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의 무명 생활
가수 은가은은 단지 노래 부르는 게 좋아서 성악을 시작했고, 우연한 기회로 연예계에 데뷔했지만 그녀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그녀는 꽤 긴 시간을 소리 없이 울면서 ‘무명’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왔다. 사실 은가은은 숨겨진 보석이었다.
<달려라 장미> <밤을 걷는 선비> <불어라 미풍아> 등 유명 드라마에 OST 보컬로 참여했고, 2013년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한 장의 앨범을 발매했다. 유튜브나 SNS에서는 ‘실력파’라 불렸다. 단지 운이 안 좋았을 뿐 누구나 인정하는 가수였던 은가은의 노래엔 오랜 시간 동안 숨죽인 채 갈고닦아온 지난 시간이 오롯이 담겨 있다. 목소리, 눈빛, 표정이 그동안의 간절함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지 않나. 다시 말해 은가은은 저력 있는 가수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어둡고 긴 터널을 뚫고 나온 그녀다.
은가은은 천생 연예인이다. 작은 얼굴, 오밀조밀 이목구비가 참 예쁘다. 그런데 비주얼이 전부가 아니다. 무대 위에서 쏟아내는 에너지, 외모와는 반전되는 깊은 목소리, 대중의 마음을 훔치는 표정 연기까지…. 이런 보석이 왜 이제야 빛을 발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어떤 현장에서든 피해를 주면 안 된다고 생각해 남몰래 준비를 많이 해요. 일 못 하는 사람이 제일 싫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스스로에게 엄격해요.”
그러고 보니 은가은은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성악, 힙합, 록, 댄스, 재즈, 뮤지컬 등 모든 장르에 도전했다. 성악을 통해 다져진 깊은 울림을 바탕으로 많은 시도를 해왔다.
“워낙 남들이 안 하는 것을 하길 좋아해요. 그리고 그 결과에 연연하지도 않죠. 진정한 저의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니 도전과 시도가 어렵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날엔 진한 화장, 어떤 날엔 민낯, 이런 식이죠. 음악적인 면에서는 고민을 많이 해요. 추구하는 장르요? 그런 거 없어요. 보여줄 수 있는 건 다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 최대한 많이, 다양한 것을 하려고 하죠. 단점은 뚜렷한 색깔이 없어 보일 수 있다는 것!”
사실 두어 시간의 촬영 동안 그녀의 모든 걸 알 수는 없다. 잠시 보여준 모습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은가은은 모두가 좋아할 만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예쁘고, 자신의 삶을 대하는 태도가 아름다운 사람이랄까.
“저는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그렇다고 특별히 싫어하는 것도 없어요. 사람도 물건도 일도 모든 것에서 두루두루 좋아하는 편이죠. 그래서 고민도 잘 안 해요. 성격이 급해 빨리빨리 선택하고 결정하지만 어떤 결과를 낳든 순응합니다.”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그렇다고 특별히 싫어하는 것도 없어요.
사람도 물건도 일도 모든 것에서 두루두루 좋아하는 편이죠.
그래서 고민도 잘 안 해요.
성격이 급해 빨리빨리 선택하고 결정하지만 어떤 결과를 낳든 순응합니다.
요즘 사람들이 제게 바쁜 스케줄로 힘들지 않냐고 묻는데 저는 안 쉬어도 돼요.
그동안 너무 많이 쉬었잖아요
절망적이었던 나의 청춘
은가은은 최근 동남아로 여행을 다녀왔다. 그동안 함께 고생한 스태프와 함께 떠난 여행이었는데, 그곳에서 전에는 알지 못했던 행복을 느꼈다. 평온하게 부는 바람마저 재미있었고, 비싸지 않은 음식에도 즐거웠다.
“돈을 버는 이유를 처음으로 느꼈달까요. 그동안은 ‘돈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여행다운 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거든요.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를 처음 알았어요.”
그도 그럴 것이 그녀에게 여행은 사치였다. 지금 당장 배를 채울 수 있는 라면을 사 먹을 돈도 없는데 여행은 언감생심이었다. 노래를 부를 수만 있다면 사비를 털어서라도 무대에 올랐고, 그래서 계속 가난했다.
“요즘 사람들이 힘들지 않냐고 물어봐요. 잠도 못 자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일하니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묻는 질문이죠. 저는 잠을 안 자도 돼요. 안 쉬어도 돼요. 그동안 너무 많이 쉬었잖아요. 얼마나 그리웠고 갈망했던 무대인데요.”
은가은은 “힘들 틈이 없다”고 말했다. “무대에 오를 수 있게만 해달라고 기도했던 절박함을 잊을 수 없다”고도 했다. 피곤함쯤은 거뜬했다.
“잠을 충분히 잘 수 없다는 게 힘든 것 중 하나지만 어차피 이동하는 시간에 자면 되니까 괜찮아요. 체력이 떨어지면 보약을 먹으면 되지만 노래할 곳이 없어서 괴로운 건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도 없어요. 해결 방법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소중합니다.”
지금의 긍정적인 성품을 갖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녀가 지금의 모습이 된 데는 사회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저는 뭘 해도 안 되는 사람이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늘 그랬죠. 친구 관계도 그랬고, 선생님과의 관계도 힘들었어요. 집안 형편이나 진학도 마음대로 된 적이 없었죠. 그래서 삶에 대한 기대 자체가 없었어요. 제가 하는 모든 일이 실패하다 보니 하나만 잘돼도 감사하죠.”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는 법이다. 도전하는 모든 미션이 실패해도 그녀에게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 은가은은 기대도 실망도 없는 삶 속에서 희망의 씨앗을 뿌려왔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너무 행복해요. ‘내가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나?’ 싶을 정도로 벅차고 감사합니다. 실패의 연속이었던 삶이 조금은 편안해진 느낌이랄까요. 물론 저보다 더 유명하고 인기 많은 선후배 동료 가수에 비하면 많이 부족한 인생이지만 아무렴 어때요. 적어도 돈 걱정은 안 해도 되는 아침이 반갑고 좋습니다.”
은가은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자기가 얼마나 어려운 청춘을 보내왔는지 회상하는 듯했고, 작심한 듯 보였다. 돌이켜보면 그녀의 인생은 마디마디가 고비였다.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쉽게 말해 가난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은행에서 독촉 전화가 왔죠. 밀린 월세 때문에 집주인이 나가라고 할까 봐 눈치 보며 집에 들어가야 했어요. 먹고 싶은 걸 못 먹었고, 입고 싶은 걸 못 입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노래를 부르는 것뿐이었다. 무대를 포기할 수 없어 생계를 위한 아르바이트도 할 수 없었다. 언제라도 섭외 전화가 오면 달려 나갈 준비 태세를 갖춰야만 한 곡이라도 더 부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어요. 어머니 혼자 3남매를 키우셨고, 그래서 늘 힘들어하셨죠.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경제적으로 여유로웠던 적이 하루도 없었던 것 같아요. 가수 하겠다고 서울에 올라왔는데 성공해서 용돈을 드리지는 못할망정 손을 벌릴 순 없잖아요. 그래서 혼자 해결하느라 늘 전전긍긍했죠.”
믿었던 회사가 문을 닫고, 중국 진출을 앞두고 있던 시기에 사드 사태가 발생하고, 뮤지컬에 도전해 첫 무대에 서는 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코로나19가 터졌다. 긍정의 아이콘인 은가은도 무너졌다.
“진짜 뭘 해도 안 되는구나 싶었어요. 마지막 희망이 무너지니까 노력하고 싶은 열정도 사라졌죠. 고향으로 내려가려고 했어요. 고향에서 작은 회사에 취직해 결혼해야겠다 싶었죠. 그게 저에게 주어진 운명 같았고, 이제는 받아들여야 하나보다 했어요.”
모든 걸 포기했던 순간 한 줄기 희망이 돼준 게 TV조선 예능 <내일은 미스트롯2>(이하 <미스트롯2>)다. 작가로부터 연락이 왔고, 고민 끝에 출연을 결심했다. 은가은은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기로 했다.
“<미스트롯2>에서 연락을 받을 때만 해도 ‘내가 되겠어?’ 싶은 생각이었어요. 방송에 한 컷만 나오면 그걸로 행사를 뛰어야겠다는 생각이었죠. 제가 오래 살아남을 거라곤 생각조차 안 했었어요. 그동안 늘 그래왔으니까요. 그렇게 인생의 마지막 도전을 시작했죠.”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미스트롯2>는 결국 그녀에게 터닝 포인트가 돼주었다. 한 단계 한 단계 성큼성큼 올라가더니 최종 7위로 ‘톱 7’에 이름을 올렸다.
“믿기지 않아서 지인들한테 계속 진짜냐고 물어봤던 것 같아요. 주어진 미션들을 수행하면서 많이 힘들어 작가님들에게 하소연했었는데, 그런 시간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달까요.”
기쁨을 만끽한 시간도 잠시였다. 은가은은 몰아치는 부담감에 잠을 못 이뤘다. 힘겹게 잡은 기회를 또 놓칠 수 없기에 누구보다 더 열심히 자신을 채찍질했다. 스스로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었다.
은가은은 힘든 시기를 관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버티라’고 조언했다. 진심으로 원하는 일이라면 끝까지 버텨야만 한다고 했다.
“어떤 분야든 끝까지 버티면 기회가 오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기회는 준비된 사람만 잡을 수 있죠. 그러니까 어둠 속에서 숨죽인 채 기량을 갈고닦아야 해요. 언젠가 주어질 기회를 제대로 잡을 수 있도록 말이죠. 지금은 그만둔 동료들이 아직까지 버티고 있었다면 그들의 삶도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해요. ‘존버’는 승리합니다.”
사랑하는 음악, 더 사랑하는 어머니
자기의 직업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은 성공할 수밖에 없다. 직업의 가치가 명확한 사람은 좋은 습관을 만들고, 좋은 습관은 결국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은가은이라는 무명 가수가 결국 빛을 보게 된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제가 제 직업을 좋아하는 이유가 단순히 경제적 자유를 가져다주기 때문만은 아니에요.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건 좋은 거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마음먹었을 땐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는데, <미스트롯2> 무대에 올랐을 땐 좀 살 것 같더라고요. 무대는 저에게 힐링 그 자체예요.”
<미스트롯2>의 첫 무대를 잊지 못한다. 언젠가 <미스트롯2> 출신 가수라는 꼬리표를 떼어내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그날의 그 감정만큼은 잊지 않으려 한다.
“노래하면서 생각했어요. ‘그래, 이거지. 이거야’라고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감정일 거예요. 직장인들도 어떤 일을 하면서 희열을 느낄 때가 있잖아요. 돈이나 명예와는 상관없이 자신을 일하게 하는 특별한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은가은이 이토록 무대를 아끼고 사랑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녀의 첫 무대 기억이 여전히 아름답기 때문이다. 자기의 재능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 채 방황하던 사춘기 소녀가 성악이라는 장르를 접하고, 울리며 뻗어 나오는 목소리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완전히 매료된 것이다.
“저는 하고 싶은 게 없던 소녀였어요. 운동도 못했고 공부는 더더욱 못했죠. 음악 시간에 노래를 불러봤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내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힘들었는데, 적어도 내 목소리만큼은 내 맘대로 가능하잖아요.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학교가 끝나면 의자 뒤에 숨어 있다가 몰래 남아서 피아노 치며 노래 연습하고 그랬죠. 새벽에 일어나 집 근처 왕비릉에서 노래 부르다가 학교에 가곤 했어요. 동네 콩쿠르에서 상을 받았고, 점점 더 재미있어졌죠. 엄마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까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요.”
은가은은 대화 속에서 어머니를 자주 회상했다. 엄마가 좋아했다, 엄마가 많이 힘들었다, 엄마를 위해 노래해야 한다…. 은가은은 어머니를 그리워했다.
“우리 엄마는 3남매를 홀로 키워내셨어요. 생각해보면 제가 어렸을 때 엄마는 항상 일을 하는 모습이었어요. 새벽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젊은 나이에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그래서 저는 엄마를 위해서라도 더욱 노래를 해야 합니다. 첫 용돈을 드리던 날, 엄마의 표정을 잊지 못해요.”
은가은은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그녀에게 어머니는 존재 그 이상이었다.
“엄마에게 미안해요. 가끔 어머니를 위한 노래를 부르곤 하는데 그때마다 울컥해요. 눈물을 참으려면 어찌나 힘든지요. 지금도 딸 걱정에 편치 않은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더 많은 걸 즐겼으면 좋겠어요. 사랑한다는 말로 부족합니다. 엄마에게 받은 사랑을 앞으로 찬찬히 갚아나갈 거예요.”
마음은 얼굴에서 드러난다. 마음이 예쁜 사람은 얼굴도 예쁘다. 은가은이 더 예뻐 보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