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 세계 챔피언을 꿈꾸는 소아과 의사가 있다. 순천향대학교 천안병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 신생아 중환자실에 재직 중인 서려경 교수다. 링 위에서 그녀의 눈빛은 의사 가운을 입었을 때와는 사뭇 다르다. 복싱을 시작한 지 1년 후인 2019년에 프로테스트를 거쳐 데뷔전을 치렀다는 서려경 교수의 현재 전적은 무려 8전 7승 1무. 복싱을 시작한 지 단 5년 만에 한국 여성 라이트플라이트급 챔피언에 등극하고, 각종 언론 매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가운데 이제 교수보다는 선수란 호칭이 더 잘 어울리는 그녀의 현재 목표는 바로 세계 챔피언이다.
“저는 목표를 향해 계속 나아갈 거예요”
복싱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와 복싱이 잘 어울릴 것 같다는 동료의 권유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예전부터 운동은 종목을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편이라 호기심을 갖고 복싱장에 들어갔는데, 시작부터 ‘이 운동은 내 운동이다’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리고 1년 뒤, 프로테스트를 받아보자는 관장님의 권유로 프로 대회에 나갔고, 굉장히 쉽게 이겼습니다. 바로 몇 달 뒤 본격적인 데뷔전까지 치르게 됐죠.
데뷔전 때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겁이 나지는 않았나요?
겁은 안 났지만 긴장을 정말 많이 했어요. 지금까지 한 모든 경기를 돌이켜봤을 때 가장 힘든 경기였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하지만 포기는 할 수 없으니 일단 이기자는 생각만 했죠. 모든 경기는 제가 오랜 시간 동안 운동하며 열심히 준비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복싱을 시작한 후 달라진 점이 궁금합니다.
복싱을 시작했을 땐 병원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고 정신을 환기시키려는 목적뿐이었어요. 하지만 운동선수가 되고 난 후부터는 제가 좋아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했고 더불어 목표를 향해 차곡차곡 나아가고 있다는 성취감이 무엇보다 큽니다. 운동량이 전보다 훨씬 많아져 몸은 많이 힘들지만요.
8전 7승(5KO) 1무라는 대단한 기록을 가지고 있죠. 올해도 계속 경기를 앞두고 있는데, 전문의 그리고 선수 생활을 병행하는 게 힘들지 않나요?
전문의 수련이 끝나지 않았을 때는 근무시간과 당직 시간이 많아 힘든 것을 넘어 죽을 지경이었죠. 다행히 지금은 펠로 2년 차를 마치고 근무시간이 많이 줄어 이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운동 시간을 많이 할애하고 있어요. 당장 몸이 힘들다고 느낄 때마다 더 힘들었던 과거를 떠올리곤 해요. 그럼 한결 나아지거든요. 하루 스케줄은 생각보다 심플해요. 운동이 끝나면 일을 하고 그리고 잡니다. 간단명료하죠.
복싱을 그만하고 싶은 생각이 든 적은 없나요?
경기 준비하는 동안 또는 병원 업무가 많이 힘든 날이면 소위 ‘현타’가 와서 문득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하지만 그때의 감정일 뿐입니다. 저는 스스로 정해놓은 목표가 있어요. 그리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훈련하고, 경기를 치르고, 승리를 쟁취하는 기쁨이 정말 큽니다. 그래서 계속 목표를 향해 나아가려고 해요.
복싱이 익숙하지 않은 3040 여성도 복싱을 시작할 수 있을까요?
복싱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운동량이 많고 에너지 소모가 크기 때문에 체중 감량이나 근력 성장에 복싱만큼 좋은 운동은 없다고 생각해요. 또한 초보자는 물론 여성이 복싱을 처음 배운다고 하면 몸이 다칠 만큼 과격하게 운동을 시키는 체육관은 절대 없으니 안심하세요. 특히 복싱 체육관에 있는 샌드백을 치는 동작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많이 되니 경험해보고 심신을 건강하게 만들면 좋겠습니다.
서려경에게 복싱이란?
나를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보이게 해주는 것. 만약 복싱을 하지 않았다면 스트레스가 많은 병원 생활로 인해 멘털이 더 나빠졌을 것 같아요. 서려경이라는 사람을 의사이자 선수로서 지금 이 자리에 올 수 있도록 지탱해준 원동력이라고도 말하고 싶습니다.
여성이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람은 나이가 들면 근육량이 줄어듭니다. 근육량이 많아야 기초대사율이 높아지고 심폐 능력 향상, 인슐린 저항성 개선 등 신체에 미치는 다양한 긍정적 효과를 높일 수 있어요. 최근 많은 현대인이 고칼로리 음식을 과다 섭취하는 반면, 신체 활동량은 더욱 줄어드는 추세인데 시간을 내어 운동하는 것은 삶의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짧은 시간에 고강도로 진행돼 운동 효과가 높은 복싱을 권하고 싶습니다.
한국 챔피언에 등극했고,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습니다. 서려경 교수님 그리고 선수에게 앞으로의 목표를 듣고 싶어요.
많은 사람이 현대사회 속에서 바쁘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도 사람인 만큼 매일이 힘들지만, 목표한 것을 이루기 위해 계속 나아가려고 해요. 무엇보다 제가 꾀부리지 않고 노력하며 쟁취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매일 열심히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긍정적 에너지를 줄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2024년은 의사로서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내고, 복서로서도 세계 챔피언이라는 목표를 향해 후회 없이 질주할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