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의 나이에도 젊음을 유지하는 배우 박영규. 비결은 사랑이다. 2019년 우연한 자리에서 만나 첫눈에 반한 비연예인 여성과 25살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부부의 연을 맺은 박영규는 세상에 어떠한 것도 사랑을 방해할 수 없다는 로맨틱한 마음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다. 최근 채널A 시사·교양 프로그램 <절친 토크멘터리 4인용식탁>에 출연해 네 번째 결혼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한 박영규는 “교제 3개월 만에 프러포즈를 했다”고 밝혀 놀라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세 번의 이혼으로 생긴 아픔을 운명적인 사랑으로 이겨냈다는 스토리 또한 이목을 끌었다. 벚꽃이 만개한 어느 날 마주한 박영규에게 봄의 생기가 느껴졌다. 눈빛에는 총명함이, 언변에는 센스와 생기가 묻어났다. 사랑이 가진 힘이었다.
네 번째 결혼, 운명이었다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밝힌 재혼 스토리가 주목을 받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관심이다.(웃음)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한 번 사는 인생의 운명을 찾아가다 보니 지금에 이르렀다. 방송을 본 지인들에게 많은 질문을 받았다. 아무래도 남들이 걸어가지 않은 길을 선택해 그런 거 같다. 공통된 질문은 네 번의 결혼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누군가는 삿대질을 할 테지만, 항상 마음을 다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고 끝맺음을 한 대상은 없다. 그게 내 철칙이다.
특히 25살의 나이 차를 극복한 사랑이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평소 친분이 있는 작가가 오피스텔 분양 소식을 전해줬다. 좋은 매물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말하고, 담당자 연락처를 전달받았다. 성함을 보니 여성이었다. 다음 날 분양 사무소에 가서 담당자를 만났는데, 첫눈에 반했다. 그 담당자가 지금의 아내다. 우여곡절을 겪었다. 우선 처음엔 그 사람이 기혼인지,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몰라서 모든 게 조심스러웠다. ‘돌싱’이라고 하더라. 그런데 나이가 너무 어렸다. 감당하기엔 두려움이 생기더라. 그런데 마음이 생기니 멈출 수가 없었다. 대화라도 하기 위해 일단 오피스텔을 계약했다. 분양 상담소에서 홍보를 도와주면 점수를 따겠다 싶었다.(웃음) 작품 촬영으로 바쁜 시기였는데, 틈틈이 사무실을 찾아갔다.
풋풋한 청춘의 러브 스토리 같다.(웃음)
신기하게도 사랑이 나이를 잊게 만든다. 지금의 아내와 연인으로 관계가 발전되고 결혼하기까지 과정을 돌아보면 그렇다. 보고 싶은 마음을 참다가 고민 끝에 문자메시지 한 통을 보내고, 돌아온 답장에 설렘을 느꼈다. 아내와 연애할 때 밤을 지새우며 전화 통화를 하기도 했다. 이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살 수 있을 거 같았다. 교제를 시작한 지 3개월 즈음, 혼자 딸을 키우고 있던 아내에게 “다른 건 몰라도 당신의 딸을 내 딸처럼 잘 키워보겠다”고 약속하면서 청혼을 했다.
지금의 결혼 생활은 어떤가?
알콩달콩한 5년 차 신혼이다.(웃음) 집 밖을 나서는 순간 아내와 손을 잡는다. 어디를 가든 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 무엇보다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이 참 재밌다. 인생에 재미가 없으면 안 된다. 재미가 있어야 사랑이고, 재미가 있어야 행복한 삶이다.
박영규는 1983년 대학 후배와 결혼해 그해 아들을 품에 안았다. 그리고 1996년 아들과 함께 미국행을 선택한 아내와 이혼 절차를 밟게 된다. 이듬해 박영규는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유명 의상 디자이너와 재혼한다. 그러나 당시 배우자가 기나긴 투병 생활을 하게 되면서 먼저 이혼을 언급했고, 박영규는 그런 아내의 뜻을 어렵게 받아들여 3년 만에 각자의 길을 걷기로 한다. 이후 2004년 비연예인 여성과 만난 박영규는 2017년 세 번째 결혼 생활을 마무리하고, 2019년 지금의 아내와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다. 이혼을 경험한 모든 사람이 그렇듯 박영규 또한 단 몇 줄로 설명하거나 요약할 수 없는 이유로 이별을 선택했다. 세 번의 이혼은 그에게 뼈아픈 경험으로 남았지만, 인간으로서 성장하게 한 발판이 되기도 했다.
이혼을 결심하기까지 매번 쉽지 않았을 듯하다.
이혼은 지극히 부부의 영역이다. 아무리 제3자가 개입해도 내막을 전부 아는 사람은 당사자밖에 없다. 나 또한 미디어를 통해 이혼 사유가 공개됐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나와 상대방만 안다. 세 번의 이혼으로 깨달은 건 ‘만남은 쉽지만 헤어짐은 어렵다’는 것이다. 한때 삶의 동반자이던 사람과 각자의 길을 걷는 게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헤어짐을 결정했다면 깨끗하고 분명하게 끝맺음을 해야 하지만, 결코 녹록지 않다.
일련의 과정이 본인에게 상처로 남았을 거 같다.
내색하지 않으려 했을 뿐 매번 힘들었다. 집안의 가장으로서 가정을 이끌고, 가족 구성원을 책임지는 책무를 제대로 해내지 못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에 계속 뒤를 돌아보게 됐다. 그래서 더 끝까지 도리를 다하려고 노력했다. 부부의 연은 여기까지지만, 가장으로서 내가 지켜야 할 도리를 지켰다고 자부할 만큼 책임을 지려고 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바라보든 비겁하지 않고, 떳떳하게 내 할 일을 했다. 더불어 결혼 생활에 실패했던 경험과 상처를 잘 새기고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뒤를 돌아보는 것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이혼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많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
감내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미디어에 노출되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다. 기왕이면 “박영규처럼 살고 싶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다. 지금까지 나의 사생활이 어떻게 비쳐졌든 귀감이 돼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배우 박영규이기 전에, 인간 박영규의 삶을 잘 살아야 나의 활동에 진정성이 부여될 거라 믿는다. 그럼에도 이혼 소식을 전할 때마다 대중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 신경이 쓰이긴 한다.
어떻게 극복해가고 있나?
내가 선택한 인생이니까 감당해야 할 운명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 자신이 잘했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러나 내 감정을 숨기고 사는 것보다 나은 선택이었다. 사랑 없이 부부 관계를 유지하는 것만큼 고통이 있을까 싶다. 주변을 둘러보면 자식 때문에 참고 산다는 부부가 많다. 하지만 자녀에게도 솔직해야 한다. 부부의 감정이 곪을 대로 곪은 상태라면 자녀도 건강하지 못하다.
세 번의 이혼이 본인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역설적이게도 다시 사랑할 수 있는 힘이 됐다.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삶에 내용과 깊이가 생겼다. 이별로 생긴 상처가 아물고 그 자리에 새로운 살이 돋아나는 것을 목격해왔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감정을 느끼고 용기 내어 사랑을 시작하면서 더 깊은 감정을 느끼게 된 것 같다. 매번 새로운 삶을 사는 기분이다.
‘잘 헤어진다’는 건 뭘까?
끝까지 상대방의 행복을 빌어주며 이별하는 것. 결국 각자의 삶을 살기로 했지만, 자신이 선택해 인생의 한 궤적을 함께한 사람이지 않나.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려면 상대방이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한다. 그 사람이 행복해야 내 자존심이 사는 거다. 진짜 자존심은 그런 순간에 부리는 거라고 생각한다. 사랑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가 마찬가지다. 뒷모습이 상처가 돼선 안 된다. 타인에게 입힌 상처는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세상의 이치가 그렇다.
역설적이게도 세 번의 이혼을 통해 다시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삶에 깊이가 생겼다.
이별로 생긴 상처가 아물고 그 자리에 새로운 살이 돋아났다.
이별을 통해 사랑을 배웠다
이별을 통해 사랑을 배웠다는 박영규. 그 중심엔 세상을 먼저 떠난 아들이 있다. 박영규는 2004년 첫 번째 아내와 사이에서 얻은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었다. 당시 한국에서 왕성하게 활동을 이어가던 박영규는 아들이 거주하고 있던 미국으로 향했고, 이후 방송 스케줄을 정리한 뒤 돌연 캐나다로 떠났다. 약 5년간 활동을 중단했던 박영규는 2009년 다시금 대중 앞에 섰다. 이후 한 토크쇼에 출연해 아들의 이야기를 전하다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려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부모는 산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했다. 아들을 떠나보낸 지 어느덧 20년이 흘렀지만, 박영규는 여전히 가슴 한편에 아들에 대한 기억과 사랑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다. 아들에게 못다 표현한 사랑은 2019년 재혼과 동시에 얻은 소중한 딸에게 전하고 있다. 하나뿐인 아들과의 이별, 그리고 선물처럼 찾아온 하나뿐인 딸과의 만남이 그를 살아가게 하는 큰 원동력이다.
재혼이 어려운 이유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이 ‘자녀’라고 한다.
아내와 결혼 이야기를 나눌 당시 딸이 12살, 어린 나이였다.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내에게 나를 믿고 딸을 맡겨달라고 당부했다. 딸을 처음 만나기 전 내가 살아온 인생을 돌아봤다. 신이 내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신 거라 생각했다. 아들이 살아 있을 때 충분히 하지 못했던 부모의 역할을 딸에게 다하리라 다짐했다. 가장 큰 건 사랑이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으로 키운다는 말이 있지 않나. 그 말이 뭔지 몸소 보여주고 싶었다.
딸과 친해지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궁금하다.
그동안 딸에게 아빠의 빈자리가 있었고, 나의 존재가 낯설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나를 친근하게 맞이해주더라. 당시 딸이 고전무용을 배우고 있었다. 대회에서 수상할 만큼 실력은 있었으나, 정작 딸은 무용을 즐기지 못하고 힘들어 보였다. 딸에게 힘이 되고 싶었다. 아빠로서, 어른으로서 인생에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설명했고, 아빠가 끝까지 믿고 그 길을 함께 걸어가겠다고 약속했다. 처음부터 무한한 믿음을 보여주려고 했다. 긴 대화 끝에 함께 다른 진로를 모색하기로 했다. 딸이 중학교에 진학한 뒤에 공부를 시작했다. 기본기부터 다지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곧잘 따라줬다. 고등학교 2학년인 지금은 학급에서 4등을 할 정도로 성적이 우수하다.
특히 사춘기 시절엔 아빠의 훈육이 중요하다. 본인만의 방법이 있나?
대화를 충분히 나눈다. 주제에 따라 단호한 어조로 말할 때도 있고,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할 때도 있다. 가장 중요한 건 대화 타이밍이다. 딸에게 전해야 할 말을 충분히 정리하고 대화를 요청한다. 보통 화장실에서 손을 씻으면서 마음을 다잡는 거 같다.(웃음) 차근차근 충분히 대화를 나누면 설득이 되더라.
하나보다 둘이 낫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혼자 살기 힘들다.
아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지독한 외로움과 절망을 경험했다.
땅바닥에 발을 딛고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열심히 살아온 대가가 고작 이건가 싶었다.
대상 없는 원망을 했다.
그런 시간을 지내다 보니 어떤 슬픔에도 견뎌낼 힘이 생겼다.
그 힘으로 다시 살아가고, 자연스럽게 사랑을 찾아가게 됐다.
그럼에도 다시 사랑하는 이유
일흔의 나이에도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 비결이 뭔가?(웃음)
일단 하나보다 둘이 낫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혼자 살기 힘들다. 주변의 사례만 봐도 그렇다.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했을 때 일종의 위기감을 느낀다. 무엇보다 아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지독한 외로움과 고난을 경험했다. 당시 땅바닥에 발을 딛고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삶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20살에 서울로 상경해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 버티고 살았는데, 열심히 살아온 대가가 고작 이건가 싶었다. 대상 없는 원망을 했던 거 같다. 크나큰 고통이었지만, 그런 시간을 지내다 보니 어떤 슬픔에도 견뎌낼 힘이 생겼다. 그 힘으로 다시 살아가고, 사랑을 찾아가게 됐다.
사랑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감정에 솔직해야 한다. 나는 사랑을 시작할 때 내 감정을 면밀히 살핀다. 인간적인 관심인지, 이성적 호감인지 천천히 들여다본다. 진짜 이 여자를 사랑하는지 한 발자국 떨어져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젊은 날의 사랑은 가슴이 뛰고, 사랑에 대한 열정을 느끼고, 헤어지면 가슴이 시리다. 그런데 지금 하는 사랑은 소소한 행복이 전부인 거 같다. 함께 있을 때 행복한 사람을 만나는 게 최고다. 같은 맥락에서 아내와의 결혼 생활에서 느끼는 행복이 크다. 대화가 잘 통한다는 느낌에서 오는 편안함, 서로가 재미있어 하는 주제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시간이 점점 중요해진다.
신혼 같은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팁을 전수한다면?
부부 사이에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거다. 서로에게 긴장하지 않으면 안주하게 돼 있다. 오래 살아도 변하지 않는 부부들을 보면 서로의 존재를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진다. 약간의 긴장감을 바탕으로 상대가 좋아하는 일을 행하고, 싫어하는 일은 가급적 피하는 게 사랑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마음을 쓰는 만큼 상대방도 변한다. 서로에게 정성을 다해야 한다.
부부 관계가 늘 좋을 순 없다. 다툼은 어떻게 해결하나?
시간적 여유를 갖고 천천히 대화를 한다. 자녀 훈육과 마찬가지로 밀어붙일 때는 밀어붙이고, 양보할 때는 확실히 양보해야 한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상대방의 기준과 선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적정선과 합의점을 찾아야 다툼이 반복되지 않는다. 지금의 아내와도 거쳤던 과정이다. 그래서인지 다툴 일이 없다. 서로에게 최적화된 상태다.(웃음)
사랑으로 얻는 힘은 뭔가?
늙지 않는다. 지금도 나이를 잊고 산다. 이따금 또래 친구를 만날 때마다 나이를 체감하곤 한다.(웃음) 부부 관계가 화목한 친구들은 나이에 비해 젊게 사는 것 같다. 반대로 아내에 대해 부정적 이야기만 털어놓는 친구들은 생기가 없다. 나는 부정적인 말엔 공감조차 하지 않는다. 아내와 잘 살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고, 그렇지 않다고 해서 아내를 흉보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더불어 천천히 나이 들고 싶어서 체력 관리를 더 열심히 하게 된다. 하루에 최소 만 보 이상을 걷는다. 홈트레이닝을 할 때는 하루 세 번, 한 시간씩 러닝머신을 뛴다. 헬스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아내와 딸과 함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랑하면서 살고 싶다.
박영규에게 사랑이란?
주어진 운명이다. 지나온 시간들을 자랑이라고 할 순 없지만, 운명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았다. 찾아온 시련과 아픔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니 지금처럼 좋은 날을 맞이하게 된 게 아닐까. 딸이 책가방을 메고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외치면서 집을 나설 때, 눈물이 핑 돈다. 내 인생에 없을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무슨 복을 만난 건가 싶다. 지금 누리고 있는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다. 비로소 내 인생을 찾은 기분이 든다. 지나온 삶을 통틀어 현재가 가장 행복하고 재밌다.
인생을 돌아보면 어떤가?
인생은 후회의 연속이다. 하지만 후회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지나간 일이라는 얘기다. 후회를 발판 삼아 미래를 잘 그려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흔히 사람의 천성은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타고난 기질을 바꾸진 못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단점을 고치려고 노력하는 과정을 거쳐 더 나은 미래를 살면 그게 발전이 아닐까. 수많은 좌절을 딛고 살았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내가 많이 부족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은 없다. 틀려봐야 맞는 것이 뭔지 아는 거다. 옳고 그름을 하나씩 깨우치면서 사는 것이 인생인 거 같다.
끝으로 박영규의 최종 목표가 궁금하다.
이젠 가정을 잘 지키고 싶다. 배우 박영규와 인간 박영규를 돌아보면 실패의 경험이 먼저 떠오른다. 가정을 잘 꾸리지 못했던 과거를 떠올리면 가슴이 아프다. 그래서 가정을 잘 지키고, 아내와 최선을 다해 사랑하면서 살고 싶다. 더불어 자식을 잘 키우는 것이 인생의 큰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오랜 시간 가장 소중한 가치로 여겼던 자식 농사를 잘 마무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