥숙 여사의 메모

이혼소송에서 재산분할은 양 당사자가 결혼한 시점부터 이혼하는 시점까지 늘어난 재산을 놓고 기여도를 따져 분할한다.

상대 배우자가 기여하지 않은 재산이나 물려받은 특유재산은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된다. 특유재산은 ‘부부 중 한쪽이 혼인 전부터 가진 고유재산과 혼인 중 자기 명의로 취득한 재산’으로 정한다. 결혼 전 부모로부터 증여받은 주식, 부동산 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특유재산이라도 유지·관리와 증식에 기여했다면 재산분할 대상이 된다. 이번 이혼소송도 최태원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을 특유재산으로 볼 것인지와 SK그룹 성장에 아내인 노소영 관장이 기여했느냐가 쟁점이다.
최 회장은 자신이 보유한 SK 주식은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으로부터 증여·상속받은 SK그룹 계열사 지분에서 비롯됐으므로 특유재산이기에 재산분할의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2022년 12월 1심 재판부는 최 회장의 SK 주식 대부분은 특유재산이라고 판단해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했다. 아내인 노 관장이 실질적으로 SK그룹 경영에 관여한 건 거의 없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노 관장은 항소하면서 전략을 수정했다. 재산분할 대상을 1조원대 주식에서 2조원대 현금으로 바꾸고 위자료 요구액도 30억원으로 올렸다. 그리고 결혼 후에 아버지 노태우 전 대통령이 비자금을 지원해 SK그룹의 재산 증식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근거로는 노 관장의 어머니 김옥숙 여사가 30여 년 동안 보관해온 비자금 증거를 제출했다. 김옥숙 여사가 보관해온 선경건설(현 SK에코플랜트) 명의의 50억원짜리 약속어음 실물 4장과 사진 2장, 김옥숙 여사가 지인들에게 맡겨둔 비자금 내역을 1998년, 1999년에 적었다는 메모다. 메모에는 “선경 300억원”, “최 서방 32억원” 등이 적혀 있었고, “금고, 방, 별채 그리고 1억원, 5억원, 10억원” 등 구체적인 내용도 담겨 있었다.

2심 재판부는 최 회장 명의의 계좌 거래 등을 보면 과거 SK 주식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최 회장이 선대회장 돈만으로 매입한 것이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고, 1991년 태평양증권(현 SK증권) 인수와 이동통신사업 진출에 보태졌기에 SK그룹이 성장하는 데 노 관장 측 기여가 있다는 주장을 인정했다.

쟁점과 논쟁 총정리

2심 재판장을 맡은 김시철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2022년 2월부터 서울고법 가사2부 재판장을 맡고 있는데 유책 배우자에게 엄격한 판결을 내린 판사로 유명하다. 통상 위자료 액수가 3,000만원을 넘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김시철 부장판사는 지난해 “잘못을 저지른 유책 배우자가 혼인의 순결과 일부일처제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며 무려 2억원의 위자료 판결을 내려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러한 김 부장판사의 성향은 이번 이혼소송에도 그대로 적용됐다는 분석이다. 김 부장판사는 1심에서 책정한 1억원의 위자료가 노 관장이 겪었을 정신적 고통에 비해 지나치게 적다고 했다.

그는 “노 관장과 혼인 관계가 해소되지 않았는데도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과 재단을 설립하는 등 공개적 활동을 지속해 마치 유사 배우자 지위에 있는 태도를 보였다”며 “이처럼 상당 기간 부정행위를 지속하며 공식화하는 등 헌법이 보호하는 일부일처제를 전혀 존중하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이어 “혼인 관계가 해소되지 않았는데도 2019년 2월부터는 노 관장의 신용카드를 정지시키고 1심 판결 이후에는 현금 생활비 지원도 중단했다”며 “김희영 이사장과의 관계 유지 등으로 가액 산정이 가능한 부분만 해도 219억원 이상을 지출했고 가액 산정이 불가능한 경제적 이익도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2심 재판부는 “노소영 관장과 혼인 관계가 해소되지 않았는데도
김희영 이사장과 재단을 설립하는 등 공개적 활동을 지속해
마치 유사 배우자 지위에 있는 태도를 보였다”며
“이처럼 상당 기간 부정행위를 지속하며 공식화하는 등
헌법이 보호하는 일부일처제를 전혀 존중하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재산분할도 노 관장이 1988년부터 아내로서 기여한 부분을 넓게 인정했다. SK 지분을 포함해 최 회장 부부의 합계 재산을 4조 115억원으로 추산하고 분할 비율을 최 회장 65%, 노 관장 35%로 산정했다. 이는 1998년 최종현 선대회장의 사망 이후에도 SK그룹이 20여 년간 큰 성장을 해왔기에 아내로서 내조해왔던 노 관장의 기여가 있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 부장판사의 이번 판결은 재산분할에서 가정주부의 역할을 과거보다 폭넓게 인정하는 최근 법조계의 흐름과도 일치한다는 평가다.

김 부장판사는 “노 관장이 가사와 양육을 전담하면서 일정한 영역의 대외 활동 등을 통해 최 회장의 대체재, 보완재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며 “결과적으로 최 회장의 경영 활동과 SK 주식의 가치 유지 및 증가에 기여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SK그룹 성장 역사에서 노 관장의 아버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역할이 컸다는 점도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SK그룹은 1953년 최태원 회장의 큰아버지인 창업주 최종건 전 회장이 창립한 선경직물회사가 모태로 1980년 대한석유공사(유공) 인수와 1995년 한국이동통신 인수가 결정적 성장의 계기였다. 1980년 당시 선경이 국영기업이자 국내 독점 정유 회사인 유공을 인수한 것을 놓고 “새우가 고래를 먹었다”, “개구리가 구렁이를 삼켰다”는 평가가 많았다. 당시 유공 매출이 선경의 10배가 넘었기 때문이다. 최동규 전 동력자원부 장관이 쓴 에세이집에는 “유공을 선경에 넘기게 한 사람은 보안사령관이었던 노태우야, 나도 몰랐어”라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 말했다는 내용이 나오기도 한다.

이동통신사업 역시 1992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 재임 시절부터 추진됐다. 선경은 1992년 8월 제2이동통신사업자로 선정됐지만 대통령 사돈 기업에 대한 특혜 시비가 불거졌고, 결국 1992년 12월 대선에서 여당 측에 불리할 것을 우려한 김영삼 당시 민자당 후보가 대선 이후 사업자 선정을 주장하면서 일주일 만에 사업권을 반납해야 했다. 하지만 선경은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한국이동통신 지분을 인수하면서 결국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했다.

김 부장판사는 “SK 상장이나 이에 따른 주식의 형성, 가치 증가에 관해 1991년쯤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최 회장의 부친 고 최종현 전 SK그룹 선대회장 측에 상당한 규모의 자금이 유입됐다고 판단된다”며 “1991년 태평양증권 인수 과정이나 1995년 이동통신사업 진출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이 방패막이 역할을 했다고 보인다”고 판결했다.

다만 이번 판결을 놓고 사실상 비자금으로 키워진 SK그룹 자산이 노 관장에게 돌아가는 것이 정의로운 것인가라는 논란은 그치지 않고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수사와 기소를 거쳐 1997년 2,628억원의 추징이 확정됐고, 2013년 이를 완납했다. 결국 수사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추가 비자금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현행법상 반사회적 법률행위에 해당하는 불법 자금으로 증식한 재산은 무효이고 재산분할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반대로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이 2001년 9월 제정됐기에 1991년 있었던 비자금은 소급 적용할 수 없고 공소시효도 지난 상태라는 반론도 있다.

비자금 메모지 승부수로
2심에서 역전승했지만 논란도 지속

‘2심 판결’ 댓글도 뜨겁다

이혼소송 2심 결과를 놓고 기혼 여성들은 통쾌하다는 반응이 많다. 무엇보다도 최태원 회장이 바람을 피웠음에도 오히려 이혼을 요구하고, 동거인 김희영 이사장과 공개 석상에 나서는 등 대한민국 아내들이 격분할 만한 행동들을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최 회장의 행동은 일부일처제를 헌법으로 정하고 혼인의 위중함을 강조하는 우리 사회에서 비난받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 법원이 이혼의 원인을 제공한 배우자가 이혼소송을 제기할 수 없는 유책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이유는 남편의 일방적인 외도로 가정이 깨지는데 아내는 보잘것없는 위자료를 받고 억울하게 축출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그런 면에서 2심 판결은 주부들에겐 ‘정의 구현’으로 느껴질 만하다.

최 회장은 그동안 불륜을 비난하는 댓글을 달았던 악플러와 유튜버 등을 직접 고소하며 주부들의 반감을 키우기도 했다. 최 회장의 고소로 2019년에는 20여 명이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최 회장 측에 사과하고 선처를 호소해 고소가 취하된 3명을 제외하고 대부분 유죄가 확정됐다.

SK그룹이 서울 서린빌딩에 있는 노 관장의 아트센터 나비를 상대로 부동산 인도 등 청구 소송을 낸 것도 이혼소송을 지켜보는 주부들을 자극하는 요소였다. 노 관장은 1990년대 중반까지 육아에 전념하다가 1997년 최태현 회장의 어머니 고 박계희 여사로부터 아트센터 나비의 모태인 워커힐 미술관을 물려받았다. 그리고 2000년 11월 서린빌딩 4층에 아트센터 나비를 개관했다. SK이노베이션은 소송과 관련해 건물 전체에 대한 보수공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아트센터 나비는 2019년 9월을 기점으로 임대차계약이 종료됐음에도 무단으로 공간을 점유하고 있어 소송이 불가피했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최후 승자는 누구일까

최태원 회장 측의 상고로 최종 판단은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사실관계를 다투는 1·2심과 달리 대법원은 법률심으로 2심 재판부가 법리를 잘못 판단하지 않았는지만 살펴본다. 일단 2심 판결에서 승소한 노소영 관장이 우세하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 2022년 우리나라 가사 소송 상고심에서 상고 기각률은 93.6%에 달한다. 2심 판결이 대부분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2심 판결이 특유재산을 재산분할의 대상으로 폭넓게 인정했기에 대법원에서 이 같은 판단이 법률적으로 적절했는지 여부를 다툴 여지는 있다. 또한 2심 재판부가 출처가 불분명하고 사실상 비자금으로 의심되는 자금을 공소시효 만료 등의 이유로 그대로 인정한 것을 놓고서도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또한 위자료로 책정된 20억원의 적절성 여부도 따져볼 수 있다. 위자료 금액이 전례가 없는 액수이기 때문이다.

특히 2심 재판부가 재산분할 계산 과정에서 대한텔레콤(SK C&C) 주식가액을 잘못 계산한 것도 변수다. 2심 재판부는 최 회장의 주장을 받아들여 재판문을 수정했지만 결론은 그대로 유지했다. 하지만 최 회장은 대법원 판례상 파기환송 사유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법원이 파기환송을 할 경우 이혼소송의 최종 결론이 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 법조계의 의견이다.

CREDIT INFO
기획
하은정 기자
취재
육종심(경제 전문 프리랜서)
사진
서울문화사 DB, 일요신문, SK그룹 제공
2024년 07월호
2024년 07월호
기획
하은정 기자
취재
육종심(경제 전문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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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사 DB, 일요신문, SK그룹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