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천재 만화가, 향년 68세로 별세
일본 유명 만화 <드래곤볼>을 탄생시킨 작가 도리야마 아키라가 지난 3월 1일 별세했다. 고인은 만화계에 수많은 전설을 남겨왔다. 소년 만화 장르를 정립한 레전드라 평가받는다. 지난 3월 8일 열린 ‘도쿄애니메이션 어워드 페스티벌 2024’는 도리야마 아키라를 공로 부문 수상자로 선정했다. 미리 남겨놓은 수상 소감에서 그는 “젊은 시절 생활 때문인지 건강에는 별로 자신이 없다. 앞으로 얼마나 더 그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보다 재미있는 작품 만들기를 목표로 열심히 할 테니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전했다. 본인에게도 팬들에게도 너무나 갑작스러운 이별이었던 셈이다.
고인은 만화 관계자들이 꼽는 ‘타고난 천재 만화가’였다. 그도 그럴 것이 만화가의 정석 코스를 밟지 않았다. 1955년에 출생한 도리야마는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광고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2년 반 만에 퇴사했다. 돈에 쪼들리며 방황하던 중 우연히 본 만화 잡지가 그의 운명을 바꿨다. 우승 상금이 무려 50만 엔이라는 ‘신인상 공모 안내문’이었다. 23살에 처음으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입상에는 실패했지만, 당시 <소년 점프> 편집자의 눈에 띄어 만화계에 입문한다. “그림체가 개성 있고 효과음을 영어로 표현한 센스가 신선하다”는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일본 만화의 지평을 연 도리야마 아키라
대표작 <드래곤볼>은 고인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1984년부터 무려 11년 동안 연재했다. 주인공인 손오공이 7개를 모으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드래곤볼을 찾아 떠나는 모험을 그린다. 캐릭터들의 압도적인 매력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치열한 액션 대결로 큰 인기를 누렸다. <드래곤볼>의 단행본은 2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됐으며, 누적 발행 부수는 2억 6,000만 부를 넘어섰다.
TV 애니메이션 버전은 세계 80개 이상의 나라와 지역에서 방영돼 아이들의 유년 시절을 채워줬다. 만화와 애니메이션, 게임을 포함한 <드래곤볼> 시리즈의 총매출은 230억 달러(약 30조 5,000억원). 이는 일본 만화 중 독보적인 1위다. 일본 만화 시장은 1980년대 급성장했다. 1980년에 <닥터슬럼프>, 1984년에 <드래곤볼> 연재를 시작한 도리야마 아키라의 공적은 헤아릴 수 없다. 만화 평론가 나쓰메 후사노스케는 “당시 일본에서 만화란 아이들이나 읽는 것이라는 가치관이 팽배했다. 그 틀을 걷어내고 만화를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문화로 키운 주역 중 한 명이다”라고 평가했다.
<드래곤볼>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만화가가 되면서 일본 만화 시장은 더욱 세계로 뻗어나갔다. 인기 만화 <원피스>의 작가이자 ‘드래곤볼 칠드런’으로 알려진 오다 에이치로는 “만화 따위를 읽으면 바보가 된다던 시대에서 어른도 아이도 만화를 읽고 즐기는 시대를 만든 사람. 만화로 세계에 진출할 수 있구나 하고 꿈을 보여줬다. 히어로를 보는 것 같았다”고 도리야마 아키라를 기렸다.
인세만 1,000억원… 현실은 소탈한 아저씨
두고두고 회자되는 고인의 일화도 많다. 도리야마 아키라는 일본에서 최초로 연 소득이 5억 엔을 넘은 만화가였다. <닥터슬럼프>가 히트했던 1981년 5억 3,924만 엔으로 일본 납세자 순위 기타 문화인 부문 1위(전체 35위)에 올랐다. 이듬해에도 신고 소득액은 6억 4,745만 엔으로 2년 연속 1위였다. 그의 나이는 고작 20대 중반, 아직 <드래곤볼>이라는 전설이 탄생하기도 전이었다. 작가의 생전 예상 인세 수입은 114억 4,000만 엔(약 1,009억원)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애니메이션과 굿즈 수익 등을 포함하면 총수입은 천문학적 숫자였을 것임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납세액이 어마어마하다 보니 “세금 때문에 도리야마의 거주 지자체인 아이치현에서 이사를 못 가게 한다”는 말이 떠돌 정도였다. “도리야마 집 앞에서 공항까지 직통 도로를 깔아줬다”는 그럴듯한 소문이 나돌았으나 사실이 아니다. 아무리 유명해져도 캡과 청바지 차림을 즐기는 소탈한 아저씨였다고 한다. 명품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프라모델 만들기와 밀리터리 헬멧 수집이 몇 안 되는 취미였다.
또 스마트폰이 없어 연락은 PC 메일을 통해서나 가능했던 미니멀리스트이기도 했다. <드래곤볼>에 얽힌 에피소드도 재미있다. 작품 속에 나오는 피콜로 대마왕, 프리저, 마인 부우 등 역대 악역들의 외형이 연재 당시 담당 편집자들과 비슷해 화제를 모았다. 생전 도리야마는 자신에 대해 “세상만사가 귀찮은 ‘귀차니스트’ 성격”이라고 종종 말한 바 있다. 가령 <드래곤볼> 주인공이 초사이언이 됐을 때 머리가 금발로 염색되는 건 먹칠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였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가장 바빴던 시절에는 연필 밑선조차 귀찮아 건너뛰고 바로 선화 단계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팬들의 가슴에 전설이 된 <드래곤불>
그러나 본인의 주장과 달리 실제로는 굉장히 성실한 만화가였다. 출판사에서 붙여주는 어시스턴트 한 명 외엔 모두 자신의 힘으로 그림을 그렸고, 연재 펑크가 단 한 번도 없었다. 특히 <드래곤볼>이 세계적으로 히트하면서 바쁜 나날을 보내던 중 게임 캐릭터와 일러스트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는 등 실로 엄청난 작업량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드래곤볼>이 탄생한 지 올해로 40주년이 된다. 공교롭게도 ‘드래곤볼의 아버지’라 불리던 작가는 세상에 작별을 고했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일본 안팎에서는 추모의 물결이 번지고 있다. 독자들의 발걸음이 서점으로 향해 고인의 대표작 <드래곤볼> 시리즈 판매량이 급증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만화계의 거장이 남긴 발자취는 팬들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