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배우 류준열과 마주했다. 꽤 오래전 그를 인터뷰했을 때의 기억이 선명하다. 팔딱팔딱 뛰는 ‘청춘’이었고, 또래 배우들과는 조금 달랐다. 아마도 그 ‘다름’이 지금의 그를 있게 만들었을 것이다.
어마어마한 자본이 들어가는 상업 영화의 주인공. 그는 영화 데뷔 2017년을 기점으로 충무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응답하라 1988>(2015. 11~2016. 1) 이후 딱 1년 만에 이룬 결과다. 영화 <더 킹> <택시운전사> <리틀 포레스트> <독전> <돈> <봉오동 전투> <올빼미> 등으로 지금까지 그는 거침없는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다시 만난 그는 어느덧 30대 후반의 나이가 돼 있었다. 그는 이제 이 무대에 익숙해졌고, 스스로 “철이 들어가고 있다”고 표현했다.
“초창기 제 작품들을 보면 연기를 잘하고 못 하고를 떠나 ‘어떤 회로로,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했지?’ 하는 것들이 있어요. ‘저기서 저렇게 한다고?’ 하는 거죠. 이제는 두려움이 생겨서 못 할 것 같아요. 철이 들어 주저하게 되는 것이 많아 아쉽습니다.”
그는 자신의 집에 ‘생각하는 공간’이 있다고 한다. 요즘 그 작은 공간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책도 읽고 메모도 긁적이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 그 시간이 그에게 힐링이다. 채우는 시간이다.
류준열이 오랜만에 신작으로 돌아왔다. 영화 <외계+인 2부>다. <외계+인 2부>는 2022년 7월 개봉한 <외계+인 1부>의 후속작으로 1년 6개월 만에 개봉했다. 그사이 류준열은 영화 <올빼미>로 332만 명의 관객과 마주했고, 사진전(<류준열 : A Wind Runs Through It and Other Stories>)을 열었다.
한국형 SF판타지 <외계+인 2부>는 치열한 신검 쟁탈전 속 숨겨진 비밀이 밝혀지는 가운데 미래로 돌아가 모두를 구하려는 인간과 도사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타짜> <전우치> <도둑들>을 이끌었던 최동훈 감독의 첫 시리즈물 연출작의 완결 편으로, 류준열을 비롯해 김태리, 김우빈, 이하늬, 염정아, 조우진, 김의성, 진선규 등이 열연했다. 극 중 류준열은 얼치기 도사 ‘무륵’ 역을 맡았다. 그동안 몰랐던 자신의 엄청난 에너지를 깨닫고, 죄수 외계인들과 맞서는 캐릭터다.
“새해 첫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느껴져 행복했다”는 그에게 <외계+인 2부> 비하인드 스토리, 요즘 고민과 화두에 대해 들었다.
오랜만에 배우 류준열과 마주했다.
꽤 오래전 그를 인터뷰했을 때의 기억이 선명하다.
팔딱팔딱 뛰는 ‘청춘’이었고, 또래 배우들과는 조금 달랐다.
아마도 그 ‘다름’이 지금의 그를 있게 만들었을 것이다.
다시 만난 그는 어느덧 30대 후반의 나이가 돼 있었다.
그는 이제 이 무대에 익숙해졌고, 스스로 “철이 들어가고 있다”고 표현했다.
“철이 들어 주저하게 되는 것이 많아졌다”
<외계+인 1부>는 공개 이후 혹평을 받았다. 기자 간담회에서 최동훈 감독이 울컥하는 모습도 화제가 됐다.
감독님의 책임감이 그 정도로 막중했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감독님은 모든 책임은 자신한테 있다는 것을 촬영하면서도 몸소 보여줬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내가 배운 것 중 하나가 책임감이다. 감독님이 ‘내 탓이다’라고 말한 건 영화의 흥행 여부를 떠나 처음부터 끝까지 작품에 임하는 자세다. 잘되든 안 되든 영화에 임하는 자세를 배웠다.
주연배우로서의 책임감은 어떤가?
모든 작품이 그렇듯 결과가 매번 좋을 수는 없다. ‘각오가 돼 있다’는 마음과 함께 주연배우로서의 책임감도 있다. 지금 이렇게 영화와 관련된 인터뷰를 하는 자리에서도 말 한마디에 책임감을 느낀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게감은 더 커지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했던 감독이지 않나 싶다. 최동훈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이 질문엔 식상하게 대답하고 싶지 않지만, 이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감독님은 한 우물만 파는 사람이다. 늘 영화 얘기를 하고, 그에 대한 지식도 방대하다. 어떤 주제든 다 알고 있다. 실제로 감독님 집에 가본 적이 있는데 벽에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빼곡하게 책이 있더라. 책 면면을 보면 일관된 주제, 이야기가 흥미로운 작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정도는 해야 저 정도까지 할 수 있구나 싶었다. 감독님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두 단어는 끈질김과 집요함이다. 그 부분이 나와도 잘 맞는다.
영화 곳곳에 동양적인 정서나 철학이 녹아 있다.
맞다. 감독님의 취향이다. 감독님은 동양 문화 중에서도 특정 시대를 좋아하고 그것을 자신의 작품에 녹여내는 걸 좋아한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의미이지 싶은데, 그 뜻을 알고 보면 소름이 돋는 사자성어도 많았다. 그걸 대사로 툭 던지게끔 장치를 해놓으셨다. 운치 있고 시적인 느낌이었다. 그 대사들이 실제로 이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세련된 표현법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배우가 많이 출연했다.
충무로에서 따뜻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이)하늬 누나, (진)선규 형 등 좋은 선배님들과 호흡을 맞췄다. 덕분에 현장 분위기가 안 좋을 수가 없었다.
극 중 캐릭터인 ‘무륵’에는 웃음과 진지함이 동시에 녹아 있다. 어떻게 해석했나?
좋아하는 영화와 인물 스타일이다. 긴장 속에 가벼움이 있고, 가벼움 속에 무거움이 있는 것을 좋아한다. 모두가 예상하는 전형적인 연기보다는 예상을 깨는 신선한 연기를 하고 싶었다. 무륵을 그 연장선상에서 표현하고 싶었다.
한 캐릭터를 연기하다 보면 얻어가는 것들이 있다. 무륵은 어땠나?
무륵에게 중요한 것은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연기를 하면서 재능이 먼저일까, 노력이 먼저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쉽게 얻었을 때는 재능 같고, 아무리 해도 안 될 때는 재능을 의심한다. 어떤 경우는 위로가 되고, 어떤 경우는 스스로에게 자극이 되기도 한다. 무륵을 보면서 재능과 노력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답을 얻었나? 대중이 류준열을 꾸준히 찾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재능이든 노력이든 부족하면 안 찾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문득 슬프기도 하다.(웃음) 대중이 나를 찾는 이유는 뻔하지 않아서인 것 같다. 반대로 놓고 보면 ‘나를 찾는 이유가 있겠지’라고 위로하기도 한다. 감독님이 생각하는 걸 정확히 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 채운다면 어딘지 모르게 아쉬움이 남는다. 감독님이 생각한 것 외의 신선한 것들도 함께 가져가는 배우이고 싶다. 뭐니 뭐니 해도 나는 다른 배우들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비주얼이다.(웃음) 우리가 흔히 보는 배우들과 다르지 않나. 감사하게 생각한다.
원론적인 질문을 하자면, 연기를 왜 하나?
나는 일을 하면서 행복을 느낀다. 쾌감, 행복, 고통 등등 다양한 감정 중에서 결국 ‘행복’이라는 감정을 가장 크게 느끼는 것 같다. 영화를 ‘보는 것’도 즐겁지만 ‘하는 것’이 더 즐겁다. 영화를 보면 기 빨리는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할 때는 기를 받는 느낌이다.
“‘생각’ 많았던 지난해, 올해는 꾸준히 작품 활동 하고 싶다”
<응답하라 1988> 이후 거침없이 상승세를 탔다. 30대 주연배우로서 스스로 달라진 점이 있나?
늘 내 안의 새로운 걸 시도하고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내가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는 어렵지만 그런 소명감,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응답하라 1988> 때와 지금 나의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하다. 그래야 세대가 ‘뜨고, 지고’를 반복할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2부를 끝으로 방대한 <외계+인> 시리즈가 막을 내린 데 대한 소감이 궁금하다.
이 작품을 촬영하면서 배우로서 새로운 태도를 가지게 됐다. 그동안은 안전과 예의에 대해 신경을 써왔다면 이번 작품으로 좀 더 개인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믿고 맡기는 법을 알게 됐다. 그래서 리허설의 중요성을 새삼 느꼈다. 함께 출연한 김태리와 김우빈과는 촬영장 외의 사석에서도 시간을 많이 보냈다. 영화 얘기도 하지만 일상 대화도 많이 나눴다. 그런 관계들이 작품을 할 때도 도움이 되더라.
영화 데뷔 8년 차가 됐다. 현재 류준열의 고민이나 화두는 무엇인가?
앞서 언급한 책임감과도 연결되는 것 같다. 책임감도 열정도 인간관계도 결국 모든 것에 적당한 선을 지키고 싶다. 그 선이 참 어렵더라.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너무 철이 들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뭐든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그러면서 주저하게 되고, 고심하게 된다. 철이 늦게 들고 싶다.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철이 안 들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가?
철들면 못 하는 게 생긴다. 초창기 내 작품들을 보면 연기를 잘하고 못 하고를 떠나 ‘어떤 회로로,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했지?’ 하는 것들이 있다. 이제는 두려움이 생겨서 못 할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방향성의 중요성도 느낀다. 방향에 대한 고민을 꾸준히 한다는 전제하에 속도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방향을 능숙하게 바꿀 수 있는 게 철이 든 것이라면, 이후 한 방행으로 우직하게 가면 된다는 생각이다.
현재 연기 외적으로 관심사나 고민거리가 있나?
지난해 사진전 준비를 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고, 지금도 계속 작업을 하다 보니 그것에 대한 고민이 있다. 영화는 책(시나리오)을 받았을 때부터 고민이 시작돼 개봉하면 끝난다. 그런데 사진 작업은 전시 제안을 받고 구체적인 작업을 시작하긴 하지만, 평소 인생에 있어서 철학적인 생각을 하고 삶에 대한 통찰을 해야만 좋은 작품으로 나온다. 그러다 보니 여가를 보낼 때도, 작품을 할 때도 사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한다. 인생 전반적으로 깔려 있다. 그것이 모이고 스파크가 터질 때 전시 생각이 난다. 피곤하게 살고 있다.
마라톤 완주도 했다. 마라톤을 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
문득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마라톤 역시 혼자였다면 완주를 못 했을 것이다. 그림자를 통해 누군가가 옆에서 뛰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는데, 순간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같이 뛰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 그 정도로 혼자가 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있는 것 같다. 사진전 작업 노트 중에 ‘외로움이 있어서 외롭지 않다’라는 멘트가 있는데, 그런 걸 느끼는 순간이 있다. 마라톤은 정말 많은 사람이 뛰고 서로를 응원해준다. 거기서 오는 에너지가 엄청나다.
2023년은 개인적으로 어떤 한 해였는지 궁금하다.
마라톤, 사진전 등 연기 이외의 것에 꽤 많이 도전했다. 그 과정에서 ‘생각’을 많이 했다. 바쁘게 살다 보면 생각할 시간이 적다. 하루하루를 꽉 차게 살다가 그것을 털어내기 위해 여행을 가거나 운동을 하는 등 또 무언가를 한다. 하지만 나는 오롯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자양분이 되더라. 그것이 ‘생각’과 연결되는 것 같다. 집에서 내가 좋아하는 공간이 있다. 침대와 벽 사이의 작고 애매한 공간인데, 거기에 엎드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게 좋다. 이렇게 저렇게 책도 보다가 잠깐 잠이 들기도 한다. 그 때문에 철이 든 것 같기도 하고…(웃음)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보내다 보면 안정감이 든다. 덧붙이자면 몇 년간 연말마다 해외에 있었는데 지난해 연말은 국내에서 보냈다. 때마침 눈도 내리더라. 괜히 여러 생각이 들고 센티해져 글도 끄적이며 시간을 보냈다.
올해 목표는 뭔가?
목표를 생각하거나 정해두는 스타일이 아니다. 방금 질문을 받고 든 생각은 ‘뭔가 새로운 걸 하려고 하지 말자’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소중한 걸 놓치지 않는 게 우선이다. 올 한 해는 쉬지 않고 작품을 하고 싶다. 발산하고 싶은 에너지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