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드라마 배우 브랜드평판 빅데이터 분석 결과 변우석이 1위를 차지했다. ‘대세’를 넘어 ‘신드롬’이다. 변우석은 tvN 월화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로 일약 톱스타 반열에 올랐다.
<선재 업고 튀어>는 최애를 살리려고 시간을 거스르는 타임 슬립 소재를 첫사랑, 청춘 서사와 엮어 유쾌하면서도 사랑스럽게 그려내 시청자의 과몰입을 유발했다. 변우석이 아닌 ‘류선재’는 상상할 수도 없단 말이 나올 정도로 찰떡 캐스팅이었다.
그렇다면 변우석은 벼락 스타인가? 그렇지 않다. ‘고생할 만큼 한’ 배우다. 2016년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로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한 변우석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대본 리딩 후 잘린 적도 있고, 현장에서 욕을 많이 먹어 자존감이 바닥을 쳤던 적도 있었다. 카메라 울렁증과 트라우마도 생겼다. 이게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도 수없이 했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작든 크든 닥치는 대로 작품에 참여한 시기도 있었다. 1년에 10편 이상의 작품을 찍으며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SBS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 MBC <역도요정 김복주>, tvN <모두의 연애>, JTBC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 tvN <청춘기록>, KBS2 <꽃 피면 달 생각하고>, JTBC <힘쎈여자 강남순>…. 단역도 조연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끝에 만난 작품이 <선재 업고 튀어>다.
대본을 본 순간 선재와 사랑에 빠졌다고 말할 만큼 변우석은 선재가 참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선재 업고 튀어>를 쓴 이시은 작가는 미팅을 위해 걸어 들어오는 변우석을 보고 “선재가 걸어 들어오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큰 키와 넓은 어깨, 싱그러운 눈웃음과 보조개까지, 변우석은 이미 현실에서도 ‘선재’였다.
예전에는 팬들에게 다가갈 용기가 없었어요.
괜히 먼저 다가갔다가 그분들이 저에 대해 잘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쭈뼛거렸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제 이름을 먼저 불러주시니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요즘 인기가 대단해요. 이런 걸 ‘신드롬’이라고 하죠?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제 주변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어요.(웃음) 얼마 전엔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제 사진이 걸리기도 하고, 음원 차트에 이클립스(<선재 업고 튀어>에서 선재가 속한 밴드)의 곡들이 올라온 것도 봤거든요. ‘합성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믿어지지가 않았어요.
어떤 감정이 드나요?
이런 순간을 항상 꿈꿔왔는데 막상 현실이 되니 ‘이게 진짜라고?’ 하며 오히려 더 낯설어요. 물론 예전에도 저는 똑같이 작품에 최선을 다했고 그 모습을 좋아해주시는 분이 많았는데, 그럼에도 더 많은 사랑을 주시니까 신기하다는 감정이 먼저 들어요.
일상은 어떤가요?
그럴수록 일상적인 삶을 더 사는 것 같아요. 똑같이 운동하고, 보이스 트레이닝받고, 영화 보고 드라마 보면서요. 자만하지 않고 평소 그대로의 감정을 유지하려고 해요. 그래야 더 발전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동안 작품을 하면서 제가 부족했던 것을 조금씩 채워나가며 선재를 만날 수 있었는데, 이 순간에도 저는 예전과 다를 것 없는 삶을 살아요.
이 인기, 누려도 됩니다.(웃음)
조금 바뀐 건 있어요. 공식적인 자리에 저를 보러 와주시는 팬들에게 좀 더 다가가는 것이 인기를 누리는 저 나름의 방법이에요. 사실 예전에는 다가갈 용기가 없었어요. 괜히 먼저 다가갔다가 그분들이 저에 대해 잘 모를 수도 있고, ‘어어’ 하시며 당황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쭈뼛거렸거든요. 그때는 자신감이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제 이름을 불러주시고 플래카드도 만들어주시며 제게 다가와주니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그렇다고 ‘이젠 다들 내가 누군지 알지?’라는 감정은 아니고요.(웃음) “선재야~” 하고 먼저 불러주시니까 저도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것 같아요.
극 중 캐릭터인 ‘류선재’(변우석 분)는 ‘임솔’(김혜윤 분)에게 그 어떤 조건 없이 무한대의 애정을 쏟아부어요. 팬들도 변우석 배우에게 그런 마음인 것 같아요.
팬들이 저를 좋아하는 게 쉽지 않은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직접 만나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멀리서 제 모습을 보고 좋아해주시는 거잖아요. 그래서 제 이름을 불러주실 때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이렇게 조건 없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이 어렵다는 걸 알기에 그 감정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혹시 어렸을 때 그런 감정을 느껴본 대상이 있었나요? 연예인이나 첫사랑이라든지요.
그냥 저희 집 강아지를 엄청 좋아했어요.(웃음) 성인이 되고 연기를 시작하면서는 할리우드 배우 티모시 샬라메를 너무 좋아했어요. 그가 출연한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8)를 보면 되게 잔잔하게 지나가는 장면이 많아요. 그럼에도 어느 한 장면은 임팩트가 강하더라고요.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이병헌 선배도 연기도 무척 좋아합니다.
<선재 업고 튀어>가 제작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던 작품이기도 해요. 선재 역을 고사했던 남자 배우도 많았고요.
저는 대본을 받자마자 ‘이 작품은 무조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대본을 본 이후부터 저희 회사 이사님에게 매일매일 상황을 물어봤어요. 그만큼 이 작품에 꽂혀 있었다는 표현이 맞을 거예요. 대본을 읽으면서도 ‘이 (좋은) 작품이 내게 왔다고?’ 할 정도로 믿기지 않았어요. 돌아 돌아 이 작품이 제게 온 걸 보면 결국 ‘운’인 것 같아요.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운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있더라고요.
결국 운이다? 그러기엔 이 역할을 너무 잘 소화했어요.
저는 이 작품을 하기 전에도 늘 ‘나는 진짜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어요. 정말 많은 사람이 연기자가 되기 위해 준비하고, 또 그중에는 너무 잘생기고 연기 잘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들 사이에서 제가 꾸준히 작품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운이 좋은 사람이죠. 그래서 최선을 다해 작품에 임했어요. 잘하진 못하지만 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건 분명해요.
그 과정이 쌓여 선재를 만났고, 변우석의 류선재가 만들어진 거죠.
저는 저의 부족한 점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한 작품이 끝나고 다음 작품에 들어갈 때는 부족한 걸 채우려 노력했고, 그런 시간의 반복이었어요. 부족한 걸 먼저 찾다 보면 자존감이 낮아질 수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부족한 걸 채우면 강해지는 거잖아요.
“대본을 읽는 순간 선재와 사랑에 빠졌어요”
로맨스의 특성상 보는 이들이 설렘을 느껴야 하는데, 그 때문에 선재의 비주얼이 화제였어요. 부담은 없었나요?
사실 비주얼에 포커스를 맞추진 않았어요. 대본을 읽으면서 헤어스타일이나 패션 스타일 정도를 생각했지 제 이미지가 어떻게 보일지까지는 생각을 못 했거든요 제 포커스는 연기였어요. 연기를 잘해야 하다는 생각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연기적으로 부족한 걸 채워나가는 데 중점을 뒀어요. 다행히 로맨스 장르라 제작진이 조명이나 반사판 등을 사용해 제 비주얼에 신경을 많이 써주시더라고요. 어떻게든 시청자들이 몰입할 수 있게 노력을 많이 해주셨어요. 아, 그래도 (김)혜윤이와 키 차이 때문에 카메라 감독님이 힘들어하시긴 했어요.(웃음)
어릴 때부터 키가 컸나요? 비결이 뭔가요?
김치 많이 먹고, 우유 많이 먹고, 옛날에 많이들 먹었던 영양제 텐텐도 먹고…. 영양제를 하루에 10개씩 먹기도 했어요. 많이 먹으면 안 좋다고 했는데도 맛있어서 계속 먹게 되더라고요. 키 커서 좋은 건 그냥 더 많은 것이 보인다, 더 멀리 보인다, 더 넓게 보인다 정도요. 장애물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그리고 지하철 탈 때 좀 편한 건 있어요. 사람이 많을 때도 숨쉬기가 편해요. 키가 170cm 정도 되는 제 친구는 숨쉬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던데, 생각해보니까 그런 게 좀 편할 수도 있겠다 싶어요.
상대역인 김혜윤 배우와의 키 차이가 이상적이라는 반응도 많았어요. 설레는 키 차이라고 할까요?
어떤 사람은 선재와 솔이의 키 차이가 많이 나서 보기 좋다고 하는 반면, 안 좋게 보는 사람도 있어요. 연기하면서 서로 시선을 주고받아야 하기 때문에 제가 다리를 벌려 키를 조절할 때도 있었고, 혜윤이가 받침대 위에 올라갈 때도 있었어요.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단순히 보기 좋은 키 차이라고 해서 로맨스의 감정이 극대화되기보다 선재와 솔이의 감정에 더 집중했어요. 그래서 로맨스 신들이 더 잘 나오지 않았나 싶어요.
개인적인 이상형은 키 큰 여자인가요, 키 작은 여자인가요?
어릴 때는 외양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대화할 때 편하고 성향이 잘 맞는 사람이 좋아요. 제가 좀 바보 같은 면이 있어서 현명한 사람이 좋고요.(웃음) 그리고 어른들에게 잘하는 예의 바른 사람이 좋아요. 저는 할머니랑 같이 살았거든요. 그래서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말 나온 김에 할머니 얘기도 해주세요.
어릴 때는 그랬어요. TV 가지고 싸우고, 김치볶음밥 해달라고 조르고….(웃음) 할머니가 엄마 같고 그랬어요.
김혜윤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제가 선재로서 연기할 수 있게 해준 가장 큰 원동력이 바로 혜윤이었어요. 저는 혜윤이가 제게 주는 솔이의 감정이 너무 좋았어요. 그것에 맞춰 선재로서 연기하면 충분히 함께 마주할 수 있는 감정들이 나왔거든요. 혜윤이와 저는 예전에 웹드라마 <전지적 짝사랑 시점>을 찍은 모든 배우가 모이는 자리에서 한 번 인사를 나눈 적이 있어요.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편해진 것 같아요. 특히 이번 작품에선 고교 시절을 먼저 촬영하다가 그 풋풋한 배경에서 서로 장난을 치다 보니 빨리 친해지게 됐어요.
극 중 고교 시절을 촬영할 때는 배경이 2000년대였어요. 복고 감성을 적절히 소환한 것도 드라마의 인기 요인이었죠.
저 역시 촬영하면서 향수를 많이 느꼈어요. 저도 그 당시 비디오 가게에서 비디오테이프를 빌리고, 책방에서 책을 빌려 읽었거든요. 극 중에서 솔이랑 한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듣는 장면이 있었는데, 실제로 제가 고등학교 때 제일 친한 친구랑 등교할 때 그랬거든요. 저는 남자고등학교를 나와서 동성 친구와 그러고 다녔는데, 드라마 영상을 보니 매우 아름답고 멜로스러워서 재미있기도 했고요. 그래서인지 그 시절 친구들도 생각났어요. 아, 싸이월드에서 도토리 모으던 것도 기억났어요.(웃음)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죠? 작품을 선정하는 기준도 궁금해요.
이제야 그런 기준이 조금씩 생기는 것 같아요. 저는 장르나 캐릭터보다 내용이 공감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 좋아요. 물론 그런 작품이 제게 오기까지 오래 걸릴 수도 있겠죠. 그리고 대중이 좋아하는 제 모습도 있을 것이고요. 그럼에도 저는 제가 좀 더 마음이 가는 작품을 선택할 것 같아요. 이번 작품도 화제성에 비해 시청률이 크게 높지는 않았어요. 매번 시청률을 확인할 때마다 ‘진짜 좋은 작품인데 사람들도 좋아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러다가 시청률이 점점 올라가고 포털 사이트 메인도 자주 장식했죠. 그때의 기분은 어땠나요?
“화제성이 좋다”, “많이들 좋아한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듣긴 했지만 피부에 와닿지는 않았어요. 그즈음 전주국제영화제에 참석할 일이 있어 갔는데 현장에서 팬들을 보니 ‘진짜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동안 레드 카펫에 설 때마다 ‘쟤는 누구지?’라는 반응이 있었는데 이번엔 팬들이 많이 와주셨거든요. 그때 인기를 실감했어요.
지금 가장 고마운 사람은 누구예요?
음, 가족은 제외하고 말하자면 아무래도 저희 회사 이사님인 것 같아요. 저와 오랜 시간 많은 얘기를 나눴고, 또 제가 흔들릴 때 저를 잡아줬어요. 제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부족한 부분이 많은데 그럴 때도 제게 많은 얘기를 해주셨어요. 그게 나중에는 오히려 저의 장점이 될 거라고요. 대신 지금처럼 사람을 대할 때 진심으로 대하면 된다고 힘을 주셨어요. 그런 부분이 참 감사하죠.
흔들렸을 때가 슬럼프였던 걸까요?
그렇죠. 오디션도 많이 떨어지고, 현장에서 욕도 많이 듣다 보니 ‘이 일이 나한테 안 맞나’, ‘그만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했어요. 그럴 때 이사님에게 많이 의지했어요. 아마 이사님을 못 만났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확률이 높아요. 지금도 제가 출연한 작품의 모니터링을 가장 디테일하게 해주는 분이에요.
반듯한 사람 같아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지금의 변우석을 보면 뿌듯할 것 같은데, 기억에 남는 지인들의 메시지가 있나요?
제 고등학교 친구가 저한테 “야, 지금 내 주변에 온통 너야” 하면서 “나도 실감이 안 나는데 너는 얼마나 실감이 안 날까?” 하는 거예요. 그 말이 진짜 맞아요. 실감이 안나요(웃음).
덕분에 한동안은 변우석이라는 이름 앞에 ‘류선재’라는 캐릭터가 꽤 오래 붙어 있을 것 같아요. 배우로서 부담은 없나요?
오히려 저는 ‘선재를 이렇게 좋아해주시는데 굳이 선재를 빨리 보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만큼 선재는 제게 너무 소중하거든요. 저는 제 이전 작품들을 계속 보는 편이에요. 과거 캐릭터를 보내기보다는 계속 간직하고 있어요. 제가 연기한 모든 캐릭터는 계속 제 인생과 함께하는, 마치 한 권의 책을 이루는 페이지 같다고 생각해요. 그중에서도 선재는 더 특별하게 느껴지고요.
선재는 왜 특별한가요?
선재를 너무 사랑했어요. 대본을 읽고 연기하는 순간부터 너무 아름다웠고 좋았어요. 그래서 더 보내주고 싶지 않아요.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사람들이 계속 나를 선재로만 봐주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하는 것보다 제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꾸준히 제 단점을 보완하면서 다음 스텝으로 향하는 것이 배우로서의 삶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32살 변우석은 연기 데뷔 8년 만에 꽃을 피웠다. 그 시간이 아름다운 이유는 지금 이렇게 단단한 변우석과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