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소비에 집중하다
팝업 스토어는 팬데믹 전과 후로 나뉜다. 코로나19 이전의 팝업 스토어는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오프라인 소매점에 그쳤지만, 팬데믹 이후엔 젊은 세대에게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는 힙한 플레이스로 그 의미가 확장됐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억눌려 있던 대면 활동에 대한 욕구가 터지면서 오프라인 소비를 원하는 고객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에 유통업계는 팝업 스토어 등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거나 AI 등 첨단 기술과 스토리형 콘텐츠를 활용한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 경험 소비를 중시하는 MZ세대를 공략하기 위해서다. 기업들은 브랜드를 각인시킬 수 있는 체험 공간과 콘텐츠를 선보이며 소비자들의 발길을 이끄는 것이다.
국내 팝업 스토어 1세대로 손꼽히는 맥심플랜트를 만든 동서식품은 올해 봄 카누 브랜드 팝업 스토어인 ‘카누 하우스’도 선보였다. 지하 1층부터 지상 5층, 루프톱까지 6개 층으로 구성했으며, 카누 브랜드의 발자취를 담은 전시 공간부터 카누 바리스타를 체험할 수 있는 바리스타 라운지, 사무실·정원 등 카누와 함께하는 일상 속 공간, 제품 시음 등 다양한 체험·이벤트 존을 마련했다. 삼양그룹 계열사 삼양사 역시 성수동에 상쾌환 팝업 스토어 ‘프레시 샤워 룸’을 운영했다. 이 팝업 스토어는 샤워를 한 듯 상쾌환으로 전날의 숙취를 씻어내고 상쾌한 기분을 낼 수 있는 샤워 룸 콘셉트로 꾸며졌다. 내부 중앙에 대형 아일랜드 형태의 진열대를 만들고, 상쾌환 제품과 샤워용품을 활용해 샤워 룸 분위기에 어울리는 공간을 연출했다. 팝업 스토어 방문 인증샷을 필수 해시태크와 함께 개인 SNS에 올리면 스토어 내부에 마련된 스티커 사진 부스에서 여러 소품을 활용해 인생네컷도 찍을 수 있다. 또한 침대 전문 기업 시몬스는 잠재 고객인 1020세대를 겨냥해 청담동에 그로서리 스토어를 오픈했다. 시몬스라는 브랜드를 일찍이 경험하게 함으로써 각인 효과를 기대한 전략이었다.
팝업 스토어, 백화점을 점령하다
현대백화점은 팝업 스토어의 성지로 불리며 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현대백화점 판교점에서는 월트디즈니코리아와 협업해 ‘디즈니 100주년’ 기념 팝업 스토어를 열었다. 매장에서는 피규어, 인형, 의류, 리빙 등 총 700여 종의 디즈니 라이선스 제품을 만날 수 있다. 대표 상품으로는 ‘디즈니 프린세스’ 찻잔과 접시, 비스트킹덤의 디즈니 피규어 등을 선보인다. 팬덤을 기반으로 한 대표적인 팝업 스토어는 아이돌 그룹 뉴진스의 팝업 스토어다. 뉴진스 데뷔 기념으로 더현대 서울에서 진행한 뉴진스 팝업 스토어에는 20일 동안 하루 평균 1만 7,000여 명이 다녀가며 큰 성공을 거뒀다. 인기 캐릭터 잔망루피 또한 더현대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 등 다양한 유통 채널에서 팝업 스토어를 운영했다. 한남동에서 진행한 디젤×원소주 스피릿 에디션, 더현대 서울에서 열린 슬램덩크 팝업 스토어의 경우 한정판 상품 판매로 방문객을 끌어모았다. 특히 슬램덩크 팝업 스토어엔 첫날 대기자가 400~500명에 달했다. 희소성은 곧 화제성으로 연결됐다.
롯데백화점 역시 그동안 다양한 팝업을 선보여왔다. 지난 1월 잠실 롯데월드몰 지하 1층에선 ‘T1(티원)’ 팝업이 열렸다. ‘T1’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끄는 <리그 오브 레전드(LoL)>의 유명 프로 게임단이다. 실제로 첫날 개장 전부터 500여 명의 1020세대 팬이 몰려 화제가 됐다. 지난 7월 잠실 롯데월드몰 5~6층에 위치한 ‘노티드 월드’에서 진행된 인기 RPG 게임 <로스트아크> 컬래버레이션 행사에도 개장 전날부터 1,000명이 넘는 고객이 대기 줄을 섰다. 신세계백화점은 하이브와 손잡고 지난 9월 그룹 세븐틴의 팝업 스토어를 열었다. 신세계가 처음으로 선보인 K팝 아티스트 팝업 스토어로, 오픈 기간인 10일간 1만 명의 고객이 상품을 구매했고, 약 15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다.
로컬, 팝업 스토어와 만나다
괴산군은 올여름, 수도권 관광객 유치를 위해 서울 이태원에 팝업 스토어 ‘괴산상회’를 운영했다. 서울 도심에 개장한 ‘괴산상회’는 괴산 관광 활성화를 목적으로 청년들의 마음속에 방문하고 싶은 지역, 살아보고 싶은 지역으로 인식시키기 위한 콘텐츠를 선보인 것. 팝업 공간은 괴산에 귀농한 청년의 방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괴산에서 먹고, 놀고, 머무는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구성했으며, 천혜의 자연환경 등 괴산의 숨은 관광지 등을 다양하게 소개했다. 또한 가게를 방문한 MZ세대를 위해 재미있는 추억을 남길 수 있는 뽑기 이벤트, 농부 복장 포토존과 함께 청년 귀농인이 직접 만든 농특산품, 괴산 거주 활동가들이 생산한 지역 특화 상품을 전시·판매하기도 했다. 괴산군은 2022년에도 이태원과 서촌에서 ‘괴산상회’를 운영해 1만 6,000여 명이 방문하는 등 수도권 관광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에피그램의 행보도 독특하다. 에피그램은 2017년부터 한 시즌에 지방 소도시 한 곳을 선정해 지역을 소개하는 콘텐츠와 로컬 브랜드 상품, 에피그램이 직접 제작하는 로컬 테마 아이템을 선보이는 ‘로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2023 F/W 시즌 에피그램과 함께하는 지역은 충북 보은이다. 이번 로컬 마켓 보은에서는 보은의 특산물인 생대추를 만나볼 수 있다. 보은 대추는 속리산 청정 지역의 깨끗한 자연환경과 풍부한 일조량, 큰 일교차 등으로 열매가 클 뿐 아니라 당도가 높고 과육이 많기로 유명하다. 보은 현지에서 생산하는 대추술, 들기름, 고추장 등의 다양한 먹거리도 판매한다. ‘로컬 프로젝트’를 통해 소개하는 보은 로컬 푸드의 리패키지 상품도 이번 마켓에서 선보인다. 대추페이스트, 대추현미누룽지, 대추한과 세트, 카사바 콘플레이크차 등의 패키지에 에피그램 감성으로 재해석한 보은의 명소들을 그래픽으로 담은 것이 특징이다. 이번 시즌 ‘로컬 프로젝트’의 가장 큰 특징은 아티스트와의 협업으로 보은의 캐릭터를 탄생시킨 점이다. 듀오 일러스트레이터 안초비(anchoby) 작가와 함께 속리산 입구길로 유명한 말티재를 모티브로 제작한 캐릭터 ‘말티’가 바로 그것. 에피그램은 ‘말티’ 캐릭터의 키 링, 볼펜, 컵, 수건 등 다양한 굿즈를 로컬 마켓 보은에서 판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