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안이가 태어나고, 나는 총각 시절 막연하게 꿈꿨던 아들과의 취미 공유를 할 수 있게 됐다. 함께 스키장에 가는 것도 늘 상상해왔다. 스키장에 왜 집착하느냐 하면, 나름의 이유가 있다. 중학교 때 스키장에서 친구들과 놀았던 것이 여전히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설 연휴에는 어렵게 스케줄을 맞춰 스키장에 다녀왔다. 명절 연휴라 그런지 숙소 잡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한 달 전부터 대기 예약을 걸어뒀는데 연휴 임박해 겨우 2박 3일의 숙박을 확정 지을 수 있었다. 주안이는 예약 완료가 되기까지 우리 앞에 몇 명이 남았는지, 혹시 오늘은 확정됐다고 연락이 왔는지 수시로 물어보며 누구보다 스키장 휴가에 열정적이었다.
스키를 처음 타는 주안이를 위해 스키장에 가기 전부터 이미지 트레이닝과 연습을 시켰다. 내가 처음 스키를 배울 당시 가장 어려웠던 게 스키를 타다가 슬로프에서 넘어졌을 때 스키 장비를 신은 채 일어나는 것이었다. 당연히 집에서 연습할 때는 스키 부츠를 신고 있지 않으니 벌떡벌떡 잘 일어났다. 나는 주안이 발목을 최대한 단단히 잡았다. “스키 부츠를 신으면 이 부분이 접히지 않아. 그러니까 이 상태에서 한번 일어나봐.” 주안이는 몇 번을 연습해보더니 “이건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다른 주의 사항은 없어?” 하고 물어봤다. 하지만 내 부연 설명은 계속됐다. 스키장에서 몸으로 시범을 보여주면 훨씬 이해가 쉬웠을 텐데 말로 설명하자니 둘이 티격태격 가관이었다. 그럴수록 주안이는 빨리 스키장 가는 날이 다가오길 빌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스키장에 가는 날이었다. 첫날은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강습을 받기로 했다. 사실 나는 어릴 때 스키를 잘 타는 친구에게 귀동냥으로 ‘대충’ 배운 실력이다. 여차여차해서 타긴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멋진 폼이 나오진 않았다. 그래서 내가 가르치는 게 부담스럽기도 했다.
사실 주안이는 그동안 최애 스포츠로 고민할 것도 없이 축구를 꼽았었다. 주안이에게 세상 그 무엇보다 재미있는 것, 바로 축구였다. 한데 주안이가 스키를 배우더니 “축구만큼, 아니… 스키가 좀 더 재밌고 신나는 것 같다”는 깜짝 고백과 함께 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스키 기술을 익혀갔다. 강습이 끝나는 다음 날부터 아침, 점심, 저녁까지 스키를 계속 타고 싶다며 스키에 완전히 빠진 모습이었다.
결국 우리는 2주 후에 다시 스키장을 가기로 약속했다, 주안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취미가 하나 더 생긴 것 같아 참 좋다. 조만간 내 실력도 가볍게 밟아버릴 주안이의 모습을 상상하니 왠지 미소가 지어진다.
글쓴이 손준호
1983년생으로 연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뮤지컬 배우다. <팬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페라의 유령> 등 다수의 뮤지컬에 출연했다. 2011년 8살 연상의 뮤지컬 배우 김소현과 결혼해 2012년 아들 손주안 군을 얻었다. 뭘 해도 귀여운 아들의 행복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