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3월 29일 별세했다. 효성그룹은 소비재가 없고 기업에 납품하는 B2B(Business-to-Business) 위주로 사업을 하다 보니 그 위상에 비해 이름이 덜 알려졌다. 하지만 레깅스의 소재인 스판덱스, 타이어에 들어가는 타이어코드 등은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이 상당한 수준이다. 한때 재계 서열 10위 이내에 들 정도로 사세가 커지기도 했다.
효성그룹을 물려받아 성장시킨 조석래 명예회장 별세 이후 그가 남긴 상속재산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재계의 관심이 쏠린다. 효성그룹은 드라마에서 나오곤 하는 형제간의 갈등, 부자간의 갈등이 발생한 적이 있는 일가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형제의 난’을 일으켰다가 아버지와 의절한 차남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은 지난 3월 30일 고인의 빈소에 5분간 머물다 자리를 떴다. 그는 4월 2일 발인과 영결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류분반환청구소송을 통해 상속 지분 권리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에 재계는 효성그룹 3형제의 상속재산 배분에 주목하고 있는 것.
조석래 회장 별세로 다시 거론되는 ‘형제의 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남긴 (주)효성 지분율은 10.14%다. 주요 계열사 보유 지분율은 효성중공업 10.55%, 효성첨단소재 10.32%, 효성티앤씨 9.09%, 효성화학 6.16% 등이다. 조석래 명예회장이 보유한 주요 계열사 지분 가치만 주가 기준 7,000억원이 넘는다. 여기에 현금과 비상장 계열사 주식, 부동산 등을 더하면 상속재산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상속세만 4,000억원이 넘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가장 보편적인 상속 방법은 유족 균등 상속으로, 가장 잡음이 없다. 고인의 배우자 송광자 여사를 비롯해 조현준·현문·현상 3형제가 법정상속분(배우자 1.5, 자녀 각각 1)대로 지분을 나누는 방식이다.
가장 큰 변수는 조석래 명예회장의 유언장이다. 재계는 고인이 형제의 난을 일으킨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을 상속 대상에서 배제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2014년 조현문 전 부사장은 아버지와 형의 경영 방침에 문제가 있다며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조현문 전 부사장은 함께한 임원들과 사직서를 제출하며 항의했지만, 조석래 명예회장이 장남 조현준 회장(당시 사장)의 손을 들어주면서 정리됐다.
하지만 이때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회사 비위들이 밖으로 새어나가면서 검찰 수사를 받는 등 효성그룹의 후폭풍은 상당했다. 조현문 전 부사장이 조현준 회장을 비롯해 주요 임원진의 횡령 및 배임 의혹을 주장하며 검찰에 고소·고발을 이어갔기 때문. 조석래 명예회장은 비서진을 대동해 조현문 전 부사장의 집을 찾아가 만나려 했지만 부재중이라 만나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조현문 전 부사장이 물려받은 계열사 지분을 전부 매각해 경영권이 흔들리기도 했다.
이후 조현문 전 부사장은 가족들과 사실상 의절했지만 갈등은 끝나지 않았다. 조현준 회장도 2017년 조현문 전 부사장을 공갈 미수 등의 혐의로 맞고소하며 형제간 불화는 극으로 치달았다. 해당 고소로 조현문 전 부사장은 2022년 11월 불구속 기소됐는데, 이때 2013년 조석래 명예회장과 조현준 회장을 상대로 “검찰에 비리를 고발하겠다”며 자신이 회사 성장의 주역이라는 내용의 보도 자료를 배포할 것을 요구한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기도 했다.
불편한 관계는 빈소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아버지의 영정 앞에서 1분간 묵념한 조현문 전 부사장은 조현준 회장과 짧은 대화를 나눈 뒤 자리를 나섰는데 “무슨 대화를 나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일절 답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의절한 둘째에게 갈 몫은?
‘유언장’ 주목
변수는 유류분반환청구소송
형제의 난 이후, 검찰 수사를 받게 되면서 조석래 명예회장은 경영에서 손을 뗐다. 이후 장남과 삼남을 중심으로 후계 구도를 얼추 정리해놨다. 효성티앤씨를 비롯해 효성중공업, 효성화학 등의 경영권을 장남 조현준 회장에게 주고, 타이어코드 사업을 하는 효성첨단소재를 삼남 조현상 부회장에게 맡기는 구도였다. (주)효성 지분율을 각각 21.9%, 21.4%로 비슷하게 주며 장남과 삼남 사이에서 불거질 수 있는 경영권 분쟁의 싹을 비교적 깔끔하게 정리했다.
최근 효성그룹의 행보 역시 ‘보다 깔끔한 정리’로 나아가는 모습이다. 효성그룹은 지난 2월 신규 지주회사 (주)효성신설지주(가칭) 설립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효성첨단소재 등 6개사를 중심으로 하는 (주)효성신설지주는 조현상 부회장이 경영하게 된다. 기존 지주회사 (주)효성은 조현준 회장이 계속 이끈다. 2개 지주회사 독립 경영 체제로 가는 것을 놓고 계열 분리 전 단계로 해석하는 대목이다.
조석래 명예회장의 유언장에 이 같은 내용을 토대로 한 ‘조현문 전 부사장 배제’가 담겼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범효성가의 특징 중 하나가 아버지에게 반기를 드는 자식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인데, 심지어 장례식장 유족 명단에도 조현문 전 부사장의 이름은 올라가지 않았다.
재계 관계자는 “조석래 명예회장은 효성그룹 창업주인 고 조홍제 회장이 ‘시비와 송사는 망조’라고 강조했던 만큼 자식 대에서도 경영권 분쟁의 여지를 차단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3형제에게 (주)효성 지분을 각각 7%씩 동일하게 줬는데 형제의 난이 발생한 것 아니냐”며 “가훈과도 같은 기치를 흔들고 회사를 위기에 빠지게 했기 때문에 조현문 전 부사장의 몫을 사전에 차단하려 했을 수 있다”고 예측했다. 실제로 재계에서는 조석래 명예회장의 배우자 송광자 여사가 조현준 회장에게 지분을 몰아주는 쪽으로 지분 상속의 교통정리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조현문 전 부사장의 유류분반환청구소송 가능성은 변수다. 통상 상속 과정에서 유류분은 유언보다 앞선다. 고인이 제3자나 기관에 유산을 기부하겠다고 유언장을 작성해도 배우자나 자녀가 자신의 몫을 주장하면 유류분반환청구소송을 통해 일정 부분을 받아낼 수 있다. 특히 재계 오너 일가의 경우, 상장 주식처럼 드러나는 재산 외에 비상장 주식이나 미술품 등 고액의 상속재산이 존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계열 분리와 지분 상속, 세금 납부 과정에서 총수 일가 내 갈등이 불거질 여지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효성그룹을 둘로 나눠 물려준 게 아니라 대등하게 지분을 주면서 계열사를 일부 정리해 경영하도록 한 것이고, 조현문 전 부사장이 변호사인 만큼 법적으로 얼마든지 유류분을 요구할 여지가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