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타 공인 학군 전문가 심정섭 소장에게 들었다
학군은 통학 가능한 범위 내의 학교를 일컫는 단어였는데, 지금은 학군에 대한 개념이 완전히 바뀐 것 같습니다. 우수 학군지란 어떤 개념인가요?
우수 학군지는 단순히 주거 지역 부근에 학교와 학원가가 있는 곳이 아니라 초등학교 5, 6학년 때 이사를 고민하지 않고, 중고등학교 6년을 쭉 살 수 있는 곳이라고 정의합니다. 현실적으로 서울대, 의대 합격률이 높은 우수 평준화 일반고, 특목고와 자사고를 많이 보내는 중학교가 몰려 있는 곳이 우수 학군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도시의 경우 새 아파트에 거주 여건도 좋지만,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면 계속 살던 곳에서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기 화성시 동탄의 경우 베드타운을 넘어 일자리 기반의 신도시로 만들어졌지만, 화성이 비평준화 지역이기 때문에 최상위권 학생들은 특목고, 자사고나 기숙사가 있는 외곽의 명문고로 빠져나가고 학군 고민이 있는 가정은 우수 일반고가 많은 성남 분당으로 이사를 고려하게 됩니다. 중고등학교 진학 고민이 적고, 서울대와 의대를 비롯한 상위권 대학 입시 결과가 좋은 지역을 우수 학군지라고 할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서울 대치동·목동·중계동, 대구 수성구 범어동, 대구 달서구 월성동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지역은 학원도 잘 형성돼 있어 이른바 학교-학원-집을 걸어서 다닐 수 있는 ‘학주근접(學住近接)’이 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맞벌이 가정이 많아서 학주근접도 중요한 고려 사항입니다.
우수 학군지로 가는 부모들은 주로 아이가 몇 살 때 이사하나요?
우수 학군지로 이사하는 최적의 타이밍은 아이가 새로운 학교에 가서도 상위 20~30%의 성적이 나올 수 있는 인지적·정서적 준비가 돼 있는 때라고 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학부모가 적어도 초등학교 5, 6학년 전에 우수 학군지로 이동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합니다. 중학교 배정 문제도 있고, 미리 가서 어느 정도 학교나 학원 분위기에 적응하고 친구도 사귀어야 한다는 논리죠. 성남 분당이나 용인 수지처럼 선호 중학교 쏠림 현상이 심하고 경쟁이 치열한 곳은 학교와 아파트 거리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재학 연수도 고려해 중학교 배정을 합니다. 그래서 분당 수내동과 내정동, 용인 수지의 선호 중학교 부근의 초등학교에는 1, 2학년 때부터 학군을 생각하고 이사하는 가정도 많습니다.
“최적의 타이밍은 새로운 학교에 가서도 상위 성적이 나올 수 있는 준비가 돼 있을 때”
저출생 시대에 학령인구도 줄고 있는데, 학군지 경쟁이 언제까지 의미가 있을까요?
2001년에 태어난 신생아가 55만 4,900명인데 2000년에 비해 7만 9,000명이 감소한 수치입니다. 이후에 점점 떨어진 출생률은 2002년에 50만 명 선이 무너졌고, 2020년에 30만 명 선이 무너졌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제나 국력을 유지하려면 최소한 60만 명 이상의 신생아가 태어나야 한다는데 저출생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죠. 신생아 20만 명대에 태어난 아이들은 지금보다 훨씬 쉽게 대학에 가고 취업도 하고, 오히려 회사에서 사람을 구하지 못해 난리가 날 수도 있을 겁니다. 지금 일본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죠. 지금 유아와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대학에 가는 시기면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으로 지금과 같은 획일적인 입시 없이 진로도 좀 더 합리적으로 결정할 수 있을 겁니다. 당장 2024년 대입 개편안에서도 수능을 없애거나 자격 고시화하자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10년 뒤에 5지선다 수능으로 학생을 선발하게 될까요?
하지만 앞으로 10년 동안은 여전히 지금의 입시와 학군이 의미를 가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출생 상황에서도 2010년대에는 40만 명의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또 입시에서의 정시 비중 확대와 이공계 상위권 학과(약대, 반도체 관련 학과, 한전공대) 정원 확대로 현재 재수생은 계속 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러면 대략 2033년까지는 지금과 같이 대입 수험생 40만 명대의 입시 시장이 유지됩니다. 그 가운데 상위 30~40개 대학 정원이자 졸업 후에 정규직 같은 의미 있는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숫자는 상위 7만~10만 명이기 때문에 경쟁은 더 치열해질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대학 가기는 쉬워졌지만, 상위권 대학에 가기 위한 경쟁은 여전하다는 겁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라면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 어려서부터 우수 학군지에서 경쟁력을 길러야 한다는 논리는 앞으로 10년 동안은 여전히 유효할 것입니다.
특목고가 많이 생긴 2010년대 이후로는 고등학교 학군의 선호도 차이가 크게 사라졌다고 보는데요, 아직도 우수 학군지에 대한 선호는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학령인구가 60만 명대에서 40만 명대로 줄어들면서 제일 큰 타격을 입은 곳은 지방 대학이었고 서울 쏠림 현상은 더 심해졌습니다. “가뭄으로 호수의 물이 줄 때는 가장자리부터 준다”는 말이 있듯이 시장이 줄면 각 영역의 2, 3위 순위부터 무너집니다. 우수한 1학군의 쏠림 현상은 심해지죠. 이런 관점에서 앞으로 각 학군의 미래를 어느 정도 예측해볼 수 있어요. 각 영역의 우수 1학군은 더 강해지고, 2, 3위 학군은 유지나 위축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서울의 우수 1학군은 대치동 학군이고, 서부는 목동, 동북부는 중계동입니다. 경기권 1기 신도시의 1학군은 분당, 영남권 1학군은 대구 수성, 중부 지역 1학군은 대전 둔산을 꼽죠.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보수적입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실험하기보다 입시 결과가 검증된 곳에서 안전하게 입시를 치르고 싶어 하죠. 획기적인 사회개혁, 교육개혁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경제력만 된다면 어떻게든 입시 환경이 좀 더 좋은 곳으로 이동하려는 학군 수요는 지금도 존재하고, 앞으로 10년간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할 수 있습니다.
“대치동 늦게 가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시는데요, 우수 학군지로 일찍 들어가야 교육에 도움이 되는 거 아닌가요?
우수 학군지에 일찍 들어가는 전략은 위험도가 낮지만 성공도도 낮습니다. 오히려 비우수 학군지에 오래 있는 전략은 위험도는 높지만 입시 성과는 더 좋을 수 있습니다. 투자 용어로 말하면 우수 학군지는 저위험·저수익(Low Risk Low Return), 비우수 학군지는 고위험·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일 수 있는 거죠. 유아, 초등학생 때 일찍 우수 학군지에 들어간다면 좋은 대학에 들어갈 가능성은 10~20% 정도라고 생각해요. 또 경제적인 면에서도 현명하지 않은 선택을 하는 셈이죠. 사교육비는 감당하기 힘들 거고, 무리하게 월세나 전세 자금 대출까지 받아가며 그 지역 생활을 감당해야 하니 가정경제에도 큰 부담이 될 겁니다. 정말 자식 교육에 올인하다 부모 노후를 대비하지 못하는 경우가 됩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려서부터 우수 학군지에서 비교 경쟁을 한다고 아이들이 다 엄청난 경쟁력을 갖고 명문고생, 명문대생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수 학군지 일반고의 양적인 입시 결과는 대단해 보이지만, 우수 학군지에도 내신 5등급 이하로 밀리면 생각지 못한 입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비우수 학군지에서 내신 1, 2등급을 받고 수능 최저를 맞춰서 가는 대학보다 좋지 못한 대학을 재수, 삼수해 가게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최고의 학군지인 대치동에 있는 학생들도 절반 이상은 부모나 아이가 생각하는 입시 결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이런 결과를 내려고 중고등학교 6년 혹은 그 이상 엄청난 사교육비와 집값을 감당할 건 아니지 않습니까? 공부 잘하는 아이들일수록 대치동과 같은 선호도가 높은 학군지에 일찍 들어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잘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감만 떨어지고 성과를 내기 위해 근시안적인 공부에 매달리기 쉽죠. 이런 공부는 중학교까지는 성적이 나오더라도 고등학교나 수능에서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할 수 없습니다. 수능은 종합 사고력을 보는 시험입니다. 언어 영역은 깊은 사고력이 요구되고, 특히 수학은 정석과 같은 기본 예제를 잘 푸는 능력보다는 여러 가지 수학적 개념을 연결하는 종합적 사고력이 필요해요. 수능이나 내신에서 1등급을 받으려면 출제자의 출제 의도를 읽어내는 능력이 필요한데, 이런 능력은 쉬운 문제를 반복해 풀고 선행 학습을 한다고 나올 수 있는 능력이 아닙니다.
최근 20년간 조기 인지 교육 방법론은 엄청나게 발전했습니다. 영어 유치원에 다니고, 방학 때마다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중학교 때 수능 영어 단어를 다 외웠다는 아이들이 늘어나는데도, 왜 여전히 수능 영어 만점은 해마다 정해진 수만큼만 나오는 걸까요? 어려서부터 창의력 수학에 스토리텔링 수학, 기본 연산 능력을 길러준다는 수많은 문제를 풀고 학원에 다녀도 왜 고등학교에 가서 삼각함수, 지수함수, 로그함수부터는 맥을 못 추고 고2쯤에는 수능형 문제에 손도 못 대는 수포자가 속출할까요? 사교육의 가능성과 한계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사교육은 잘하는 아이에게 더 잘하게 도움을 주는 것이지 못하는 아이를 의미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리지는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사교육으로 점수를 올릴 수는 있어도 등급을 바꿀 수는 없다는 얘기예요. 우리나라 입시는 절대평가가 아니라 상대평가입니다. 노력해서 7~8점 올린 결과를 인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남들보다 등급이 얼마나 높으냐에 따라 합격과 불합격이 정해집니다. 점수 몇 점을 올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등급을 올려야 한다는 거죠. 등급을 바꾸는 입시 경쟁력은 결국 아이의 공부 그릇과 스스로 하려는 의지에 따르는 것이지 사교육이나 좋은 면학 분위기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입시를 바라보는 부모의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하시는데요, 학군지를 선택할 때 반드시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요?
초등학교 때만이라도 자신감과 근성을 갖게 하는 것이 중고등학교 입시 경쟁 체제에 들어가서도 잘할 수 있는 정신력을 길러줍니다. 우리나라에서 우수 학군지란 결국 사교육이 강한 곳이라는 말과 맥이 통합니다. 이런 비교 경쟁에서 살아남은 공부 머리가 있는 아이들은 자존감을 갖고 살아갈 수 있지만, 이 경쟁에서 뒤처진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낮은 자존감으로 자신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수 학군지의 중하위권 아이들을 대상으로 회복 탄력성 검사를 해보면 대부분 평균 이하의 점수가 나옵니다. 다중 지능 검사를 해봐도 자신의 감정 지능이 중간 점수 이상을 못 넘기는 경우가 많아요. 우수 학군지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다른 친구들과 비교되고 남들보다 못하는 것의 가짓수만 늘려가기보다는 지방의 작은 학교에 가서 1등도 해보고 여러 가지 가능성을 시험해보는 게 후에 입시 경쟁에서 더 나을 수 있습니다.
요즘은 1살이라도 어릴 때 우수 학군지로 가서 공부를 많이 하고, 친구를 사귀는 것이 좋다는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위와 같은 현실을 고려해 오히려 역발상을 해볼 수도 있습니다. 아빠의 통근 거리 안에 있는 시골스러운 분위기의 학교에서 초등학교까지 보내고, 아이가 공부가 된다 싶으면 우수 학군지로 가서 경쟁해보는 겁니다. 지방 학교 1등이라서 선행으로 공부한 도시 아이들에게 뒤질 것을 걱정할 수 있지만, 사실 공부 범위가 좁은 중학교 내신은 수업 시간에 집중하고 숙제와 수행평가 관리만 잘해도 A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중고등학교 5~6년을 문제지 푸는 공부에 집중하면 웬만한 입시 목표는 이룰 수 있습니다. 주변 분위기에 휘둘려 무리하게 우수 학군지로 이사해 지나친 주거 비용과 사교육비를 감당하느라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정들을 보면 솔직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