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부터 11주 동안 방영된 16기 돌싱 특집은 <나는 SOLO>(ENA·SBS Plus)의 히든카드로서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한 기수에 10회차가 최대였던 방송 분량을 11회까지 늘렸고 최종 선택이 공개된 마지막 방송의 시청률은 평균 7.05%(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했으며, 분당 최고 시청률은 7.93%까지 치솟았다.
매회 드라마보다 더 재밌는 에피소드가 전파를 탔다. 영숙과 광수의 데이트 중단 사태, 영숙과 옥순의 다툼 등이 그렇고 “경각심을 가지세요”, “녹화 테이프를 깔까?”, “말 잘해야 돼” 등의 밈이 탄생했다. 이 밖에도 영숙의 태도 논란·가짜 뉴스 유포·쇼핑몰 가품 판매 논란, 상철의 정치 유튜브 논란, 영수의 갑질 논란 등으로 출연자들이 연이어 사과문을 올리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나는 SOLO>는 타 연애 프로그램과 다르다. 남녀가 ‘썸’을 타는 것을 보여주는 대신 남녀가 느끼는 기쁨과 슬픔, 분노 같은 감정을 날것 그대로 드러낸다. 그 때문일까? <나는 SOLO>를 보는 시청자는 누가 누구와 커플이 될지 궁금해하는 대신 인간관계를 돌아본다. 자기 자신 또는 내 주변의 빌런을 떠올리며 ‘대체 저 사람이 왜 저럴까?’라고 생각한다. <나는 SOLO>가 거울 치료(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를 유도한다는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닌 셈이다.
인류학 교재로 남겨야 한다는 평을 받는 <나는 SOLO>의 시작엔 남규홍 PD가 있다. 남규홍 PD는 2011년 SBS 예능 <짝>으로 일반인 연애 예능 시대를 열고, 디스커버리 채널 코리아 예능 <스트레인저>에 이어 ENA·SBS Plus 예능 <나는 SOLO>로 10년 넘게 남녀의 사랑을 관찰하고 있다.
16기 돌싱 특집이 막을 내렸습니다.
스토리가 절묘하게 나온 기수였습니다. 출연자들이 고생했죠. 마지막 방송(16기 돌싱 특집은 10월 4일 11회로 막을 올렸다)이 끝나고 유튜브에서 라이브 방송(이하 ‘라방’)을 진행하면서 출연진에게 방송에 대한 피드백을 들었습니다. 타 기수는 보통 9만~10만 뷰가 나오는데 16기는 27만 뷰를 기록했죠.
라방 전 영숙 님이 ‘큰 거 하나 터뜨린다’고 예고해 화제가 됐었죠.
개인이 방송에 대해 리액션하는 것은 관여하지 않습니다. 저는 방송 취지라든가 방송의 퀄리티를 신경 쓸 뿐이죠. 한 가지 원칙은 있습니다. 가급적이면 방송에 지장을 줄 수 있는 SNS 활동은 하지 말자고 합니다. 작가들이 관리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흐름에 맡깁니다. 돌발 행동도 시간이 지나면 잊히기 때문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16기는 출연자 개개인의 특징이 돋보이는 기수였습니다. 출연자는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나요?
사람을 소개해주는 거라서 신분에 대한 보장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직업 등 개인 정보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해요. 그리고 매력이나 캐릭터를 보고 캐스팅하죠. 출연자의 매력을 아는 방법이요?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됩니다. 이 사람을 캐스팅해 어떤 효과를 얻겠다고 생각하면 실망하기 마련이에요. 이 사람이 프로그램 내에서 무난하게 활약하겠다고 생각하면 대다수가 기대치 이상을 합니다. 그리고 방송 프로그램이니까 방송에 친화적인 사람이면 좋죠.
출연자를 섭외할 때 어떤 것을 물어보나요?
별거 없어요. 어디에 사는지, 직업은 무엇인지, 과거 연애사는 어땠는지 물어보는데 그렇게 대화를 나누면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돼요.
16기 출연자 중에서 상철의 매력에 빠진 시청자가 많습니다.
사전 인터뷰 때 평범한 인상이었어요. 그런데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그 사람만의 아우라와 여러 가지 색이 나온 것입니다. 방송에서 그 부분이 증폭돼 보인 거예요. 그래서 누군가는 누군가의 애인이 되고, 남편이나 아내가 되죠. 모든 사람이 매력을 갖고 있는데 숨겨져 있을 뿐이죠.
개성 넘치는 출연자들이 모여 기수마다 그들만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이 모였고, 누가 리드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요. 기수마다 2~3명이 분위기나 상황을 주도적으로 리드하면서 기수만의 분위기가 형성되죠.
솔로나라의 빌런
16기는 ‘빌런 특집’이라는 수식어를 얻었습니다. 촬영 전에 빌런의 탄생을 예상했나요?
전혀요. 빌런이 있을 거라고 예상하거나 기대하면서 촬영하지 않아요. 평범한 사람도 가끔 대단한 일을 벌이거나 예상 밖의 일을 할 때가 있잖아요. 누구나 빌런이 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이 있습니다. 솔로나라에서 말이 와전되고 오해가 오해를 부르는 상황이 벌어졌던 것은 빌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상황이 극적으로 복잡하게 펼쳐지고 감정이 격정적으로 흘러갈 땐 평범한 사람도 빌런으로 보일 수 있는 거죠.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보여준 다이내믹한 모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일각에서는 남규홍 PD의 섭외력에 감탄하기도 합니다.(웃음)
빌런을 기대하면서 캐스팅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걸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어요. 불가능합니다.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면 누구나 마주할 수 있는 상황이에요.
빌런이 탄생하고 갈등이 생기는 이유는 뭘까요?
사람이 존재하는 한 갈등은 어디서나 생깁니다. 사람과 사람이 감정 교류를 하다 보면 항상 왜라는 의문이 따르고 의심을 낳게 되죠. 모든 인간은 완벽하지 않고, 조직은 개개인의 이익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갈등이 발생하기 마련이에요. 우리는 사랑을 주제로 인간관계를 들여다보는데 솔로나라에 모인 솔로들의 관계를 살펴보면 묘하게 우리 사회를 반영한 모습이 되기도 해요. 얽히고설킨 관계를 보면서 시청자들이 왈가왈부하고요. 누구나 일상에서 경험했을 법한 일이니까 자신을 투영하면서 보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솔로나라에 모인 솔로들의 관계를 살펴보면 묘하게 우리 사회를 반영한 모습이 되기도 해요.
누구나 일상에서 경험했을 법한 일이니까 자신을 투영하면서 보게 되는 거죠
실제로 촬영 중에 제작진이 제시하는 예능적 장치가 거의 없다죠.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비법입니다. 다른 촬영 팀은 제작진이 가만히 있는 걸 두려워하는데, 우리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게 효과가 큰 방법이란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현장에서 우리만의 방식대로 하죠. 무언가 할 때 현장의 분위기를 보고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아요. 무언가를 해서 출연자들이 조금씩 바뀌거든요. 그 변화가 큰 결과를 낳을 때도 있고 작은 결과를 낳을 때도 있습니다.
현장 분위기가 어떨 때 뭔가 해야겠다는 결정을 내리나요?
사람이 365일 내내 찌푸린다거나 기뻐하면서 살진 않아요. 희로애락이 고정된 게 아니라 어떤 때는 밝다가 어떤 때는 우울하기도 해요. 솔로나라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죠. 그럴 때 의외로 사소한 것을 계기로 변하기도 해서 판을 벌이죠. 데이트를 한다거나 속마음 인터뷰를 하는 식이에요. 인터뷰하면서 누가 누구에게 관심 갖고 있다고 언급하는 것만으로 약간의 변화가 생겨요. 16기에서 영자도 자신감이 없는 모습을 보이다가 슈퍼데이트권을 따려고 달릴 땐 활발했어요. 물론 단 한 명의 감정을 위해 제작진이 개입하진 않습니다. 개개인의 감정은 개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나는 SOLO>를 보면 ‘모두 열심히 사랑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랑은 인간의 DNA에 있는 게 아니겠어요?
사랑이 무너지거나 작동하지 않으면 인간의 존재를 상실할 수도 있어요. 사랑을 매개체로 종족 번식을 하는 동물이나 식물은 인간보다 더 솔직해요. 인간은 동식물과 다르니까 그 모습이 감춰진 것뿐이죠. 솔로나라에는 공통된 목적을 갖고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일상에서보다 더 자연스럽게 사랑을 쟁취하는 모습이 드러나요. 만약 다른 목적이나 목표가 있었다면 그들의 모습도 그 목표에 맞게 세팅됐겠죠. 사랑이란 목적을 갖고 목표를 향해 달리기 때문에 열심히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 특별히 더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아니죠.
그만큼 삶에서 사랑이 큰 존재라는 의미겠죠?
사랑의 유무가 사람의 행복을 좌우하죠. 내가 이성이나 부모, 자식, 동물을 사랑하면 그들과 함께 행복을 나누고 느끼잖아요. 사랑하는 대상이 없다면 혼자 있어야 하는데…. 삶의 질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행복의 크기를 결정할 만큼 인간에게 사랑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랑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을 거예요.
전도연 같은 예능
사랑이 탄생하는 순간을 오래 지켜본 PD님은 연애 고수인가요?
저도 잘 못했습니다.(웃음) 연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과 감정을 정확히 표현하는 거예요. 외국 영화를 보면 커플들이 각자의 감정을 갖고 토론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짧게 말하고 말죠.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서서히 마음을 얻는 것도 중요합니다. 물론 대화를 너무 많이 하는 것도 피곤해요. 과유불급이죠.
10년 넘게 연애 프로그램을 만드셨어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연애 스타일에 변화가 있나요?
과거보다 남녀가 대등한 입장에 있다는 게 가장 큰 변화예요. 예전엔 남자만 구애했다면 요즘엔 더 좋아하는 사람이 구애하죠. 또 남자가 적극적으로 꾸준히 대시하면 여자가 결국 마음을 열었어요. 일편단심인 남자의 모습이 긍정적으로 평가받기도 했고요. 그런데 요즘엔 상대가 거절 의사를 밝혔는데 계속 대시하는 것이 금기시되죠.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랑 표현이 위축됐어요. 한편으론 적극적인 여성도 늘었으니 어느 정도 커버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요.(웃음) 과거엔 밀당하는 기간이 길었다면 요즘엔 금방 끝나는 것 같아요. 둘 중 한 명이 의사를 전하고 확인하면 끝나는 거죠.
2011년 SBS <짝>으로 일반인 연애 예능을 만들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시작했나요?
방송사의 생리는 전투적이에요. 전쟁에 나가서 싸우는 기분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었죠. 방송사의 기대를 충족하고 시청자들이 열광할 때 신나서 날뛰기도 했어요. 그러다 미끄러질 때도 있었죠. 지난한 시간을 거쳐 <나는 SOLO>를 만들었는데 시청자들이 사랑해주니 힘이 나요. 그런데 너무 뜨거운 건 원하지 않아요. 데거든요. 적당한 게 좋아요. 16기 돌싱 특집으로 뜨거워졌으니 2기수 정도는 식히면서 하려고 해요. 다른 포인트로 재미를 주면 시야가 넓어지고 생각할 거리도 생길 거라고 여깁니다. 가장 좋은 것은 평범한 거니까요. 난리를 치는 게 아니라.
누구나 빌런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습니다.
상황이 극적이고 감정이 격정적으로 흘러갈 땐
평범한 사람도 빌런으로 보일 수 있어요
그럼에도 시청률이 상승할 땐 쾌감이 느껴질 것 같아요.
<나는 SOLO> 1회의 시청률이 0.3%였어요. 차츰차츰 시청률이 올라갈 것으로 예상하고 꾸준하게 만들었죠. 이제는 프로그램이 안정적으로 정착했다고 생각해요. 지금부터 프로그램이 롱런하는 것은 제작진에게 달렸습니다. 시청률 지상주의에 매몰돼 욕심부리지 않아야 해요. 은은하게 중독적으로, 꾸준하게 사랑받는 프로그램이 오래 살아남아요. 햇빛이 쨍한 날이 있으면 비가 내리는 날도 있듯이 일희일비하지 않고 조금씩 성장하고자 합니다.
프로그램을 만들 때 즐거운가요?
70~80%는 즐거워요. 힘듦과 지침에서 오는 괴로움이 있기도 한데 중요하지 않아요. 그 정도는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거든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해요. 40~50명의 제작진이 각자 맡은 역할을 충실하게 하며 작품을 만들고 있는데 즐겁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SOLO>의 눈에 띄는 포맷 중 하나가 영숙, 영호 같은 이름입니다. 이제는 이름마다 고유의 이미지가 생겼어요.
만약 본명을 사용하거나 기수마다 가명을 사용했다면 이름에 힘이 생기지 않았을 거예요. 특정 이름이 가진 힘이 강해지길 바라면서 만든 포맷이었죠. <나는 SOLO>의 정체성이 되길 바라기도 했고요. 다만 출연자 이미지에 맞게 이름을 부여하진 않고 유연하게 적용합니다. 그런데 신기한 게 어떤 이름이 주어지면 출연자가 그 이미지에 꽤 맞춰집니다.
미리 구상한 솔로나라만의 세계관이 있나요?
아니요. 설명하자면 <나는 SOLO>만의 전개 방식을 구상한 거죠. 다른 색을 가진 출연자들이 공통된 코드로 모였고 전개가 반복되면서 <나는 SOLO>가 정체성 있는 프로그램으로 성장했고요. 이제는 굳이 프로그램을 설명하지 않아도 출연자들이 알아서 맞춰요. 초창기보다 촬영이 수월해졌죠. 제작진이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예요. 시청자들이 우리 프로그램은 진짜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저는 프로그램을 목적에 맞게, 재미있게 만들 뿐이죠.
<나는 SOLO>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인가요?
계속 가는 것. 이제 시작입니다. <짝>은 60기수를 촬영했는데, <나는 SOLO>는 이제 18기수를 촬영했어요. 아직 갈 길이 멀죠. <짝>은 그로테스크한 형태였어요. 유니폼을 입고 돌아다니고 1호, 2호라고 지칭하는 모습들이 마치 마릴린 먼로처럼 화려하게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죠. 반면에 <나는 SOLO>는 소박한 모습이에요. 영화배우로 비유하자면 전도연 같죠. 전도연 배우가 영화 속에서 팜 파탈이었다가 평범한 엄마가 되기도 하잖아요. 화려하기보다 수수한 모습인데 롱런하고 있죠. <나는 SOLO>가 전도연처럼 롱런하길 꿈꿉니다. 제작진은 프로그램을 열심히 만들겠습니다. 출연자들은 열심히 사랑을 찾을 거고요. 그러기 위해 시청자들의 애정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제작진이나 출연자가 실수를 하더라도 너그럽게 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나는 SOLO>의 감성 담긴 자막은 남규홍 PD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그는 사랑도 삶도 연습은 없다고 말한다. 부딪혀보며 아는 수밖에 없다고. 부지런히 사랑하라! <나는 SOLO>가 시청자에게 전하는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