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안이가 또래들이 가는 여름 캠프에 갔다. 사실 먼일인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돌아오리라곤 생각도 못 했다. 3주 동안 떠나는 캠프였다. 출발하기 일주일 전부터 거실에 여행 가방을 두고 혹시라도 빼놓고 가는 짐이 없을까 챙겼다 풀었다를 반복했다. 처음으로 오랜 기간 떨어져 지낼 아들 생각에 갈피를 못 잡은 아내와 나는 트렁크에 우리의 복잡한 감정까지 채웠다 비웠다 하듯 반복했다.
그런데 주안이는 동요가 없었다. “이거 필요할 것 같지 않아?”, “이거 없어도 돼?”, “이건?” 엄마, 아빠의 질문에 주안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괜찮아”, “좋아”, “문제없어” “걱정 마”.
그러던 중 내가 날짜를 착각해 주안이가 떠나는 날 배웅을 하지 못하게 됐다. 주안이가 캠프로 떠나는 날과 아내와 나의 미국 공연 입국 날짜를 착각해 우리가 하루 먼저 출국하게 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우리 가족은 그 전날 할머니 댁에 가서 잠을 잤고, 아내와 나는 주안이의 배웅을 받으며 공연을 떠나게 됐다. “엄마, 아빠 잘 다녀오세요. 저도 즐겁게 캠프에 다녀올게요!” 주안이는 우리를 힘차게 안아주고는 씩씩하게 배웅해주었다.
아내와 나는 먼저 떠나는 게 마음에 걸렸다. 공항까지 가면서 주안이와 계속 영상통화를 했고,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통화를 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캠프에 가면 전자 기기 사용이 불가하기에 우리는 필사적으로 스마트폰을 부여잡고 주안이에게 사랑의 표현을 쏟아냈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아내와 나는 주안이의 빈자리를 더욱 느꼈다. 평소 비행기에 관심이 많은 주안이이기에 더욱 그랬다.
미국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종일 시간이 빈 날이 있었는데 뭐부터 해야 할지 빨리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동안의 여행에선 대부분 주안이가 좋아할 만한 곳들을 찾아 그곳 위주로 여행하고 식사도 했다. 부랴부랴 인근 관광지를 검색한 후 돌아다니고 호텔로 돌아와 하루 종일 커피 외엔 밥을 한 끼도 먹지 않은 우리를 발견하고 한참 웃었다. 주안이와 같이 다시 오자며 그날 밤 미리 비행기 티켓을 검색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보낸 열흘은 가족의 관계를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내와 나는 서로 사랑하고 존중한다. 동시에 모든 부모가 그렇듯 아들을 사랑하고 아낀다.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 아들에게 많은 것을 집중하는 시기가 지금이기도 하다. 이렇게 떨어져 생각해보니 평소 우리 부부의 삶이 아들에게 많이 쏠려 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됐다. 그렇다고 한들 서로 서운한 마음보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크다. 하지만 미국에서 오롯이 아내와 단둘이 생활하며 여행도 하고 일도 하다 보니 아내의 고마움을 다시금 깨닫게 됐다. 서로의 존재와 서로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는지 잊고 있었던 것 같다. 가장으로서 새삼 책임감이 생기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나도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조금씩 성장하는 중이다.
글쓴이 손준호
1983년생으로 연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뮤지컬 배우다. <팬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페라의 유령> 등 다수의 뮤지컬에 출연했다. 2011년 8살 연상의 뮤지컬 배우 김소현과 결혼해 2012년 아들 손주안 군을 얻었다. 뭘 해도 귀여운 아들의 행복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