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함께하는 화보 촬영이었어요. 그래서 봄과 어울리는 것 같아요.
꽃이 있어 ‘예쁨’이 더 배가됐던 촬영이었어요. 꽃을 활용해 균형을 잡다 보니 독특한 포즈도 많이 시도해볼 수 있어 재밌었어요.
화보 촬영이 주는 즐거움이 있다면 뭘까요?
여행을 가거나 일상에서 찍는 사진도 좋지만 화보는 최선을 다해 아름답게 꾸미고 촬영하다 보니 저의 가장 예쁜 모습을 남길 수 있어 좋아요. 저 혼자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최상의 결과물을 위해 함께하는 스태프가 있고, 또 순간을 담아내는 포토그래퍼가 남겨주는 기록이니 가장 예쁜 모습을 ‘캡처’하는 셈이죠.
최근 자신이 가장 예뻤던 순간은 언제예요?
오늘이요.(웃음) 오늘의 결과물이 정말 기대돼요. 콘셉트도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아마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 중 하나로 남지 않을까 싶어요.
새로운 시도를 즐거워하는 건 안현모의 커리어와도 결이 맞는 것 같아요. 기자로 시작해 동시통역, 그리고 다양한 영역의 방송까지 활동 스펙트럼이 넓다는 점에서요.
다양한 일을 한 것 같지만, 사실 큰 줄기는 하나라고 생각해요. 커리어를 급격하게 바꾼 적이 없고 결국 모두 ‘소통’을 중심으로 비슷한 맥락의 일을 해왔어요. 다만 그 와중에 조금씩 변수가 생기거나 새로운 제안이 오면 저는 ‘GO’ 하는 편이에요. 누군가 기회를 주면 걱정은 엄청 많이 하죠. 해내지 못할 것 같아 두려울 때도 있고, 너무 새로운 제안을 받으면 해내는 과정이 힘들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직관적으로 제 안에서 그린 라이트가 켜지면 일단 해보는 거죠. 그린 라이트가 켜졌는데 누군가의 시선이나 어떤 분위기가 신경 쓰인다는 이유로 제 마음속 신호를 외면하지 않아요. 물론 레드 라이트가 켜질 때도 있죠. 그럴 때는 주변에서 아무리 해보라고 부추겨도 하지 않고요.
최근 자신에게 가장 강렬한 그린 라이트를 보내왔던 일이 궁금해요.
사실 레드 라이트와 그린 라이트의 수가 반반이에요. 나이가 들수록 내면에서 켜지는 신호등이 점점 확실해지고 있어요. 요즘 기대하고 있는 일이라면, 영화와 미술과 관련된 프로그램이에요. 늘 하고 싶은 영역이었기 때문에 일정을 비롯한 여러 조건을 최선으로 맞춰보려는데 아직 결정되진 않았어요. 영화나 미술은 프로그램을 준비하며 저 스스로 배우는 게 많아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요. 배움의 기회가 있는 일이라면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져요. 그리고 이제는 저 자신에 대한 믿음이 커졌기 때문에 무언가를 결정할 때 제 선택을 믿어요.
‘소통’을 중심으로 한 일을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이 있다면요?
일을 할수록 제가 잘 듣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말을 잘하는 사람은 아닌데, 누군가와 얘기할 때 잘 듣는 편이에요. 대화를 하다 보면 상대가 본래 하고 싶던 얘기에서 벗어나 다른 얘기를 할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면 대화의 방향을 자연스레 다시 잡기 위해 이끌어가고 다시 주의 깊게 듣죠.
소통은 자신이 일종의 매개체가 돼야 하는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사전 지식도 있어야 하죠.
프로그램을 준비할 땐 공부를 많이 해요.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듣는다는 건 상대에 대한 관심이기도 해요. 관심이 없으면 안 듣게 되죠. 이를테면 누군가를 인터뷰해야 한다면 그 사람에 대한 조사를 할 수 있는 만큼 깊이 있게 해요. 그래야 한 시간 동안의 인터뷰가 보다 밀도 있게 나아갈 수 있어요.
준비하는 과정이 즐겁기 때문에 일을 즐길 수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준비 과정이 즐겁지 않은 일이라면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전혀 관심 없는 분야의 통역 일을 의뢰받는다면, 아마 못 할 거예요. 음악이나 영화 관련 시상식은 사전 준비를 위한 공부가 공부로 안 느껴져요. 작품과 아티스트에 대해 알아가고 새로운 정보를 찾아가는 과정이 정말 재미있죠. 외국 배우에 대한 정보를 찾을 때도 국내 기사론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해외 잡지와 진행한 인터뷰도 읽어보곤 해요. 그러면 그 사람에 대한 정말 많은 이야기를 알 수 있어요. 혼자 리서치하다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면 너무 즐겁죠.
사람에 대한 정보를 찾다 보면 자신에게 영감이 되는 순간도 있을 것 같아요.
할리우드 배우나 팝 가수들은 제게 영감을 주기보다는 일종의 ‘덕질’ 대상이 되는 것 같아요. 영감은 오히려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이 받고요.
덕질은 인생의 원동력이죠.(웃음)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어떤 식으로 쉬나요?
전 정말 잘 놀아요.(웃음) 내려놓아야 할 때는 확 내려놔요. 여행을 다녀오면 집 현관 비밀번호가 잠시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제 일상을 완전히 잊고 푹 쉬어요. 온·오프가 굉장히 확실하죠. 우리는 보통 스마트폰으로 세상과 쉬지 않고 연결되잖아요. 그래서 쉴 때면 스마트폰도 잘 들여다보지 않고 문자메시지에 답장도 늦게 하는 편이에요.
내가 생각하는 가장 완벽한 휴식의 모습이 있을까요?
집 현관 비밀번호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정말 잘 쉬었을 때요. 예전에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직장 생활을 오랫동안 한 분이 나왔는데, 그분이 “휴가를 다녀오면 비밀번호를 잊을 만큼 쉰다”는 말을 하는 거예요. 저와 너무 같아서 깜짝 놀랐죠. 이런 적도 있어요. 기자로 일하던 시절, 여행을 다녀오는 길에 한 공항을 경유하게 됐어요. 일주일 내내 바다에서 신나게 서핑하며 쉬고 돌아오던 길이었죠. 그런데 한 지인이 “안현모 기자님”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공항에서 난데없이 한국어로 제 이름을 말해 뒤돌아봤는데, 그제야 비로소 제 직업이 기자라는 것이 생각났어요. 아마 직장인이었기 때문에 온·오프가 더 잘됐던 것 같기도 해요. 지금은 프리랜서여서 휴가를 가도 종종 업무와 관련된 것들을 확인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되도록 잘 내려놓으려고 해요.
지금은 <스모킹건>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죠. 요즘 부쩍 범죄를 소재로 한 프로그램이 많아진 것 같아요.
플랫폼이 많아져서인지 범죄를 소재로 한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콘텐츠 자체가 정말 다양해졌어요. 김복준 범죄학자가 한 말인데, 범죄 관련 프로그램은 모방 범죄를 일으키는 확률이 극도로 낮고, 오히려 예방 효과가 훨씬 크다고 해요. 다만 범죄를 소재로 다루기 때문에 사건 자체를 두고 흥미롭다거나 재미있다는 표현은 절대 쓰지 않아요. 패널들이 사건을 보며 경악스러워하는 표정을 짓거나 흥미로운 소설 속 이야기를 듣듯이 콘텐츠를 소비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피해자는 사건 이후 어떻게 됐는지, 범인의 형량은 어떻게 나왔는지, 범인을 찾기 위한 과학기술이 어떤 발전을 이뤘는지 등에 대해 알려주죠. 사건을 자극적인 시선으로 디테일하게 설명하지 않아요.
앞서 음악과 영화에 대한 관심을 얘기했어요. 그 밖에 좋아하는 것들은 뭐가 있나요?
운동하는 걸 좋아해요. 손으로 뭔가 만드는 것도 좋아하고. 얕고 넓게 관심이 많죠.(웃음)
무언가에 대한 관심사가 일하는 데 있어 동기부여의 시작점이 되는 것 같아요.
전 경험 추구형이에요. 때론 용두사미일 때도 있지만 그래도 경험해보는 것에 주저하지 않고 발이라도 담가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싶어 해요.
최근에 한 새로운 경험이 있다면요?
오늘 촬영하며 시도한 플라워 요가요! 꽃을 이용해 요가 동작을 취한 건데 재미있었어요. 오늘 새롭게 개발된 셈이죠.(웃음) 아까 촬영하며 농담으로 플라워 요가를 해봐야겠다고도 했어요. 발리 같은 곳에 가서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면 인기 있지 않을까요? 뒤로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고 꽃을 활용한 밸런스 운동을 해보면 어떨까요?
요가 말고 좋아하는 운동은요?
골프 그리고 스트레칭!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도 있나요?
그럼요. 얼마 전 발리에 갔을 때 폭포를 보면서 하염없이 물멍을 했어요. 리조트에서 오후 6시에 시작하는 야외 공연 무대를 오후 2시부터 준비 중이었는데, 준비하는 내내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던 일도 있었죠. 이번 여행 콘셉트는, 말하자면 ‘발리멍’이었네요. 아무 일 없이 쉬고 오는 여행은 오랜만이었어요. 지금 돌이켜보니 정말 기억하고 기록하고 싶은 발리 여행이었어요.
평소에 일상을 기록하는 편이에요?
다이어리를 써요. 일기라기보단 일지예요. 아침에 일어나 뭘 했고 저녁엔 뭐 했다 식으로 하루를 기록해요. 어떤 기억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요. 모든 걸 기억하고 싶은 일종의 집착 같기도 해요. 너무 하찮은 것까지 세세하게 기록한 나머지 누군가 제 기록을 보면 엄청 창피할 것 같아요.
거창한 목표를 가지고 하루하루를 채우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요.
맞아요. 다만 하루하루 그냥이 아니라 즐겁게, 새롭고 풍성하게 경험하는 게 목표라면 목표예요. 커리어만 하더라도 제가 다양한 일을 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어딘가에 도달하고 성취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적은 없어요.
봄을 시작하는 일상에서 보면 좋을 영화 한 편 추천해줄 수 있나요?
바로 딱 떠오르는 영화가 있어요. 줄리안 무어 주연의 <글로리아 벨>을 추천하고 싶어요. 제 안에서 봄이 막 샘솟는 느낌이 드는 영화예요. 내 안에서 무언가가 깨어나고 피어나는 느낌이 들죠. 그리고 OST가 너무 좋아요. 나이와 상관없이 모든 여자가 공감할 수 있는 어느 평범한 여성의 이야기예요. 줄리안 무어의 연기도 정말 좋고, 배우 역시 시나리오가 너무 마음에 든 나머지 직접 제작까지 한 작품이에요. 오늘이 <우먼센스> 3월호를 위한 인터뷰인데, 새해가 되고 봄이 오면 한 살 한 살 나이 들고 있다는 생각이 더 커지고 때론 거울 앞에 서기가 무섭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면 60대, 70대가 돼서도 충분히 신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몽글몽글 올라와요. <글로리아 벨>에서 주인공이 “지구가 쓰러져갈 때 끝까지 춤을 추면서 죽어가겠어”라고 말해요. 춤추는 장면도 나오고요. 그렇게 바람에 흔들리는 화초 같은 인생이면 아름다울 것 같아요.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나이 들어간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하나의 댄스 무대라고 여기고 춤을 추듯이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예요.
춤을 추듯이 살고 싶다는 말은 SNS 피드에 남긴 “나를 가두지 않고 내가 이끄는 대로 행동하고 싶다”는 문장이랑 결이 비슷한 것 같아요.
영화에도 보면 주인공이 나이나 다른 상황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살아가요. 그렇다고 그 주인공을 너무 멋있거나 훌륭하게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여자일 뿐이죠. 나 같기도 하고 우리 같기도 한.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나이 들어간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하나의 댄스 무대라고 여기고 춤을 추듯이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나이 든 자신의 모습도 상상해보나요?
아직도 20대 시절이 엊그제 같아요. 지금의 체감 속도대로라면 눈 뜨면 60대겠죠? 나이 든 제가 결코 먼 미래로 느껴지지 않아요. 20대 시절의 친구가 여전히 제 친구고 지금도 만나면 깔깔 웃으며 수다를 떨지만 저는 40대에 접어들었어요. 그렇다고 제가 다른 사람이 된 건 아니에요. 아마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외모도 조금 변할 것이고 체력도 떨어지겠지만 반면 더 나은 모습도 있을 테고 삶의 경험치가 쌓인 만큼 노련해질 수도 있고요. 하지만 여전히 그때도 안현모겠죠.
지금의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건 뭘까요?
부모님이요. 늘 명랑한 부모님이 감사해요. 오래전부터 친하게 지낸 언니가 있어요. 저희 부모님과도 오랜 시간 봐왔어요. 그런데 하루는 그 언니가 “현모 어머니는 정말 명랑하신 것 같아”라는 거예요. ‘명랑’이라는 수식어를 오랜만에 들어봐서 뭔가 새로웠어요. 그래서 명랑하다는 게 정확히 어떤 의미냐고 물어보니 ‘꼬인 것이 없다’는 의미라는 거예요. 그 표현이 정말 정확하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니, 아버지 모두 명랑하세요. 명확하게 말씀하시고 들을 때도 꼬아서 듣지 않죠. 자기 생각을 있는 그대로 깔끔하게 표현하세요. 그런 점이 저에게 좋은 영향을 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SNS에 “As extraordinary as everyone else”라는 문장이 적혀 있어요. 이건 자신에게 하는 말일까요,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일까요?
반반이에요. ‘나는 굉장히 특별한 사람이고 유일무이한 존재야. 당신도 그렇지’라는 의미인데, 스스로 자신이 특별한 존재임을 계속 상기하며 다른 사람들 역시 그런 존재라고 말하는 거죠. 보통 소셜 미디어는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을 팔로하잖아요. 하지만 그렇게 누군가를 생각하며 팔로하고 있는 당신도 굉장히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프로필에 그 문장을 적어두었어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모두 영화이고, 책으로는 몇 권 분량으로도 모자랄 만큼 특별하니까요.
올해 목표한 바가 있나요?
특별한 목표는 없어요. 저만의 루틴대로 제 일상을 잘 영위하고 싶어요. 루틴을 지켜내기 위해 애쓰지 않고 일어나야 할 시간에 일어나고 운동하고 공부하며 친구도 만나고 식사도 잘하며, 심플하지만 전적으로 제 계획에 따라 움직이고 싶어요. 큰 동요 없이요. 아! 목표가 있어요. 올해는 골프를 좀 더 안정화시키고 싶어요. 골프를 시작한 지는 오래됐지만 좋아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요. 좋아지고 보니 이제는 실력을 일정 궤도 이상으로 올리고 싶어요.
뭔가를 하면 ‘잘’하고 싶나 봐요.
전부 그런 건 아니에요. 골프는 늘 제자리인 것 같아 가끔 너무 화가 나요. 잘 치고 싶다기보단 못하는 걸 면하고 싶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네요. 잘하는 사람과 다녀도 웬만큼 보조는 맞출 수 있을 정도까지만 늘면 좋겠어요.
안현모가 기대하는 올해의 봄은 어떤 모습인가요?
올봄이 가장 행복할 것 같아요. 아직 봄이란 계절이 오진 않았지만 저는 마치 봄을 맞이한 것 같아요. 더 어렸을 때는 뭔가 괜히 불안하고 제 인생을 자꾸 결론지어야 할 것 같았어요. 일할 때도 뭔가 불안한 지점이 있었고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불안감이 전혀 없어요. 저를 둘러싼 환경과 제가 원하던 삶이 편안하게 잘 포개진 느낌이에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과 내가 원하고 바라보는 나 자신의 모습이 조화를 이루고 사이가 정말 좋은 상태랄까요. 삶이란 보통 크고 작은 물결이 치기 마련인데, 지금의 제 상태는 그 파도의 파고가 높지 않고 잔잔해요. 그 잔잔함이 오래 유지되면 좋겠어요.
앞으로 새롭게 보여줄 활동이 궁금해요.
5년 전부터 계획했던 책을 쓸 거예요. 나와 나 사이가 좋아야 글을 쓸 수 있는데, 이제야 그 시간이 왔어요. 무언가에 떠밀리듯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이어서 계속 미뤄왔는데 올해는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15년 가까이 인터뷰하며 기록해왔던 것들을 책으로 쓰려고 해요. 지금까지는 스스로 자신을 가뒀기 때문에 하지 못한 일이 많았어요. 이제 그 빗장을 풀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