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촬영이 끝나고 세 아이와 함께 남편인 추신수 선수 경기를 보러 간다고 들었어요. 시즌 중에는 온 가족이 야구장에서 함께하는 시간이 더욱 소중하겠어요.
시즌 중일 때는 제가 메신저 역할을 해요. 서로 시간이 안 맞으니 얼굴 볼 시간이 거의 없죠. 그래도 한국에 있는 막내딸은 아빠 경기를 가끔 보러 갈 수 있지만 다음 날에는 학교에 가야 하니 아빠를 만나지 못하고 먼저 집에 가야 해요. 아들들은 방학 때가 아니면 정말 아빠를 만날 시간이 없죠. 그래도 가끔 자신들의 경기가 너무 안 풀릴 때면 잠도 안 자고 기다렸다가 아빠에게 전화해 조언을 구하곤 해요. 세 부자가 모두 야구를 하다 보니 서로의 기록을 저에게 물어볼 때도 많아요. 아이들이 방학인 지금은 아빠와 같이 야구장에 가서 함께 운동하니 너무 좋은가 봐요.
오랜만에 한국에 다 모인 아이들은 뭘 하며 지냈는지 궁금해요.
얼마 전에 제 동생이 아이들을 데리고 홍대거리에 다녀왔어요. 방 탈출 카페에도 가고, 길거리 공연인 버스킹도 보고, 밖이 다 내다보이는 노래방에도 갔더라고요. 동생이랑 세 아이가 하루 종일 놀다 밤 11시가 다 돼서야 집에 돌아왔어요.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돌아와서도 하이텐션인 상태로 계속 저에게 뭘 하며 보냈는지 얘기했어요. 너무 재미있었다면서요.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생활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남편이 벌써 한국에서 세 번째 시즌을 시작했어요. 코로나19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 리그에서 뛰게 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죠. 팬데믹으로 미국에서 리그가 중단됐기 때문에 마지막 시즌을 좀 아쉽게 보냈어요. 남편은 계속 야구를 하고 싶어 했고, 변화가 필요했죠. 미국에서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팀도 있었지만 한국에서 뛰고 싶어 하는 남편을 막을 수 없었어요. 처음엔 저도 쉽게 생각했죠. 미국에서 활동할 때도 시즌에 들어가면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았고, 아이들을 챙기는 것도 혼자서 해왔거든요. 팬데믹이 이어지는 중에 남편이 한국에서 시즌을 시작해 처음에는 자유롭게 한국과 미국을 오갈 수 없었어요. 특히 야구를 하는 두 아들에게 미국에서 야구를 하는 아빠의 존재는 제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컸죠. 힘들게 한 해를 보내고 남편은 계속 한국에서 야구를 하고 싶어 했어요. 더 이상 남편 곁을 떠나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두 아들은 미국에서 야구를 계속해야 했고 큰아들은 진학도 앞두고 있어 온 가족이 한국으로 올 수는 없었어요. 결국 저와 막내딸만 한국으로 돌아오고 두 아들은 미국의 기숙학교에서 지내게 됐죠. 처음엔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도 한두 달 지나고 나니 아이들이 성숙해지고 엄마와 아빠,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이 애틋해지는 게 느껴졌어요. 떨어져 지내는 것이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바쁘게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와중에 지난해에는 큰아들이 미국의 명문대에 입학했어요. 아이를 어떻게 교육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았을 것 같아요.
큰아들은 정말 아들 이상의 존재예요. 큰아들이 대학에 간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요. 거창한 교육법은 없어요. 다만 남편과 저는 아이들과 정말 친구처럼 지내요. 일정한 룰 안에서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하죠. 세 아이 모두 공부하는 걸 싫어해요.(웃음) 생각해보면 저와 남편 모두 공부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으니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것도 모순이죠. 그 대신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을 열심히 즐기면서 하라고 해요. 대신 그 뒤에 따르는 결과는 각자의 몫이라는 걸 강조하죠. 아빠가 워낙 대단한 선수이니 야구를 하는 두 아들은 다른 사람의 시선이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을 거예요. 저희는 항상 아빠와 비교해 잘하기보다는 자신이 먼저 즐겨야 한다고 말해줘요. 교육관보다 중요한 건 집안 분위기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아이들 앞에서 남편과 크게 싸워본 적이 없어요. 아이들은 늘 엄마와 아빠가 서로 위하는 모습만 봐왔죠.
세 아이 모두 성향이 다르겠죠? 아이들이 모두 함께 있을 때 집 안 풍경이 궁금해요.
가족 모두가 성격이 제각각이에요. 큰아들은 굉장히 긍정적이고 낙천적이에요. 아빠보다는 제 성향을 닮은 것 같아요. 승부욕이 강한 아빠와 성향이 달라 처음엔 과연 운동과 잘 맞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오히려 풀리지 않은 경기도 잘 털어버리고 새로운 에너지를 채워 더 잘해내더라고요. 끼도 많아 그림도 잘 그리고 춤도 잘 춰요. 슬럼프가 오면 혼자 그림을 그리며 풀어요. 그림을 배운 적도 없는데 너무 멋지게 그려 깜짝 놀란 적도 있어요. 둘째 아들은 아빠를 똑 닮았어요. 승부욕이 굉장히 강하죠. 시작한 일은 뭐든지 꼭 이겨야 해요. 그런데 성격은 세 아이 중에서 가장 스위트해요. 운동할 때의 눈빛과 제게 말할 때의 눈빛이 다르죠. 말도 정말 예쁘게 해서 종종 아이의 말을 듣고 감동하기도 해요. 막내딸은 말괄량이예요. 요즘 살짝 사춘기가 왔는지 혼자 보내는 시간도 많아졌지만, 오빠들이랑 있으면 여전히 분위기 메이커죠. 떨어져 있을 때도 매일 통화하며 오빠들과 수다를 떨어요. 물론 아이들끼리 싸울 때도 있죠. 특히 딸과 둘째 아들이 많이 싸우면서 컸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 둘이 가장 많이 의지하며 지내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아서인지 세 아이의 관계가 정말 돈독해요. 저희 가족이 함께 하는 게임이 있어요. 온 가족이 팀을 짜서 하기 때문에 안 하면 혼나는 게임이죠.(웃음) 승률을 올려야 자기 팀이 계속 올라갈 수 있어 다 같이 정말 열심히 해요. 그렇게 함께 게임을 하다 보니 일종의 연대감 같은 것도 생겨요.(웃음)
추신수 선수는 어떤 아빠인가요?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아빠보다는 친구처럼 보여요. 물론 아이들이 아빠를 존경하는 마음이 크죠. 두 아들에게 아빠는 같은 야구 선수로서 정말 큰 선배처럼 느껴질 테니까요. 아빠가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두 아들이 야구가 잘 안 풀릴 때 털어놓을 상대가 없는 점은 아쉬워요. 예전에는 문제나 고민이 생기면 아빠가 늘 든든하게 조언해줬으니까요. 저희 부부는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도 사람이라 항상 맞을 수 없고 때로 실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시켜요. 그래서 대화가 더 잘되는 것 같아요. 서로 감정 표현에도 솔직하고요. 때론 아이들에게 약한 모습도 보이면서요.
큰아들은 굉장히 긍정적이고 낙천적이에요.
둘째는 승부욕이 강한 점이 아빠와 꼭 닮았죠.
남편으로서는요?
100점 아빠이자 100점 남편이에요. 진짜 100점. 다시 태어나도 추신수와 결혼하고 싶어요. 음, 하지만 그때도 야구 선수라면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요. 제가 혼자 있어야 하는 시간이 많았으니까요. 하지만 분명한 건 정말 인간적으로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거예요.
추신수 선수가 훈련과 경기 때문에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으면 그만큼 엄마로서 해야 할 역할이 늘어나겠죠. 엄마도 지칠 수밖에 없는 존재인데, 그럴 때면 어떻게 다시 힘을 얻나요?
아빠의 몫까지 다 해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물론 아이들이 지금보다 훨씬 어릴 땐 더 힘들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도 첫째가 있어 많이 의지했어요. 저에게 정말 애틋한 아들이죠. 서로 의지하며 함께 컸다고 생각해요. 엄마로서 서툰 시절에 첫째와 함께 자란 셈이죠. 아빠의 빈자리를 제가 채웠다기보다는 아이들과 함께 채워갔어요. 이제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고 나니 혼자 있는 시간이 종종 생기는데 그럴 때면 더 바쁘게 움직이려고 해요. 40대에 들어서니 운동을 하지 않으면 체력이 떨어지고, 조금만 방심해도 군살이 붙더라고요. 그러면 자신감도 떨어지고요. 그래서 몸에 좋은 영양제도 챙겨 먹고 꾸준히 운동하며 페이스를 유지하려고 해요. 체력을 유지하는 건 살아가는 데 중요한 일이죠.
아이들도 운동을 하니 자연스레 영양제에 대한 관심이 커졌을 것 같아요.
그럼요. 미국에서는 가족 각자의 필요에 맞는 영양제를 챙겼어요. 그런데 아쉽게도 한국에서는 생각만큼 영양제가 다양하지 않더라고요. 미국은 영양제 종류만큼 제형도 다양해 각자의 취향과 필요한 영양소에 맞춰 고를 수 있거든요. 이를테면 저는 철분 영양제와 질 유산균을 챙겨 먹어요. 그리고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은 에너지를 쓸 일이 많아 쉽게 지치다 보니 이에 필요한 영양제를 먹죠. 두뇌 활동에 좋은 영양제도 챙기고요. 남편은 운동선수이다 보니 아르기닌 같은 영양소를 먹고요. 이런 식으로 언젠가 좀 더 세분화된 영양제를 한국에 소개하고 싶어요. 다양하고 먹기 간편한 영양제 관련 사업을 구상 중이에요.
한국에서 지내며 일과가 좀 달라졌나요?
비슷한 듯하지만 달라요. 미국에서는 아이들 위주로 스케줄을 맞춰야 해서 생활이 단조로운 편이었어요. 차로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면 바로 필라테스 센터로 출근해 아이들 수업이 끝나기 전까지 레슨도 하고 제 개인 운동도 했어요. 아이들 수업이 끝나는 시간이 되면 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와 간식을 차려준 다음, 아들들은 시간 맞춰 야구 연습을 보내고, 딸은 댄스 학원에 데려다주죠. 아이들 훈련과 학원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다 같이 집에 돌아오면 저녁을 차려 먹어요. 그렇게 하루가 끝나죠. 한국에서는 딸이 학교 수업이 끝나면 학원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하기 때문에 제가 데려오지 않아도 되니 개인 시간이 좀 더 많아졌어요. 재미있는 건 미국에 있을 때는 제가 화장을 하지 않고 데리러 가도 딸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한국에 오니 저더러 화장도 하고 머리도 예쁘게 하고 다니라는 거예요. 한국 엄마들이 모두 예쁘게 잘 꾸미고 다녀서 그런 거겠죠.(웃음)
아내와 엄마 역할도 바쁜데 필라테스 전문 강사로도 활약하고 있어요. 필라테스를 배우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다를 텐데요, 직업인으로서 필라테스를 선택한 이유가 뭔가요?
제가 대학교 2학년 2학기 때 싱글A 시즌이 끝나고 한국에 온 추신수 선수를 우연히 만나 연애를 시작했고 방학 때 미국에 가서 첫째를 가지게 됐죠. 그렇게 얼렁뚱땅 결혼 생활을 시작했어요. 주위에서 고생 많았겠다고 하지만 사실 좋은 기억이 많아요. 물론 힘든 적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죠. 아이들을 낳아 키우고 남편을 뒷바라지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살았어요. 미국에 온 지 십몇 년 만에 막내딸까지 학교에 들어가면서 비로소 제 시간이 생겼어요. 그맘때쯤 정말 우리 가족을 위한 보금자리를 만들어보자고 남편과 얘기했어요. 오랜 시간 가져온 꿈이었고요. 어떤 집을 지을지,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집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는 것도 즐거웠죠. 세 아이 모두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꿈을 실행했어요. 집을 짓기까지 3년이 걸렸죠. 정말 너무 힘들었어요. 집을 짓는다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죠. 땅을 미는 것부터 창문은 어디에 두고, 천장 높이는 어느 정도로 하고, 문은 어느 방향으로 하며 복도는 얼마나 넓힐지, 콘센트는 어디에 몇 개를 두고, 계단은 어떤 모양으로 할지까지 하나하나 다 제가 정했어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제가 미국 사람들과 건축을 주제로 상대하는 일은 정말 어려웠죠. 그렇게 바쁘게만 살다가 아이들은 모두 학교에 다니고, 남편은 여전히 바쁘다 보니 갑자기 저만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이 들었어요.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만 같았죠. 그래서 더 바쁘게 지내려고 했어요. 커뮤니티 칼리지에도 등록하고 동네 친목회 활동도 해보고. 그러다 어떤 분이 저에게 대뜸 이런 질문을 하더라고요. “잘하는 게 뭐야?” 그런데 제가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대답이 없었어요.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없었어요. 지금까지 저를 잘 모른 채 살았던 거예요. 꾸준히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그렇게 얻은 답이 필라테스였어요. 지금까지 취미로 해온 것을 이제는 좀 더 전문적으로 해보자고 결심했죠.
꾸준히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그렇게 얻은 답이 필라테스였어요.
지금까지 취미로 해온 것을 이제는 좀 더 전문적으로 해보자고 결심했죠.
필라테스의 어떤 점이 즐겁나요?
처음에는 일단 강사 자격증만이라도 따려고 했어요. 자격증을 위해 공부하면 할수록 매력적인 분야였죠. 아마 태어나서 가장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운동선수에게 정말 좋은 운동이에요. 저희 집에는 야구 선수가 셋이나 있잖아요. 안 할 이유가 없었죠. 함께 자격증 공부를 시작한 사람 가운데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이 많을 만큼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운 과정이었어요. 하지만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그렇게 자격증을 따고 좋은 기회로 트레이닝 센터가 있는 스튜디오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제 가족이 아닌 클라이언트들이 저를 필요로 하고 제게 레슨을 받으러 오는 것이 너무 좋았어요. 제가 일했던 스튜디오는 대부분의 학생이 미국인 시니어들이었어요. 영어가 서툰 저에게 몸을 맡기고 레슨을 받은 후 몸이 좋아졌다, 더 이상 허리가 아프지 않다, 어깨가 시원해졌다고 말할 때 정말 뿌듯했어요.
몸의 근육을 키우는 일은 감정의 근육을 키우는 것과 같아요. 운동은 건강한 삶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맞아요. 필라테스도 체력을 키우고 싶어 꾸준히 하게 됐어요. 살을 빼기 위한 운동은 균형감이 없는 것 같아요. 월·화·수요일에는 열심히 운동하고 식단 조절을 하고, 목요일에는 또 열심히 먹고. 월요일부터 다시 시작하고. 그런데 체력을 기르기 위해 운동하다 보면 정말 꾸준히 하게 돼요. 집을 지으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마다 운동을 했어요. 그러다 보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자연스레 체력도 키워졌죠. 몸매 관리는 자연스레 따라오고요.
필라테스 강사로서 세운 목표가 있다면요?
필라테스는 모던 필라테스와 클래식 필라테스로 나뉘는데, 저는 클래식 필라테스 강사예요. 클래식 필라테스는 필라테스 창시자인 조셉 필라테스가 만들어놓은 시퀀스를 그대로 고수하며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아요. 잘 모르는 사람이 볼 때는 매일 똑같은 운동을 하는 것 같지만 조셉 필라테스가 완성한 시퀀스는 마치 마법 주문 같아서 운동을 순서대로 반복할수록 몸을 변화시켜요. 할수록 어렵고요. 하지만 변화된 몸을 느끼는 순간 빠져들 수밖에 없어요. 아주 깊은 운동이죠. 굉장히 정교해 스프링의 떨림으로 자세를 읽어낼 수도 있어요. 필라테스 고수는 많이 움직이지 않고 정적으로 운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몸 안에서는 수많은 속 근육을 사용하며 근육을 컨트롤해요. 예를 들어 ‘트리’라는 운동이 있어요. 처음 이 운동을 접했을 땐 너무 힘들었어요. 매일 조금씩 하다 보니 가볍게 다리가 똑바로 뻗어지고 편안해졌죠. 드디어 이 동작이 됐다고 생각했을 때 선생님이 이제 뿌리를 내렸으니 가지를 뻗을 차례라고 했죠. 그러면서 진화된 동작을 알려줬어요. 그렇게 또 매일 연습했더니 잎을 펴고 열매를 맺을 동작이 이어졌어요. 그러면서 몸이 변화되고 그로 인한 성취감이 생겼어요. 운동 자체만으로도 즐겁지만 강사로서 클라이언트들을 대하면서 제가 느낀 성취감과 몸의 변화를 함께 느낄 때면 짜릿하기까지 해요. 미세하게 스프링을 컨트롤하며 몸을 퍼즐 맞추듯이 맞춰가는 재미가 있죠.
아마도 아이들이 클수록 엄마가 아닌 하원미로서 가지는 시간이 조금씩 늘 것 같아요. 그 시간을 무엇으로 채우고 싶나요?
아이들을 정성을 다해 열심히 키웠지만 아이들에게 보상을 바라거나 기대한 적은 없어요. 다만 그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잘 커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이젠 조금씩 늘어난 제 시간에 집중하며 지내려고 해요. 지금 하는 일이 재밌고, 이 순간이 행복하니까 앞으로도 이렇게 계속 즐거운 일을 찾아가며 바쁘게 보낼 것 같아요. 곧 유튜브 채널도 시작해보려고 해요. 아직 어떤 주제로 할지 정하진 못했는데, 운동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미국에 지은 집을 소개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아직 계획하지 못하더라도 가족이 함께하는 가장 이상적인 휴가는 어떤 모습인가요?
다섯 식구 모두 일이나 학교 수업, 경기 없이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아이들이 자랄수록 그런 시간을 가지기 힘들죠. 여름방학이면 아빠가 시즌 중에 있고, 아빠가 시즌이 끝나면 아이들이 학교에 가야 하거나 경기가 있어요. 이제 첫째가 대학생이 돼 다섯 식구가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기 점점 더 힘들어질 것 같아요.
남편과 아이들에게 어떤 아내와 엄마가 되고 싶나요?
‘집’ 같은 아내, ‘집’ 같은 엄마가 되고 싶어요. 치열하게 살아가더라도 집에 오면 모두 내려놓고 편안하게 쉴 수 있잖아요. 그렇게 오랜만에 돌아와도 추억을 나누고 서로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는 집 같은 아내이자 엄마가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