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는 정답 아닌 정답을 찾아내는 과정”
배우 송강호가 제76회 칸영화제 공식 비경쟁 부문 초청작인 <거미집>에서 기필코 걸작을 만들고 싶은 ‘김 감독’ 캐릭터를 맡아 열연하며 평단의 호평을 받고 있다. 연출을 맡은 거장 김지운 감독과는 영화 <조용한 가족> <반칙왕>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밀정>에 이어 다섯 번째 호흡이다.
<거미집>은 1970년대,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만 다시 찍으면 걸작이 될 거라 믿는 김 감독이 검열, 바뀐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와 제작자 등 미치기 일보 직전의 악조건 속에서 촬영을 밀어붙이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영화다. 송강호는 극 중 김 감독으로 분해 인간의 욕망과 집착이 뒤엉킨 캐릭터를 실감 나게 보여준다.
알려진 바와 같이 송강호는 제75회 칸영화제에서 <브로커>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고, 제72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기생충>을 비롯해 수많은 작품에서 언어와 국가를 뛰어넘어 각광받는 대한민국 대표 배우다.
송강호를 직접 만나 <거미집>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근황을 들었다.
최근 출연한 <거미집>은 어떤 영화인가?
팬데믹을 거치면서 OTT를 비롯해 다양한 콘텐츠를 손쉽게 접할 수 있지만 영화만이 가진 에너지와 매력을 지닌 작품은 분명히 있다. 그런 작품이 그리웠고, 또 그런 작품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거미집>은 대중적이지만 영화만이 가진 매력을 십분 발휘하는 작품이다. 그게 가장 기쁘다. 흥행은 둘째 문제다.
장르적으로 신선하다.
한국 영화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장르다 보니 호기심과 매력을 느꼈다. 괴기스럽지만 종합 세트 같은 장르라고 해야 할까. 피상적으로 보이는 인간의 욕망과 그 속에서 허우적대는 인간 군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김 감독’이라는 캐릭터는 어떻게 해석했나?
일류 감독이 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 인물이다. 열등감이 있어 끊임없이 자기 능력을 의심하고 좌절한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주변을 둘러보지 않더라도 우리 스스로도 그렇지 않나. 어떤 특정한 영화감독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의 보편적인 감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송강호라는 배우에게도 열등감이 있나?
잘생긴 배우들을 보면 움츠러든다.(웃음)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어갔나?
대부분의 감독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정서를 드러내고 싶었다. 예를 들어 촬영장에서 혼자 주문을 거는 모습이라든지, 상대방을 설득하려고 하는 장면은 모든 감독이 대체로 하는 행동이다. 그게 감독의 역학이지 않나. 인간의 자연스러운 희로애락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광기 어린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그것만큼은 이 작품의 연출을 맡은 김지운 감독의 모습에서 착안했다. 과거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촬영할 때였는데 사실 그때는 현장에 있던 모두 사람이 패닉에 빠져 있었다. 중국 사막에서 100일 동안 촬영했는데, 내일은 무조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일정이었다. 분량은 많고 시간은 없고 위험한 장면이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김지운 감독은 그 모든 노력을 필름에 담기 위해 광기 그 자체의 모습이었다. 스스로도 인정한 부분이다.(웃음)
김지운 감독과는 무려 다섯 번째 작품이다.
한결같은 사람이다. 한결같이 집요하고 진중하고 침착하다. 그래서 참 좋다. 그런 집요함이 있기에 김지운만의 스타일, 그러니까 김지운만의 영화적인 미장센이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내 연기 루틴은 시나리오를 분석하는 단계를 밟는 게 아니라 불규칙적이다.
불규칙적인 루틴조차 규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늘 변칙적이다”
극 중에서, 바뀐 대본에 맞춰 재촬영해야 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가 나온다. 실제로도 그런 일들이 있지 않나.
실제로도 당연히 있는 일이다. 결국 배우는 감독과의 대화를 통해 다시 감을 잡아야 한다. 더 사실을 말하면, 대화를 통해서는 한계가 있다. 그 대화는 약간의 소스일 뿐이다. 진짜 해답은 배우 스스로 찾아야 한다. 내 경험으로는 그렇다.
그동안 출연했던 작품 중 가장 애를 먹었던 캐릭터는 무엇이었나?
글쎄, 다 고뇌했다. 뚝 떨어진 작품이 없다.
스스로 생각하는 송강호라는 배우의 오리지널리티는 무엇인가?
후배들이 많이 물어보는 질문이다. 내 대답은 늘 그렇다. “정답인데 우리가 알고 있는 정답을 적으면 안 된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머릿속에 있는 정답을 적으면 정답은 맞는데 감동이 없다는 의미다. 모르는 답을 적어내야 하는데, 그게 또 정답이어야 한다. 그래서 어렵다. 이건 언젠가 박찬욱 감독님이 나와 관련된 한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정답이 아닌 정답을 적어냈는데 알고 보니 정답보다 더한 정답이었다.” 김지운 감독은 오래전에 내 연극을 보고 “께름직하다”는 표현을 하더다. 내가 알고 있는 걸 보여줘야 께름직하지 않은데 예상치 못한 얘기를 하니까 께름직한 거다. 결국 ‘김지운의 께름직함’과 ‘박찬욱의 정답 아닌 정답’이 같은 의미일 것이다.
송강호만의 연기 루틴이 있나?
종합적이라고 해야 할까. 어느 순간부터 시나리오를 분석하고 고민하는 단계를 밟는 게 아니라 불규칙적인 루틴이 생긴 것 같다. 그 불규칙적인 루틴조차 규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늘 변칙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