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카지노 비즈니스와 은둔형 경영 철학이 사기꾼들의 공략 포인트
파라다이스그룹은 대기업이 아니다. 하지만 호화로운 이미지를 풍기는 호텔과 카지노를 운영하다 보니 대중은 재벌이라고 인식한다. 특히 ‘드라마’에 나올 법한 소재를 많이 가진 그룹이다.
고가의 미술품을 엄청나게 사들이는 것으로 유명하고, 과거 선대 회장의 배다른 자녀들끼리 상속분을 놓고 법정 다툼을 벌인 점 등도 사기꾼들에게는 활용하기 좋은 소재일 수 있다. 실제로 전청조에게 속은 전 국가대표 펜싱 선수 남현희 외에도 아티스트 낸시랭과 배우 김상중이 파라다이스그룹 오너 일가의 자녀를 사칭한 이들에게 속았던 적이 있다.
“나는 전필립 회장 장남” 전청조의 사기극
전청조는 자신을 전필립 회장의 장남이라고 강조했는데 공교롭게도 자신의 성(姓)이 전씨인 점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파라다이스호텔이 있는 인천이 전청조의 고향이기도 하다. 전청조는 남현희에게 자신이 ‘재벌 3세’라며 파라다이스그룹을 물려받을 것임을 강조했다.
남현희는 인터뷰에서 ‘정말 파라다이스 혼외자가 맞느냐’고 의심할 때마다 전청조가 어머니나 친구라는 사람과 스피커폰으로 통화해 확인시켜줬다고 밝혔다. 전청조는 자신이 “뉴욕 출신이고, 파라다이스호텔 회장의 혼외자가 맞다”며 남현희를 속였다고 한다.
특히 경호팀장은 한참 나이가 어린 전청조에게 ‘대표님’이라고 존칭하며 90도로 인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이런 모습들이 남현희에게는 ‘진짜 파라다이스그룹 후계자’로 비쳤을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전청조는 자신을 전필립 회장의 장남이라고 강조했는데 공교롭게도 자신의 성(姓)이 전씨인 점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낸시랭도, 김상중도 ‘파라다이스 2세’ 사칭에 넘어가
불과 5년 전, 아티스트 낸시랭과 결혼한 왕진진(본명 전준주)의 주장대로라면 그는 전청조의 ‘배다른 작은아버지’였다. 왕진진은 아티스트 낸시랭에게 자신을 파라다이스그룹 고 전락원 선대 회장의 혼외자라고 속였다. 본인들 주장대로라면 고 전락원 선대 회장 아들인 전필립 회장의 ‘장남’이라고 주장했던 전청조와는 피가 절반만 섞인 셈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 김상중 씨도 20년 전, 파라다이스그룹 2세와의 결혼을 발표했다가 ‘사기극’임이 드러나 파혼하는 굴욕을 겪었다. 신라호텔에 예식장까지 잡고, 언론에 ‘결혼할 것’이라고 밝히기까지 했지만 역시나 사기였다.
세 사람 모두 사기꾼들의 ‘유사한 레퍼토리’에 속았다. “나는 혼외자이기 때문에 알려지면 안 된다”라거나 “우리 그룹은 숨겨놓은 비자금이 많기 때문에 이를 관리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것을 내가 하고 있어”와 같은 얘기를 듣고 감쪽같이 믿었다.
왜 하필 파라다이스그룹일까
우리나라에 재벌이 파라다이스그룹뿐이던가. 아니, 파라다이스그룹이 그렇게 ‘돈’이 많았던 곳이던가.
파라다이스그룹은 서울, 부산, 인천 등에서 외국인 전용 카지노 객장을 운영하는 국내 최대의 카지노·호텔 기업이다. 파라다이스그룹의 선대 회장인 고 전락원 창업주가 1972년 세운 파라다이스투자개발을 통해 카지노 사업권을 확보해 복합 리조트로 영역을 확대했다.
지난 3월 공시된 자료를 기준으로, 지난해 기준 총자산 3조 5,000억원, 매출 5,870억원, 영업이익 104억원을 기록한 중견 기업이다. 최근 코로나19가 종식되면서 외국인 관광객의 증가로 파라다이스그룹이 지난해보다 훨씬 더 늘어난 영업이익을 기록할 것이라는 기대감 섞인 증권사 리포트가 나왔고, 실제로 올해 3분기까지 1,3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는 공시도 나왔다.
그럼에도 전청조가 51조원이 현금으로 있다며 은행 애플리케이션 예금 화면을 위조해 남현희와 피해자들에게 보여줬지만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규모인 셈이다.
법조계에서는 사기꾼들이 파라다이스그룹의 특징을 악용한다고 설명한다. 카지노와 호텔을 운영하는 파라다이스그룹은 알 만한 이들은 알지만 모르는 이들이 적지 않다. 특히 카지노라는 사업이 가진 ‘어두운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숨겨놓은 돈이 있다’는 포인트로 바뀌어 사기 방법에 악용됐다.
파라다이스그룹 역시 오래 고민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오락, 사행성 등 어둡고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과거 상속을 놓고 벌어진 집안싸움이나 은둔형 경영 철학으로 오너 일가가 언론에 드러나지 않는 점 등은 사기꾼들의 공략 포인트가 됐다. 2004년 11월 전락원 회장이 타계하면서 고 전 회장과 두 번째 부인 사이의 자녀인 전지혜 씨는 상속이 공정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며 상속재산 분할 청구소송을 낸 바 있다.
하지만 이후 승계 과정은 언론에 공개된 바 있다. 고 전락원 선대 회장의 아들인 전필립 회장이 사업을 이어받은 후, 전 회장은 당시 파라다이스인천 보유 지분 60%를 미성년자였던 3남매(우경·동혁·동인)에게 20%씩 나눠줬다. 파라다이스인천 지분을 소유하게 된 3남매는 2011년 파라다이스인천이 파라다이스글로벌로 흡수 합병되는 과정에서 그룹 지주사 격인 파라다이스글로벌 신주를 6.7%씩 확보하게 됐다.
창업자인 고 전 선대 회장에서 오너 3세까지 승계 작업은 오랜 기간을 두고 이뤄지는 셈이다. 그룹 지주사 격인 파라다이스글로벌의 지분 67.33%를 전필립 회장이 소유하고 있으며, 전 회장의 3남매는 각각 6.7%씩 갖고 있는 구조다.
장녀 우경 씨는 파라다이스그룹에서 활동한 적은 없지만 외부에서 사업체를 운영한 사실은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 있다. 전우경 씨는 2020년 이 아무개 씨 등과 DIY 키트 브랜드 ‘피크피크(Peakpick)’를 설립해 공동대표로 활동했다. 2021년에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 팝업 스토어도 오픈했는데, 그룹 소녀시대 멤버 윤아, 원더걸스 출신 배우 안소희 등이 SNS에 ‘인증샷’을 올린 바 있다. 연예계에서도 전우경 씨의 이름은 꽤 알려져 있다. 배우 정호연과 친분이 있고 그룹 블랙핑크 멤버 제니, 배우 안소희 등과 찍은 사진을 SNS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몇 년 사이에 왕진진과 전청조가 파라다이스그룹 자녀를 사칭해 사기를 쳤지만, 사실 조금만 기사를 검색해봐도 파라다이스그룹 오너 일가는 꽤 공개된 행보를 하고 있기에 ‘혼외자가 있다 해도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파라다이스그룹을 이용한 사기는 전청조가 마지막이 될 수 있을까? 파라다이스그룹은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번엔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며 법적 대응 가능성도 시사했다.
파라다이스그룹을 이용한 사기는 전청조가 마지막이 될 수 있을까? 파라다이스그룹은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