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남을 언덕, 이효석문화예술촌
평창은 이효석 선생과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고향이다. 한국 문학의 고향 가운데 한 곳이라 해도 되겠다. 선생을 기리는 이효석문화 예술촌은 크게 이효석 문학관과 효석달빛언덕으로 나뉜다. 문학관은 생애와 작품 세계를 정리한 전시관이고, 그 옆 달빛언덕은 이를 체험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먼저 문학관에 들러 선생의 생애를 담은 영상을 관람했다. 선생은 평창의 자연과 거기 기대어 생을 꾸리는 사람 사이에서 1907년 태어난다. 학교 갈 나이가 되자 조그만 마을엔 학교가 없어 40km 떨어진 평창읍으로 나와야 했다.
방학을 맞은 열 살배기 아이가 그 길을 걸어서 집에 돌아가는 상상을 한다. 산과 들판, 개울과 소박한 집, 보통은 조용하다 장날에는 떠들썩해지는 고장. 하나하나를 눈과 귀, 마음에 꾹꾹 눌러 담고 언어로 굴려보았을 소년. “가벼운 바람에도 민첩하게 파르르르 나부끼는 사시나무의 수풀- (중략) -그의 아름다운 음악이 잠시라도 마음속을 떠난 적 있던가”(수필 <지협> 중). “하늘의 별이 와르르 얼굴 위에 쏟아질 듯싶게 가까웠다 멀어졌다 한다. (중략) 어느 결엔지 별을 세고 있었다. (중략) 세는 동안에 중실은 제 몸이 스스로 별이 됨을 느꼈다”(소설 <산> 중).
서울로 진학하고, 결혼 이후 함경도 경성과 평양에서 생활하는 등 선생의 세계는 넓어진다. 일제강점기 모진 시절에 섬세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좌절할 일이 숱했겠으나 만년필을 애써 손에 잡았고, 세상과 예술을 논할 친구를 소중히 대했으며, 연애결혼 하기까지 연인에게 편지도 수없이 써서 보냈다. 문학관 내에 재현한 서재가 커피와 클래식 음악, 영화를 즐기는 ‘모던 보이’ 이효석을 알려준다. 그런 그가 글에서 정착한 곳은 고향 풍경, 자연이었다. 한국 문학사상 가장 아름다운 문장, 가장 완벽한 구조와 서사를 지녔다 해도 과언이 아닐 작품 ‘메밀꽃 필 무렵’을 스물아홉에 발표한다.
흔한 꽃, 매일 뜨는 달에 평범한 장돌뱅이와 지친 나귀. 여기에 우연한 동행자가 더해진다. 사실 어디서건 우리는 만나고 헤어지기에, 우연 자체가 삶이기도 하다. 장돌뱅이는 동행 앞에서 옛 기억을 꺼낸다. 여름을 닮은 청춘 시절, 사랑을 닮은 달밤의 인연. 허름한 인생길에 추억은 평생의 식량이고 연료가 되었다.
소설이 탄생한 무대에서 아름다운 글을 생각하고, 나의 추억 또한 떠올린다. 어제오늘에만 매달렸던 시야가 기억을 더듬다 몇 가지 이미지를 건져 올린다. 낭만적인 달 같은 이야기, 소박해도 예쁜 메밀꽃 같은 장면이다. 효석달빛언덕을 산책하면서 상념을 이어간다. 생가를 재현한 초가, 평양 시절을 보여주는 집, 달 조형물, 나귀 형상 전망대 등이 경사 따라 들어서 걸음이 즐겁다. 평창과 평양, 36년 짧은 생애를 살다 가신 선생도 길에서 긴 시간을 보내셨구나 생각했다. 생애 어느 날의 달이 선생을 사로잡아 영원한 문장으로 남았으니 오늘 나의 달도 그럴지 모른다.
해가 짧아 어느새 어둑해진다. 굳건한 강원도의 산 사이사이 자리 잡은 집들에 불이 켜진다. 그 안에는 착하고 따뜻한 사람이 꿈을 꾸고 있겠지. 하루 여행하고 고향처럼 여길 마을 두 곳을 얻었다. 곧 “숨이 막힐 지경”으로 흐뭇한 달빛이 마을에 내릴 것이다
TRAVEL TIP
로컬100 여행이란 그곳에만 있는, 그곳이 아니라면 보고 느끼고 체험하지 못할 무언가를 만나러 가는 것.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고 지역문화진흥원이 진행하는 ‘로컬100’은 지역의 고유한 여행지, 축제 등 100가지 문화 자원을 발굴해 지원하고 널리 알리는 사업이다. 강릉에서는 시나미 명주 골목과 강릉단오제, 강릉커피축제가, 평창에서는 이효석과 계촌 클래식 축제가 이름을 올렸다.
문의 02-2623-3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