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기의 상징이 돼가는 장소 역시 존재한다. 바로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시그니엘 레지던스다. 전 국가대표 펜싱 선수 남현희의 재혼 상대였던 전청조의 사기 방법에 시그니엘이 등장하자 법조계에서는 ‘사기 공식’이 됐다는 평이 나온다.
성공했음을 보여주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 ‘부동산’이라는 것이다. 매매로 하면 100억원에 육박하는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월세로 나온 매물도 적지 않아 매달 2,000만~3,000만원이면 빌릴 수 있다. 누군가에게 ‘수억원’ 이상을 뜯어내려고 하는 이들은 월세를 투자해 부를 과시하는 데 시그니엘을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 한남더힐은 안 되고 시그니엘은 되는 까닭
2017년 준공된 롯데 시그니엘은 ‘최고급 주거지’를 말할 때 한남동의 한남더힐, 나인원한남 등과 함께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곳이다. 실존하는 우리나라 건물 중 가장 높은 123층 높이로, 한강을 바라보는 뷰가 예술인 곳이다. 배우 클라라 등 유명 연예인들과 각계각층 유명 인사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알려지면서 ‘부자들의 거주지’라는 상징성을 얻게 됐다.
법조계에서는 한남더힐이나 나인원한남은 아파트로 구성돼 있지만 시그니엘은 레지던스 구성이라는 점을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호텔식 컨시어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레지던스이자 오피스텔이기 때문에 대출 규제 등이 아파트에 비해 자유로운 점이 사기꾼들에게 더 쉬운 놀이터가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레지던스, 오피스텔은 아파트보다 대출 규제가 약하다. 담보인정비율(LTV)이 일반 아파트를 구입할 땐 최대 40%까지만 가능하지만, 시그니엘의 경우 개인 신용에 따라 2배도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회사 명의(법인)로 구매할 경우 높은 담보인정비율(LTV)을 인정받을 수 있다.
물론 매매가는 높다. 최소 60억원대에서 고층에 넓은 평수일 경우 100억원이 훌쩍 넘는 매매가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 아파트와 달리 바닥 난방이 안 되는 점은 나이 든 전통적인 부자들에게는 ‘불호’의 요소다. 높은 층에서 한강을 바라볼 수 있는 압도적인 뷰와 123층의 고층이 만들어내는 외관은 되레 3040세대에게 성공의 상징이 됐다. “시그니엘에 산다”라고 하는 것 자체가 주는 자수성가의 이미지가 생겼다.
실제로 남현희는 “(전청조가) 저한테 상위 0.01%의 고위층 자녀를 대상으로 하는 펜싱 사업을 제안하면서 집도 시그니엘에 와서 살아야 하고 100억원 상당의 집을 제 명의로 해준다고 했다”며 “(전청조가) 상위 0.01% 학부모들을 만나고 대면하려면 명품 옷을 꼭 입어야 하고 고가의 차를 타야 한다고 했다”고 말한 바 있다.
‘월세 상품’도 많다. 인터넷 부동산 포털 사이트에서 ‘시그니엘 월세’를 검색하면 월세 매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보증금 1억원에 월세 3,500만원짜리 ‘단기 임대’ 매물도 눈에 많이 띈다. 짧으면 1개월, 길면 3개월 정도만 살아보는 단기 임대 매물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에어비앤비와 같은 형태로 ‘일 단위’, ‘주말 단위’로 임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청조 역시 시그니엘을 단기로 임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 “한번 미팅해보면 압도되는 분위기 있어”
실제로 롯데 시그니엘에서 미팅을 해본 적이 있다는 한 변호사는 ‘사기꾼에게 최적의 장소’라고 평가했다. 단지 내에 스포츠 존·컬처 존·릴랙스 존·호텔 어메니티 등 4개 영역으로 구분된 커뮤니티 시설이 있는데 골프 연습장 및 요가 스튜디오, 갤러리 라운지, 미팅 룸, 와인 셀러 등 고급 시설을 거주자들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부의 과시 효과’가 있다는 설명이다.
앞선 변호사는 “특정 층 거주자들이 손님과 만날 수 있는 미팅 라운지가 있는데 주차하고 1층을 거쳐 올라가는 과정에서 ‘누구와 만나기로 했다’는 것을 여러 차례 밝혀야만 했다”며 “올라간 뒤에는 특급 호텔과 같은 서비스를 받는데, 그런 부분들이 미팅 상대방을 더욱 ‘성공한 사람’처럼 느끼게 만들더라”고 얘기했다.
그는 이어 “상대방이 ‘제가 바빠서 여기까지 오시게 해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하다”라고 얘기했는데 롯데 시그니엘에 사는 상대방이라는 점이 떠오르면서 ‘성공한 사람은 바쁠 수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물론 많은 돈이 든다. 컨시어지 서비스의 경우 매달 적게는 200만원, 많게는 500만원 이상을 내야 누릴 수 있다고 한다. 벤틀리와 벤츠 등 전통적인 사기의 상징인 자동차도 동원됐지만, 이제 ‘부동산’이 사기의 핵심이 됐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평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