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 분쟁이 시작된 지 6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인화를 강조해온 LG그룹에서 처음으로 벌어진 상속 분쟁이기에 세간의 관심은 여전히 식을 줄 모른다. 양측의 입장이 팽팽한 가운데 사위 개입설 등 확인되지 않은 말들도 무성하다.
이번 소송은 10년 전 삼성그룹 차명 재산 유산을 놓고 벌어졌던 소송전이나 최근 진행되는 BYC 일가의 유산 소송과 비슷하지만 다른 점도 적지 않다. 상속 전문 변호사의 조언 등과 함께 이번 소송전의 배경과 전망을 분석해봤다.
1 극비리에 진행 중인 소송, 현재 상황은?
법원에 따르면 구광모 회장을 상대로 세 모녀가 제기한 상속회복청구소송은 서울서부지법 민사11부에서 10월 5일 속개될 예정이다. 앞서 지난 7월 18일 열렸던 첫 변론 준비 기일에서는 구광모 회장과 세 모녀가 직접 출석하지 않은 채 변호인들이 각자의 입장을 밝혔다.
2018년 구본무 선대 회장이 별세하고 남긴 재산은 LG 주식 11.28%를 비롯해 총 2조원 규모였다. 구광모 회장은 구본무 선대 회장의 지분 11.28% 중 8.76%를 물려받고 김 여사와 두 여동생은 LG 주식 일부(구연경 2.01%, 구연수 0.51%)와 선대 회장의 개인 재산인 금융 투자 상품, 부동산, 미술품 등을 포함해 5,000억원 규모의 유산을 받는 것으로 합의했다.
세 모녀 측은 구본무 회장의 유언장에 따라 구광모 회장이 LG의 모든 주식을 상속받는다는 말에 속아 협의서를 작성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증거로 가족들 간 대화가 담긴 녹취록을 발췌해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세 모녀 측은 법정상속 비율대로 구본무 선대 회장의 유산을 다시 나눠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구광모 회장 측은 구체적인 분할과 관련해 모두 전원 합의한 문서가 있고, 상속도 모두의 합치된 의사에 따라 진행했다고 강조했다. 또한 세 모녀 측에게 녹음 파일이 있다면 전체 파일을 공유할 것을 요청했다. 양측은 서로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강유식 전 LG경영개발원 부회장과 하범종 LG 경영지원부문장(사장)을 증인으로 채택하는 데 합의했다.
구 회장과 세 모녀는 이번 소송과 별도로 지난해 9월 용산세무서를 상대로 부과된 상속세가 과도하다며 같이 상속세 부과처분 취소소송을 냈다. 용산세무서가 구본무 선대 회장으로부터 상속받은 비상장사 LG CNS 지분 1.12%에 대해 장외시장 거래가를 기준으로 과세했는데 구 회장 일가는 LG CNS가 거래량이 많지 않아 근거가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이 소송은 7월 13일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에서 첫 변론이 열렸다.
한편 세 모녀의 법률 대리인 강일원 변호사(법무법인 케이원챔버 대표변호사)는 이번 소송을 맡으면서 차기 대법원장 후보에서 사실상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 김명수 대법원장은 9월 24일 임기가 끝난다.
2 상속 소송을 둘러싼 다양한 ‘썰’
세 모녀가 구본무 선대 회장이 별세한 이후 4년이 지나서야 상속재산회복청구소송을 제기한 배경을 놓고 세간에서는 여전히 각종 ‘썰’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이유라기보다 여러 요인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
일단 구광모 회장이 김영식 여사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점이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적지 않다. 구광모 회장은 구본무 선대 회장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친아들이었다. 하지만 구본무 선대 회장의 친아들 구원모가 1994년 갑작스럽게 죽자 장자 승계 원칙을 잇기 위해 2004년 양자로 입적됐다. 김 여사와 함께 소송전에 참여한 구연경 대표와 구연수 씨는 김 여사의 친딸이다.
이와 맞물려 구광모 회장이 희성그룹도 동시에 물려받는 것에 대한 반발 심리가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구광모 회장은 구본무 선대 회장의 양자인 동시에 구본능 회장의 친자이기에 양쪽으로부터 모두 상속받을 권리가 있다. 결국 LG그룹과 희성그룹을 모두 물려받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구본능 회장은 1998년 재혼한 후처 차경숙 씨와 사이에 1999년생 딸 구연서가 있지만 아들은 없다. 구연서는 가업과는 무관한 행보를 걷고 있다.
고 구본무 선대 회장의 장녀 구연경 대표의 남편이자 김 여사의 사위인 윤관 블루런벤처스 대표가 이번 소송의 배후에 있을 것이라는 세간의 추측도 적지 않다. 윤관 대표는 2006년 5월 구연경 대표와 결혼했고 2018년 구본무 선대 회장의 장례식에서 영정을 들기도 했다.
윤 대표는 실리콘밸리 기반 기관투자사 블루런벤처스(BlueRun Ventures, 이하 ‘BRV’)의 글로벌 파트너다. BRV는 핀란드 노키아가 1998년 설립한 노키아벤처파트너스가 모태로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두고 있다. 2000년 아시아에 진출하며 투자 플랫폼인 BRV캐피탈를 설립했고 윤 대표가 최고투자책임자(CIO)를 맡고 있다. BRV는 국내에서 직방과 오늘의집, 번개장터, 에코프로GEM, 에코프로머티리얼즈, 쓱(SSG)닷컴, 그린랩스, 넥스트챕터, 슈퍼메이커스, 핏펫, 네오사피엔스 등에 투자를 다수 집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 대표가 배후설의 당사자로 언급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일단 윤 대표가 장모나 아내보다 기업 경영이나 투자, 지분 가치 등에 정통한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세 모녀 소송을 맡은 강일원 대표변호사와 윤 대표가 용산고등학교 동문이라는 점도 배후설이 제기된 이유로 추측된다.
삼성그룹 소송전은 10년이라는 제척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이건희 선대 회장이 승소할 수 있었다.
반면 LG그룹 소송전은 구본무 선대 회장이 별세한 지 10년이 아직 지나지 않았다.
결국 법원이 세 모녀가 상속권 침해를 안 날로부터
3년을 넘었다고 판단하느냐 여부가 재판의 핵심인 셈이다.
3 삼성이나 BYC랑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이번 LG그룹 상속 소송은 10여 년 전 불거진 삼성그룹 상속 분쟁이나 최근 BYC를 둘러싼 소송전과 비교되고 있다. 삼성그룹이나 BYC의 재판 결과를 보면 LG그룹 상속 분쟁의 결과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LG그룹에 앞서 삼성그룹도 상속 분쟁을 겪었다. 삼성 특검을 통해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1987년 타계하면서 후계자인 3남 이건희 선대 회장에게 차명 재산을 남겼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2012년 2월 이병철 창업주의 장남인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은 동생 이건희 선대 회장을 상대로 창업주가 남긴 삼성생명 주식 425만 9,000여 주 등 차명 재산을 인도해달라고 소송을 냈다. 하지만 당시 고 이건희 선대 회장 측이 1심과 2심에서 모두 승소했고 이맹희 명예회장 측이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면서 2014년 2월 모든 법적 분쟁이 마무리됐다.
두 소송 모두 법적 쟁점은 제척기간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제척기간은 법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법정 기한으로 민법 제999조에 따르면 상속권의 침해를 안 날로부터 3년, 상속권의 침해 행위가 있었던 날로부터 10년이 지나면 상속권 행사나 침해 주장을 할 수 없다.
삼성그룹 소송전은 일단 제척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이건희 선대 회장이 승소할 수 있었다. 반면 LG그룹 소송전은 10년이 아직 경과하지 않았다. 결국 상속권 침해를 안 날로부터 3년을 넘었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가 법원 판결을 결정하는 셈이다.
BYC 일가 소송전은 삼성그룹이나 LG그룹과는 다소 다르다. 지난해 1월 한영대 전 회장이 향년 100세의 나이로 별세하자 한영대 전 회장의 배우자 김 모 여사와 장녀 한지형 BYC 이사는 차남 한석범 BYC 회장과 삼남 한기성 한흥물산 대표를 상대로 유류분반환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야말로 가족 간의 소송이다.
모녀는 유산상속 과정에서 법적으로 보장된 ‘유류분’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류분은 배우자 1.5, 각 자녀 1의 비율로 상속되는 법정상속분 가운데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특정 자식에게만 모두 유산을 준다고 유언을 남겨도 배우자나 다른 형제들은 유류분청구소송을 통해 법정상속분의 절반까지는 받을 수 있다. 특정 상속인이 유산을 독차지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 규정인 셈이다. 예를 들어 남매를 자식으로 둔 아버지가 7억원의 유산을 남기면 유산은 배우자가 3억원, 아들과 딸에게 2억원씩 나눠 상속된다. 하지만 아버지가 모든 재산을 특정인에게 넘긴다는 유언을 남겼어도 배우자는 1억 5,000만원, 아들과 딸은 각각 1억원까지 물려받을 수 있다.
삼성그룹과 LG그룹 상속 분쟁은 ‘법적상속 비율’대로 유산을 다시 나누자는 소송이고, BYC 일가 소송은 상속 지분은 인정하되 법으로 정한 ‘유류분’만큼은 보장해달라는 소송이다. 유류분은 유류분 권리자가 상속의 개시와 반환해야 할 증여 또는 유증을 한 사실을 안 이후 1년 이내에 소송하지 않으면 시효가 소멸한다.
4 전문가에게 들었다, 향후 LG그룹 소송 전망은?
상속 전문 변호사 등 전문가들은 세 모녀가 구광모 회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승소할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
가족법 및 상속 전문 최경혜 변호사(법무법인 한결)는 “상속인들 간 협의를 거쳤고, 이를 증명할 재산분할 합의서까지 작성하고 자필 서명과 인감을 날인한 상황이기에 세 모녀가 승소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며 “자기 권리 의무 관계를 인정하는 처분 문서가 있고 집행까지 들어간 상황에서 ‘속아서 잘못 판단했다’고 주장한다면 재판부가 이를 뒤엎는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최경혜 변호사는 “세 모녀가 합의서를 작성했더라도 법정상속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유산을 받게 돼 유류분청구소송을 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었다”며 “유류분청구소송은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1년 이내에 해야 하고 법원은 대부분 소송을 건 사람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세 모녀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장기전은 불가피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삼성그룹 소송전도 2심까지 2년이나 걸렸다. 대법원까지 갔다면 최소 6개월 이상 더 소모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2020년 기준 대법원의 평균 민사재판 기간은 6.8개월이다.
만약 세 모녀가 제시한 증거가 명확해 재판부가 세 모녀 손을 들어준다면 구광모 회장의 LG 지분율은 15.95%에서 9.7%로 낮아지고 김영식 여사 지분율은 4.20%에서 7.95%로, 구연경 대표는 2.92%에서 3.42%로, 구연수 씨는 0.72%에서 2.72%로 높아진다. 김 여사와 두 여동생의 지분율 합은 14.1%로 구광모 회장보다 많아진다.
하지만 세 모녀가 승소하더라도 다른 방계가족들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이 적지 않아 경영권 확보는 쉽지 않다. 구본식 LT그룹 회장(4.48%),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3.05%), 구본준 LX그룹 회장(2.04%) 등 방계가족과 공익 재단이 보유한 LG 지분율은 17.91%에 달한다.
이론상 경영권 분쟁이 불거지면 이합집산이 벌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인화를 중심으로 설립 이래 장자 승계 전통을 지켜온 LG그룹 일족이 세 모녀의 편을 들 가능성은 많지 않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결국 구광모 회장이 세 모녀에게 추가로 양보하는 선에서 새로운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