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의 경영 스타일
이명희 총괄회장은 그동안 전문 경영인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는 경영 스타일을 고수해왔다. 그녀는 2005년 사보를 통해 직원들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경영 방침을 발표했다. 당시 사보에서 “오너의 경영 방침을 가장 잘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전문 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고 인재를 뽑아 육성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밝혔다. 이는 이명희 총괄회장의 아버지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가르침 덕분이다. 이병철 창업주는 ‘의인물용 용인물의(疑人勿用 用人勿疑·사람을 믿지 못하면 아예 쓰지를 말고, 일단 사람을 쓰면 의심하지 마라)’라는 경영 철학으로도 유명하다.
사실 이명희 총괄회장은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1943년생인 그녀는 이화여고를 거쳐 이화여대 생활미술학과를 졸업했고, 1967년 정재은 신세계그룹 명예회장과 결혼했다. 하지만 이병철 창업주가 36살이 된 막내딸 이명희에게 경영을 맡기면서 1979년 신세계백화점 영업본부 이사로 경영 수업을 시작했고, 1980년 상무로 승진한 뒤 1997년 부회장에 올랐다. 신세계가 삼성그룹으로부터 계열 분리하자 1998년 말 남편으로부터 회장직을 받았다.
이명희 총괄회장에 따르면 1979년 첫 출근 전날 이병철 창업주는 그녀를 불러 “서류에 사인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라는 뜻이었다. 대신 믿지 못할 사람은 아예 쓰지 말라고도 강조했다. 신세계그룹은 1997년 삼성그룹에서 계열 분리했고, 이후 고속 성장을 지속했다.
당시 신세계의 성장은 이명희 총괄회장이 믿고 맡긴 ‘전문 경영인’ 구학서가 이끌었다. 삼성 출신인 구학서 대표는 맏언니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과 영입 경쟁 끝에 데려온 인물이었다. 그는 1996년부터 신세계 경영지원실 전무이사를 맡았고, 사장, 부회장, 회장을 차례로 역임한 후 2015년 고문으로 물러났다. 이명희 총괄회장은 2005년 사보에서 “신세계는 내가 사업의 큰 틀을 잡으면 구학서 사장이 실질적인 경영 방침을 제시하고 각 부문의 대표 등 전문 경영진이 회사별로 전략을 수행하는 경영 방식을 택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구학서 대표가 물러난 2015년부터 ‘정용진 시대’가 시작됐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용진 회장의 경영 능력에 대해 여전히 의문부호가 그치지 않고 있다. 정 회장이 주도적으로 벌였던 사업 가운데 상당수가 실패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중저가 할인 잡화점 ‘돈키호테’를 벤치마킹해 2018년 6월 선보인 삐에로쑈핑은 결국 2020년 사업을 접었고, 2016년 190억원을 들여 제주소주를 인수해 시작한 소주 사업 역시 여섯 차례의 유상증자로 670억원을 추가 투자했으나 결국 2021년 6월 정리해야 했다. 호텔 사업 레스케이프 역시 부진했다. 결국 이명희 총괄회장의 마지막 과제는 자신의 아들과 딸을 보좌해줄 ‘제2의 구학서’를 찾는 일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오빠인 이건희 선대회장과도 각별한 사이였다.
남매는 함께 남산을 산책한 적도 있고,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어깨동무를 할 정도였다고.
이건희 선대회장은 이명희 회장을 “장미처럼 자란 막내”라고 표현했다.
남달랐던 이병철 창업주의 막내딸 사랑
이명희 총괄회장의 아버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는 박두을 여사와 사이에 인희(딸), 맹희(아들), 창희(아들), 숙희(딸), 순희(딸), 덕희(딸), 건희(아들), 명희(딸) 등 3남 5녀를 두었다.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이 이명희 총괄회장을 두고 “장미처럼 자란 막내”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이병철 창업주의 막내딸 사랑은 남달랐다. 젊은 시절 이명희 총괄회장은 아버지가 사무실에서 먹을 과일을 먼저 맛본 뒤 아버지가 좋아하는 정도의 당도인지 확인하고 들여보내곤 했다고 전해진다.
2005년 신세계그룹은 신세계백화점 본점 신관 개관을 앞두고 발간된 자사 사보에 이명희 총괄회장이 ‘아버지 이병철 회장과 나’란 제목으로 직접 쓴 14페이지에 이르는 분량의 칼럼과 부녀가 다정한 모습으로 함께 찍은 사진을 대거 공개하기도 했다. 이명희 총괄회장은 칼럼에서 “형제들은 아버지를 차갑고 냉정한 경영자로 기억할지 모르지만 내게는 따뜻하고 인자했던 분”이라면서 “15년간 조석으로 통화했고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뭐 하노?’였는데 이는 ‘어서 오라’는 가장 부드러운 말씀”이라고 전했고, 어딜 가든 거의 동행했고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또한 “아버지는 섬세하고 여성적인 면이 있어 화려한 넥타이와 핑크색 와이셔츠를 즐겼는데, 나는 아버지를 위해 핑크색 단추를 달아 화려한 와이셔츠를 만드는 등 감동을 드리기 위해 계속 생각하고 실천했다”고 밝혔다. 또한 “체질, 성격, 취향, 생김새, 음식 등 아버지와 나는 모든 면에서 많이 닮았다”며 “다시 생각해도 애틋한 부녀지정”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명희 총괄회장은 경영자로서 아버지로부터 메모하는 습관을 배웠다고 강조했다. “아버지는 지독한 메모광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나도 메모하는 습관을 배우게 됐고 형제 중 가장 많은 수첩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1979년 신세계에 첫 출근할 당시 받았던 지침도 공개했다. “아버지가 나를 불러 몇 가지 지침을 주셨다”며 “‘서류에 사인하지 마라’, ‘어린이의 말이라도 경청하라’, ‘알아도 모르는 척하고, 몰라도 아는 척하지 마라’, ‘사람을 나무 기르듯 길러라’라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사후에도 그녀는 아버지에 대한 각별한 정을 보였다. 삼성그룹과 CJ그룹이 갈등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도 아버지의 기일마다 빠짐없이 제사에 참석했다.
이건희 선대회장, “장미처럼 자란 막내”
부녀간뿐만 아니라 남매간에도 우애가 깊었다. 맏아들인 고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은 회고록 <묻어둔 이야기>에 “부친으로부터 눈 밖에 나서 유랑 생활을 하던 내가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말을 못 하고 있으면 늘 지갑을 열고 가지고 있던 돈 전부를 나에게 쥐어준 것도 명희였다”며 “명희는 내가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주었고 늘 따뜻한 마음씨로 나를 감싸주었다”고 적었다. 또한 “아버지가 나에 대해서 부정적인 평가를 하면 마지막까지 내 편을 들어서 아버지를 설득하려 한 것도 명희였다”며 “나는 경제적으로 명희 덕을 많이 봤다”고 회고했다. 이명희 총괄회장은 실제로 이맹희 명예회장의 장례식장을 연속으로 두 번이나 찾았다. 조카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만성질환을 겪는 상황에서 징역형을 받자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건희 선대회장과는 각별한 사이였다고 한다. 남매는 함께 남산을 산책한 적도 있고,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어깨동무를 할 정도였다고. 이건희 선대회장은 집안일에 대한 의견을 묻기 위해 이명희 총괄회장을 집으로 부르기도 했다.
사촌 오빠인 이동희 전 제일병원 이사장은 자서전에서 “어린 시절에는 애굣덩어리였고 나이가 들어서는 매사를 깔끔하게 처리해서 누구나 명희를 좋아했다”고 밝혔다.
이명희 총괄회장은 국회의원 출신이자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 사장을 역임한 정상희 씨의 아들 정재은 신세계그룹 명예회장과 중매로 만나 결혼해 아들 정용진과 딸 정유경을 낳았다.
다만 정용진 회장과 배우 고현정의 결혼, 이혼 등과 관련해 이명희 총괄회장은 여러 루머와 함께 ‘무서운 시어머니’라는 이미지로 대중에게 인식된 상태다.
정 회장은 2011년 플루티스트 한지희 씨와 재혼해 경기도 성남시 판교의 단독주택에 신접살림을 꾸렸고, 2012년 12월 쌍둥이를 낳았다. 이명희 총괄회장 옆집으로 이사한 것은 2018년이다.
이명희 총괄회장 딸인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은 2001년 소프트뱅크코리아를 다니던 문성욱 씨와 결혼했다. 문성욱 씨는 문청 전 KBS 보도본부장의 아들로 현재 신세계인터내셔날 부사장이다. 정유경 총괄사장은 2녀를 뒀는데 큰딸 문서윤 씨는 미국 컬럼비아대를 졸업하고 현재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며 그룹 원타임 출신 음악 프로듀서 테디가 수장인 더블랙레이블의 걸 그룹 멤버로 데뷔를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