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병 사회, 나를 돌보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정희원 교수
스트레스를 받아 혈중 코르티솔 농도가 올라가면 치매에 걸릴 가능성도 높아진다. 정희원 교수는 나를 돌보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고 말한다.
Q 만성 스트레스는 현대인의 병으로 통합니다.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뭘까요?
절대 가처분 시간의 부족과 활용 왜곡 때문입니다. 먼저 나를 돌보기 위한 여유 시간이 부족합니다. 노동 시간과 출퇴근 시간이 길어서 내 몸과 마음에 쓸 시간이 적죠. 상대적 가처분 시간도 부족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일중독 문화가 있어 미라클 모닝으로 자기 계발을 하라 하고, 나를 돌볼 시간에 N잡을 해야 한다고 하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몸과 마음이 지쳐 내 멘털 배터리가 방전돼 술을 마시거나 SNS를 보고 잠이 듭니다. 내게 남은 가처분 시간을 왜곡해 사용하는 거죠. 그런데 술을 마시거나 SNS를 보는 것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혈중 코르티솔 농도가 증가해 스트레스 레벨이 올라가고 화병이 쌓이죠..
Q 주변에 화병이 없는 사람이 없죠.(웃음)
우리나라 정서상 감정을 억압하도록 트레이닝을 받았습니다. 특히 여성은 자신을 억압하는 경향이 더 심해요. 젊은 시절엔 가족 관계나 경제 등 여러 문제를 겪고, 60~70대엔 남편을 간병하거나 손주 육아를 하죠. 그로 인해 우울감이나 불안감, 스트레스가 따르기 마련인데 이를 못 느끼도록 억압된 분위기예요. 다수는 만성 통증, 소화불량, 호흡곤란과 과호흡, 목에 뭔가 걸린 것 같은 느낌 등 비특이적 증상으로 나타나 병원에 다니면서 약도 먹고 주사도 맞으며 해결책을 찾습니다. 그런데 근본 원인인 화병이 해소가 안 되면 삶의 질이 떨어집니다. 마치 나비효과처럼 하나의 원인이 우리 몸에 다양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죠.
Q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만성 스트레스 상태가 되면 코르티솔의 혈중 농도가 증가하고, 뇌의 편도체와 대상회 피질이 과활성화됩니다. 이 상태가 유지되면 우울이나 불안, 수면장애가 발생하고 뇌가 쪼그라들면서 해마가 위축되며, 단기적으로는 인지 기능이 떨어집니다. 젊은 나이임에도 갑자기 도어록의 비밀번호가 기억나지 않는 상황이 생길 수 있어요. 과다 스트레스 상태가 오래 지속돼 스트레스 총량이 많은 사람은 치매 발병률이 높습니다. 또 코르티솔의 증가는 쾌락을 찾는 뇌를 만들어, 대사적으로 몸에 해로운 당분과 술을 원하게 만듭니다. 몸은 비상벨이 울리는 상황이라 음식으로 섭취하는 에너지는 뱃살에 쌓아버리고, 정작 아까운 근육과 뼈를 녹여 에너지로 쓰기 때문에 체형이 나빠지죠.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근력 운동을 하고 단백질을 먹어도 근육이 잘 늘지 않습니다. 게다가 면역을 억제해 감기나 암에 잘 걸리는 몸을 만들어요. 결국 오랫동안 코르티솔이 높아진 상태가 지속되면 만병이 생기는 거죠. 면역력을 높인다고 광고하는 영양제를 섭취하는 것보다 스트레스를 줄이는 게 건강에 더 이로워요.
Q 원론적인 질문이지만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첫째, 스트레스 총량을 줄여야 합니다. 자의로 스트레스 받는 일을 막는 건 쉽지 않죠. 하지만 그럼에도 할 수 있는 일은 나에게 독이 되는 사람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돈이 땅을 샀는데 나는 왜 없을까 하고 계속 생각하면 스트레스가 되잖아요.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면 내려놓아야죠. 남과 비교하는 마음을 버리고 욕심을 줄이는 것이 스트레스의 총량을 줄이는 방법이에요.
둘째, 회복 탄력성을 기르는 것입니다. 스트레스를 버티면 부러지기 마련이거든요. 더 잘 늘어나는 튼튼한 고무줄처럼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능력을 키워야 해요. 이를 위해 4M 건강법이 필요합니다. 4M은 ▲나에게 중요한 것(What Matters) ▲이동성(Mobility) ▲마음건강(Mentation) ▲건강과 질병(Medical issues)을 뜻합니다. 앞서 말한 것과 연장선상으로 내 삶의 목표를 스트레스가 높아지는 쪽으로 가져가지 않아야 합니다. 가령 내 목표가 최대한 빨리 돈을 많이 버는 것이라고 해봅시다. 돈을 많이 벌려고 아등바등해도 이 세상의 돈을 모두 끌어 모을 수 없잖아요. 건강한 방향으로 목표를 잡아야 해요. 내 삶에 중요한 것이 스스로를 해치지 않는 방향을 향해야 하는 것이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취미를 가지고, 사회 활동에 참여하는 것도 ‘나에게 중요한 것’을 건강하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봉사 활동이 스트레스 수준을 낮춰준다는 구체적인 연구 결과들도 있지요.
Q 앞서 언급한 ‘이동성’은 운동을 뜻하는 것이죠?
걷기, 등산 등 충분한 운동이 필요해요. 유산소운동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많이 나왔어요. 저도 운동을 열심히 하는 편입니다. 글을 쓰다가 답답하면 산책을 하고 마라톤과 헬스도 합니다. 알렉산더 테크닉(잘못된 몸 사용 습관을 개선해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는 교육)과 필라테스도 배웁니다. 또 한 달에 한 번씩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상담을 받습니다. 내 마음건강의 컨디션이 괜찮은지 점검하는 것이죠. 상담을 하다 보면 미처 깨닫지 못했던 내 마음을 알게 돼요. 스트레스가 내 마음에 머물지 못하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죠. 명상도 자주 하고요.
Q 명상은 어떤 식으로 하나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자연 속에서 걸으며 내 호흡과 몸의 감각에 집중하려고 해요. 이게 결국 마음챙김 명상이거든요. 마음챙김 명상을 일정 시간 동안 눕거나 앉아서 할 필요는 없어요. 설거지하면서 내 호흡에 집중할 수도 있어요. 끓는 물에 물거품이 올라오듯 떠오르는 잡념을 바라보고 다시 내 호흡으로 돌아오는 것이 중요해요. 마지막으로 ’건강과 질병’은 건강을 위해 정갈한 식사를 하고, 만성질환을 잘 관리하는 것을 모두 포함합니다. 결국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방법은 간단해요. 잘 먹고 충분히 운동하고 잘 쉬는 것이죠.
Q 현재 나의 삶에 집중하는 거네요.
지금 이 순간으로 나의 정신을 모아야 해요. 우리가 지난 일을 계속 반추하면 후회하고 우울감이 심해지며, 오지 않은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감이 높아져요. 지금을 잘 살기 위해선 마음챙김이 필요해요. 마음챙김을 하고 수련하고 호흡해 마음을 고요하게 만드는 거죠. 이 순간이 고요해야 스트레스 받는 일을 덜 만들 수 있어요. 저 또한 과거 성취 지상주의에 빠져 빨리 성공해야 하고 논문도 많이 써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결국 번아웃과 심한 우울증을 겪고 몸도 망가지면서 삶의 질이 매우 나빠졌어요. 이를 경험하고 나서 거절을 잘해야 한다고 깨달았어요.
Q 거절이 왜 중요한가요?
거절하지 못하면 자기 학대를 하게 되니까요. 타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거나 내가 가진 욕심을 채우려다가 일이 많아져요. 에고(Ego)는 나와 남을 비교해 존재를 확인하는 자아이고, 셀프(Self)는 내면세계 전체인데, 에고가 시키는 대로 다 하면 셀프가 다치고 몸과 마음이 번아웃됩니다. 즉, 에고가 벌이는 욕심에 대한 거절이 필요한 거죠. 남들한테 잘 보이기 위한 것을 거절하면 스트레스 총량을 줄일 수 있고 스스로를 돌볼 시간을 만들며 남아 있는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어요. 그러다 보면 화병 사회의 화병이 가라앉지 않을까요? 이렇게 화병이 가라앉으면 자신뿐만 아니라 남과도 더 자애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모두가 조금씩 노력해서 우리 사회라는 거대한 압력솥에 있는 증기를 빼면 스트레스가 개선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더 잘해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될 거라고 봐요.
Q 마지막으로 ‘나이 잘 드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느리게 나이 드는 삶을 만들어야 합니다. 지난 1월 7일 보험개발원이 발표한 제10차 경험생명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수명이 90세를 넘었어요. 1989년에 75세였는데 겨우 30년 만에 15년의 수명이 더 생긴 거죠. 나이가 들어도 기능적으로 노쇠하지 않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간병인의 도움 없이 혼자 마트에 가고 화장실에 가면서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나이 들어야 하는 거죠. 건강하게 먹고, 운동하고, 스트레스 관리를 잘하고, 잠도 잘 자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1980~90년대 마인드셋을 버리지 못했어요. 인생이 60대 중반에 끝난다고 생각해 뭐든지 급해요. 잠을 줄여 많은 일을 하려고 하면서 건강은 뒷전이죠. 인생을 조금 더 멀리 보고 느린 속도로 갈 필요가 있어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은 건강한 식사, 잠, 운동, 머리 비우기입니다. 잘 먹고, 잠을 잘 자고, 운동을 꾸준히 하고, 머리를 비우는 시간을 만들면 노화 속도를 늦출 수 있습니다.
“인생을 멀리 보고 느린 속도로 가세요.
내 삶에서 중요한 것이 스스로를 해치지 않는 방향으로 향해야 합니다.
건강하게 먹고, 충분히 자고, 운동하고, 머리를 비우는 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정희원 교수는…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임상조교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전문의를 취득했다. 노인 건강 인식 개선, 노화 예방 등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 <세바시> 등에서 활약했다.
노인의학 학술지 <AGMR>의 부편집장을 맡고 있으며 저서로는 <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 <지속가능한 나이 듦>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