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가 아이돌을 연기했다
배우 수지가 인생 캐릭터를 갱신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이두나!>는 공개 직후부터 ‘오늘의 대한민국 톱 10 시리즈’ 1위를 비롯해 넷플릭스 글로벌 톱 10(비영어) 부문 7위에 진입하는 등 국내외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특히 수지는 연기력은 말할 것 없고 빈틈없는 비주얼로 화면을 꽉 채우며 ‘외모=관전 포인트’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수지는 11월 1일 현재 TV-OTT 통합 화제성 출연자 드라마 부문에서 2주 연속 1위에 올랐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두나!>는 평범한 대학생 ‘이원준’(양세종 분)이 셰어하우스에서 화려한 K팝 아이돌 시절을 뒤로하고 은퇴한 ‘이두나’(수지 분)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로맨스 드라마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로맨스는 별책부록> <로맨스가 필요해 2012>를 연출한 로맨스 장인 이정효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극 중 수지는 눈에 띄는 외모와 특출난 실력으로 그룹 내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던 아이돌이었지만 돌연 연예계 생활을 접고 셰어하우스에 숨어 지내기 시작한 이두나를 열연한다. 원작 웹툰과 높은 싱크로율로 캐스팅 단계부터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수지는 “대본을 보고 지금 (내 나이에) 예쁘게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설레었다”며 출연 계기를 밝혔다. 이어 “두나는 솔직하고 거침없지만 상처도 외로움도 많아 뾰족한 발톱을 지닌 고양이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사람을 좋아하는 ‘개냥이’ 같은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또한 “아이돌 이두나가 아닌 ‘인간 이두나’를 이해하는 과정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연기했다고 밝혔다.
수지는 원작 웹툰의 실사판 가상 캐스팅에서 항상 영순위 두나로 언급된 바 있다. 수지는 아이돌 그룹 미쓰에이 출신이다. 연출을 맡은 이정효 감독은 “수지는 디렉션을 주면 즉흥적으로 연기하면서도 몰입감이 뛰어났다. 놀라운 점이 많은 배우였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어 “연기 외에 춤, 노래 등 다른 작품보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많아 힘들었을 텐데도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수지의 상대역인 이원준 캐릭터는 여리면서도 강단 있는 얼굴을 가진 배우 양세종이 연기했다. 군대 전역 후 첫 작품이기도 하다.
원작 웹툰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비주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수지를 직접 만나 비하인드 스토리와 근황을 들었다.
“대본을 보면서 한편으로 매 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사는 두나가 부러웠다.
나는 그 순간을 느낄 새도 없이 바쁘게 살았다.
힘든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힘들면 안 돼’ 하고 살았던 것 같다.
두나는 적어도 자기가 고장 난 걸 알고 있지 않나. 그래서 부러웠다.”
극중 캐릭터의 직업이 아이돌 가수다. 그래서인지 싱크로율이 높다.
처음 출연 제안을 받고 웹툰을 읽었을 때 이두나라는 캐릭터가 주는 묘한 분위기가 매력적이었다. 해보지 않는 연기 톤이라 흥미를 느꼈다. 실제로 촬영하면서 어떤 부분에선 내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해 그런 지점이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나가 가진 내면의 아픔을 공감했기에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룹 미쓰에이 시절을 생각하며 공감이 갔던 장면이 있나?
촬영을 위해 안무를 연습할 때가 그랬다. 오랜만에 다른 멤버들과 안무를 맞춰보는데 묘하면서도 익숙한, 낯선 감정이 들었다. 처음에는 서로 동선과 움직임이 맞지 않아 연습하면서도 ‘엉망진창’이라며 함께 웃었는데, 조금씩 호흡이 맞아가는 과정에서 쾌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진짜 한 팀이 된 것 같았다.
극 중이지만 오랜만에 무대에 선 소감이 궁금하다.
나보다도 감독님이 더 감격하셨다.(웃음) 나는 무대에서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서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극 중 흡연 장면이 있다. ‘국민 첫사랑’인데 신경 쓰이진 않았나?
그 장면 역시 잘 나왔으면 좋겠다는 마음밖에 없었다. 흡연은 두나를 표현하는 장치다. 그래서 어떻게 표현할지 신경을 많이 썼다. 스킨십 장면들도 고민을 많이 하고 찍었다. 두나라면 이렇게 하겠지, 원준이라면 이렇게 받아들이겠지라는 상상을 하며 연기했다. 연상 연하 커플이라 다른 키스 신과는 조금 다르게 표현하고 싶었다.
두나라는 캐릭터는 판타지가 있다. 웹툰을 읽은 느낌은?
개인적으로는 원준이란 캐릭터가 더 판타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두나는 원준에게 안정감을 느낀다. 나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게 아니라는 믿음, 그 무해함에서 오는 안정감이다. 그래서 둘의 로맨스 과정 자체가 판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원준이 같은 남자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두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원준은 마음대로 행동하는 두나를 있는 그대로 안아주고 바라봐준다. 각자의 상황이 있는데 어떤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들지 않나. 나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바라봐주고 무해하게 다가오는 것 자체가 판타지라고 생각한다.
극 중 원준은 말수가 적다. 연기하면서 답답하지는 않았나?
두나가 원준을 할 말 없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또 둘의 어긋나는 대화가 오히려 긴장감을 준다고 생각했다.
연예인 수지는 휴식의 시간 혹은 차단의 시간이 온다면 뭘 하겠나?
글쎄, 지금 나는 내 시간을 잘 보내고 있다고 생각해 딱히 그런 로망은 없다. 일 끝내고 집에 가면 할 일이 많다. 집안일도 해야 하고, 강아지도 돌봐야 하고 사부작사부작 할 일이 많다. 누워 있으면 오히려 무기력해지는 스타일이다. 영상 편집도 하고, 작곡 공부도 한다.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 있는 것보다 뭔가를 계속하는 게 내게는 쉬는 것이다.
수지가 말하는 관전 포인트는?
<이두나!>는 여러 번 볼수록 다른 재미가 있다. 내 작품을 여러 번 보는 스타일은 아닌데 이번 작품은 여섯 번 정도 봤다. 볼 때마다 다르다.
이 작품으로 ‘수지의 재발견’이라는 평을 듣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두나의 어두운 면을 연기하면서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밝은 이미지다 보니 “너도 짜증 날 때가 있니?”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좀 웃긴 것 같다. 나도 사람인데 당연히 힘든 상황이 오면 짜증이 난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나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
데뷔 14년 차가 됐다. 극 중 두나처럼 은퇴를 생각한 적이 있는가?
항상 은퇴를 생각하면서 일한다. 그래야 최선을 다할 수 있다. 진짜 은퇴를 생각한다기보다는 마지막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이 일에 임한다는 의미다. 나도 두나처럼 이 일이 내 삶의 전부였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일이 없어졌을 때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지금은 자유롭다. 편안하다.
시기적으로 이 세계가 전부였던 적이 언제였는지 궁금하다.
이 일을 시작하고 얼굴이 알려지면서 이 일이 아니면 이제 아무것도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이 알려졌기에 그랬다. 그런 마음 때문에 아예 다른 삶을 생각하지 않는 나를 보면서 ‘이게 내 전부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다.(웃음)
“항상 은퇴를 생각하며 일한다. 그래야 최선을 다할 수 있다.
진짜 은퇴를 생각한다기보다는 마지막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이 일에 임한다는 의미다.
나도 두나처럼 이 일이 내 삶의 전부였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일이 없어졌을 때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지금은 자유롭다. 편안하다.”
극 중 대사 중에 아이돌의 삶을 얘기하며 “반은 얼굴값, 반은 욕값”이라는 대사가 있다. 공감하는 부분이 있나?
글쎄, 모르겠다. 나는 욕을 많이 먹지 않았다고 생각해서….(웃음) 두나가 아픈 대사를 할 때는 최대한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나 원래 이래”, “검색 안 해봤어?” 하며 애써 쿨하게 연기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직업이다. 자기 나름의 극복법이 있나?
대본을 보면서 한편으로 두나는 매 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사는 게 부러웠다. 나는 그 순간을 느낄 새도 없이 바빴다. 힘든 것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바빴다. ‘힘들면 안 돼’ 하고 살았던 것 같다. 두나는 적어도 자기가 고장 난 걸 알고 있지 않나. 그래서 부러웠다.
현재 인스타그램 프로필 사진이 ‘두나’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사진이 예쁘게 나와서 마음에 들더라.(웃음)
안 그래도 비주얼에 대한 얘기가 많다. 특히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나?
1회 엔딩 장면이다. 두나가 하염없이 외로워하며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다. 당시엔 ‘왜 이렇게 오랫동안 찍지?’ 했는데 완성된 화면을 보니 이해가 됐다. 음악과 겹치니까 더욱 진한 여운이 남더라.
훌륭한 비주얼 때문인지 수지가 나오면 범죄 스릴러 장르도 멜로로 바뀐다는 말이 있다.
정말 그 장르를 할 때는 그걸 깨보려고 노력할 것이다. 한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차피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그런 것까지 신경 쓰며 연기하고 싶지는 않다.
내면적으로 단단함이 느껴진다.
일할 때의 스트레스를 집에 들고 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출퇴근 개념이 분명하다.(웃음) 일과 삶을 분리하려고 한다.
양세종과의 호흡은 어땠나?
우리가 만났을 땐 이미 원준과 두나가 돼 있었다. 그래서 대화도 잘 통했고, 서로 원하는 것이 분명했다. 극 중 두나는 내뱉고, 원준은 받아들이는 입장이었다. 일반적인 관계다. 그런 부분을 서로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어 아이디어를 내면 척척 잘 맞았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연기가 있나?
안 해본 것을 해보고 싶다. 드라마 <안나> 이후 복잡한 심리의 대본이 많이 들어온다. 센 역할이라 해도 거부감이 없다. 작품이 좋고 캐릭터가 좋으면 된다. 사실 이제 딱히 조심하고 뭐 그럴 필요가 없지 않나.(웃음) <이두나!> 이후엔 어떤 것들이 들어올지 기대가 된다. 들어오는 대본의 장르가 바뀌는 것도 흥미롭다.
조심하지 않겠다는 선전포고인가?(웃음)
(웃음) 아니다. 조심해야 하는 것들은 조심하려고 한다. 끌리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지 일부러 대범해지려고 선택하는 건 아니라는 의미다.
김은숙 작가의 작품이 차기작이다. 배우 김우빈과 다시 만났다.
미팅을 하는데 너무 반갑더라. 확실히 한 번 호흡을 맞춰서인지 더 편한 것 같다. 이번에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라 기대감도 크다.
배우로서 커리어를 잘 쌓아오고 있다. 되돌아보면 어떤가?
그저 묵묵히 내 할 일을 열심히 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뚜벅뚜벅 잘 걸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